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1]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②
헐버트가 육영공원에서 교사로 일하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다시 조선에 온 때가 1893년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조선과 그 문화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책자를 영어로 번역하거나 출간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조선과 주변 나라들의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는 때였습니다.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그해 7월에는 일본이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경복궁을 점령한 후 조선 정부에 친일 내각을 구성해버렸습니다. 조선은 러시아와 외교적으로 우호관계였기에 고종과 명성왕후는 러시아를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 했고 친일 내각을 친러 내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헐버트의 제자이기도 했던 이완용을 중심으로 한 친러 성향의 인사들이 중용되었습니다. 그런데 1895년 4월 청일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의 앞날은 더욱 어둡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10월 8일에는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왕후를 포함한 궁중 인사들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세자까지도 살해 위협을 당하자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했고, 을미사변 이후 불안한 마음에 고종은 잠자리에 들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헐버트는 자신이 미국 사람이기에 일본이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 믿고 고종의 불침번을 자처했으며, 다른 미국 선교사들도 헐버트와 함께 순번을 정해 고종을 지켰습니다. 헐버트는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고, 고종은 헐버트를 무한히 신뢰하고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1896년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한글로 『독립신문』을 창간했는데, 총무였던 주시경은 헐버트가 공식적으로 제안한 띄어쓰기와 쉼표와 마침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글”이라는 이름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