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1명 사망, 6명 실종, 937명 부상
- 오후 5시 52분,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규모의 사상자를 낳았다. 500명 넘게 사망한 '6.25전쟁 이후 최악의 재난'이었다. 성수대교 붕괴와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의 일이었다.
- 흔히 삼풍백화점을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낳은 참극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삼풍백화점은 극악무도한 건설비리가 원인이었다. 당초 삼풍백화점은 우성건설이 상가 용도로 설계해 짓고 있던 건물이었으나, 삼풍의 요구로 백화점으로 용도변경된 것이다. 우성건설이 안전성 문제를 근거로 용도변경을 거부하자 삼풍 이준 회장은 계약을 파기하고 그룹 계열사 삼풍건설에 공사를 맡겨 용도변경을 관철시켰다.
- 삼풍의 부실공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매장 면적을 넓히기 위해 상가 내부의 벽들을 없애버렸다. 무게를 견디는 역할이 있는 건물 내부 벽을 없앤 것이다.
둘째, 바닥과 기둥을 연결하는 고리에 L자형 철근을 사용하는데, 건설비용을 줄이기 위해 ㅡ자형 철근을 사용했다. 건물 기둥의 힘이 그만큼 약화된 것이다.
셋째, 당초 4층짜리로 설계되었던 건물을 5층으로 확장했다.
넷째, 당초 롤러스케이트장으로 계획된 5층을 식당으로 용도변경하면서 무게 부담이 더 커졌다.
다섯째, 지하에 설치하기로 했던 냉각탑 4개를 옥상에 설치했다. 5층 식당과 냉각탑으로 인해, 당초 설계보다 100톤의 무게가 추가로 발생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필요한 건설자재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는 등, 여러가지 부실시공의 양상이 드러났다. 이러한 부실공사는 당연히 전부 불법이었다. 삼풍은 서초구청에 뇌물을 주어 이러한 문제를 무마시켰던 것이 나중에 드러났다.
- 가장 충격적인 것은 건물이 붕괴 조짐을 여러 차례 드러냈는데도 영업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5층 천장에 균열이 생기고, 식당 테이블이 한쪽으로
기우는 모습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삼풍백화점은 보수공사로 땜질하는데 급급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에도 에어컨이 정상 작동하지 않는 등 이상 조짐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백화점 측에서도 그날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업을 중지하지 않아 결국 수많은 손님과 종업원들이 사망했다.
경영진은 미리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