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맹세 외 1편
손한옥
남 앞에 맹세하지 마라
수천 번 들었지만
오늘도 함께 산책 나왔다
- 다시는 안 간다
나의 맹세 개맹세 스스로 갉아먹고
물러터진 두부 물렁 호박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말이사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포대 화상인 척 사는 것
운동 안 하면 나중 못 일어난다기에
전정신경염을 안고 죽도록 뒤따라간다
앞서가는 저 사람 분명 도둑놈 맞다
- 옥아 니 없으면 못산대이
어린 것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것 잡아다
껍질도 안 벗기고 통째 잡아먹은
운동이랍시고 하늘 보고 맴맴 두 번
허리 세 번 뒤틀고
들고 간 귤 두 개
껍질은 풀섶 귀뚜리 주고 저는 알 먹고
모기 두 마리 발에 붙었다 떨어지는데
이빨이 빠졌는지 발목 간지럽지도 않네
앞에 가는 도둑놈은 돌아도 안 본다
벤치에 누워 하늘 보고 별 세는데 풀냄새 진동한다
구릉논 들길 따라 중학교 가던 길
나 걸려 넘어지라고 풀마다 묶어놓던
균홍이 머슴아 풀냄새다
송광사 유나 스님 친견한 어느 해
스님은 예불부터 올리고 한용운 같은 시 쓰라고 하셨는데
내 글 보면 죽비감이라 대책 없다 하겠지만
바탕이 선머슴아라 내 용심 나도 화두다
와르르 좌르르 벤치 위 별들 쏟아진다
수면유도제 먹은 별들인가
나도 졸립다 함께 잠들자
우리 이 풀섶에서 보듬고 반짝반짝 아침까지 빛나자
두 팔 벌려 하늘을 안는다
대문 비밀번호를 같이 아는 도둑놈은 보이지도 않는다
나의 집은 동쪽
감꽃 하얗게 피어있는 집
바스러지는 흙담 한 움큼 쥔다
캄캄한 헛간 속 디딜방아 절구도 이 빠졌다
하얀 목에 감꽃 목걸이를 걸고
통통하고 순했던 내가 품었을 말의 알곡들 폐가가 된 생가의 담 너머 바라본다
고모집 오빠와 면장님 딸과 셋이
여섯 살 오빠처럼 오줌 멀리가기 했던 툇마루 오줌 추무리 그대로 있다
오, 저렇게
멀리 나가지 못한 가시나 오줌발이
저 마루 끝 단내로 스며 있겠다
언니가 반추하는 백 년 고령의 집
동생이 태어나고 엄마의 피빨래를 들고 개울로 나간 아홉살 언니 동네 어른들에게
- 우리 엄마가요 꼬랑대기 달린 거 낳았어요 했다는 저 살구꽃 환한 집
마른 담장 위 아버지 심어놓은 채송화 지천이던 곳
붉은 흙가루 부서진 기왓장 아슬하다
보리밥을 먹고 자랐지만
세 아름 당산나무와 시퍼런 대나무가 우리들을 지켜주고
사랑받는 것과 사랑 주는 것밖에 몰랐던 집 지금 그 바람 사무치게 분다
지수화풍으로 돌아갈 땅
세게 밟지도 못하겠다
다정한 집 우리들의 동쪽 해가 지지않는 땅
감꽃 같은 내 시와 언니의 푸른 기억 속에 찬란하게 숨 쉬어라
청보리밭처럼 절대로 절대로 고개 숙이지 말아라
손한옥
2002년 미네르바 등단
2016년 한국미소문학 동시 등단
시집 직설적,. 아주 직설적인 13월바람 외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