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땀을 흘려 일한 후에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누구나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1절)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이든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추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계획과 성취는 별개이며, 더우기 성취되었다 할찌라도 그것이 곧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음을 일깨워 주십니다.
첫째로, 우리의 노고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10절). 인생은 노고를 통해서 범죄한 인간의 본질을 깨닫게 되며,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창3:7참조).
둘째로,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운다 할지라도 그 성취는 하나님의 계획표에 의해 죄우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제각기 알맞은 때에 아름답게 되도록 지으셨습니다. 아름답다는 표현도 꽃이 활짝 핀 상태처럼 어떤 일이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도 사람의 잘 짜여진 계획과 치선의 피땀어린 수고로써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한 때가 되어야만 이루어집니다(11절).
셋째로,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이루는 어떤 것으로 만족 할 수 없는 본성을 지녔음을 의미합니다(11절). 아무리 좋아 보이는 일이나 사물을 성취하고 소유 했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인격과 함께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계속해서 즐거워 할 수 없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자기가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11절). 너무 거룩하신 하나님과 너무 타락한 인간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인간이 주제넘은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는 수고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그 수고 자체를 즐거워하면서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는 선한 일꾼들로 굳건히 섭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모든 것이 주의 뜻에 달렸음을 되풀이해서 가르칩니다.
당신은 진정 영원한 것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그 분의 계획을 따라 최선을 다해 수종들고 계십니까?
전도서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그도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1. 내일부터 추석 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식구들과 행복한 명절을 보내시길 기도하며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면서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찬양사역의 장비를 싣고 다니는 제 차량이 노후되어 (뉴카렌스 2007년식, 28만키로) 계속 어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장비를 싣고 다니다 보니 차가 무리가 많이 가는 모양입니다. 중고차라도 말썽 없이 장비를 싣고 다닐 수 있는 자량을 후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3. 추석 연휴기간에는(9월 28일- 10월 3일까지) 일일예화말씀묵상은 쉽니다.
제목 : 행동하는 믿음 성경 : 약 2:14~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7).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최초의 중요한 3가지의 질문을 하셨는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창 4:10)」는 물음이 창세기 서두에 나타나 있다. 우리는 이 3가지의 질문에 대하여 분명하게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대답은 신앙인 이어야 하고, 인간과 인간의 존재방식은 사랑 이어야 하며, 무엇을 했느냐의 대답은 책임적인 행동 이어야 한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신앙과 사랑과 행동」의 삼각관계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서 크리스챤의 행동은 사랑과 신앙에 입각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행동하는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복음 적인 행동 이여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대로 종교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함께 취급해야 하며, 시간과 영혼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종교는 위로 향하는 수직선상의 작용과 옆으로 향하는 수평선상의 관계가 잘 이루어 져야 한다. 기독교 복음은 두 가지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켜 구원해 이르게 하며, 다른 하나는 인간이 처한 주변환경을 변화시켜 그 인간의 영혼에 하나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독교 복음은 구원의 능력과 사회 변혁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계를 사랑하고 그 자신을 주심같이 우리 크리스챤은 이 세상에 자신을 드려 하나님이 이룩하시려는 그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열심히 전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둘째, 책임적인 행동 이여야 한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가루 속에 넣어둔 누룩이요 산 위에 세운 등대 라고 말씀하셨다. 소금과 누룩과 빛은 적어도 그 효과를 나타내는 것 같이 크리스챤은 각자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 스티어(Steere) 교수는 퀘이커 교도로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50여만명 퀘이커 교도는 보잘것없이 작은 숫자이지만 그들은 땅에 뿌려놓은 비료와 같아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고 말했다. 이처럼 교인의 숫자가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얼마나 분명하고 책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스코틀런드의 신학자 머리(Murray)목사는 언제나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쉬지 않고 일하면서 말하기를 지금은 많은 영혼들이 멸망 받고 있는데, 내 어찌 쉴 수 있는가! 라고 하시면서 89세 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셋째, 공동적인 행동이여야 한다.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이 각자를 심판할 때 네가 세상에서 무엇이었느냐를 묻지 않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을 물으실 것이며, 재물이 얼마나 있었느냐가 아니라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밝힐 것이다. 고 했는데, 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과 지위 등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으면서 무엇을 했고 자기가 소유한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따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삶의 역사 위에 남긴 행적을 확인 할 때 부끄럽지 않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나 혼자만을 위한 생활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위한 공동적인 관심을 가지고 진실과 책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각자 일하고 이득을 남겨 칭찬을 받았으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숨겨둔 까닭에 쫓겨나고 말았다. 기독교는 참선과 명상의 종교가 아니라 부지런히 뛰고 일하는 종교요, 할 일이 있는 곳에 나가 성실하게 일하는 종교이다. 영혼이 없으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이 형식적으로 믿는 믿음은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죽은 믿음이요, 행동하는 믿음은 살아 역사 하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고귀하신 정신으로 행동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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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명절을 주안에서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원 합니다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