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붐을 탄 한국 커머스는 왜 일본·대만·몽골·미국을 선택했을까 / 10/9(목) / 한겨레 신문
'K프리미엄'에 힘입어 2020년대 이후 국내 유통·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가 세계 시장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거의 해외 진출이 일부 대기업이나 전통적인 유통기업의 이야기였던 반면, 지금은 편의점이나 이커머스 등 다양한 기업이 시장을 넓히고 있다. 기업들은 지리적 인접성과 소비자 구매력, 현지 인프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출하고 있으며 이에 맞춘 차별화 전략을 펴고 있다. 어떤 기업에게는 기회였던 시장이 다른 기업에게는 실패가 되기도 하고, 특정 기업에게는 잠재력이 낮은 나라가 다른 기업에게는 유망한 시장이 되기도 한다. 국내 기업이 진출한 일본과 대만,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국가별로 진출 배경과 전략을 살펴보자.
■ 한국 패션을 가장 많이 참고하는 일본
일본은 MUSINSA(무신사)나 Ably(에이블리) 같은 한국의 패션 버티컬 플랫폼이 일찍부터 진출했던 나라. 일본 쇼핑몰 라쿠텐라크마 조사에서도 다양한 연령대의 일본 여성들은 한국 패션을 가장 (많이) 참고한다고 답할 정도로 한국 패션을 선호하고 있다. 에이블리와 무신사는 각각 2020년과 2021년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 사이에서 한국 아이돌과 콘텐츠, 패션 트렌드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며 "이에 따라 K패션, K뷰티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고 진출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에는 백화점 업계까지 일본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23일 일본 도큐그룹 자회사 도큐리테일매니지먼트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도쿄 시부야의 대표적인 건물 '시부야 109'에서 '신세계 하이퍼그라운드' 팝업스토어를 다음달 오픈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은 19일부터 파르코 시부야점에 '더 현대글로발' 정규 매장을 열었다. 향후 5년에 걸쳐 5개의 점포를 더 오픈할 계획이다.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비용 부담이 적고 한국 브랜드의 옷을 소비할 수 있는 구매력을 갖춘 나라. 동남아시아는 이를 소비할 여력이 부족하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물류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인종에 따른 체형 차이가 벽이 되고 있다. MUSINSA가 일본에 이어 중국 등 아시아 국가를 먼저 공략하는 것도 그 점과 관련이 있다. 무신사는 12월 중국 상하이에 매장을 열고 5년 안에 중국 매장을 10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한편 2021년 일본에 진출한 쿠팡은 일본 시장에서 고배를 마시고 철수한 뒤 대만 공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면 배송과 현금 소비가 선호되는 일본에서는 쿠팡의 '퀵 커머스'(빠른 배송)가 자리 잡기 어려웠다. 대신 쿠팡은 한국과 시장 환경이 비슷한 대만으로 눈을 돌렸다. 대만은 높은 국내총생산(GDP)과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게다가 인구 밀집도가 높아 물류망을 구축해 로켓배송을 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대만에 한국 모델을 그대로 도입한 쿠팡은 2분기 대만 사업 매출이 직전 1분기보다 54% 증가했다.
■ 편의점·슈퍼마켓은 시장 개척 위해 중앙·동남아로
패션·이커머스 기업에 일본과 대만이 '기회의 땅'이었던 반면 편의점 업계에는 두 시장이 이미 더 이상 성장 여력이 없는 '레드오션'이었다. 일본은 현대적인 편의점 모델을 만든 나라이고 대만은 일본의 편의점 시스템을 받아들여 편의점 문화를 발전시킨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편의점 업계는 아직 편의점이 발달하지 않은 데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중앙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그 중에서도 몽골은 한국 편의점 업계가 주목할 만한 특수성을 지닌 시장이었다. 한국에 유학하는 사람이 많고 일 때문에 오가는 인구가 꽤 많은 등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한 데다 상당수가 2000년대 한류 열풍으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 중 가장 먼저 몽골에 진출해 시장 개척에 나선 곳은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다. CU는 2018년 몽골에 첫 매장을 연 뒤 올해까지 500호를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몽골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카자흐스탄에 1호점을 내는 등 인접 국가로 진출 범위를 넓히고 있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편의점 자체브랜드(PB) 상품 중 90% 이상은 국내 중소기업이 생산하고 있다"며 "편의점이라는 소비채널이 다른 국가로 진출함에 따라 우리나라 제조업 상품도 함께 수출된다"고 설명했다.
슈퍼업계의 동남아 진출도 같은 맥락이다. 여전히 재래시장이 중심이어서 대형 유통 네트워크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어 초기 시장을 개척한다는 전략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노브랜드 1호점을 오픈한 이후 최근까지 3호점으로 확대하는 등 최근 몇 년간 필리핀과 라오스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알려져 있어 No Brand의 제품은 현지에서는 중산층 이상이 소비할 수 있는 중가 이상 제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한국의 프리미엄 상품을 이들 국가에서 판매하게 되면 일부 부유층만 살 수 있겠지만 노브랜드의 자체 브랜드 상품은 중산층 이상이 구매 가능한 가격대라 시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노브랜드는 대형 슈퍼마켓처럼 다른 업체의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체 브랜드 상품 위주여서 상품 개발과 수출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 한인사회 중심으로 신선식품 수요가 확인된 미국
많은 유통기업들이 아시아 시장에 집중하는 가운데 대륙을 건너 미국 시장을 택한 기업도 있다. 신선식품 전문 배송기업인 컬리는 8월부터 미국 역직구 서비스를 시작했다. 컬리는 지난해 H마트 등 미국 내 한국 전문마트에 B2B(기업 간 거래) 방식으로 한국 간편식을 공급했다. 그 결과 명확한 수요가 확인됨에 따라 물류비용을 생각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컬리 관계자는 "미국은 전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데다 신선식품을 빠르게 배송할 수 있는 전국 단위 배송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국가마다 소비자 성과 환경이 다르지만 한국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한국 콘텐츠와 상품의 인기를 앞세워 각 시장에 맞춘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가별 특성을 반영한 전략, 현지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