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의 아버지 기일입니다
1924년생 이시니 살아 계신다면
백세가 되시네요
아버지 연세는 몇해전에 새로 발간한
가계보를 보고 정확히 알았어요.
집성촌인 고향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신 아버지는 일찌감치 청운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진출하셔 주경야독 으로 건축
설계사 자격증을 취득하셔 건축업계에 종사해
오신분 이랍니다.
처녀작으로 외가 마을이 속해있는 군청 공사를
맡아 하시면서 지서에 근무 하시던 외할아버지
눈에 들어 엄마와 결혼 하셨다고 했어요.
태어난지 얼마안된 첫아이를 잃고 다시얻은
딸자식에 대한 사랑이 끔찍 하셨던걸로 기억해요.
제가 국민학교에 입학 했을때 학교에도
더러 오셨어요
희한하게 그린 내 그림이 교실벽에 붙였을때
보러 오시기도 하고..
어느날 체육 시간에 우향우 좌향좌를 헷갈리지
않고 잘한다고 앞에 나가서 시범을 보일때 ^^
뒤에서 빙긋이 웃고 계시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
쳤어요
저는 신이나서 선생님 구령에 맞춰 오른손 왼손
번갈아 들고 휙휙 돌았지요.
사업차 다니시던 요정에 어린 저를 데리고
가신적도 있어요
분냄새 진동하는 방.
날아갈듯이 한복을 떨쳐입은 젊은 여자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진귀한 음식들.
그 분위기에 해롱해롱 해진 저는 집에와서
미주알 고주알 늘어 놨다가 엄마한테 머리통을
쥐어 박혔어요.
일학년때 태풍 사고로 아버지와 저는 크게
다쳐 몇달간 병원 신세를 졌어요
당신은 하반신 마비가 될지도 모를 판국에
머리와 얼굴을 많이다친 제 걱정만 하셨대요
우리딸 저거 바보 되는거 아니냐고...
아버지와의 기억을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늘어 놨네요.
사업상 크고작은 시련에 부딪히면서 가정을
지키지 못해 이산의 아픔을 겪게도 하셨지만
제게 베풀어 주신 사랑은 잊을수 없답니다.
여기서.. 아버지 잠드신곳이 어느 방향인지..
돌아가실 무렵의 아버지 보다 더 늙어버린
딸자식 마음으로 큰절 올립니다.
첫댓글 그럼요
그리운 부정을 그리는 짠한 마음이 아릿하군요.
저도 10여년전에 아버지 50주기일을
산소에서 기렸답니다.
그렇게
그리운 정 세월은 무심히도 흘러 간답니다.
하루 의미 깊은 시간 가지세요.
효녀 해솔이
울지는 마서요...
효녀가 못되서 회한이 큽니다 ㅎ
아버지를 이해 할때가 되니 돌아 가셨지요
자상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
효녀 해솔정... 글귀마다 배여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의 심정...
가신 아버지께서도 바보로 안 된 해솔정님을 보면서 저 세상에서도 빙그시 눗으실 겁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 되시길요.
자랄때 반항심으로 아버지 속을 많이 썪였던게
나이 들어가면서 죄책감이 커집니다
들샘님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가슴이 울컥
1923년생우리 아버지랑 비슷한 연배이신데 건축기사자격증을 따신 아버님의 사랑스러운 딸
해솔정님
큰절을 올리는 심정으로 글도 잘 쓰셨구랴
부모님과의 추억을 기억할 수 있는 자식이 존재하니 잘 사셨습니다.
정감가는 말씀 감사 합니다
안과 내과 진료받고 왔어요
살아실제 불효하고 이제와서 그리워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지요
수우님은 좋은딸 이셨겠지요..
울아버지는 1917년생 박정희 대통령님과 동갑이셨지요. 아버님을 그리워하는 사부곡(思父哭) 잘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좋은날 되소서
그러시군요
저희 아버지는 불꽃처럼 사시다가
예순도 안된 나이에 돌아가셨지요
감사합니다 올도 보람있는날 되세요.
아버님이
정감있으신분 같습니다
아버님의 추억의 사랑의 멎진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
아버지가 냉철 하셨지만 속정이
깊은분 이라는걸 후에 알았어요
지인님 들려주셔 감사합니다
편안한 오후시간 되세요^^
아버지께서
옛날에
건축사업을??
대단합니다
오늘이 기일이군요
울 아버지는
농삿일에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답니다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복사꽃이 만개하는 봄날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엄마도
작년 봄날에...
부모가 떠난후엔
만감이 교차되더군요
솔정님은
아버지에게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있네요~^^
벼리님은 복사꽃 필때면
아버님 생각이 나시겠어요
울아버지는 딸들이 효도할 기회도
안주시고 형제분들중 젤 먼저 돌아가셔
애석 하답니다.
해솔정님에게서 사랑을 듬뿍 주신
아버님의 부성애를 느끼네요.
저의 친정아버님께서는 6,25전에
황해도 연백에서 서울로 내려 오시어
우리나라의 최초 제약회사에 다니시다가
일찍 돌아가셔 제가 살아오면서 늘
아버지를 그리며 살아왔답니다.
아버님이 이북분이시군요
돌아갈수 없는곳이라 생전에
고향을 많이 그리셨을듯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일찍 고향을 떠나셨다가
주검으로 고향땅에 돌아 오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