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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과 세상 걱정 없이 지내는 꿈을 꾸었습니다. 요 몇 년 새 가장 아까운 꿈이 아닐는지. 단지 기억의 현현이라면 예주가 어려야 하는데 커리어 우먼인 에예공이 아비를 위해 음식을 차려주는 시퀀스였어요. 우리 공주들은 열대아로 펄펄 끓는 대한민국에서 열공들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고 파이팅! 황금이 만능인 건 어제오늘이 다르지 않습니다. 돈 갖다주면 좋은 사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도 공주들에게 돈벼락을 때리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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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재벌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을 장식하고, 그들의 빛나는 영광은 부러움이 됩니다. 돈돈돈! 좋지 좋아! JYP 박진영이 성경 강의를 10년째 하고 있어서 10번 정도 경청을 해보았는데 내용도 스피치도 엑설런트 하더이다. 돈도 많고 가정도 있고 가질 것 다 가진 친구가 이타적인 삶을 위해 전도자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니 그의 멋진 생각을 응원합니다. 교회 나가지 않은지 5년쯤 되어갑니다. 물론 성경 묵상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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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묵상하다가 구약의 하나님은 왜 신경질적이실까, 매번 화가 나시고 심기가 뒤틀리면 누구든(자기 백성 포함) 체벌하셔야 했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서운 아버지를 좋아하는 자식도 있을까요? 구약을 신화로 보는 도올처럼 나도 구약을 신화로 봐야 하지 않을까. 종교는 죄책감에서 시작되었는가?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는 종교를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심리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는 종교를 단순히 미신이나 허구로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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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종교는 인간이 죄책감과 불안,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문화 장치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종교를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프로이트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원시 부족 사회의 토테미즘(Totemism)입니다. 토템은 특정 동물이나 식물, 자연물을 씨족의 조상과 수호신으로 여기는 신앙 형태입니다. 같은 토템을 가진 사람끼리는 결혼할 수 없었고(족외혼), 토템 동물을 함부로 죽이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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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금기(터부)는 단순한 풍습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절대적인 규범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금기가 생물학적 이유보다 사회와 심리의 필요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합니다.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입니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에는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기고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는 본능적 충동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이러한 욕망은 억압되어 무의식 속에 남아 인간의 심리를 지배한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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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이 심리를 원시 사회에 적용했습니다. 원시 집단에서는 강력한 아버지가 여자들을 독점했고, 성장한 아들들은 힘을 합쳐 아버지를 죽이고 그 권력을 차지했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인 뒤에는 엄청난 죄책감이 찾아왔습니다. 그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토템과 터부>입니다. 토템 동물은 죽은 아버지의 상징이 되었고, 평소에는 신성하게 보호받았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의례가 되면 부족 전체가 토템 동물을 죽여 함께 먹는 <토템 향연>을 거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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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아버지를 다시 죽이는 의식인 동시에 아버지와 화해하려는 의식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사회의 도덕, 종교, 법, 공동체 질서가 모두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프로이트에게 양심은 하늘에서 주어진 선한 본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복된 죄책감이 내면화된 결과입니다. 최초의 부친 살해 이후 인간은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살인 금지', '근친상간 금지'와 같은 규범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그 규범이 왜 생겼는지는 잊었지만, 규범 자체는 양심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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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도 "이것은 하면 안 된다."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양심을 인간 본성이라기보다 사회가 오랜 세월 동안 반복적으로 각인한 심리적 산물이라고 설명합니다. 프로이트는 왕이나 지도자에 대한 인간의 감정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합니다. 백성은 왕을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왕을 신성한 존재로 떠받들면서도 작은 실수 하나에도 모든 책임을 왕에게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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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과 증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양가감정'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왕에게 수많은 금기와 의례가 적용된 것도 이러한 심리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처음부터 신을 믿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자연물마다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존재했고, 여기에 주술이 결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보이지 않는 힘을 조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결과 독립적인 절대자, 곧 신의 개념이 등장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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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간은 자신의 죄와 욕망을 외부 존재에게 전가하려는 심리를 갖게 되었고, 악마나 귀신같은 존재들도 이러한 심리적 투사의 결과라고 해석합니다. 프로이트는 기독교도 같은 구조 안에서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는 인류 최초의 죄를 '부친 살해'라고 보았고, 예수의 십자가는 그 죄를 대신 갚는 속죄 의식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성찬식 역시 토템 향연의 연장선에서 이해했습니다. 즉 예수의 몸을 먹는 의식은 원시 사회에서 토템 동물을 먹던 의례가 발전한 형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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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독교는 인간이 무의식 속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가장 고도화된 종교라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프로이트의 설명은 심리학과 문화인류학,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종교를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과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창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후 라캉을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이 그의 정신분석학을 계승하거나 비판하며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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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원시 사회의 부친 살해 사건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아니라 가설입니다. 둘째, 종교를 지나치게 성적 충동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환원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셋째, 종교를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산물로만 설명하기 때문에 신학과는 근본적으로 충돌합니다. <토템과 터부>는 종교의 진위를 증명하려는 책이 아니라 종교가 왜 인간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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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종교를 죄책감과 불안, 욕망을 조절하는 인간 정신의 산물로 이해했습니다. 그의 설명이 모든 종교를 설명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종교를 심리학과 문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혁신적인 저작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종교는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인가, 아니면 인간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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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죄책감에서 시작되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에서 시작되었는가?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는 읽을수록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 책입니다. 불편한 이유는 종교를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심리적 산물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이유는 그 설명이 단순한 조롱이나 무신론적 비난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치밀하게 해부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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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은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도전이 되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만드는 고전입니다. 새벽에 예공과 아무 걱정 없이 밥을 먹던 꿈을 꾸었습니다. 현실에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지만, 꿈속에서는 근심도 경쟁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모두 그런 세상을 그리워하며 사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 같지만, 돈이 많을수록 불안도 함께 커지는 모습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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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동시에 가장 큰 관심과 비난의 대상도 됩니다. 돈은 많은 것을 해결하지만 인간 마음속 허전함까지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박진영의 성경 강의를 들으며 한 가지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들여 성경을 연구하고 복음을 전하려는 모습입니다. 신앙의 진위를 떠나, 인간은 결국 자신보다 큰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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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성경 묵상만큼은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은 떠날 수 있어도 질문은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그 질문에 아주 독창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은 사건이 아니라,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간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심리적 장치라는 것입니다. 원시 사회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느낀 죄책감이 토템과 금기를 만들었고, 그 금기가 도덕과 법, 종교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그의 가설은 지금 읽어도 충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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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조차 하늘이 심어준 것이 아니라 오랜 죄책감이 굳어진 결과라는 설명은 정신분석학다운 발상입니다. 특히 권력과 종교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놀라울 만큼 날카롭습니다. 사람은 지도자를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끌어내리고 싶어 합니다. 왕을 신성시하면서도 작은 실패 하나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양가감정은 오늘날 정치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도 결국 자기 안의 불안과 죄책감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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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는 여기에서 프로이트와 갈라섭니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인간에게서 하나님으로 올라가는 길로 설명합니다. 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신 이야기입니다. 프로이트에게 죄책감은 종교를 만든 원인이고, 성경에서 죄책감은 죄의 결과입니다. 프로이트에게 십자가는 인간 심리가 만들어 낸 상징이지만,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찾아오신 사건입니다. 둘은 같은 현상을 바라보지만 출발점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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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프로이트를 쉽게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의 질문은 종교가 인간 심리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었고, 믿음에도 자기기만이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신앙은 프로이트를 무시하기보다 그의 질문을 통과할 때 더욱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프로이트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 안에 그렇게 깊은 죄책감과 구원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종교를 만들어 낸 심리일 뿐일까. 아니면 잃어버린 하나님을 향한 기억의 흔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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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하나님이 때로는 너무 엄격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를 묵상하다 보면 심판의 마지막 목적은 언제나 회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벌을 주기 위해 분노하시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린 백성을 다시 당신께 돌이키기 위해 개입하십니다. 프로이트는 죄책감이 종교를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사랑이 구원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결국 <토템과 터부>는 신앙을 무너뜨리는 책이라기보다 신앙의 기초를 다시 묻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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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심리 현상을 넘어설 수 있는가, 죄책감 너머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존재하는가를 끝없이 질문하게 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설명했고, 성경은 하나님을 증언합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프로이트가 큰 도움을 주지만,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는 성경이 여전히 더 깊은 빛을 비춥니다. 어쩌면 신앙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정직하게 직면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들어 낸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잃어버린 존재인가?
2026.8.6.thu.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