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오늘
고 영 민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점심을 먹고 체한 듯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여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사 먹이고 도산공원을 걸었다 그해 오늘 저녁 그녀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 그해 오늘 나는 또 그녀를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손에 들고 도산공원을 걷는다 팔을 벌려 오늘의 냄새를 껴안는다 납골당에 다녀온 조카가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 1주기야, 크고 뚱뚱한 엄마가 어떻게 저 작은 항아리 속에 들어간 걸까 ㅎ 동의 없이 무언가를 빼앗긴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해 오늘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갈라파고스땅거북의 마지막 개체인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가 죽었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수영으로 대한해협을 건넜다 그녀를 만난다. 그해 오늘 그 거리에서 아직 찾아오지 않은 시간의 일이지만
시집〈햇빛 두 개 더〉문학동네
여름의 일
나무 아래 앉아 울음을 퍼 담았지 시퍼렇게 질린 매미 울음소리를 몸에 담고 또 담았지 이렇게 모아두어야 한철 요긴하게 울음을 꺼내 쓰지 어제는 안부가 닿지 않는 그대 생각에 한밤중 일어나 앉아 숨죽여 울었지 앞으로 울 일이 어디 하나, 둘일까 꾹꾹 울음을 눌러 담았지 아껴 울어야지 울어야 할 때는 일껏 섧게 오래도록 울어야지
햇빛 두 개 더 - 예스24
“당신은 없어요하지만 내가 당신 곁에 있을게요”온유한 시선으로 마주하는 오늘의 얼굴반짝, 착각이 선물하는 삶의 비의들문학동네시인선 222번으로 고영민 시인의 시집 『햇빛 두 개 더』를
www.yes24.com
고영민 시집 〈햇빛 두 개 더〉 문학동네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