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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끝 발끝에서 시작된 전율이 내 온몸을 휘감고 돌아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포로 로마노다
꿈에 그리던 그렇게 다시 오고파 했던 포로 로마노를 바라보고 있다
뜨거운 태양아래 인상을 잔뜩 찌푸린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을 흘리며 행복한 웃음을 자아낸다
심장이 터질것 처럼 두근 거린다 포로로마노를 거닐던 사람들 사이에서 2000년전 카이사르의 외침이 들려오는듯 했다
로마제국의 중심이었고 화려함과 영광의 상징 이었던 포로 로마노를 처음 마주했을때가 생각이 난다
여기가 세계사 시간에 죽도로 외운 정치 경제 상업 법률의 중심지가 맞는건지~ 무너지고 쓰러지고 뜯겨져 나가고 게다가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그림들을 보며 아무리 그림 맞추기를 할려고 해도 이 기둥이랑 여기가 맞는건지~ 그럼 옆에 있는 이건 뭔지..? 어휴~ 기둥들이 비슷하게 생겨서 내 눈에 죄다 헷갈리고 알아볼수가 없었다
설령 그림 맞추기를 잘해 건물들 이름을 알아 냈더라도 그 용도를 알지 못했고 그 역사를 알지 못하니 나에겐 무용지물 이었다
다음날 시내투어를 했었다 나는 가이드라는 든든한 백을 모시고 포로 로마노를 다시 찾았다
신들린듯 로마사를 풀어 놓던 가이드 널부러진 돌들만 가득 했던 그곳이 반짝 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알고 싶어 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로마관련 책들을 읽었고 자연스레 로마에 빠져 들었고 막연한 동경에서 무조건 다시 가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직장을 그만 뒀고 내 손에는 지구 반바퀴 비행기 표가 쥐어져 있었다
이게 다 그 로마 덕분이다 시집도 가지 않고 직장까지 때려 치우게 된건 순전히 다 로마 탓 이다
다시 마주한 포로 로마노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2천년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로마식 가도는 오늘도 여전히 반짝였다.
카이사르도, 아우구스투스도,안토니우스도 이길을 지나갔겠지
포로 로마노로 향하는길 수천년을 이어온 로마식 가도
나는 유독 로마의 돌길을 좋아한다 걷다보면 울퉁부퉁한 돌길에 발이 아파오긴 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나는 까만 저 돌길이 좋았다
저 길을 걷고 있노라면 2천년전 로마제국안에 내가 있는것만 같았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군인들의 함성소리와 전차소리가 울려퍼지는것 같다 네마리의 백마를 타고 개선하는 황제와 장군을 보기위해 로마시민들은 포로로마노를 가득 메워을 것이다
셉티미우스 황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군인황제 출신으로서 로마제국의 영토를 영국까지 넓히려고 했다 하지만 꿈을 실현되지 못했고 그는 눈을 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마자 로마는 다시 대혼란에 빠졌고 큰아들 칼라카라가 권력을 잡기 위해 동생 게타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동생을 죽이면서 까지 황제 자리에 올랐으면 잘좀 해볼것이지 칼라카라 황제는 우리들에게 목욕탕 하나 남겨주시고 암살당하고 만다. 재위 6년만에..
이런 비극을 미리 예견 했던 걸까..? 셉티미우스 황제는 마지막에 이런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 이루었다.그러나 모든것이 헛될 뿐이었다"
백지 상태에서 포로 로마노에 들어서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기껏해야 두가지다 하나는 개선문이고 또다른 하나는 저~멀리 보이는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 하는데 과연 포로 로마노는 무엇일까..?
우리 말로 쉽게 풀어 쓴다면 로마 공회장쯤 되겠다
정치,경제,사법,행정,법률,종교등 모든 기관들이 모여 있던 로마세계의 중심 즉 이곳에서 연설도 하고 장사도 하고 재판도 하고 등등 그랬을 것이다
이 모든것들이 한곳에서 행해 졌으니 포로로마노는 늘 사람들로 붐볐을 것이다
유언비어도 많았을 것이고 ~카더라 통신도 끊이지 않았을것이다
그래도 신전 앞에서는 진실만을 말했으리라
베스타 신전
로마에 있는 무수한 신전 중 나는 베스타 신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건축 양식, 신화 이런것에는 젬병이다 보니 나역시 ~카더라 통신에 귀가 기울여 졌다
로마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는 성화를 모시는 베스타 신전
베스타 처녀 제관의 집
처녀제관들은 총 6섯명이었는데 여섯살에서 열살 사이의 소녀들 중에서 뽑혀 30년동안 순결을 지키며 베스타 여신 숭배 의식을 집전하고 성화를 목숨걸고 지켰다
처녀재관들은 매우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사회적 지위도 높았고 급여도 장난 아니였다고 한다
만약 성화를 꺼트리거나 순결을 잃을경우에는 가차없이 생매장 되었다고 한다
베스타 여신 숭배 의식은 천년 이상 지속되었지만 기독교라는 강렬한 불길 앞에서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서기 394년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은 꺼지고 말았다
사투르누스 신전
'씨를 뿌리는 자' 즉 농경의 신이다
사투르누스 신을 기념하기 위해 사투르날리아 축제를 열어 음식을 나누고 선물을 교환하였다 로마시 전체가 축제 기분에 젖어 떠들썩한 날로 이 날은 공공업무도 쉬고 전체 시민이 환락으로 밤과 낮을 보냈다고 한다
이풍습이 오늘날 크리스마스 축제의 유래라고 한다 그리고 요일의 이름(Saturday:토요일)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나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당장 포로 로마노로 달려가서 사투르누스 신전에 코를 박고 엎드리고 싶다
디오스쿠리 형제 신전
디오스쿠리 형제가 누구냐 하면 캄피돌리오 언덕에 오를때 양옆으로 서있는 두 청년이다
로마에 가신분들 기억 나시죠..? 홀딱 벗은 몸매로 우뚝 서 계시는~
공화정이 시작된지 10여년쯤 되었을때 주변 라틴부족들이 힘을 합쳐 로마를 침략 했었다 승승장구 하던 로마군들이 이번만은 힘겹게 싸우고 있었는데 백마를 탄 쌍둥이 형제가 나타나서 로마군을 도와 주었다고 한다
그때 도와주었던 쌍둥이 형제가 바로 디오스쿠리 형제이다
디오스쿠리 신전또한 르네상스 시대때 파괴가 되고 석상은 뜯겨져 캄피돌리오 언덕을 지키고 있다
공화정까지는 그리스 신들을 계승한 로마신들의 신전이 포로 로마노에 가득 했지만 제정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 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신격화 하여 신전을 지어주는데 그 이후로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만의 신전을 세우게 된다
황제를 신격화 하는 시대가 온것이다
베스파시우스 황제 신전
네로 황제가 자살을 하고 로마제국은 1년동안 황제가 세번이나 바뀌는 그야말로 위기의 시대였다
이 시기를 극복한 황제가 베스파시우스 황제이다
로마제국 최초의 평민 황제이고 로마를 대표하는 콜로세움을 만드신 분이다
죽기진전에 "불쌍하게도 내가 신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군" 라고 말한 베스파시우스는 죽은뒤 그의 걱정대로 신격화 되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 및 파우스티나 황비 신전
로마제국을 최전성기의 반열에 올려놓은 3명의 황제가 있었다
로마제국을 최대로 넓힌 트라야누스 제국 전역을 순행하며 통치체제를 재구축한 하드리아누스 온화한 인품과 덕행으로 개혁을 정착 시킨 안토니누스 피우스
웅장한 저 신전은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황후 파우스티나의 죽음을 애도하며 세운 것이다
당신은 애처가셨군요
막센티우스 황제의 아들 로물루스 신전
막센티우스는 아들 로물루스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으나 10대의 어린나이에 죽고 말았다 애통한 아버지는 아들을 신격화 하여 신전을 세웠다
수많은 신전외에도 실질적인 행정을 담당하던 기관들이 포로 로마노에는 가득했었다
원로원
고대로마의 입법 자문 기관이며 국정운영의 실질적인 중심기관이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집정관을 선출 했다
300명에서 시작했던 원로원 의원들은 900명까지 늘어 났는데 처음에는 귀족들이 차지 했지만 나중에는 평민들도 참여 할수 있었다
우리의 국회의사당과 비슷한 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막센티우스 황제 바실리카
바실리카란?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수 있는 다목적 공공건물쯤 되겠다
사진속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아치형 으로 지어진 바실리카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 할수 있을것이다
당시에는 재판장으로 사용 되었는데 훗날 기독교 성당건축의 모델이 되었다
막센티우스 황제에 대해 조금 알고 넘어 가자면 밀비우스 다리에서 콘스탄티누스에게 패해 그는 목숨을 잃었고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세계의 역사를 바꾼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로마역사에서 절대 빼놓을수 없는 사람이 있다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 율리어스 카이사르
로마에서 가장 빚을 많이 지고 있던 사람이자 많은 여성들을 유혹한 바람둥이였으며 '갈리아 전쟁기' '내전기'를 쓴 문학가 였다
그에게 있어 돈은 사치와 향락의 대상이 아니였으며 언제나 군단과 시민들을 향해 베풀었다
바람둥이였지만 여자에 빠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둘다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졌지만 둘의 운명은 완전히 달랐다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져 로마제국의 일부를 넘겨주고 끝끝내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우스에게 패해 자살하고 말았던 안토니우스와는 확실히 달랐다
전투에서 지지 않는 군인이었고 사람의 마음을 휘어 잡던 연설의 대가 였으며 냉정하게 세상을 볼줄 알았던 정치가 였다
그는 무력을 사용할때와 관용을 베풀때를 구별 할줄 알았다
갈리아(프랑스)를 정복했을때도 패자동화정책을 써서 속국으로 인정하여 시민권을 주고 자신들의 성씨를 주고 로마화 시켰다 오랜시간동안 반란 없이 로마화의 우등생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갈리아 정복을 끝내고 폼페이우스와 원로원들과 대립으로 인해 루비콘강(당시 로마 국경)을 건너야 했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이강을 건너면 인간세계가 비참해 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나아가자,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저졌다"
어쩜 이렇게 멋진 말만 골라 하시는지
게다가 폰투수의 파르나케스 2세와의 전투에서 승리한후 원로원에 보낸 승전보 에서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여러말 필요 없이 언제나 깔끔한 한마디로 좌중을 압도하던 사람
원로원과 부루투스 일당에게 살해 당했을때도
"부루투스.너마저~"
라고 한걸 보면 그는 카피라이터 재능까지 있었던거 같다
그가 남긴 수많은 말들 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말은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하고 내가 보고파 하는것만 본다면 딱 거기까지 밖에 볼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포로 로마노 또한 마찬가지다 보여지는것만 바라보면 무너진 돌뿐인곳이다 적어도 로마에 온다면 포로 로마노 중앙에 서게 된다면 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가 폼페이우스와 원로원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로마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카이사르가 키케로에게 보낸 편지중에 이런글이 있다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요.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
어제의 적까지 관용으로 포옹했던 카이사르 였지만 그의 넓은 뜻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3월 15일 원로원 회의는 카이사르의 명령으로 다시 세워진 폼페이우스의 석상이 내려다 보고 있는 곳에서 열렸다
모든것이 평소와 똑같던날 음모자들 말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햇던 가운데 카이사르는 암살 되었다
정적 폼페이우스가 내려다 보고 있는 가운데
카이사르의 화장터
무려 23군데 칼을 맞고 폼페이우스 회랑 한쪽에 쓰러진 카이사르의 유해는 방치된채였다 노예 세사람이 몰래 들어가 유해를 들고 나왔다 이틀뒤 그는 화장 되었다
카이사르의 유해를 불태우는 불길은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에도 옮겨붙어 장례식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의 죽음을 초래한 자들에 대한 분노의 자리로 변했다
군중들은 순식간에 폭도로 변하여 암살자의 집으로 갔지만 부루투스를 비롯한 전원은 피신하고 없었다
유해를 태우는 불길이 꺼져 갈무렵 세찬비가 쏟아졌다 카이사르의 유해는 누군가가 미처 긁어모으기도 전에 빗줄기에 씻겨가버렸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화장터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역시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내내 카이사르에게 빠져 지냈다
그의 채취가 묻어있는 그의 정신이 남아 있는 로마의 중심 포로 로마노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로마의 빛나는 보석 포로 로마노
2년전 내가 올라섰던 바위는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언제오더라도 변함없는 로마지만 오늘 로마가 또다시 새롭게 보인다
로마라는 도시의 깊이는 어디까지 일까..? 알면 알수록 더 알아가고 싶고 알면 알수록 더 빠져들게 만드는 도시다
여행중에 특별히 싫었던 도시는 없었다 내가 갔던 모든 곳 들이 소중했다 하지만 로마만은 달랐다 로마는 내게 특별한 도시였다
로마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는 세상에 충분히 많이 존재 하지만 늘 로마를 가보라고 나는 얘기한다 로마가 별루 였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나의 가족을 욕하는것처럼 마음이 아팠고 로마를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밤이 새도록 로마이야기에 밤을 새곤 했다
비록 거리에는 집시들과 쓰레기가 넘쳐 나고 질서의식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고 혼자 있는 동양여성은 절대 내버려 두지 않고 소매치기도 피해 다녀야 하고 지하철의 위생상태도 엉망이다
그래서인지 로마에 실망하는 여행객들을 가끔 만날수 있었다
나의 여행이 다른 사람과 똑같을수 없음을 잘안다 내 여행은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로마만은 특별하게 대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도시 로마를 꼭 느껴 보라고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 본다
2천년전 세계의 중심 로마가 내발아래 펼쳐져 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팔라티노 언덕에서 약속했다 2년전 그때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약속했던 것처럼 또다시 로마를 만나러 올거라고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지만 속으로 몇번을 몇번을 되뇌이고 되뇌였다
눈을 감고 상상하면 느껴질것이다 화려했던 그날의 영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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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로마를 다녀온지 3년이 되어갑니다다른 모든곳이 다 좋았고 소중한 추억을 주었지만 로마는 꼭 다시 한 번 방문을 하고싶고 더 많이 알고싶은 곳이라 생각했는데...내년이면 저도 일 그만두고 다시 한 번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항상 글 일고 지친 일상에 위로받고 설레여 하고있습니다^^
우와~ 내년에 떠나시는 거에요? 정말 정말 부러워 집니다..얼마전 기사에 보니 포로 로마노와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을 다시 복원 한다고 하더군요..!!달라지는 로마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언제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다시 가야지요
로마.. 포로 로마노... 사진 만으로도 기억이 새롭네요. 그리고 트레비에 동전은 안던졌지만 꼭 다시가리라 다짐합니다.. 사진/여행기 잘 봤습니다.
한번만 가기엔 로마는 너무 아쉬운 도시이지요..^^ 다시 가야 합니다..^^
역시 알고 봐야했는데... 전 포로로마노에선 더위와 싸운 기억밖엔 없어요//ㅋㅋㅋ
저도 처음에 갔을때는 그랬어요..^^ 포로 로마노가 포로 수용소 뭐 이런 개념인줄 알았어요..ㅋㅋ
이탈리아는 요즘 남북이 분리되서 나라가 쪼개지게 생겼어요..밀라노 사람들이 가난한 나폴리 사람들을 먹여살리기 싫다는군요.. 3 년뒤에는 연방국가 이태리가 될지 몰라염. 아니면 남북처럼 각자 독립국가로 갈지도..
제가 여행 할때도 그러더니..사태가 더 심각해진 모양 이군요.. 지금 그대로 있어주면 좋게 는데..~
저랑 고고싱~님하고 어쩜 그리 똑같은 상황이었는지..ㅠㅠ 똑같은 곳을 봣는데 피오나님과 엄청 차이나는 여행을..ㅠ.ㅠ
포로 로마노가 워낙 뜨겁긴 해요..^^
그러니까요..ㅋㅋ 숨을곳도 딱히 없고..ㅋㅋ
기억이 새롭습니다...ㅎ전 일일투어했는데 설명듣는내내 졸았어요..너무 피곤하고 크게 감흥이 없어서 그랬던거 같은데 피오나 공주님 글을 보니 로마에 대해 공부를 안하고 갔던게 후회되네요....
수동적으로 마주하는것보다 미리 조금이나마 알고 가면 그 감흥이 더 크게 다가온답니다
저두 로마를 특별히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저역시도 사실 로마에 조금 실망했었거든요 ㅋㅋㅋ 그렇지만 그것을 초월할만한 멋진 로마만의 매력을 잊을순 없죠^^
특별히 사랑해주세요..^^ 한번보고 두번보고 자꾸만 보고싶네..이게 로마인것 같아요
저도,, 시저의 그말을 진짜 좋아해염~ *.* 그 시대에 그런사람이 있었다니,, 멋져여~
완전 멋지지 않아요..? 그시절에 태어났음 카이사르밑에 들어가서 백인장군을 하던지..아니면 뜨거운 연애를 하던지..그랬을꺼 같아요....ㅋㅋ
대머리 난봉꾼... 그의 흔적을 저도 보고 싶어요. ㅋㄷ.. 이탈리아에서 3명이상의 남자에게 프로포즈를 받지 않으면 여자로서 심각하게 고민해보라고 하던데.. 오히려 그렇다면 프로포즈 하는 남자에게 감사해야 될지도요.. 홀홀홀~
판테온 앞 분수나 나보나 광장이나 암튼 로마에서 그정도 대쉬는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ㅋㅋ 살짝 지겨울 정도로 넘쳐나는 이탈리아인들이라구요..ㅋㅋ 하지만 우리의 카이사르는 여자들이 알아서 따라다녔다고 하던데...확실히 레베루가 달라요..ㅋㅋ
저는 2007년 6월의 눈에 보이는 로마만 보고 온것같군요 좀더 로마에 대한 공부해서 2000년전의 로마를 꼭 다시 한번 보고싶군요~퍼가요..
저두 포로로마노에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죠. 아무렇게나 방치된 돌덩이들 하나하나가 의미있게 다가온곳. 지금도 그곳이 무척 그리웁다는.... 하지만 2년안에 복원된다니 불안하네요. 나름 그곳의 여백이 더 좋을것 같은데....... 인간의 흥망성쇠를 한곳에 간작한곳! 다시 가고파요!!!
잘알지못하면 모든 이름들이 생소하고 어렵네요~~모른체 갔다가는 그냥 그런 로마만 보고올수도 있을듯~~오랜만에 들어와서 좋은 글 읽고갑니다...무언가에 깊이 사랑을 느낄수 있는 피오나님 부러워요...도시든 사람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