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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중국의 시대를 전설(傳說)시대라고 한다. 전설시대
다섯 왕은 황제, 전욱, 제곡, 요(堯), 순(舜)임금 다섯 왕이 있었고, 그 다음 왕조가 처음 시작된 것이 하(夏)나라이며 B.C.
2200년경에 세워져 500년 간 지속되다가 두 번째 나라인 은(殷)나라, 즉 상(商)나라로 바뀌었다. 은(殷)나라
시대의 많은 문명이 은허(殷墟), 즉 은(殷)나라 폐허(廢墟)에서 발견되었다. 하(夏)나라 시대의 것은 발견된 것이 없고, 글자는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으로부터 3700여년 전에 중국인들이 기록해 놓은 갑골문자(甲骨文字), 청동기(靑銅器)문자가 가장 오래된 한자(漢字)다.
하(夏)나라, 그전에 순(舜)임금 시대에 이미 한자(漢字)가있었다.
순(舜)임금은,
하늘의 임금, 즉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공자(孔子)의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 최초의 제사(祭祀)에 대한 기록인데,
순(舜)임금 시대에 이미 제사를 드렸고, 그 때부터 상제(上帝)에게 드리는 제사가 40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왔다.
순(舜)임금 때부터 드려오던 중국인 최고의 제사(祭祀), 즉 상제(上帝)에게 드리던 제사는 여름에는 북쪽
끝에서 드리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끝에서 드려서 국경제사(國境祭祀)라고 하는데, 요(堯), 순(舜) 시대부터 시작한 그 국경제사(國境祭祀)때
상제(上帝)에게 드리던 제사문(祭祀文)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된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을 보기로
한다 "지극히 오래 전 태초에
공허하고 흑암의 큰 혼돈이 있었사옵니다. 다섯 행성은 아직 운행되지 않았었고 태양도 달도 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거룩하신 신 상제(上帝)께서
이곳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사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사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이 지음을
받았사옵니다."
위의국 경제사문(國境祭祀文)과 기독교인이 믿는 경전인 성경(聖經) 창세기(創世記) 1장의 내용과 비교해 보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리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1절-27절) 상제(上帝)를 창조(創造)의 신(神)으로 묘사함으로서,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의
내용과 창세기(創世記)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 쪽은 또 다른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 이다. "모든 생물들이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았나이다.
上帝시여, 인간도 만물도 모두가 당신의 사랑으로 이 낙원에 살게 되었나이다. 모든 생명체가 당신의 선하심으로 지음 받았사오니, 그 축복은 당신으로 말미암음이옵니다. 오 주시여,
당신만이 이 모든 만물의 참 어버이가 되시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기독교 이외에는 이런 기도문이 없다. 제사문이라는 것이 결국 신(神)에게 드리는
기도문(祈禱文)인데, 바벨탑 사건이후 하나님을 기억하던 백성들이 동방으로 이주해온 후 하나님을 기억하며 드렸던 기도문으로 생각된다.
진시황(秦始皇)이 진(秦)나라를 세우던 B.C. 200년경까지 중국인은 2000여년 동안이나 유일신(唯一神)이요, 창조(創造)의 신(神)인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믿어왔다. 상제(上帝)는 중국식 발음으로, '샹따이(혹은 샹띠)'인데 유대인이 부르는 하나님의 칭호(稱號) 중에서
'산(山)에 있는 하나님'을 '엘 샤따이'라고 부릅니다. 샤따이, 샹따이, 발음이 거의 같다. 바벨탑 사건이후 혀가 꼬부라져 '샤따이'가
샹따이로 변한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믿던 샤따이 하나님을 최초의 중국사람들이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바벨론과의 무역으로 막강한 부(富)를 축적하고 사병(私兵)을 길렀던 장사꾼 '여불위'의 아들 '여정'이 진시황(秦始皇)으로 즉위하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그래서 유일신(唯一神), 즉 상제(上帝)하나님을 없애야 진시황이 중앙집권 통치하기가 쉽다고 해서 엄청난 문화 종교혁명을
일으켰다. 과거부터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믿어오던 중국인들, 특히 학자(學者)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서 굉장한 반대를 하자, 진시황은
가차없는 숙청을 단행했는데, 이것이 바로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이다. 과거에서부터 내려왔던, 모든 책을 불태워 버렸는데 그 책들 중에는
상제(上帝)하나님에 관한 기록, 바벨탑의 기록, 창세기의 기록이 많이 있었을 것인데, 그 책들을 태워 버리고, 그래도 살아있던 학자들이 계속
저항을 하자 생매장해서 죽여 버렸다.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신앙적 차원으로 볼 때는 유일신(唯一神)을 잘
믿던 중국이 바벨론적인 바알적인 신앙으로 완전히 떠나버린 사건이다. 여기저기서 유일신 사상이 들어올까 봐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여러 정보, 즉, "민주화 하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 하는 소리들을 차단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국민들을 강제노동
시킴으로써 반역을 일으킬 소지를 없애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적-정치적 목적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은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은 자기가 신(神)인 것처럼 살았고, 살려고 노력했지만, 중국인의 마음에 유일신(唯一神)
상제(上帝)사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회유책으로 상제(上帝) 신(神)도 인정하면서, 동서남북(東西南北) 각각에 더 중요한 신(神)이 있고 또
그 위에 태을신(太乙神)이 있고...... 라고 하면서 희석(稀釋)작전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말살(抹殺)정책을 폈지만, 2000여년
동안이나 믿어오던 신앙이 없어지지 않자, 상제(上帝) 신(神)을 격하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동서남북의 신과 태을신(太乙神) 등 여러 신을 만들어서 거기에 더 매력을 느끼도록 국가에서 주도를 해
버리자, 세월이 점점 흘러감에 따라 중국 사람들은 여러 잡신(雜神)들 중에 하나가 샹따이(上帝) 신(神)인 것처럼 변해버렸다. 진시황의
작전이 성공하였던 것이다. 진시황 자신은 어마어마한 진시황릉을 만들고 수많은 장수들의 토용(土俑)을 만들고 죽었지만, 진시황 당대로 끝나버리고
다른 나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또한 진시황의 정책 이외에도 중국인의
종교심을 많이 변질되게 만든 사상 중 하나가 B.C. 500년경에 시작된 노자(老子)와 장자(長子) (오른 쪽 그림이 노자와 장자의 초상)를 중심으로 한 도교사상(道敎思想), 즉 Taoism이다. 그리고 B.C. 500년경에 공자(孔子)가 태어나고 공자(孔子)의
유학(儒學)사상도 시작되고, 멀리 인도에서는 부처, 석가모니도 이 때쯤에 태어났다. 유교(儒敎)와 도교(道敎)는 진시황때 이미 300여년
유행하였고, 불교(佛敎)는 오랫동안 들어오지 못하다가 한(漢)나라 초, B.C. 100년경에 중국에 들어 왔다. 가장 늦게 들어온 사상이
불교(佛敎)이다.
진시황이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모든 종교적
기록을 다 불태운 줄 알았으나, 그 후 세월이 흘러 공자(孔子)의 허물어진 집을 수리하다가 벽 속에 숨겨둔 공자(孔子)의 기록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왼쪽 그림과 같이 대나무에 글씨를 써서 여러 개를 엮은 것. 책(冊)字가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공자는
산동성(山東城) 곡부(曲埠)의 동이족(東夷族) 출신 학자이며 그의 저서(著書) '중용(中庸)'에서 제사(祭祀)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많은 학문을 토대로 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하늘과 땅에 드리는 모든 제사의식들을 통해 사람이 상제(上帝)를
섬기느니라." 결국 제사(祭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샹따이(上帝)'를 섬기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공자의
제자(弟子)중에 하나인 계로(중국말로는 치루)가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선생님, 감히 죽음(死)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우리가 아직 삶(生)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서 논할 수 있겠느뇨?"(孔子, 論語
11-11) 또 다른 제자가 물었다. "神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십시오." 라고 하자,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神에 대해서 논하겠느뇨?" 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孔子는 이처럼 겸손하고도 上帝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상제(上帝)하나님은 잊어버린 체, 공자를 신(神)처럼 받들고 이 유교사상 하나로 이조 500년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남녀노소를 괴롭히고 살아온
것 아니겠는가. 지금도 기독교를 믿지 않는 양반 집안에서는 아직도 유교사상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진짜 공자(孔子)가 존중한
사상은 잊어버리고 말이다. 간절히 바라던 제사와, 조상(祖上)숭배와, 효(孝)의 진짜 근본이 무엇이냐?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시는 창조의
신(神) 상제(上帝)하나님을 그렇게 섬겨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조상(祖上)만을 섬기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동안 큰 혼란에 빠져 있던 중국이 평정되고 정리되면서 상제(上帝) 숭배사상은 다시 제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명(明)나라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회복하게 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황제(皇帝)나 왕족(王族)이라는 특권층이 그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것을 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른
쪽 사진은 중국의 황제가 살던 자금성(紫禁城) 한 중간에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祭壇)이다. 하늘 천(天), 제단 단(壇)을 써서
천단(天壇)이라고 부른다. 옆그림이 천단(天壇)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우리나라는 더욱 더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섬기던 나라라고 보아집니다. 고조선(古朝鮮)의 풍습이
상제(上帝)하나님을 섬기는 풍습이었고, 고구려(高句麗)의 국가 축제인 동맹(東盟)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부여(夫餘)의 영고(迎鼓)라든가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등... 우리 민족의 고유한 행사와 사상에는 전부 상제(上帝)하나님을 섬기던 사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러한 중국인의 종교적 배경으로 보나 역사적
배경으로 보나, 미궁에 빠졌던 갑골문자의 기원이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어있는 인류 공통의 사건과 관련되어서 만들어졌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연구분석 결과 수많은 갑골문자의 기원이 창세기의 사건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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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은 나라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단한 내용인데 아주 잘 읽었습니다. 고대 중국인의 상제숭배사상이 창세기와 비슷할 줄은 처음 알았네요. 역시 노아할아버지 이후 창세기 말씀을 가지고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인류가 하나님에 관한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의 근거가 한자에도 나오는데 배선(船)자가 그것입니다. 배주(舟)자, 이는 방주를 뜻하고, 여덟팔(八)과 입구(口)는 방주에 올라탄 노아의 8식구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것 꾸며낼래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한자가 우리민족의 글자라는 것입니다. 한자의 발음이 언어학상으로 중국민족의 발음으로는 발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랄 알타이언어로만이 가능한 발음이라고 합니다. 이 분야는 제가 잘몰라서 이 분야에 잘아시는 분이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공자도 동이족으로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하다라구요. 문헌적 근거는 잘모르지만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한자를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면 우리 민족이 하늘 앞에 제사를 드려오던 민족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작은나라님의 말씀처럼 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의 의미가 무엇인가. 의(義)자나 미(美)를 해석하시는 것을 보더라도 내 대신 양을 앞세워 속죄의 피를 흘릴때 하나님으로 부터 의로움을 받는다, 사람대신 양을 받칠때
타락하여 추한 인간이라도 아름답게 봐준다, 양을 하나님께 갖다 바쳐 속죄할때 인간이 거룩해져 상서로워진다는 상(祥)도 그럴 듯한데,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해와가 제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타락하기 전이나 후나 이상하게 아담과 해와는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가 속죄의 의미가 있다면 타락전의 아담 해와는 제사를 드릴 이유가 없는 것이고, 타락이후에도 제사를 안드렸다면 제사드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성경에 아담과 해와는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제사는 가인과 아벨로부터 시작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과의 영적인 육적인 모든 관계
가 단절되어 사망권에 있었다고 보는 것인데 그 사망권에서 태어난 가인과 아벨에게는 제사를 명하였지요. 타락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속죄의 기회를 얻을 수 없다면 아담 해와의 원죄의 유전으로 죄를 이어받은 가인이나 아벨도 제사를 드릴 수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구요. 왜 그럴까. 이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한 끝에 얻은 결론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선한 형상을 가진 아담과 해와가 사단의 유혹으로 타락하여 악의 지배를 동시에 받게 되자 인간은 선악의 모순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악마와 천사와의 중간적 존재라는 말도 있지만 ... 아무튼 선악의 중간적 존재로 전락한 인간은 양심도 어느
정도 살아있고, 죄가 부끄러운 줄도 알고 무화과 나무그늘속으로 피하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는 커녕 죄를 전가하기에 바빴지요. 이러한 이중적인 인격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는 하나님도 대할 수 있으나 사단도 악을 근거로 동시에 대한다고 보는데 제사장과 같은 인물은 어느 정도 성별된 자라야 하는데 아담과 해와는 그런 의미에서 자격 미달인 것 같습니다. 이는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섭리 가운데 장자와 차자를 나누어 차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통해 장자권을 찾아오는 섭리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때 아담 해와는 악을 분별하고 쪼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단행할 수 없는 상태이
기에 가인과 아벨로 나누어 섭리를 전개하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가인은 처음부터 악이 문앞에 대기하고 있듯이 악의 편으로 나오고,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두말없이 받아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내용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에서와 야곱이 그의 어머니 리부가의 벳속에서 쌍태로 있을 때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차자인 야곱을 선택했으며, 세라와 베레스도 차자였던 베레스가 세라를 밀치고 태어나 장자권을 쟁취하고 나온 그 혈통을 타고 예수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섭리가 아닐 수 없는 없는 것이지요. 각설하고 제사를 하나님께서 드리는 것은 이와 같이 속죄의 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타락한 인간이 타락하지 않은 만물 중에 성별된 양이나 소를 앞세워 인간 대신 피를 흘려 죄값을 치렀다는 조건 속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조상에 대한 제사는 효의 연장으로 하는 조상에 대한 예에 대한 표시이지 속죄니,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느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을 하는 것이 제사입니다.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 제사입니다. 그런 정도의 의미에서 행하는 제사일뿐입니다. 살아계신 분에게 인사를 하는 것 중에 큰절과 작은 절이 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셨어요. 영이 존재하겠지요. 그 영은 그 분의 존재를 의미하지 그것을 귀신이니 뭐니 하는 것은 얼마
잘못된 표현입니까? 마치 돌아신 분이 들으면 정말 기분 나쁠 것입니다. 죽은 것이 죄짓는 것도 아닌데 완전히 무시하고 격멸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제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귀신 어쩌구 하면 정말 못참을 것입니다. 주먹으로 면상를 날리는 한이 있어도 그런 몰상식한 인간들이 어디있냐이겁니다.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것이 십계명중의 하나인데 돌아가신 부모는 부모가 아니라는 구절이 어디있으며, 돌아신 부모에게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구절이 어디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대기 전까지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렇게 자기부모를 귀신으로 삼고 싶은 자들은 귀신으로 취급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몰상식한 견해가 어떤 것을 근거로 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죽은자가 어떻게 되는지는 저도 잘 모르나 불신자든 신자든 간에 인간은 육신과 영이 존재하는데 육신이 죽으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산영이 되겠지요. 그것이 어느 정도의 수준의 영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어디에 가서 머무르는지, 이 세상에 다시 찾아 올 수있는 지에 대해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변화산상에서 만난 것을 봐서 이 세상에 올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지요. 죽은 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귀신이니 우상이니 하는 논리를 받아 들일 수 없구요. 또 불신자가
죽으면 영적인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무조건 지옥으로 간다고 하는데 성경 로마서 2장 14~15절에는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하여 자기의 양심이 율법이 되어 양심에 따라 선하게 살다간 행한만큼 구원을 받는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런 성경구절로 볼때 악하게 살다간 사람이나 선하게 살다간 사람이 동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만 섭
리하시는 분이 아니고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섭리를 전개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죽은 자의 문제에 대해 좋은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