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레전드 시리즈를 쓰면서 장종훈-송진우-정민철-구대성-한용덕의 순서대로 써왔다. 모두 이글스의 레전드 선수들이었고.. 아직 이정훈-이강돈-송지만-이영우-데이비스가 남아있지만
누가뭐래도.. 올시즌 최고의 화제는 야왕.. 비록 이글스의 레전드는 아니지만 현 한화를 이끌로 계신 한대화 감독을 먼저 소개해보자 한다(이하 한대화로 통일)
어떤 야구선수가 있다.. 대전에서 태어난 대전토박이인 그는 고향팀에서 선수생활을 하는것이 꿈이자 목표였던 선수였다.. 하지만.. 운명은 야속하게도.. 그에게 그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번번히 고비마다 고향팀의 앞길을 가로막는 역활을 맡기게 되니 그 선수가 바로 해결사 한대화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팬들은 한대화가 대전출신인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을 것이다.. 해태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번번히 이글스팬들에게 눈물을 흘리게한 장본인이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대전에서 태어난 한대화는 초,중,고 학창시절을 대전에서 보내고 동국대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의 운명과도 같은 경기를 맞게되니.. 바로 82년 세계야구선수권..
일본과의 결승전 8회까지 2:1로 뒤지고 있던 한국은 김재박의 신기와도 같은 개구리번트로 동점을 만들고.. 이어진 한대화의 타석 한대화는 투 쓰리 풀카운트 상황에서 좌측 폴대를 맞추는 역전 쓰리런 홈런을 쏘아올린다..
마치 앞으로 야구선수 한대화의 야구인생의 별명인 해결사라는 별명을 예지하는듯한 한방이었고... 그 홈런으로 한국은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우승후... 대학 최대어였던 그는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당시 대전연고였던 OB에 입단한다. 그의 꿈이었던 고향팀에서의 선수생활이 이루어지는듯 했으나.. 한순간뿐이었고 몇년후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한다..
그렇게 이글스와 한대화의 어긋난 운명의 시작이었고... 공교롭게도.. 당시 한대화는 간염을 앓고 있었기에 쉽게 피곤을 느끼게 되고.. 그게 OB의 김성근 감독은 이를 게으름피우는 것이라 간주, 결국 감독의 눈 밖에 나고 86년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해태로 트레이드 된다.
하지만 한대화의 간염증세를 알게된 김응용 당시 해태 감독의 배려로 훈련량을 조절할수 있게되고 마침내 한대화는 그해 결승타점만 16개를 올리며 해결사본능을 폭팔시킨다.(그해 자신의 첫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게 된다.. 이후 6년을 연속해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이승엽의 7회에 이어 역대2위의 기록 총 8회의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양준혁과 함께 최다 수상기록이다)
87년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의 해결사 본능은 한국시리즈에서 폭팔.. .471의 타율 2홈런 9타점을 기록하고 88년은 3할타율 4할의 출루율 5할의 장타율 올스타전 MVP를 기록.. 이듬해인 89년 90년에는 출루율 타이틀 수성에 성공... 90년에는 .355의 타율로 타격왕에 오른다..
이후에도 91년 92년 20홈런을 넘기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한대화는 94년 LG로 트레이드 되어 LG의 4번타자로 활약하게 되고 LG의 두번째 우승을 견인하게된다..
이처럼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낸 한대화이지만.. 그의 선수생활중 마음속 한으로 남았던것이 바로 고향팀에서 뛸수 없다는 것이었다... OB가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처음에 약속한 빙그레로 트레이드 시켜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해태로 트레이드 시키자 프로야구 최초로 트레이드를 거부, 고향팀인 빙그레로 트레이드 시켜달라며 계룡산으로 잠적하게된다.
선수생명을 걸고 잠적할 정도로 그에게 고향팀은 특별한 의미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대화의 동국대 은사였고 당시 해태의 투수코치였던 김인식코치가 직접 계룡산까지 찾아와 거듭 설득함으로써 결국 해태행을 결정짓게 되니..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클러치히터 해결사 한대화의 탄생이었다.
훗날 한대화는 대전구장에 원정을 왔다가 본 외야에 걸린 배신자 한대화란 현수막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대전,충청의 빙그레 팬들은 빙그레의 우승을 번번히 가로막던 한대화가 미울수밖에 없었겠지만.. 누구보다 고향팀에서 뛰고 싶었던 한대화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으리라...
하지만.. 운명은 가혹하게도.. 그에게 또 한번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니.. 세월이 흘러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삼성의 수석코치로써 대전구장에 한국시리즈를 치르러 온 그는 기자들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다시한번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선수로써 모든걸 이뤘지만 단 하나 고향팀을 허락하지 않았던 그의 운명은 마침내 2010년 그를 한화의 사령탑으로 결정.. 결국 기나긴 길을 돌고 돌아.. 고향의 품으로 오게 된다..
감독첫해.. 최약체의 전력을 가지고 고군분투 하지만... 2010년 최하위에 머물며 전력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11년도 어느새 감독을 닮게된 한화선수들은.. 승부처에서 해결사 본능을 보여주며.. 단연 꼴찌후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무색하게 중위권 경쟁을 하고있다..
이글스팬들은 알고 있다.. 지금 한화의 전력으론 4강이 힘들다는것을... 하지만.. 이글스팬들이 이토록 한대화에게 열광하는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적때문이 아니라... 우리도 할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전 무럭무럭 자라나던 한화의 신인들이 어느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고.. 팀의 평균 연령은 높아질대로 높아져.. 노인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던 한화였고 팀의 주축이었던 김태균 이범호마저 떠나가고.. 그나마 한화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들은 감독과 구단의 선수관리 부실로 한꺼번에 군대에 입대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2군은 팀의 노장우대와 좀처럼 1군승격을 시키지 않는 감독과.. 같은 실책을 해도.. 노장에겐 관대하고 신인에게 냉정하던 구단에 실망해 고사직전의 위기에 처했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팬들 마저 떠나던 상황에서 한대화는 눈에 보이는 성적이 아니라 한경기 한경기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희망을 제시했다..
한대화의 감독부임 소식을 들었을때.. OB의 연고지 이전에 그 좋아하시던 야구를 잠시 끊으셨던 아버지께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한말씀 하셨었다.. "한대화라면, 성적은 안나올지는 몰라도.. 신인키우는데 게으르던지, 허투루 관리하지는 않을거라고..." 그 후로 10년 한화가 또다시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아버지는 경기를 보시면서 한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었다...
난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들 삶에 일어나는 이해할수 없는 일들을 도저히 설명할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대화가 이글스가 아닌 라이벌이었던 타이거즈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그 전성기를 보낸것도.. 운명이듯이.. 그토록 오고싶어했던 고향에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오게 된것도 운명이라 생각한다.
만나기까지 27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쌓인 말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한의 깊이는 나는 감히 짐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글스와 한대화는 운명을 원망하기보단.. 앞날을 계획하고 희망을 제시하기 바쁘다.. 이글스의 오랜 팬으로써.. 더이상 타이거즈의 해결사 한대화가 아닌 이글스의 야왕 한대화로 기억되길 바래본다..
첫댓글 한대화가 이렇게 뜰줄이야.. 불과 저번시즌과 이번 시즌 초 해고 1순위에 호9와 한대화 두 명이 단골 후보였는데, 어느새 둘은 극과 극의 평을 받고 있네요.
한화가 이번 시즌 가을에 야구못해도 한대화는 까임 절대 안 당할거 같아요.
별로 많을 것이다.. 이건 무슨말인가요.. 별로 잘 모르지않나요?
사람 인생 참 모르겠네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많이 까였던걸로 기억나는데...ㅎ 우리 호9님도 어찌 이렇게 안될까? 아 그건 0에 수렴하겠군요..-_-;;
간염은 술이랑은 별로 상관없나요? 술 엄청 좋아하시는걸로 아는데.. 많이 드시고.. 건강도 챙기셨음 하네요 오래도록 볼수 있도록!!
올시즌 초만해도 정말 한대화 감독의 능력에 의문이 들었는데 그저 죄송할뿐이네요 당신은 진정 야왕입니다
근데 저 사진 찍을때 많이 민망하셨을듯...ㅋㅋ야왕님 이제 더도말고 덜도말고 다 이겨주세요
희망과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야구를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한화팬으로써 지금 상태만 잘 유지해줬으면 좋겠네요.
우린 더 강해진다->올시즌 최고의 말로 꼽고 싶습니다.
현역시절 가장 좋아하던 선수여서 정이 갑니다
한大화!
계룡산 잠적............ㅋㅋㅋㅋ 포스 장난아니네요 ㅋㅋㅋ 야왕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