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시편(63~65편) 묵상
※ 하나님이여 나를 보존하소서! (시편 64편)
오늘도 다윗은 ‘하나님이여’라는 말로 입을 연다.
“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시편 64:1)
상황이 절박할수록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려움이 나를 장악할 때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
다윗의 간구는 이렇게 이어진다.
“주는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나를 감추어 주소서”
(시편 64:2)
압살롬을 비롯한 다윗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다윗을 잡기 위해서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짰다.
다윗을 잡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어떤 일이라라도 저지를 속셈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숨겨주시고,
감추어주시기를 요청한 것이다.
대적들의 모략은 갈수록 악독해진다.
“그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숨은 곳에서 온전한 자를 쏘며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도다”(시편 64:3~4)
다윗은 ‘칼’과 ‘화살’이라는 비유법을 사용하여
대적들이 저지르는 언어의 잔인함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칼을 가는 것처럼 혀를 연마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잔뜩 준비했다가 하는 말은 굉장히 폭력적이다.
매우 날카롭다.
게다가 독이 잔뜩 발린 화살촉과 같은 말을
계속해서 쏘아된다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모른다.
원수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남몰래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보리요 하였다.
악한 일을 꾸미는 일은 대부분 복수의 사람들이 한다.
즉 악한 일에는 ‘공범’이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가 하는 일이 꼭 나쁜 일만이 아니며,
또 자기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윗의 대적들은 악을 저지르면서 ‘서로 격려’하였다.
그리고 몰래 올무를 놓았다.
올무는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서 악인들은 말한다.
“누가 우리를 보리요?”
자신들이 행하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다 바라보고 계시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
이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리니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함이라
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시64:7~8)
시편 64편 3절에서 다윗의 대적들이
자기 혀를 칼같이 날카롭게 갈았고,
화살처럼 독한 말로 상대를 겨누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날아오는
화살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화살이 ‘갑자기’ 날아온다고 한다.
그 의미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뜻한다.
다윗의 대적의 핵심에는 아히도벨과 압살롬이 있다.
그들의 마지막을 떠올려 보라.
다윗을 잡기 위해서
아히도벨이 제안한 전략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았다
(삼하 16:23)”고 성경은 증언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압살롬은 다윗의 신하로
압살롬에게 위장 전향해 있었던
후새의 이야기도 들어보자고 했다.
후새가 말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제안이었지만
압살롬은 후새의 계략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고 했다.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기 위해서
아히도벨의 계략을 물리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삼하 17:14).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에게 갑자기 화살을 날리신 것이다.
그 후 아히도벨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압살롬도 마찬가지다.
압살롬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중에서 그의 큰 자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윗의 군대를 피해 노새를 타고 달려가다가
상수리나무 아래를 지날 때에,
그의 긴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노새만 빠져나가고 자신은 가지에 매달린 신세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갑자기 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의 시기는
아들 압살롬에게 반란을 당했을 때였다.
그 때에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였다.
아마 젊은 시절 사울왕에게 쫓겨 다닐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고난과 고통을 호소하다가도
마지막에는 꼭 찬양으로 끝을 맺는다.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멘.
-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