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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다해 연중 제8주간 화요일
<하나를 버리면 백을 얻는다>
복음: 마르코 10,28-31
돈에 쫓기며 살던 여 사업가와 가난한 남자 화가는 한 스승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삶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스승을 만난 5년 뒤 그 화가는 자기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기만의 화풍을 구축해 자기 분야에서 대가가 된 것입니다. 허약체질이었지만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되었고 미루던 나쁜 습관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요들송을 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배울 시간적, 그리고 경제적 여유도 생겼습니다.
여 사업가는 자기의 회사를 해당 부분의 상징적인 회사로 성장시켰습니다.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발목이 잡혀 거의 결정 장애와 같은 수준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같은 스승에게 배움을 받았던 화가입니다. 둘은 정원을 돌보며 화요일 저녁에는 노숙자를 위해 봉사를 합니다. 둘은 지금도 아들과 함께 스승이 가르쳐준 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궁금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변화를 주었기에 사람의 삶이 저렇게 180도 바뀌었을까?’
먼저 이들의 스승은 ‘변화의 시작 5AM 클럽’을 쓴 로빈 샤르마입니다. 그의 지론은 아침을 지배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기에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명상을 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별히 5시에서 6시까지의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영과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영을 위해서는 기도나 명상이 좋고, 영혼을 위해서는 독서나 묵상, 그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좋으며 육체를 위해서는 운동이 좋습니다. ‘변화의 시작 5AM 클럽’은 이렇듯 신앙인들에게도 맞는 좋은 습관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자신을 버린다는 것, 혹은 욕구를 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욕구는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66일간의 습관달력을 만들어 습관들이기를 해보라고 합니다. 처음 20일은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 20일은 그 습관이 몸에 익는 시간이며, 마지막 20일을 잘 버티면 나중엔 큰 어려움 없이 저절로 눈이 떠지고 저절로 운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과 다르게 바뀐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결국 모든 자기계발서들은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세상에서도 패배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버린다’는 것은 ‘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끊는 것이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을 버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버릴 때 우리를 인정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당신 복음 때문에 버릴 수 있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아기는 부모를 위해 살고 커서는 나를 위해 살며 신앙을 가지면 하느님을 위해 삽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창조해주셨으니 이 생을 헛되이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이제 이 생을 헛되게 만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습하는 시기가 사순절이고 그래서 사순절 동안에는 기도와 자선과 단식을 권유합니다. 기도는 교만의 욕구를 이기게 하고, 자선은 돈의 육구를 이기게 하며, 단식은 육체의 욕구를 이기게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도 자신이 버린 것의 백 배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 물론 이것을 시작하지 못하면 영원한 생명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며 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즐거움이 없는 것은 어쩌면 육체적인 즐거움을 끊지 못해서이고 돈이 부족한 것은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일 수 있으며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이는 애정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조금은 역설적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죽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다고 하신 것처럼 더 풍부해지기 위해 버리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내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습관달력을 만들고 올 사순절도 은총을 더 풍부하게 받기 위해 비우는 연습을 시작해봅시다. (전삼용신부)
어릴 때는 공부 잘하는 법이 궁금했습니다.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예습과 복습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졸음도 있지만, 다른 과목의 책을 보거나,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졸음은 어찌할 수 없지만, 다른 과목이나 소설을 읽었던 것은 선생님께 대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예습하면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고, 문제를 풀 수도 있어서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복습하면 단순히 암기한 것을 이해할 수 있어서 오래 남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게임, 스마트 폰에 맛을 들이면 예습과 복습은 멀리 떠난 친구가 될 것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인데 아무나 하지 못하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예습과 복습을 열심히 했을 때는 시험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좋은 성적을 선물로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건강한 삶도 그렇습니다.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소화를 잘 시키는 것입니다. 하루에 만보, 가능하면 이 만보 정도 걸으면 좋습니다.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하면 더욱 좋습니다. 음식은 골고루 먹으면 좋고, 먹고 싶은 양의 70%만 먹으면 더욱 좋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좋습니다. 새벽에 묵상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나와 가족을 위한 일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봉사를 하는 것은 더욱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자주하면 좋습니다. 금연은 필수이고, 음주는 절주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건강한 생활습관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삶이라는 어떤 것일까요? 오늘 제1독서는 친절하게 주님을 따르는 삶을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자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악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때로 시련이 오고, 박해를 받고, 고통이 따를지라도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갚아 주실 것입니다.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가지 못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불의를 멀리하고 속죄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볼 것입니다.”(조재형신부)
2019.3.5.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집회35,1-15 마르10,28-31
삶과 전례의 일치
-버림, 따름, 보상-
삶이 좋아야 전례도 좋습니다. 삶이 없는 전례는 공허하고 전례없는 삶은 맹목입니다. 삶과 전례의 일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집회서는 경신례 의식에 앞서 올바른 윤리생활을 강조합니다. 화답송 후렴도 이와 일치합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올바른 삶은 전례를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삶따로 전례따로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바 전례의 외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되고 올바른 삶입니다.
삶이 혼란스럽고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 수시로 고백성사를 보러 오는 어느 교구 신부도 생각납니다. 제단에서 미사봉헌하기가 너무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여 그때마다 고백성사를 본다는 것입니다. 사실 온몸과 온맘이 하나되어 봉헌하는 미사이기에 삶이 받쳐주지 않으면 참 두렵고 떨리는 미사봉헌입니다. 저에게 날마다 새벽 강론 쓰는 시간은 제 삶을 추스르고 정비하는 시간이자 미사를 준비하는 시간이도 합니다.집회서의 말씀에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율법은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은혜를 갚은 것이 고운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속죄하는 것이다.”
무엇이 본질적인지 가르쳐 줍니다. 전례에 앞서 올바른 삶자체가 하느님 기뻐하는 제사이자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경신례 의식의 무시나 거부가 아니라 이런 올바른 삶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의로운 이들의 경신례 의식에 대한 묘사입니다.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서지 마라.
의로운 이의 제물은 제단을 기름지게 하고
그 향기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올라간다
의로운 사람의 제사는 받아들여지고
그 기억은 잊히지 않으리라.
기꺼운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네 손의 열매를 바치는 데에 인색하지 마라.
제물을 바칠 때는 언제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
십일조를 기쁘게 봉헌하여라.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
삶과 전례가 일치된 참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미사전례에 참석하는 지요. 안팎이 다른 표리부동의 삶이 아니라 삶과 전례가 하나된 진실한 삶입니다. 이런 진실한 전례의 은총이 삶을 더욱 정화하고 성화할 것입니다. 십일조를 정성스럽게 기쁘게 봉헌하는 개신교 열심한 신자들 역시 이런 삶의 모범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인도의 성자 간디가 말한 그 유명한 일곱가지 사회악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이 일곱가지 사회악은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있는 간디 기념 공원에 명문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1.원칙없는 정치, 2.노동없는 부, 3.양심없는 쾌락, 4.인격없는 교육, 5.도덕없는 상업, 6.인간성없는 과학, 7.헌신없는 종교
바로 이 일곱가지 사회악입니다. 정말 삶과 전례가 일치된 삶을 사는 주님을 믿는 진실된 신자들이라면 이와는 반대로 “원칙있는 정치, 노동있는 부, 양심있는 쾌락, 인격있는 교육, 도덕있는 상업, 인간성있는 과학, 헌신있는 종교’의 사회적 삶을 추구할 것입니다. 결코 핵심의 알맹이가 빠진, 영혼없는 껍데기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회서의 다음 말씀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에게 뇌물을 바치지 마라. 받아 주지 않으신다.
불의한 제사에 기대를 갖지 마라.”
불의한 삶을 상쇄하기 위해 주님께 뇌물을 바치지 말라는 것이며 이런 불의한 제사에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깨끗하고 올바른 삶이, 제손으로 정직하게 일해 얻은 소득을 바침이 최상의 봉헌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이런 삶과 전례가 일치된 삶을 사는 올바른 이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봅니다. 이런 올바른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집회서와 오늘 복음이 이를 분명히 합니다.
“주님께서는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집회35,13).
여기서 일곱은 완전함(충만함)을 가리키는 숫자로 부족함 없이 온갖 필요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미사경문 감사기도 3양식 후반부의 기도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온갖 좋은 것을 다 베풀어 주시나이다.”
삶과 전례가 하나된 참 좋은 의로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 또한 의로운 삶의 모범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참 좋은 한량없는 축복을 상징하는 말씀이며 알게 모르게 실감합니다. 내세에서가 아니라 이미 현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여, 주님을 따라 버림의 여정,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선사되는 주님의 축복이요 이 거룩한 미사전례가 이를 확증합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세상 마치는 그날까지 주님을 따라 버림과 비움의 여정에 충실할 것을 일깨우는 주님의 경종이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여정의 목표이자 방향입니다. 버리고 따를 주님이 있어 우리는 행복합니다. 주님을 따라 버림과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주님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한, 자유롭고 부요한 참 나의 자기실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삶과 전례가 일치된 올바르고 진실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시며, 버림과 비움의 여정중에 당신을 항구히, 충실히 따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이수철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