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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든 삶,정든 세월 원문보기 글쓴이: 地坪
◆음식 여행
음식(飮食) 이란 무엇인가.
곡식이나 채소, 고기등을 익히거나 다듬고 양념해서 사람들이 먹을수 있게 만든 밥이나 국, 반찬등의 물질이 곧 음식이다.
그렇다면 요리(料理) 는 무엇인가. 음식을 일정한 방법으로 맛있게 만드는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요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은 불(火) 이다.
인류는 500만년 이상 날고기를 먹고 살았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180만년전에 불에 익은 고기가 더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고 그때부터 불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부엌은 한 지역문화의 총화’ 라는 말이있다. 총화(總和)는, 전체를 모은 수 라는 의미도 있지만 전체의 화합이라는 뜻도 있다.
사람들이 살고있는 지역은 넓고 그 지리적 조건도 서로 다르다. 때문에 모든 지역은 그 땅이 내는 소출이 있으며 그것을 식재료로 하는 요리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서로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는것이다.
해외여행을 하는 경우 우리의 토속 밑반찬을 가지고 가는 분들이 많다. 여행지의 낯선 음식을 먹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는 일 이라해도 그건 제대로 된 여행은 아니다. 여행은 다른지역의 문화를 접하는 것이다. 체험과 경험을, 그리고 귀중한 안목을 넓히는게 여행이다.
따라서 여행지의 음식을 먹어보는것은 그곳의 문화를 이해하는 첩경이라고 할수있다.
나는 본래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세계 어느곳에 가든 그곳 음식을 전부 맛있게 먹는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면 중국의 오지에 갔을때 그 음식은 먹을수가 없었다.
맛의 문제가 아니라 그게 전 세기의, 전혀 형태가 다른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곳의 음식은 모두가 개성적이고 서로 달랐다. 같은 재료로도 요리법이 달랐고 우리는 먹지않는 재료를 쓰는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여행은 재미있고 새로운 음식을 만날 때 마다 더 큰 즐거움을 맛볼수 있었다. 음식은 여행의 중요한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룩소(Luxor)는, 이집트의 옛도시 테베에 있으며 카이로 남쪽720키로에 위치한 곳으로 유명한 카르낙신전이 있는곳이다. 260미터에 이르는 신전의 길이와 어른셋이 손을 잡아야 감쌀수 있는 기둥들은 그 엄청난 규모를 말해주고 있다.
실로 우연히, 그 석수(石手)의 집에 들어가게 됐다. 그는 카르낙신전 근처에서 팔고있는 여러 가지 조각상을 돌로 만드는 일을 하고있었다.
나는 큰 흥미를 가지고 세밀하고 숙련된 그의 작업을 지켜봤다. 그때 그의 부인이 소박하게 만든 나무식탁에 자기들의 점심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석수의 강권에 못이겨 처음으로 아랍인의 식탁에 함께 앉았다.
호떡처럼생긴, 그러나 기름끼가 없는 구운빵, 그리고 투박하게 생긴 치즈와 올리브열매, 토마토가 전부였다.
나는 아직까지 그렇게 색깔이 빨간 토마토를 본적이 없으며 그렇게 맛이있는 토마토도 먹어본 일이 없다. 염치불구하고 계속해서 다섯 개를 먹었다. 부인은 웃으면서 새로 씻은 토마토를 더 가져왔다.
이집트에 그렇게 맛이있는 토마토가 있을줄은 정말 몰랐다.
수에즈시를 떠난 버스는 시나이반도 초입에서 고장이 났다. 할수없이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다음 휴게소 까지 갔으며 그곳에서 새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휴게소는 정말 초라한 건물이었다. 그래도 습기가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늘에만 들어서면 서늘했다. 다 낡아빠진 의자에 앉았는데, 마침 여자두명과 아이셋의 베두인가족이 바닥에 보자기를 펴 놓고 음식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랍빵과 거칠게 생긴 치즈, 올리브열매, 그리고 처음보는 과일몇가지가 전부였다. 한참 식사를 하던 나이많은 부인이 나를 보더니 자리를 옮겨앉으며 나를 자기옆에 와서 앉으라고 손짓으로 불렀다. 그건 너무 뜻밖이어서 놀랠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강권으로, 생전처음 베두인가족과 점심식사를 하게됐다.
두부처럼 생긴 치즈를 한조각 잘라내 빵에발라 입에 넣는순간, 그 깊은맛에 놀랬다.
그건 처음먹어보는, 전혀 생소한, 그러나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놀라운 치즈였다.
왜 유럽의 부자들이 베두인의 양젖치즈를 입도선매 하는지를 알수있었다. 나는 그렇게 맛이있는 치즈는 먹어본일이 없다.
식사후 나는 휴게소에서 과자를 한보따리 사서 아이들에게 줬다. 인간미 넘치는 베두인 가족과 그 치즈의 맛은 결코 잊지못할것이다.
터키의 남동쪽에 있는 안티오키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자이크 박물관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곳을 기억하는 이유는 콩 수프 때문이다.
골목안에 있는 작고평범한 식당이었는데 수프맛은 놀라웠다. 다시 한그릇을 시켜먹었고 세 번째는 그릇을 들고 직접 주방까지 가서 재료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콩이라고 했다.
세 번째 수프를 떠 주는 주방장의 얼굴은 지극히 만족한 것이었다. 정말 대단한 수프였다.
타우러스 산맥을 넘었을때 휘발휴게이지는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만큼 마침 나타난 주유소는 반가웠다.
주유를 마친후 계산을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니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책상에는 소박한 음식이 놓여있었다.
일본인이냐고 묻기에 ‘코리안’ 이라고하자 주인의 태도는 가족으로 변했다.
터키인들의 코리아 사랑은 유별날 정도다. 그는 나를 식탁으로 끌고갔으며, 그래서 나는 터키인과 식탁에 마주앉았다.
내가 먹어본것중 가장 맛있는 올리브열매가 거기 있었다. 나는 올리브열매를 좋아하기 때문에 먹어본 종류도 많다. 그런데 그날, 그 터키주유소에서 먹었던 올리브는 그맛이 최고였다.
버금가는것은 스페인의 고도(古都) 똘레도에서 먹어봤다.
이스라엘에는 피타라는 빵이 있다. 직경 20센티 정도의 이 빵은 꼭 호떡처럼 생겼는데 반으로 쪼개면 주머니처럼 벌어진다.
그 안에 샐러드와 고기등을 채워 두손으로 잡고 먹는데 맛이 아주좋다. 채우는 내용물과 가지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걸거리 노점에서 쉽게 발견할수 있으며 저렴한 가격에 비해 한끼를 충분히 해결 할수있는 식사가 된다.
한번은 예루살렘의 다마스커스문 근처에 있는 골목에서 반지하의 아랍식당에 들어 갔다.
양고기를 먹고싶다고 하자 어떤 요리로 원하는가를 물었다. 양념구이를 해 달라고 주문했다. 생각보다 요리하는 시간이 길었지만 그들이 내앞에 갖다놓은 접시의 양고기구이는 숨이 넘아갈 만큼 맛이있었다.
아랍빵과 함께 먹었던 그 양고기구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에 침이고인다.
예루살렘에는 정말 저렴한, 맛이있는 식당들이 많다. 잘만 찾으면 대박이 나는곳이다.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모샤브 ‘네베일란’ 은 내가 이스라엘에 갈때마다 투숙하는 곳이다. 방에 들어서면 과일바구니가 있고 거기에 꽂혀있는 카드에는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는 인사말이 적여있다. 장삿속이라 해도 기분은 좋다.
한번은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에 갔는데 그날의 메인코스가 ‘칠면조’ 였다.
나는 조용히 메니저를 불러 한국인은 칠면조를 잘 먹지 않는다고 했으며 혹시 소고기 요리를 해 줄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에피타이저를 내앞에 갖다놓으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린후 접시에 담긴 소고기 요리가 채소모듬과 함께 나왔다. 소스를 끼얹으며 구운것 같기도하고, 볶은것 같기도 한 그 소고기맛은 필설로는 다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맛이 있었다.
사실, 내가 단골이 아니라면 받을수 없는 대접이었다. 한 우물을 판 덕이었다.
같은 소고기로 그런 요리를 할수 있다는것은 주방장의 솜씨때문이다. 물론 다음여행 에서도 나는 계속 ‘네베일란’에 투숙했다. 그곳엔 좋은 수영장도 있다.
말라케시는 일년내내 붉은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모로코의 중부도시이며 국제회의가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 근처 사막에서 점심을 먹은일이 있다. 모래투성이의 카펫바닥에 갖다놓은 커다란 접시에는 불면 그대로 날아갈것같은 조밥과 여러 가지 소스, 고기, 채소가 담겨있었다.
모로코인들이 먹는걸 보니 손으로 조밥에 소스등을 섞어 입으로 가져갔다. 처음에는 맛을 알수가 없었으며 모래가 씹히는것이 불쾌하기 까지했다.
그런데 계속 씹어보니 기묘한 맛이 감지됐다. 그 음식은 그냥 넘기면 맛을 모르게 된다. 그래서 오래 씹어야 했고 비로서 독특한 맛을 알게되는 것이다.
사막민족의 음식은 단순해 보이는게 특징이다. 종류도 많지않다. 그러나 그 음식들은 오래동안의 경험이 선택한 밀도가 높은 음식들이다.
마그레브 지역의 치즈가 대표적 이라고 할수있다. 똑같이 올리브열매와 기름을 사용하는 방법도 아주 다양하다.
1991년 5월의 모스크바, 붕괴 6개월전의 모스크바엔 문을연 가게가 하나도 없었다. 물 한방울 사 먹을데가 없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사회주의의 끝이 경제의 몰락으로 그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평양의 미래모습이 그럴수 있다.)
우리부부는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70킬로 떨어진 자고르스크에 갔다. 그곳은 러시아정교회의 중심지로 연방신학교가 있었으며, 14세기 이반4세때 축조된 성 세르기에프 삼위일체교회가 있다.
푸른색의 돔을 이고있는 이 아름다운 교회에서 러시아정교회 교인들과 함께 서서 예배를 드렸다. 정교회에는 의자가 없었다.
점심식사는 그곳의 작고아담한 호텔식당에서 했다. 그들이 만들어 팔고있는 메뉴는 한가지였는데 단지처럼 생긴 그릇에 감자와 소고기를 다져넣고 그 위에 달걀을 풀어 오븐에서 익혀낸 음식이었다.
흡사 우리의 뚝불같은, 아주 맛있는 음식이었다. 음식 이름을 물어보니 ‘기야’ 라고 했다.
소련에서 먹어본 음식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음식이기도 했다. 그때 소련은 모든 물자의 부족으로 호텔식당 까지도 메뉴는 단조로왔고 맛은 없었다. 케비아도 자주 나왔지만 그건 우리입에는 맞지않는 음식이었다.
인도여행을 마친후, 첸나이를 뜬 비행기가 싱가폴의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환승까지는 시간이 있었고 배도 출출해서 이층의 식당가로 올라가 봤다.
마침 인도음식점이 있었고 우리는 인도빵인 난과 수프인 옐로우달을 시켰다.
그것은 인도에서 먹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맛이었다. 우리는 다시 2인분을 더 시켰고, 나는 결국, 1인분을 더 시켜 먹었다.
웨이터도 주방장도 틀림없는 인도인들 이었다. 인도에서 보다 더 맛이있는 난과 옐로우달을 창이공항에서 먹게 될줄을 정말 몰랐다.
귀국한 후에도 여러곳의 인도음식점을 다녀봤지만 창이공항에서의 맛은 찾지못했다.
나는 인도빵 난은 만들 수 있지만, 옐로우달은 우선 재료를 구할수 없어 만들지 못한다. 대신 카레를 맛있게 만든후 맛살라 향을 섞어 난과함께 먹곤한다.
(치킨 맛살라)
해외여행을 하면서 맛보게되는 음식들은 하나하나가 그 지역 문활의 산물임을 알수있다. 그 서로다른 여러 가지 음식들을 먹어 본다는것은 여행에서 빼 놓을수 없는 큰 즐거움 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밑반찬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카이로에는 우리부부가 자주 들리는 한식당이 있다. 주인 내외는 언제나 우리를 반겼고 정중하게 대했다.
이스라엘에 가기위해 카이로를 떠나는날 아침, 그분들은 언제나 처럼 우리에게 정성껏 준비한 한식 도시락을 건넸다.
수에즈시를 벗어나 시나이반도에 진입한후 점심시간이 되었을때 해변에 세워진 빈 건물을 발견, 차를 세우고 그곳에 가 봤다. 가 건물이었지만 그늘은 아주 시원했다.
우리는 모래위에 보자기를 편후 도시락을 꺼내놓고 열었다. 시원한 그늘에서 깨끗한 홍해를 바라보며 밥과 김치를 먹는 즐거움은 다른것과는 비교할수도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밥과 김치, 그리고 다른 반찬들, 우리음식의 맛은 그 어떤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최고의 것이었다. 한식의 세계화는 외국인들에게 김치맛을 알게하면 끝난다.
발효음식인 김치에 중독되면 밥은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음식은 외국에서 먹어봐야 그 진가를 알수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라면 더 말할것도 없다.
음식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 히포크라테스.
by/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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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계는 넓고 먹을 것도 많다.
소주에 집착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