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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사장님과 싸운 탓에 기분이 조금 우울해진 내가
터덜터덜 지은언니에게 다가갔다.
내 기분이 어떤지 아무것도 모르는 지은언니는 테이블 위에 옷 두 벌을 펼쳐 놓고 날 맞이했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잠깐 세트장 좀 보고 왔어요."
"그래? 세트장 멋있지?"
"네......"
사실 사장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세트장따윈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언니가 내민 옷을 받았다.
붉은색 옷.
"어때, 예쁘지?"
언니가 내민 옷은 붉은색의 무릎까지 오는 드레스였다.
어깨부분이 가는 끈으로 된데다가
아무런 무늬 없이 약간 헐렁거리는 느낌의 드레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가 비어 보이는 느낌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짙은 붉은색에 고급스런 광택이 나는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이미지였다.
"굉장히......고급스러워요."
별로 촬영할 기분은 아니었지만
순수하게 기뻐하는 언니를 위해서 애써 맞장구쳐주었다.
그러나 옷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치? '냉정과 열정사이' 라서 더 열심히 골랐어."
"네. 그렇군요......"
"혹시 '냉정과 열정사이' 읽어봤어?"
지은언니의 뜬금없는 질문에 힘없이 고갤 도리도리 저어 보였다.
그러자 언니가 그럴 줄 알았다며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건 알아?"
"어떤거요?"
"Blu의 '쥰세이'와 '한세'는 닮았다는 거."
"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은언니가 내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렸다.
알려줄 거면 좀 제대로 알려달라구요~!
"두고봐봐. 한세 같은 남자가 가슴의 불꽃을 품고 있을 테니까."
지은언니는 이어서 무언가를 상상하는 표정으로 두 손을 꼬옥 쥐었다.
나는 못 말린단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드레스를 집어 들어 탈의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많이 파인 옷에 부담스러워하며 입는데,
입는데,
입는데......!
"안 들어간다!"
엉덩이부분에서 드레스가 막혀 버린 것. 울상을 지으며 좀 더 세게 드레스를 끌어올리자......
찌지직-
"헉-"
옆 라인이 끝~내주게 살아있어요~
엉덩이부분만 일부러 튿은 거예요~ 이게 매력포인트예요~
그렇다. 난 이대로 미쳐버린 것이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설마 내가 입으려던 옷이 몸에 맞지 않아서 찢어져버린 그런 불상사가 발생한 건 아니겠지?
"휴민아, 왜 그래? 이상한 소리 나던데!"
"지은언니......"
"응? 무슨 일 있어? 우선 나와봐."
지은언니가 알아들을 리 없는데도 난 울먹이며 고갤 저었다.
그랬다. 난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언니, 옷이 안 맞아요......"
살이 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울먹울먹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지은언니가 이어서 까무러치는 듯한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푸하하하하, 살 찐거야? 아, 웃겨. 우선 나와 봐."
"시,싫어요! 쪽팔린단 말야.“
"그 옷, 전에 너 사이즈 맞는데. 살 쪘구나~ 푸하하하. 꼴좋다~"
"우씨, 웃지마요!"
모델의 생명은 몸매인데.
내가 살이 쪘는데 왜 아무도 못 알아 본거지?!
그리고 아무도 못 알아본 걸 어째서 '옷'은 이렇게 정확하게 알아내는 거냔 말야!
지은언니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든 모양인지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사람이 더 몰려들기 전에 일단 나가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섬주섬 원래 옷을 다시 갈아입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탈의실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따라서 들린 목소리는 날 더욱더 쪽팔리게 만들었다.
"은휴민! 나 놀러왔어! 호박에 줄그은 모습 좀 보자!"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넌 이번 CF의 전혀 관련 없는 제3자잖아!
뭐가 그리 신난 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은 더 높은
한태풍의 음성에 나는 한층 더 죽상이 되었다.
이제는 밖에서 너무 웃겨서 배를 잡고 꺽꺽대는 지은언니의 괴상한 웃음소리만이
에코 처리 되서 내 귀를 울릴 따름이었다.
나,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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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실에서 나온 뒷이야기는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믿는다.
난 그 날 그 즉시, 곧바로 일주일동안 다이어트를 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고
촬영 또한 1주일 뒤로 연기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한태풍은 창자를 내뱉을 것처럼 웃어 제꼈고,
녀석이 그렇게 웃어젖혀도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널 도우란 거냐?”
“응! 전처럼 선생님같은 거 구해줘도 되구. 1주일동안 살을 어떻게 빼!”
“그런 건 사장님한테 부탁해.”
“싫어!”
단호하게 소리치자 한태풍이 귀를 틀어막았다.
녀석이 입모양으로 ‘기집애가 뭘 먹고 목소리만 큰 거야’ 라고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흥, 일주일 지나면 너한테 도와달라고 하나 봐라!
“뭐야, 둘이 사랑싸움이라도 했어?”
“사, 사랑싸움은 무슨!”
“그럼 한세한테 부탁하던지.”
“그것도 싫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바로 부정하자, 녀석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너 설마 은한세랑도 싸우고, 사장님이랑도 싸운거냐?”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주 작게, 정말 작게 끄덕끄덕하자 한태풍이 다시 너털웃음을 뱉어냈다.
아, 괜히 이 녀석한테 도와달라고 한 걸까?
그치만 한태풍 아니면 딱히 부탁할 사람도 없었는 걸.
“그런데 다이어트를 내가 뭘 도와줘? 1주일동안 빼려면 굶어야지. 별 수 있나.”
“굶어......?”
“물 같은 것만 먹으면 안 죽어.”
“난 못 해! 1주일 동안 굶으라는 건 사형선고야, 사형선고!”
눈을 두 배 정도 크게 뜨며 손으로 목 언저리를 가차 없이 그어보였다.
이게 사람 영양실조로 실려 가는 걸 보고 싶어서 환장했나.
“그럼 일주일동안 포도만 먹어.”
“포도 먹음 살 빠져?”
“몰라, 빠지겠지. 아,몰라몰라 니 알아서 해.”
한태풍은 손을 저어보이더니 결국엔 나보고 알아서 하라면서 휭하니 가버렸다.
2집준비로 바쁘다나 뭐라나.
말만 바쁘지, 말만! 저러면서 만날 놀러만 다니고!
“아자! 은휴민 할 수 있다!”
그래도 또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한태풍을 믿기로 했다.
그리하여 D-7일. 최대한 열량보충을 위해서 오후 2시쯤에 기상해서 포도 한 송이를 먹었다.
배고파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루도 못 가서 쓰러져 버릴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나는 6일, 5일, 4일...... 아주 아주 멀쩡했다.
D-1일.
6일 동안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박혀서 포도만 먹어댄 탓에 난 흡사 폐인이었다.
그리고 그 때, 하필이면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장님과 싸웠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무심코 전화를 받아버렸다.
“여보세요.”
[은휴민.]
“네. 큼큼. 말씀하세요.”
사장님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에 비해,
내 목소리는......
마치 가뭄에 땅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고 쉴 대로 쉬어있었다.
쪽팔려 죽겠네.
혹시 자기랑 싸우고 나서 매일매일 울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지금 집이지?]
“지, 집 아니에요!”
집에 있다고 하면 곧바로 올라올 것 같은 기세였기에
내 혓바닥은 자연스레 거짓말을 뱉어놓았다.
이어서 사장님의 의아하단 음성이 이어졌다.
[불 켜져 있는데?]
“깜빡 잊고 안 껐나 봐요. 그런데 왜 전화했어요?”
[올 때까지 기다릴게. 집 앞이야.]
사장님의 말에 핸드폰을 든 채로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눈만 빼꼼히 내밀었다.
정말로 집 앞에 사장님의 은색 아우디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아우디에 기대서서 매끈하게 쭉 뻗은 다리를 과시하고 있는 사장님.
아아~ 그대의 손에 있는 핸드폰이 되고파~
“오, 오늘 집에 안 들어갈 거예요! 그러니깐 기다리지 마요!”
[집에 안 들어오긴 왜 안 들어와? 외박할 거야? 어디서 외박할 건데? 위험하......]
“당신이 신경 쓸 필요 없잖아요”
[너 말 참 밉게 한다. 아무튼 올 때까지 기다릴 거니깐 당장 튀어와]
“잠깐......!”
뚜뚜뚜-
핸드폰에선 전화가 끊겼다는 무의미한 신호음만 들렸다.
급하게 사장님번호를 눌렀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넘기겠다는 아리따운 아가씨의 목소리만
무한반복 되어서 들릴 뿐이었다.
“뭐야, 이 남자.”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침대 위로 던져버리고는 다시 창문을 내다보니
사장님이 여전히 아우디에 기대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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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많이 놀러오세요~
첫댓글 헛 사장님 불쌍하잖아 ㅠㅠㅠㅠ 살빼고 얼릉태풍이랑 잘됐으면 ㅠㅠㅠ난 태풍이가 더 매력적으로 보는뎁 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히히 재미없네 이러고 노는거 ㅎㅎㅎ 신땡순님 얼릉써주세요 ㅠㅠ 왜안써줘요 담편 ㅠ
담편~ 기대할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