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후 막사 한잔
30년이 지난 과거 80년대 신입 사원으로 직장 생활 할때의 풍경 이야기다.
퇴근후 막걸리 한잔
그때만 해도 창원공단이 조성되고 창원 지역에는 상업 지역이나 도심이 제대로 형성 되지 않아 퇴근 후 소주 한잔이 말처럼 쉽지 않은 때라 마산 시내로 가던지 아니면 회사 앞 도로가에 늘어선 포장마차가 전부였다.
우리가 즐겨 찾던 곳은 누구나가 다 그랬겠지만 퇴근후 막걸리 한잔의 회사앞 포장마차 였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창원 LG1공장 앞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어 수십대의 포장마차가 불야성을 이루며 성업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후 그곳에 포장마차가 사라지게된 계기가 1차 그 부지에 아파트를 건설 한다고 많은 포장 마차가 사라졌고 다시 창원시내 도심이 형성 되고 상가도 들어서고 하면서 미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여 포장마차를 상남동 공원 어디론가 이전 분양 하였는데
아마 지금은 그 포장마차 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직장인의 애환을 달래주던 마음의 쉼터마져 포장마차와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닐까 아련한 생각에 잠긴다
그때만 해도 회사 조직은 경직되고 수직적이며 상하 관계가 엄격했고 민주화가 되기 전이라 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 보니 회사원 들의 인격이란 것이 보장되지 않든 시절이다.
누적된 스트레스와 상사로 부터 첼린지는 감당하기 힘든 셀러리맨의 비애 였을 것이며 힘들게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후 막걸리 한 잔으로 그 설움을 씻어 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동료 선, 후배, 친구 끼리끼리 포장마차 한쪽에 자리를 잡고 둘러 앉으면서 토해내는 열기들....시끌벅쩍하다
그 때의 기억으로는 막걸리에 사이다를 썩어서 마시던 것이 유행했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래도 안주는 좀 다양했던지 우선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해물로는 꼼장어도 있어고 굴도 있었던 것 같고 당시에 오징어가 좀 흔했던지 오징어 회나 한치 회 그리고 고갈비 정도가 생각이 난다.
다른 안주로는 두부김치, 도토리 묵, 제육뽁음에 닭발 닭똥집 파전 정도로 기억이 나는데 제일 손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안주가 두부김치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처럼 세련된 막걸리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져 노오란 주전자에 노오란 양은 그릇 주거니 받거니 취기가 오르면 젓가락 장단에 육자베기 노래 가락이 무르익는다.
夕陽離席坐芳陰 (석양이석좌방음)
석양에 자리깔고 꽃그늘 속에 앉으니
深樹幽禽又好音 (심수유금우호음)
깊은 슾속 새소리 듣기 좋군요
濁酒三盃歌一曲 (탁주삼배가일곡)
막걸리 석잔에 노래 한가락 부르나니
淸風明月主人心 (청풍명월주인심)
청풍명월이 주인의 마음인가 하노라
- 삼의당김씨가 郞君과함께 읊다 -
취기가 올라 오지랍에 술잔 이라도 엎지르게 되면 옷에다 실례를 한 듯 얼룩을 만들어 개선장군 처럼 노래 한곡을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 간다.
8,90년개 직장인과 애완을 함깨했던 포장 마차의 막사와 두부김치 안주의 추억은 지워 졌지만 아직도 산행 후 막걸리 한잔에 두부김치와 도토리묵 그리고 파전 한 조각과 국수 한 그릇
세월은 변해도 입맛은 그대로 인듯 막걸리 한 잔에 부두김치나 도토리 묵 그리고 파전이 최고의 궁합이자 조합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일전에 다녀온 금정산 산행후 산성에서 나눈 막걸리 한잔과 두부김치의 여운은 아직도 가시지를 않는다.
산행 후 서로 간에 정을 더하고 일상의 시름을 덜어 내기에 부담없고 지나치지 않은 식사 한끼로 막걸리 한잔에 두부김치 그리고 국수 한 그릇이 딱이다.
무엇이든 세월이 변하면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를 알고 자리를 잡아 가는 것이 트랜드다.
이제는 환경이 변하고 의식 수준이나 보건 위생에 관한 의식도 변하고 관련 법도 변한 탓에 퇴근후 막사 한 잔의 문화는 사라졌지만 대신 삼겹살에 소맥이 신드롬 처럼 대 유행을 하며 자리를 잡았고 또 치맥의 조합도 자리를 잡아 세계 어디를 가도 치맥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대신 막걸리와 두부 김치는 산으로 갔다.
산행후 막걸리 한잔에 두부김치의 환상적인 조합은 나는 다음 산행에서도 어김없이 찾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