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납치 조직, 반미 저항단체 아닐 수도”
[인터뷰] 요르단 거주 중동 문제 저널리스트 김동문씨
"김선일씨를 납치한 이라크 무장조직이 앗자르까위와 연관됐다는 근거는 아직 없을 뿐 아니라 아예 반미 저항조직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동 지역에서 10여년간 거주하며 중동 문제 연구와 취재 활동을 해온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김동문(43·요르단 암만)씨가 김선일씨 납치 조직과 관련해 이 같이 말했다. 이는 현재 대다수 한국 언론의 보도 방향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미디어오늘에 21일 오후(한국 시각) <'미국인 참수 조직' 아닐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온 김씨는 22일 자정(현지 시각 오후 6시)부터 1시간 가량 이뤄진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자신 나름의 취재 결과와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연구와 취재 차 이집트로 향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차량 안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99년 1월부터 요르담 암만에 거주하고 있는 김씨는 김선일씨와 대학(한국외대 아랍어과) 선후배 관계이자 지난해와 올해 바그다드에서 두 차례 만난 인연을 갖고 있다. 김씨는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을 전제하면서 "현지의 소식통 및 여러 한국인과 요르단인 관계자를 취재하고 알자지라 방송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아직 이번 납치 조직은 전형적인 반미 무장단체 모습과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언론과 외교부 대표단은 이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씨가 이번 납치 조직을 '전형적인 반미 무장단체'와 다르다고 보는 근거로 △이라크의 무장조직에 정통한 요르단 정보기관도 이 단체의 이름을 생소해 하고 있는 점 △비디오 속 조직원들이 '성전'을 치르는 모습답지 않게 어설픈 점 △비디오 제작 과정과 정보 추출 능력의 수준이 낮은 것으로 유추되는 점 등을 꼽았다.
또 김씨는 한국 언론에서 납치 조직의 지도자로 지목되고 있는 앗자르까위와 관련해 "그의 조직이 미국인 닉 버그를 참수했다는 혐의는 아직 물증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또 닉 버그 비디오와 이번 김선일씨 비디오에 나오는 조직을 같은 조직으로 보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납치 조직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데 대해 "이러한 이유들 이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언급은 말을 아껴 여운을 남겼다.
이라크에는 '전형적인 반미 무장조직' 이외에 어떤 조직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라크는 시국이 하수상하다보니 저항조직도 있지만, '유사 저항조직'도 있다"며 "반미와 성전을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조직의 성격을 그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다양한 성격과 목적을 가진 조직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김선일씨의 실제 참수 가능성에 대해서 "이 단체의 성격이 반미 저항단체인지 아닌지도 한 변수가 될 것"이라며 "외교부 대표단은 형식 논리를 찾기 보다는 우선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여 '위험한 상태이지만 협상의 여지도 있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김씨는 아울러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씨는 "납치 조직이 자기 이름으로 밝힌 명칭 중 '자미아'는 '방패'(시마아)가 아니라 '그룹'이라는 뜻"이라며 " '방패'는 한국 언론의 오역"이라고 설명했다. 또 "예전에 오무전기 사건에 났을 때는 그래도 (사건을 일으킨 단체에 대해) 다각적인 접근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너무 한 가지 가능성만 생각하고 있다"며 "서방 언론의 큰 흐름에 편승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김선일씨 피랍 소식은 어떻게 들었나?
"여기 시각으로 (21일 새벽) 1시 반 경에, 바그다드에 있는 한인이 내 숙소에 있는 그의 지인에게 연락을 해와 알게 됐다. 그러고나서 4시 30분경에 알자지라 TV를 보았다."
- 알자지라 방송을 본 소감은 어땠나?
"당혹스러웠다. 낯선 사람도 아니고 일면식이 있던 사람이 그러한 모습으로, 생명의 위협에 처해 있다는 것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빨리 무사히 풀려나기를 바란다. 그런데 알자지라 방송을 보다보니 이 조직원들의 정체에 대해 여러가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하루종일 나름대로 현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했다."
- 전에 김선일씨를 만난 적이 있는가?
"대학(한국외대 아랍어과) 선후배 관계다. 하지만 학번 차이가 꽤 있어 한국에서는 몰랐고, 지난해 여름과 올 2월 바그다드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다."
- 한국 언론에서는 김선일씨를 납치한 조직의 주도자로 앗자르까위를 주로 지목하고 있고, 그는 지난번 미국인(닉 버그) 참수 사건도 지휘했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보도를 어떻게 보는가?
"나의 체류 경험과 취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번 납치 조직은 앗자르까위 휘하 조직은 물론 반미 무장저항 조직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아직 단정할 수는 없으나, 전형적인 반미 무장단체 모습과 거리가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여러가지 단서와 정황이 있다. 한국의 언론과 내일 요르단에 도착할 대표단은 이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 우선 앗자르까위는 어떤 사람인가?
"오사마 빈 라덴 이후 최대의 거물 테러리스트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요즈음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의혹이 일 만큼 활동이 위축된 상태다. 그를 이어 그에 버금가는 테러리스트로 앗자르까위가 떠올랐다. 웬만한 테러 사건이 터지면 배후로 그를 지목하는 경우가 많다. 4월에는 암만에서 화학무기를 이용한 대규모 테러 미수 사건이 발표됐는데, 그 때도 앗자르까위가 거론됐다. 미국인 닉 버그를 참수한 조직도 앗자르까위의 조직이 지목됐다. 그러나 혐의는 있지만, 그것을 입증할만한 물증은 명확하지가 않았다.
이번 납치 사건도 그와 관계가 있는지를 규명할 근거는 아직 없다. 한국 언론 보도를 보니, 앗자르까위를 수많은 테러 조직 계보의 수장처럼 묘사를 하는데, 테러조직들 간의 연결성과 통제력 여부는 밝혀지는 데 한계가 있다."
- 그렇다면, 알자지라 방송에서 김선일씨를 납치한 것으로 스스로 밝힌 '자마아 앗타우히드 왈 지하드'는 어떤 단체인가?
"한마디로 낯선 조직이다. 요르단은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중동의 무장 저항조직에 대한 정보에 민감하고, 또 그러한 정보가 많이 있다. 그런데 요르단 정보 당국자도 이 조직 이름은 파악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정체불명'이라는 것이다. 급조된 조직이거나 아니면 저항조직을 흉내낸 납치 범죄 조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 국내에서는 조직 이름 번역에도 혼선이 있다.
" '자마아 앗타우히드 왈 지하드'는 '일치와 성전을 위한 그룹'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자마아'를 '방패'로 번역한 경우가 많던데, '방패'의 아랍어는 '시마아'이다. 분명히 다른 단어고, (한국 기사들은) 오역이다. 그리고 '지하드'는 '성전'이라고도 번역하지만, 한국 민주화운동 시대의 '투쟁'과 비슷한 관용어다. 특정한 단체의 명칭이 아니라 투쟁을 표방한 각종 단체들이 관용어처럼 쓰는 보편적인 말이다."
- 단체명이 생소하다는 점 이외에, '전형적인 반미 무장 저항단체'가 아닐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또 무엇이 있나?
"지금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는 점을 전제로 이야기한다. 먼저 닉 버그를 참수한 조직과 비교해보자. 우선, 닉 버그 참수 장면에서는 건장한 체격의 조직원들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그런데 김선일씨 관련 화면에는 뒤에 복면을 쓴 사람이 매우 왜소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엉거주춤 서 있다. 총을 들고 있는 폼도 '성전의 의식'을 치르는 절도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마치 한국의 예비군 모습 같다. 그리고 메세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모습도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상하다. 이 정도 일을 벌인 조직과 취지라면, 비중있는 간부급 조직원이 무게를 잡고 말을 할텐데, 그러한 모습이 아니다.
또 닉 버그 비디오에는 조직원들이 방탄 조끼 같은 것을 입고 있고 군대 장비도 잘 갖춰진 것으로 나오는데, 김선일씨 비디오에는 장비도 매우 소박하다. 이 두 비디오에 나오는 조직을 같은 조직으로 보기에는 어색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이 비디오의 콘티도 어설프다는 생각이 든다. 알자지라 방송을 보면 하단에 녹화 시간이 나오는데, 9시 몇 분부터 10시 몇 분까지 약 30여분이 소요된 것으로 돼 있다. 알자지라는 이 테이프 중 몇 분만을 방송하면서 '중복된 부분을 뺀 것'이라고 했다. 이를 감안할 때 30여분 동안 촬영을 했으나 방영분 이외에 중요한 내용은 별로 없거나 이를테면 NG가 많이 났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고, 이는 테이프 제작에 있어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준비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셋째. 이 조직은 팔루자에서 김선일씨를 납치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 언론 보도를 보면 김선일씨가 속한 '가나무역'은 미군에 군납을 하는 업체라고 했다. 한국인 중에 팔루자를 지나는 사람은 기자 아니면 군과 관계된 사람일 것이다. 그곳에 관광객이 있겠는가? 이라크 저항조직에게 미군 군납업체 직원이라면 아주 큰 타깃일 수 있다. 저항조직들은 미군 뿐 아니라 미군부대에 협조하는 사람도 적대세력으로 간주한다고 선포해 왔다. 그런데도 비디오에서는 김선일씨가 미군 군납업체 직원이라는 언급이 없다. 이 조직은 그러한 정보를 몰랐거나 아니면 그러한 정보의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이를 보면, 이 조직은 보통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무장 저항단체만큼 정보에 밝지 않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요컨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보자는 것이다. 예전에 오무전기 사건이 났을 때는 한국 언론이 그래도 (사건을 일으킨 단체의 정체에 대해) 다각적인 접근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너무 한 가지 가능성만 생각하고 다른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서방 언론의 큰 흐름에 편승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 전형적인 반미 무장 저항단체가 아니라면 어떠한 단체일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이라크에는 또 어떤 조직이 있나?
"이라크는 시국이 하수상하다. 이러다보니 저항조직도 있지만, 말하자면 '유사 저항조직'도 있다. 반미와 성전을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조직의 성격을 그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지난 4월에 목사 일행 7명이 납치를 당했지 않은가? 당시 그 일행은 여러 조직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같은 색깔의 조직이 아니었다. 다양한 색깔과 목적을 가진 조직이 있다. 또 단순하게 차량털이범 조직도 있다. 복면과 두건을 쓰고 총을 들고 있으면 외부 사람이 보기에 모두 반미 무장단체 조직원 같다. 그러나 이러한 차림새로 차량털이를 하는 조직도 있다. 바그다드 함락 이후에 이러한 조직이 크게 늘어났는데, 이들을 '알리바바'라고 부른다."
- 전형적인 저항단체가 아니라고 해도 TV에 비쳐진 김선일씨 모습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24시간 시한'도 제시하지 않았는가?
"알자지라 인터넷판에는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하지 않으면' 이런 말만 나오던데, 비디오에서는 '(이슬람력) 몇월 몇일을 기준으로' 이라는 표현이 나오더라. 다시 확인은 못 했지만, 아무튼 매우 임박한 시점이었다. (참수를 곧바로 실행할지는) 이 단체의 성격이 저항단체인지, 아닌지도 한 변수가 될 것이다."
- 요르단에 도착할 한국 외교부 대표단에게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귀중한 생명의 가치 앞에서 형식 논리를 찾기 보다는 우선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단체의 성격을 예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곳의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한국 정부가 지난번 일본 정부 대응을 따라 '테러범에게는 굴복할 수 없다'는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데, 지혜롭게 대처하기를 바란다. 일본 정부의 대응 방식을 '카피'할 필요는 없다."
- 이라크에 있는 한국인들의 안전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분위기다. 대사관에서 '조심하라'고 하지만, 한국인 있는 곳마다 군대를 배치할 수도 없는 것이고…. 대사관도 전화로 안전 여부를 파악하는 정도다."
- 이라크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
"왜 그러는지는 잘 몰라도 이라크인들은 한국인에 대해서 좋게 생각했다. 일본인 이미지와 비교하면 그 점이 뚜렷하다. 지난 4월에 목사 일행 이외에도 NGO 인사 2명이 이라크에서 억류가 됐는데, 큰 어려움 겪지 않고 풀려났다. 여기에는 한국인에 대한 좋은 감정도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요새는 분위기가 바뀌어가고 있다. 키르쿠크 파병 철회 해프닝 등 한국군 파병 뉴스가 계속 보도가 됐다. 한국인에 대해 애증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좋아했던 한국인에 대한 배신감과 아쉬움 같은 것들…. 지금은 호감이 반감으로 전환되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
김씨는 지난 90년 10월 이집트로 출국한 이래 중동 지역에 주로 머물렀으며, 99년 1월부터 요르단 암만에서 거주해 왔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요르단은 지난해 이라크에 들어간 한국인 1100명 중 900명이 거쳐간 곳으로, 이라크에 대한 정보가 많은 곳이다. 또 김씨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만 바그다드에 일곱 차례 다녀왔다고 한다.
김씨는 현재 프래랜스 저널리스트로서 미디어오늘 정기 칼럼니스트와 한겨레21 전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가슴으로 떠나는 이집트 이스라엘 성지순례>(임마누엘선교미디어, 1996), <이슬람의 두 얼굴>(예영커뮤니케이션, 2001), <사담 후세인-위대한 영웅인가? 극악한 테러리스트인가?>(시공사, 2002) 등의 책을 펴냈다. 오는 7∼8월에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만남 1500년-충돌인가 공존인가>(가제)라는 책을 낼 계획이다.
첫댓글흠... 정말 우리나라가 너무나 가능성을 한정 시켜서 접근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기사를 보니 더더욱.. 그리고 오늘 경향신문에서도 미국, 일본의 대응 케이스를 언급하면서 우리 정부도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뉘앙스를 줬는데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흠..
첫댓글 흠... 정말 우리나라가 너무나 가능성을 한정 시켜서 접근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기사를 보니 더더욱.. 그리고 오늘 경향신문에서도 미국, 일본의 대응 케이스를 언급하면서 우리 정부도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뉘앙스를 줬는데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흠..
여튼 김선일씨를 하루 빨리 구해야 할텐데... 휴.. 부모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싶네요..
이 추측이 옳다면 대략 저넘들은 돈 때문에 저 짓 하구 있단 얘긴데...그랬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