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에서 보낸 첫날
십일월 넷째 월요일이다. 서너 달 전부터 초등 친구들과 나라 밖으로 나들이를 하기로 정한 첫날이다. 개띠 동갑들은 환갑을 앞둔 해 봄에 제주도로 건너가 성산 일출봉을 둘러 온 짧은 여정을 다녀온 바 있다. 코로나로 미뤄둔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 적극적인 친구가 나서 두 달 전 베트남 달랏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확보해 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기 열네 명이 떠나게 되었다.
나는 해외여행이라곤 수년 전 큰 녀석이 억지로 여권을 발급해주어 대만으로 며칠 다녀온 경험이 전부다. 이후 앞으로도 나라 밖으로까지 견문을 넓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친구들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어 순순히 응했다. 날이 밝지 않은 어둠 속에 명서동 주택에 사는 친구가 차를 몰아 봉곡동 여학생을 태워 나와 다른 두 친구와 같이 김해공항에 닿아 동행 친구들과 합류했다.
마산에서 한 대, 고향 의령에서 한 대로 모여 여행사 가이드의 미팅을 마치고 2층 쇼핑가로 올라갔다. 마산 여학생이 잠도 자지 않고 정성 들여 마련한 아침밥이 펼쳐졌다. 겉은 주먹밥이지 쇠고기를 볶아 다진 영양밥과 깍두기 김치다. 8시 15분 탑승 시각까지 여유가 있어 소주로 여행의 흥에 기를 불어 넣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딘가 찾아가 담배를 피우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열네 명 친구들은 출발할 시각보다 조금 지연되어 베트남 항공사 베이젯 트랩에 올랐다. 제주 상공을 지나면서부터 기체는 고도는 가늠할 없을 정도 높이 올라 끝없이 펼쳐진 운해를 계속 전진했다. 친구들이 마련한 간식에는 소주가 빠질 리 없어 가벼운 잔을 비우기도 했다. 기내식이 없는 저가 항공이라 커피는 승무원에게 달러로 사 먹었다. 베트남 남부 달랏은 5시간 걸렸다.
우리가 내린 달랏 외곽 공항은 국제선이 취항하는 공항치고는 한산한 편이었다. 활주로와 인접한 풀밭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만발했는데 무슨 꽃인지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입국장은 중국과 마찬가지 사회주의 국가라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현지 가이드와 접선해 공항과 제법 떨어진 달랏으로 이동해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쇠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를 끓는 육수에 익혀 들었다.
점심 식후 첫 관광지는 랑비앙산이었다. 아까 내렸던 공항이 해발 700미터이고 달랏은 1500 고지였다. 우리로 치면 지리산이나 한라산 국립공원에 해당하는 랑비앙산은 2000미터가 넘는 고지 지프차로 이동했다. 옛적 적대 관계였던 두 부족 청춘 남녀의 슬픈 전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했다. 비련의 전설 두 주인공 사당 주변은 사계절 봄꽃이 만발하는 꽃밭으로 꾸며져 있었다.
친구들과 산마루 꽃동산을 거닐면서 사진을 남기고 한담을 나누고 하산해 이동한 곳은 괴기스러운 건축물을 찾아갔다. 베트남에서 꽤 알려진 건축가가 곡선의 미학을 강조한 가이디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 고아원으로 쓰려고 지은 건물이 국가로부터 용도를 허가받지 못해 호텔로 쓰면서 관광객을 받았다. 나는 고소공포가 심해 미로와 같은 첨탑 꼭대기는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첫날 마무리 여정은 우리나라 청남대나 경복궁과 곳을 찾아갔다. 베트남이 19세기 프랑스 식민 지배 이전 마지막 황제를 지낸 이가 달랏에 세운 여름 별장으로 건축물 외관은 물론 내부 장식까지 프랑스풍으로 사치스러웠다. 황제의 여름 별장에서 나와 가이드가 안내한 호텔로 가 체크인을 받고 여장을 풀었다. 진행 총무의 방에서 술과 과일 안주를 먹다가 먼저 돌아와 잠을 청했다. 23.11.27
첫댓글 선생님~
고소공포증을 무릅쓰고 달랏으로의 해외여행. 동창들과 동심으로 돌아가는 즐거운 시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