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한쪽이 결린다던 누나는
얼마 안 가 해만 지면 몸져누웠다
이웃들도 의사들도 점집에나 보내보라 했지만
싫다고 싫다고 악을 썼는데
이번에는 내가 앓아눕자
누나는 조용히 내림굿을 받았다
누나가 늘 바라던 방이 그때 생겼다
차림이고 낯이고 전부 다 어두운
인간처의 낮에는 방울 소리 지나서
마음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
닳도록 손 비비는 소리는 저녁상 치우면 들렸다
문득 잠에서 깨 오줌 누러 가는 한밤
초에 켠 불이 많아 아늑하게 깊숙하게
밝은 그 방으로 모르는 할머니가 들어갔고
일요일엔 모처럼 터셔츠를 입고 나와
누나는 시고 단 귤 먹고 싶다 했다
요 앞 청과에 좀 다녀오라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시면
나는 싫다고 싫다고 버팅기다 내쫓기듯
집을 나와 내리막길 걸으면 푸른청과 보이고
오르막길 걸으면 끝에 영광교회 나와서
낑낑 오르는 신자들 매번 저기 마귀 동생 간다 그랬다
-『경향신문/詩想과 세상』2024.11.03. -
서울의 미아리에는 미래의 시인이 살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시름시름 앓다가 “해만 지면 몸져누워”버린 누나. “점집에나 보내보라”는 말에 악을 쓰며 싫다던 누나는 동생이 앓아눕자 “조용히 내림굿”을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누나가 늘 바라던 방”이 생겼다. 누나는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 방으로는 어두운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마음이 열리거나 닫히”듯이 고통의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그 방은 흔들리는 초들로 아득하고 “깊숙하게 밝”았다. 한밤에 “그 방으로 모르는 할머니가 들어”가기도 했다. “인간처의 낮”에 울리던 방울 소리는 먼저 도착한 슬픔과 나중에 도착할 슬픔을 대신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운명을 바꾸고 싶어 했다. 누나가 먹고 싶다는 귤 사러 가는 길. 오르막길 끝 “영광교회” 신자들이 “마귀 동생”이라고 부르던 시인. 이제 누나 대신 점괘를 풀어내듯이 시를 쓴다. 시로 별자리를 이어가며, 오래전 빛들을 만나러 간다. 저 먼 곳에서 온 미래를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