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소원 (안도현, 1961~)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혼자 우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 2008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9월도 하순으로 가는 오늘, 햇볕이 드는 한낮에는 잠시 덥기도 하겠지만 유난히 길었던 여름의 장마를 지나 맑고 파란 하늘과 퇴락해 가는 햇살이, 가을을 가을답게 하는 날이 아닐까 합니다. 보통 지금의 시기가, 1년 중 4월과 함께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런 때 가을을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는, 다소 독특한 내용을 담은 이 詩를 음미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듯하군요.
- 이 작품은 시인이 개인적으로 가을이라는 계절에 바라는 소망들이 무엇인지 적어놓은 것인데, 리스트를 읽어보면 시인의 풍부한 감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 이 詩를 읽다 보면 우리가 시인의 생각과 공감이 가는 부분도 없지는 않겠으나,
후드득 쏟아지는 가을의 차가운 소나기를 보는데 그치지 않고 ‘가끔 소낙비를 흠씬 맞는 것’이나, 황량하고 쓸쓸한 가을 풍경을 보고 울적한 심사를 넘어 아무 이유 없이‘혼자 우는 것’같은 풍부한 감수성은, 우리들로선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시인 고유의 개성이 드러나고 있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여하튼 가을이라는 계절을 맞아 까닭 없이 느낄 수 있는, 여려지고 서글퍼지는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지는 것 같군요. Choi.
<받은 글>
-지인이 보내준 톡에서-
가을노래 모음
https://www.youtube.com/watch?v=-OxVlapa_zM
서늘한 바람의 유혹
뿌리치고 내 할 일만
모른척 따라 걸건데...
일어나니 여섯시
어? 어제부터 일어나는 시간이 늦다
해가 늦게 떠 그런가?
난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는 습관
그래서 여름과 겨울의 기상이 다르곤 한다
어제가 추분이어서 해가 여섯시 넘어 뜬다
아무래도 기상 시간이 늦어지려나 보다
집사람이 뻥이가 교미하고 있다고
교미를 못하게 묶어 놓았건만 수캐가 찾아 왔다
우리 동네 개가 아니다
네 이녀석 하고 쫓으니 수캐가 교미하다 말고 부리나케 도망간다
어허 저게 임신되면 어쩌지
요즘은 개들을 카우지 않으려해 분양할 길이 없는데...
뭐 별 수 있나
지 운명이겠지
일기 마무리 하여 톡 보내고 나니 일곱시가 훌쩍
나가서 배추밭에 물 준다고 하니
이미 해가 둥실 떴으니 아침 먹고 나가는게 어떠냐고
그도 괜찮겠다
일 끝나고 오면 아침이 늦을 듯
식은밥 데워 호박잎 쌈
이도 괜찮다
남은 밥은 국에 말아 뻥이차지
또 수캐가 찾아와 뻥이와 놀려 해 쫓아 냈다
저 녀석 뻥이가 확실히 거부할 때까진 찾아 올건데...
암캐가 임신되면 교미를 거부한다
그동안 잘 지켜보아야겠다
오전에 예초기 한바탕 하기로
아래밭 언덕이 넘 무성
집사람은 베란다 언덕부터 하란다
예초기 날을 새날로 바꾸고 마루밑 언덕부터
언덕은 위로 올려 베어야하니 힘이 많이 든다
양쪽 언덕을 다 베었다
올핸 이것으로 마무리 하겠지
아래밭 옆 언덕을 베었다
여긴 풀만 있어 내둘내둘
아차 돌하나 그대로 때려 버렸다
이때부터 예초기 날이 떨리기 시작
돌을 쳤을 땐 날을 다시 조여주어야하는데...
예초기가 떨리니 손도 떨린다
그래도 이 악물고
한참 있으니 예초기가 덜덜 하다가 멈춘다
연료가 바닥났다
아이구 이젠 그만
올라오니 10시가 넘었다
꽤 일했다
집사람은 알타리무 뽑아 김치를 담는다며 간하고 있다
알타리무가 밑이 들지 않고 연한 열무같아 김치 담으면 맛있겠단다
김치야 집사람 전공 아닌가?
집사람이 야외부엌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땔 것이 많으니 돼지머리나 하나 삶아 볼까?
또 한바탕 일했으니 머릿고기에 막걸리 한잔도 좋겠다
오늘은 황룡장
시장안 정육코너에서 돼지머릴 사야겠다
여긴 장날만 돼지고기를 판다
그래서 냉동하지 않고 바로 그날 받아 와 팔기에 맛이 좋다
마침 돼지머리가 하나 있다
썰어 달래니 4토막으로 쪼개준다
만 오천원이라 하기에 오천원어치 내장을 달라고 하니 염통과 창자 허파를 준다
또 거기에 개 있으면 주라고 떼어낸 비계를 한봉지
오천원어치가 넘 많다
이 맛에 시장보러 다닌지 모르겠다
오다가 장성주조에 들러 막걸리를 샀다
주조장에서도 소매를 한다
지나는 길이니 여기에서도 막걸리를 사면 좋다
아산형님이 땅콩을 캔다시기에 밭에 가 봤다
두 분이 캐고 있는 모습이 어쩜 참 시골스럽다
두 노인네가 질퍼덕하게 땅에 앉아 꾸부정한 자세로 도란도란 말나누며 일하는 모습이 만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 그래 그렇게 늙어 가는 거야
점심때 막걸리 한잔 하자며 얼른 집에 갔다 내려 오란다
집사람과 같이 내려갔다
아짐이 추어탕과 간재미탕을 데워 내어 놓았다
간재미탕이 맛있어 밥 한술 말아 안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즐겁게 막걸리 나누었다
오늘 저녁은 돼지머릴 삶아 한잔 하자고 하니
오늘은 자녀들이 같이 저녁하자고 했다며
다음에 보자고
자녀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겠지
재한동생 전화
시골에 내려 왔다고
그럼 얼굴 한번 보아야지
집에 오면 차 한잔 마시러 오겠다고
집에 와 전화하니 바로 올라왔다
차 대신 붕어 곤 물 한잔
재한동생이 귀촌해 여기 살면 마을이 더 좋아질건데...
이런저런 동네 이야기 나누다 웃기만 했다
간다는데 줄 게 없어 달걀과 주워 온 밤을 좀 주었다
다음에 오면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 주어야겠다
부화기 안을 보니 병아리가 태어났다
작은형님에게서 가져와 늦게 넣어 준 알들이 거의 다 부화
귀여운 모습이 보기 좋다
이 녀석들은 죽이지 않고 잘 키워내야할건데....
모두 육추기에 옮겨 놓았다
잘 들 살아라
돼지머릴 삶았다
먼저 한번 끓여 물을 버리고 돼지머리도 찬물에 씻었다
여기에 옷나무와 황칠나무 울금 양파 된장을 풀어 삶았다
야외부엌에 있는 쓰레기들 중 분리할 것은 분리하고 나머질 때서 삶았다
승훈동생 집사람이 놀러 왔다
이번에 집사람과 같이 노래교실 나들이 갈 때 많은 이야길 나누었단다
집사람보다 좀 어리다고 언니라 부른다
그래서 오늘 놀러 왔나 보다
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이제 불을 그만 때고 뜸을 들이면 잘 익을 것같다
임사장님이 저녁 약속 없으면 식사하자고 해서
돼지머릴 삶았으니 같이 하자고 했더니 그도 괜찮겠다고
그럼 여섯시에 보자고 했다
모터를 연결하여 아래 배추밭에 물을 주었다
가을 가뭄이 심하다
후북하게 물을 주어야 배추나 무가 클 것같다
오늘은 저번보다 더 많이 주었다
집사람이 내려와 직접 주겠다고
집사람이 물을 주면 나보다 더 꼼꼼하게 잘 준다
1시간여 물을 주고나니 충분한 것같다
호스 중간중간이 터졌다
모터를 끄고 호스를 연결했다
이렇게 해놓아야 다음에도 바로 물을 줄 수 있겠다
삶은 돼지머릴 썰어 베란다에 상차렸다
임사장님과 친구분이 건너 오셨다
아주 부드럽게 잘 삶아졌다며 맛있게 드신다
구원장이 사다 준 증류주를 드렸다
후배에게 좋은 이웃이 이사왔다했더니 내 막걸리를 사 오며 드리시라며 따로 한병 사왔다고
맛을 보시더니 좋은 술이라며 고맙다고 꼭 전해 달란다
좋은 이웃과 함께 한다는게 즐겁다
이야기 나누다 유씨이야기
처음 당해 본 고소 고발이라 힘들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좋다고
좋은 분이 옆에 이사 오셔 기쁘다고
이런 좋은 기분으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서로 좋은 관계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돼지머리 한쪽으로 즐거운 저녁 시간이었다
밤을 줍지 않았다기에 주워 온 밤 한봉지를 드렸다
작은거라도 나누어 먹어야지
짙은 어둠속
마을어귀 가로등만 졸고 있다
님이여!
9월의 마지막 주말
영글은 밤알 하나 주우며 가을을 주워 담아 보심도 힐링이리라
오늘도 님의 하루가 토실토실 잘 익은 밤알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