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나무들] 하나의 식물이 보여주는 이파리의 다양한 생김새
[2010. 2. 9]
지구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양식을 만든다는 점에서 똑같은 식물의 잎은 생김새에 있어서도 적잖은 차이가 있습니다. 얼핏 봐서야 비슷비슷하지만, 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식물의 잎입니다. 저는 천리포수목원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잎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비 종류의 식물이 줄지어 자라고 있는 옛 사무실 근처의 도로변 담장입니다.
도로와 면한 곳으로 아래 쪽에는 콘크리트로 담장을 짓고, 그 위에 철망을 세워 담장을 지은 곳이지요. 울타리는 꼭 필요한 것이겠지만, 사실 철망으로 이뤄진 담장이 예쁠 리 없지요. 그래서 이 담장 가까이에는 덩굴식물을 심어 키웁니다. 아직 이 식물들이 담장을 완전히 덮은 건 아니어서, 그리 멋들어진 풍경은 안 되지요. 풍경보다는 이곳에 다양한 종류의 아이비를 심어두었다는 게 제 관심사입니다.
어쩌면 아이비 정도는 많은 분들이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 아닌가 싶습니다. 제도 아이비 여러 그루를 화분에 심어 기르고 있으니까요. 이게 돌봐주지 않아도 워낙 잘 자라는 식물이어서, 게으른 사람이 키우는 식물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입니다. 참 잘 자라지요. 생명력이 매우 왕성한 식물 중의 하나가 바로 아이비 종류의 덩굴식물입니다. 제 작업실에서도 아이비 한 그루를 키운 적이 있지요. 얼마 전에 낸 책에 그 이야기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의 그 가는 줄기 하나가 오층 쯤 되는 건물 담벼락을 온통 뒤덮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덩굴식물이 죄다 그렇다. 작은 화분에 담쟁이덩굴을 심어 기른 적이 있다. 버팀목이 없어도 담쟁이덩굴은 담을 향해 돌진하는 양 우렁차게 약진했다. 다른 화분에 비해 유난스레 무성한 그 나무를 향해 장난기가 발동해 화분을 정반대 방향으로 틀어보았다. 하! 다시 벽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돌진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무서울 정도로 왕성한 생명력이라니." ('나무가 말하였네'에서)
아이비 종류의 식물은 참 잘 자라는 식물입니다. 한번은 화분이 바짝 마를 정도로 물을 주지 않아서 아이비가 거의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시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깜짝 놀라서, 이 화분을 화장실에 들고 들어가 한참 동안 샤워를 시켜주었지요. 그랬더니 바로 다음 날 이 시들어버렸던 생명이 다시 환한 미소로 싱그럽게 살아나더군요. 작은 화분 안에서도 그처럼 잘 자란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오늘 사진에서 보여드리는 식물의 잎은 모두 아이비 종류의 잎입니다. 비슷비슷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잎들을 들여다보면, 같은 아이비가 어쩌면 이리 다른 모습의 잎을 가질 수 있는지에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시간 되시는 대로 천천히 바라보시면서 잎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찾아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김새는 서로 달라도 이 잎들이 하는 일은 모두 똑같습니다. 가장 중요하고도 요긴한 일이 바로 엊그제 '솔숲편지'에서 말씀드렸던 '햇살모으기(光合成)'입니다. 저 잎들이 때로는 초록 빛을 덜어내고 노랗게 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때에는 어김없이 잎들이 다시 짙은 초록을 띤다는 겁니다. 더 많은 햇살을 모아 양분을 만들려는 전략인 거겠지요.
이제 하나하나 들여다 볼까요? 아이비의 학명은 Hedera helix 입니다. 이 학명의 뒤에 품종명이 붙는 겁니다. 일테면 맨 위에서부터 세 장의 사진은 Hedera helix 'Star' 라는 학명을 가진 아이비 종류의 식물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아이비의 잎을 닮았지만, 그 중에는 가운데 부분이 훨씬 길게 쭉 뻗어나온 잎도 있습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입니다.
아이비 종류의 식물들은 겨울에도 잎 지지 않는 상록성 덩굴식물이어서,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을 되고 기온 떨어지면, 다른 나무들의 잎처럼 단풍이 듭니다. 담장을 엉금엉금 기어오른 아이비 잎사귀의 붉은 단풍도 가만히 보면 참 예쁩니다. 오늘 편지의 사진들은 대개 지난 12월 24일에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성탄절 전 날, 아이비 종류의 잎들이 붉은 빛으로 단풍이 든 모습입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훨씬 지났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엊그제 수목원을 돌아보는 동안에 다시 한번 이 아이비 종류의 잎사귀들을 찾아보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저렇게 푸르른 잎을 간직한 채로 겨울을 나고, 차츰 다가오는 봄의 걸음걸이를 누구보다 먼저 느끼는 식물이 바로 이처럼 푸르른 상록성 활엽수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으로 넷째 다섯째 사진은 Hedera helix 'Sulphur Heart' 입니다. 역시 같은 아이비 종류의 식물인데, 이 식물은 잎사귀가 다른 아이비에 비해 무척 넓적한 편입니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게 영락없는 덩굴식물이라는 것은 잘 알겠지만, 그게 아이비 종류인지를 처음엔 잘 몰랐어요. 생김새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게다가 잎에는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기까지 하니요.
전체적으로 초록 빛이 선명한데, 가운데에는 연두 빛 혹은 노란 빛이 도는 무늬가 불규칙하게 나있습니다. 초록에서 연두를 거쳐 노란 색까지의 여러 색을 갖춘 잎에 선명하게 돋아난 잎맥이 볼수록 재미있습니다. 하나 둘 뜯어보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은 전혀 찾을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통일성을 갖추고 있거든요. 통일성 속의 변화, 그건 어쩌면 모든 생명체의 기본 바탕 아닌가 생각하게도 됩니다.
식물 관찰은 풍경을 바라보는 일과 달라야 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위주로 살펴보는 풍경 보는 것과 달리, 식물을 관찰할 때에는 전체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주변의 다른 것들을 모두 배제하고 식물 그 자체가 보여주는 모습에 집중할 필요가 있지요. 그건 잎도 그렇고 좀 있으면 환하게 피어날 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작은 잎과 꽃의 더 작은 부분들이 펼치는 멋을 느끼는 게 어쩌면 식물 관찰의 핵심 아닐까 싶은 겁니다.
이어진 여섯째 사진은 Hedera helix 'Itsy Bitsy' 입니다. 원래는 초록이 선명한 잎인데, 가을 지나고 예쁘게 물든 단풍 빛의 잎입니다. 여러 잎들 가운데 한 잎이 유난히 붉은 단풍으로 빛나고 있어서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자줏빛에 해당하는 붉은 빛입니다. 한 그루의 아이비에 매달린 잎들이 모두 붉게 물든 건 아니고, 듬성듬성 예쁘게 물든 잎이 있을 뿐입니다. 가만히 아이비 앞에 주저앉아 붉은 단풍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 다음 일곱째 사진은 Hedera helix 'Green Ripples' 입니다. 같은 아이비 종류의 식물이지만 잎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요? 잎 가장자리에 난 결각이 깊어서, 독특해 보입니다. 어찌 보면 어떤 짐승의 발같은 느낌도 듭니다. 가장자리의 결각도 제가끔 다릅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만 비슷하다 뿐이지, 하나의 식물에서 나온 잎들의 모습이 저마다 다른 겁니다.
이 이파리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달 수 있는 그 다음 사진, 즉 바로 위의 사진은 Hedera helix 'Fluffy Ruffles' 입니다. 이 잎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전형적인 아이비의 잎과 바로 위에서 본 Hedera helix 'Green Ripples' 와의 중간 쯤 되지 싶습니다. 모두 다섯 개로 갈라졌지만, 역시 이 식물의 모든 잎이 그런 건 아닙니다. 바로 아래의 사진도 위의 사진과 같은 식물인 Hedera helix 'Fluffy Ruffles' 입니다. 이 사진을 살펴보면, 한쪽에는 결각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냥 밋밋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아이비 종류의 식물은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잎이 꼬불꼬불 꼬부라지는 종류의 예쁜 잎 하나 더 보여드리면서 아이비 종류의 식물 이야기는 정리할까 합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무엇보다 사진으로 아이비 종류의 잎이 보여주는 다양함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편지가 길어졌지만, 가만히 아래 위로 스크롤하시면서 다시 한번 살펴보시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편지가, '천리포 나무들'이라는 부제로 시작한 솔숲편지의 1백 번째 편지입니다. 꼭 한햇동안 1백 번으로 나누어 천리포수목원의 식물들을 전해드린 겁니다. 그 동안 이 편지를 통해 천리포수목원의 식물들을 아껴주시고, 관심과 격려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천리포 식물들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 아직은 보여드려야 할 식물들이 많고 많으니까요. 특히 이제 서서히 봄 맞이 채비에 나서는 봄 꽃들 이야기도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그 동안처럼 앞으로도 계속 관심과 성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 솔숲닷컴에서 받은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