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성악 ( Polyphonia )의 시초
여기에서 다성악이란 말마디에 대하여 한 마디 안할 수 없어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이스 음악 이론서에 Harmonia니, Polyphonia니 하는 말이 있는데 이 용어들은 지금의 의미와 전혀 다르게 사용되었음을 무엇보다 먼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즉 그리이스인들은 Harmonia란 말을 화음이나 화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지를 않았으며 어떤 선율이 아름답게 되어 있으면 그 선율이 작곡상 미학적 규칙에 아무런 어긋남이 없고 균형이 잡히고 또 원하던 효과가 그 선율의 힘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였다. 또 Polyphonia란 다성 (多聲 )이라는 뜻인데 그리이스인들에게 있어서 다성이란 여러 개의 악기의 합주 또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노래함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이 경우 합주 또는 합창이란 언제나 동일한 선율을 합주 또는 합창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음정상으로는 동일음이거나 아니면 8 도 음정 뿐이었다. 보통 악기이면 본 선율을 그대로 연주하고 고음 악기이면 그 선율을 8 도 높게 연주했으며,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에 여자 목소리나 아이들 목소리가 첨가되면 거기에도 8 도 음저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이스인에게 있어서 다성이란 이 이상의 아무런 다른 의미가 없었다.
중세기에 있어서의 Polyphonia는 그 의미를 좀 달리하였다. Polyphonia즉 다성악이란 서로 다른 다수의 선율이 동시에 노래됨을 말하였다. 또 이 다수의 선율은 각기 독자적이었고 선율로서는 각기 완전한 자주성을 가지므로 타 선율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예를 들면 4 성음부로 된 어떤 다성음악곡이 있다면 거기에는 네 개의 독립적이고 완전한 멜로디가 동시에 흐르고 있는 식이었다. 여기서 다성 음악에 대한 관념을 더욱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우선 그 특징으로, (1) 고중세기(古中世紀)에 있어서와 같이 단선율이 아니고 다성, 즉 [다수의 선율]이 동시에 노래되는 것, (2) 각 선율은 자주성을 가졌었다는 점, 즉 근래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화성학적으로 어떤 음이 요구되어서가 아니라 완전한 선율들이 함께 모여 있다는 것, 이상의 두 가지를 특히 주의해 두고자 한다.
1. 오르가눔 ( Organum )
다성 음악의 시초는 의심할 여지 없이 Organum 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오르가눔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중세기 음악 이론가들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런 시스템에 의한 작품들이 별로 남겨져 전해지지 않아서 일정한 정의를 내리기도 곤란하다.
그리이스 음악에 Etherophonia 란 것이 있었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이스인들은 화성이나 다성이라는 용어를 우리가 쓰는 것과 다른 의미로 사용했었다. 에데로포니아라는 것은 어떤 선율이 노래 될 때 악기, 특히 고음 악기가 8 도 높이 동일한 선율을 연주하는 것인데 이 악기는 그 선율에 성부에는 없는 장식음을 그 선율에 많이 가미하였었다. 그리이스인들이 에데로포니아라고 한 것은 이런 합주를 에테르포니아라고 했는데 일부 사람들이 여기에 근거하여 중세 다성 음악의 기원이 이미 그리이스 음악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긋난 일이다. 우리가 뜻하는 바 다성음악의 기원이 어디에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불행하게도 확답을 얻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을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다만 그중 가장 유력한 설에 의하면 아마 북 구라파에서 시작된 듯하다. 즉 대력 8~ 9 세기 경에 스칸디나비아, 덴마크, 노르웨이 사람들은 바이올린 계에 속하는 악기를 가졌었는데 이 악기는 세 개의 현이 동시에 울리도록 되었고, 이 세 현 중 하나는 나머지 현과 5 도의 음정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이런 악기가 있었을 뿐 아니라 성악곡에 있어서도 일성이 정선율을 노래하는 동안 다른 성부가 그 선율에 경과음과 장식음을 부가하여 노래하였다고 한다.
이 방법이 그 후 얼마안되어 영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철학자들로서 886 년에 옥스퍼드에서 죽은 Scotus Erigena 라는 사람이 그의 저서 [De divisione naturae] 에 맨 처음 오르가눔에 대한 말을 하였다. 그에 의하면 오르가눔이란 것은 노래가 이성 ( 二聲) 으로 구성되나 처음에는 같은 음으로 시작하여 한쪽 음부가 본음을 떠나 차차 큰 음정차를 이루다가 다시 본음으로 돌아와서 다른 음부와 같은 음으로 끝나는 것이다 하였다.
위의 정선율( 定旋律)이란 말이 나왔는데 이 말은 아마 Cantus datus 란 말의 역어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정선율은 중세기 특히 고중세기에 있어서 그레고리안 성가의 선율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성 음악의 발달은 이 정선율을 기초로 하고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성당에서는 남자 목소리만 사용되었으니 당연히 정선율이 남자 성부에 배정되었다. 다성 음악이 점차로 발전해 감에 따라 다른 성부들은 움직임이 심한데 비하여 정선율은 무게가 있고 정중하여 ‘ 잡다. 유지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Tenere 의 명사형인 Tenor 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후 동요가 없는 성부라는 뜻으로 Cantus firmus, 혹은 박자의 변화가 없다는 의미로 Cantus Planus( 평선율 )등의 여러 가지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것들은 결국 어떤 다성곡의 중심이 된 그레고리안 선율을 뜻하는 것이다. 그 후에 그레고리안이 아닌 다른 선율도 정선율로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악보] 약 840년 ~ 932 년에 불란서의 St. Amand 에 살던 Scotus Hucbaldus 는 오르가눔에 대한 몇 개의 규칙을 세웠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남자 목소리로 정선율을 노래하고 아동들이 정선율 위에 5 도 혹은 8 도로 병행하는 것이라 한다. 한편 5도 8도 경우에 따라서는 4도의 음정으로 이루어지는 오르가눔에 특별한 명칭이 있어 Diaphonia 라고 했다. 그러므로 Hucbaldus 에게 있어서 디아포니아나 오로가눔은 같은 것이었다.
Hucbaldus 보다 약 1 세기 후대 사람인 구이도 다렛조는 될 수 있는 대로 5도 병행을 피하고 그대신 4도 병행을 사용하기를 주장하였다. 5도 병행이나 4도 병행이나 결과에 있어서는 비슷하지만 약간 덜 거북스럽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누가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때 벌써 반진행법 (反進行法)이 있었고 이 방법에 대하여 11 ~ 12 세기 사이에 영국의 이론가 Johannes Cotton 이란 사람이 저서를 냈다. 구이도는 반진행법과 4도 병행을 사용하여 오르가눔을 만들었다.
귀도의 오르가눔
그뿐 아니라 구이도가 이미 3도 음정까지 사용하고자 했다고도 하지만 그가 어떻게 3도 음정을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실례같은 것이 없으므로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오르가눔에 대해서는 모르는 점이 많기 때문에 그때의 방법으로 우리가 어떤 배합을 해본다든지 혹은 과거에 어떠했다는 단정을 내리는 등의 절대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악보]
또 오르가눔이란 말마디에 대하여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 말은 라틴어로서 “악기 오르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악기 오르간과 다성 음악의 시초인 오르가눔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하면 언뜻 일소에 부치고 말거나 또 많은 식자들도 그 관련성을 부인하지만 양자간에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오르간이라는 악기는 벌써 그리이스인들에게도 있었고 중세기에 다성 음악이 시작될 무렵과 그 이전에도 교회 안에서 사용되었었다. 그때까지는 이 악기가 노래의 선율을 그대로 동시에 따라갔었고 대략 9세기 후에는 8도 혹은 5도 또는 4도의 음정적 간격으로 소리를 내었다 한다. 특히 구라파인들은 본음과 5도 음을 동시에 연주한 듯하다. 그러면 악기 오르간에서 힌트를 얻어 사람의 목소리로 그것을 실시해 보고자 했음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2. Discantus
조금 앞에서 반 진행에 대하여 잠시 언급하였는데 반 진행이라는 방법이 발견된 것은 음악사상 특기할 만한 중대 사건이다. 여기서부터 다성 음악의 근육이 되는 대위법(代位法) 의 제 1조의 규칙이 생긴다. 대위법은 라틴어 Punctus Contra Punctum 의 번역으로 작곡 기술 중에 가장 필요하고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이 수법이 체계적으로 논의된 것은 11 세기 초 저자 불명의 저서 [Quicongues veult deschanter] 란 책이 처음이다. 이 저서는 프랑스 것인데 그 안에서 Discantus의 형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Discantus 는 처음에는 즉흥으로 하던 것인데 정 선율에 대하여 또 하나 다른 성부가 상행하여 반 진행으로 8도와 5도의 음정을 이루고 경우에 따라서는 성부의 대차 (對叉 )도 허용된다.
[악보]
처음에는 아직도 5도 병행이 없지 않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 2성에 경과음의 형태로 장식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장식음은 물론 당시 명가수들만이 노래했었다. 경과음의 발생 후 얼마가지 않아서 Discantus 에 제 3도 음이 이론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보아서 Organum은 다수 성부의 병진행인데 비하여 Discantus 는 반진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르가눔에 있어서는 그 후에 제 2성에 장식음이 대단히 많아진데 대하여 Discantus 에 있어서는 비교적 소수의 장식음이 사용된 사실도 기억해 둘 만 한 일이다. [악보] 오르가눔에 있어 얼마나 많은 장식음이 사용되었는지 다음 예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12세기 빠리의 노트르담 성당에 악장으로 잇던 Leoninus 의 오르가눔이다. 이 오르가눔을 분석해 보면 8도 병행 다음에 5도 4도 5도로 이루어지는 데 많은 장식음이 있다는 것이다.
3. Gymel - Faux - bourdon
아마 매우 오랜 옛날부터 영국에는 대륙의 그것과는 아주 다른 시스템으로 된 다성 음악이 있었다. 어떤 이는 북구라파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영국으로 건너갔다고 하나 확증은 없다. 어쨌든 영국에서는 예전부터 3도병행의 2성곡이 있었다. 이것을 Cantus gemellus 라 하고 영어로 Gymel 이라 하게 되었다. 이 방법은 구라파에 오르가눔과 Discantus 의 실험을 마친 뒤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즉 기멜이 구라파 대륙으로 들어와서는 정선율에서 3도 낮은 음이 제 2성으로 되었고 또 다시 3도 더 낮은 음이 첨가되어 대략 현대의 3화음 같이 구성되었다. 이런 음정적 관계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노래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3성으로 된 곡이 이루어지는데 고음이 정 선율이고 중간음이 Gymel 또 저음을 Bourdon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 저음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보표에는 요즘의 3화음의 기본 위치가 그대로 씌어 있지만 그것을 그 당시 노래로 부를 때에는 저음이 8도 높게 불리워 졌었다. 이를 쉽게 말하면 3 . 6 화음의 연속의 효과를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저음을 거짓저음이라 하여 Faux - bourd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악보]
이상 3 가지 즉 Organum 과 Discantus 그리고 Faux -bourdon 이 앞으로 크게 발전할 다성 음악에 절대 필요한 전제조건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성 음악은 본질적으로 대위법에 의거하는 것이며 대위법은 특히 Discantus의 반 진행에 가장 중요한 법칙을 발견하였다. 장식음과 Faux - bourdon을 통하여 3도와 6도 음정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소수의 요소로 음악사상 가장 뛰어나는 구분선을 긋고 음악에 있어 새로운 세기를 오게 한 다성 음악이 발족하였던 것이다.
글쓴이: 베토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