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FC도교전을 끝으로 25년간 선수생활을 접은 최용수 코치(33·FC서울)를 지난 7일 구리 챔피언스 파크에서 만나 1시간 가량 인터뷰했다. 은퇴 인터뷰인 만큼 축구 뿐만 아니라 개인생활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최용수, 아니 최코치는 축구 이야기만을 고집했다. 가끔 가족 이야기를 했지만 축구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그의 인생이 축구에만 맞춰져 있었다는 뜻이다.
"시원섭섭하다"
-은퇴한 소감은 어떤가. "음~ 시원 섭섭하다. 막상 관두고 이제 이틀 지났는데 아 이제는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시즌 도중 그만뒀나. "선수로서 더 하고 싶은 욕심보다 홀가분하게 한가지(지도자)에 매진하고 싶었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수많은 골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골은. "동래고등학교 2학년때 골이다. 서울에서 열린 KBS배 결승전에서 1-0 결승골을 넣었다. 상대가 풍생고였다."
-왜 그 골이 가장 기억에 남나. "부산 촌놈이 서울에서 치른 첫 전국대회 결승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시절 골 중에는. "98년 프랑스월드컵 지역예선 카자흐스탄전에서 첫 골을 넣었을 때다. 광고판 위로 뛰어올랐다가 넘어졌을 때 골 말이다."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자평하나. "몸을 아끼지 않은, 정말 시합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골을 넣겠다는 열정적인 움직임 덕분인 것 같다. 나같은 스타일은 일본에는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일본 선수들은 고만고만하게 플레이한다. 골을 꼭 넣겠다는 집념은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공격수의 일본 진출에 대한 생각은. "반대는 안한다. J리그 나름대로 재밌는 부분이 많다. 관중도 많고 운동할 수 있는 시스템도 좋다."
-기량을 발전시키는 면에서는. "K리그나 J리그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본다. 수비는 J리그가 다소 느슨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박지성처럼 유럽으로 가기전에 일본을 거쳐가는 것도 괜찮다. 지금 J리그 수비도 예전만큼 느슨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수비수들이 집념이 더 강한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공격수라면 젊을 때 유럽으로 갈 수 있으면 바로 가는 게 좋은 것은 물론이다."
-J리그 경기내용은 어땠나. "게임을 참 재밌게 하려고 한다. 22명이 모두 팬들을 위한 축구를 하려한다. 고의적으로 상대를 강하게 태클하는 것은 없다. 동업자 정신 강하다. 시간 끄는 것도 없다. 2-0으로 이기고 있어도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 똑같은 페이스로 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행동은 거의 없다. 전구단 대부분이 모두 그렇다. 선수로서 뛰어봐도 일본에서 하는 게 더 재밌는 것은 사실이다.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상대를 존중해준다."
-한국과 일본 축구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정말 발전을 많이 하고 있다. 98년월드컵, 2002년월드컵, 2006년월드컵을 치르면서 매번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썩 좋은 경기력은 아니었다. 우리가 일본보다는 한 수위인 것은 맞다."
만화책 주인공과 미드필더
-그런데 왜 일본에는 공격수에 비해 좋은 미드필더들이 많은가. "만화책 주인공이 모두 미드필더다. 모든 어린 선수들도 미드필더가 되고 싶어하며 미드필더가 최고 좋은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는 독수리 슛이라는 말이 있듯이 공격수가 모두 주인공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일본은 지금도 스트라이커 부재다."
-K리그는 요즘 침체기다. J리그는 팬을 모으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나. "정말 팬을 끌어모으기 위해 구단,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 지역 봉사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경기 못나가는 선수는 경기전 사인회를 자주 연다. 경기 나가는 선수도 사인회를 할 정도다. 물론 시합 날도 한다. 한달에 한번 정도씩 학교를 방문해 애들과 축구교실을 열고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도 한다. 선수들이 지역을 찾아가는 것은 구단 사무국도 딱딱 맞춘다. 처음에 나도 쉬는 날 봉사활동을 하라고 해서 귀찮았는데 나중에는 마음에서 우러나 하게 됐다. 구단에서 정한만큼 감독도 말리지 못한다."
-팬을 위한 봉사활동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선수 1명과 서른 명의 학생이 함께 동네 쓰레기를 줍는다. 관련 기사와 사진이 지역신문에 크게 나고 주민들도 팀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된다. 지역 봉사 활동이나 학교 나가는 것은 한달에 한번 정도다. 모든 팀들이 봉사활동과 축구교실 등을 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K리그도 배워야할 부분이 아닌가. "그렇다. 배워야할 것은 배워야한다. J리그를 벤치마킹해야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내와는 어떻게 만났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으로 아는데. "실제 나이는 9살 차다. 후배 소개로 만났고 만난 뒤 11개월만에 결혼했다. 재밌게 살고 있다. 아기는 아직 없고 임신도 아니다. 이제 가져야할 것 같아 노력 중이다. 내조를 아주 잘 한다."
-자녀가 축구를 하고 싶어한다면. "시키지 않겠다. 너무 힘들다. 본인이 하겠다고 해도 말리겠다. 무난하고 건실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축구도 힘들고 인기 속에 사는 것도 부담스럽다. 나도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을 의식해야하는 것, 제약이 많은 것보다는 편안한 생활이 좋지 않나. 정 소질 있으면 시키겠지만 아버지를 닮으면 실패할 것 같다(웃음)."
-유달리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내 복이다. 후회는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이을용이 밀어준 볼을 허공으로 차냈을 때 심정은. "아(한숨). 내 운이 여기까지인가보다. 뭔가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쉬운 골은 실축하고 어려운 골을 잘 넣는다는 평가가 많다. "칭찬이면 좋겠다. 공격수는 쉬운 골이든 어려운 골이든 모두 넣고 싶다. 사실 나도 그런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왜 쉬운 골보다 어려운 골은 잘 넣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정말 내가 그 나이에 상상할 수 없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다. 대견스럽다. 우리때는 상상도 못했던 플레이다. 김동석 안태은 김치곤 등 어린 선수들이 너무 잘하고 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젊은 시절 좀더 축구에 전념했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부와 명예는 다 얻을 수 있지 않나. 축구에 좀더 미치면 아마 어마어마하게 크게 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 선수들은 인터넷으로 외국경기 많이 볼 정도로 축구에 전념한다. 물론 축구에만 너무 많이 신경쓰는 것 같아 걱정되는 면도 있다."
-선수로서 아쉬움이 있다면. "유럽에서 뛰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90년대말 유럽진출 실패 후 충격이 컸다. 절정기 때 그런 곳에 가서 도전정신으로 한번 해봤으면 했는데 어쩌겠나. 그게 내 복인 것 같다. 충격도 많이 받았고 사실 부끄러웠다. 구단이나 코칭스태프가 많이 위로를 해줬고 빨리 자신감을 갖게 해줬다. 참으로 고맙다."
-복이나 운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힘든 시기를 보내면 다음에는 상당히 좋은 일이 생기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나는 어려운 순간을 많이 즐겼다. 월드컵 본선 때도 역시 그랬다."
-원래 낙천적인 스타일인가. "많이 변했다. 학창시절에는 이기주의적이기도 했는데 힘든 시기도 많이 겪으니 `아이고 한 두번도 아니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독일월드컵을 관전한 소감은. "왜 그런 플레이가 나왔는지(모르겠다). 우리 한국다운 경기를 하지 못했다. 뭔가 2%가 빠졌다. 투지 있게 밀어붙이고 싸우고 하는 게 없었다."
배르캄프 보고 주눅들어
-선수시절 가장 무기력한 경기는. "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이었다. 아 정말 경기장 들어가기 전부터 베르캄프부터 해서 상대 선수들을 보니 한풀 꺾인 느낌이었다. 경기를 하면서도 패싱, 컨트롤, 경기를 읽은 능력, 참 답은 나왔구나 싶었다. 경기전부터 주눅 들어서 들어간 셈이다. 경기하면서도 참 잘 한다고 느꼈다. 물론 지금은 차이가 많이 좁혀졌다."
-당하기 어려웠던 국내외 수비수가 있었나. "특별하게 두려웠던 수비수는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게 복불복 아닌가."
-K리그 살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먼저 구단, 선수 모두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팬들이 운동장에 오게끔 봉사활동과 축구교실 등을 해야한다. 먼저 다가가서 `우리 경기 보러오세요'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이런 경기합니다'라고 해야한다. 쓰레기 줍고, 고아원이나 양로원도 가야한다. 선수들도 팬 서비스 의식을 강화해야한다."
-구단을 지원해주는 스폰서에게는 어떤 것을 해주나. "구단차원에서 무척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외국에서 친선경기제의가 오면 주전들이 모두 간다. 주빌로 이와타 시절 야마하가 스폰서였는데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베트남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정도다. 스폰서가 도움을 주니까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일본에서 선수 권익 보호 단체는 있나. "전선수들이 선수협의회에 가입돼 있다. 90년대 말 연봉이 절반으로 삭감됐는데 `이대로 가면 모두 죽는다'는 생각으로 동참했다."
-당시 반발은 없었나. "모두들 위기감을 느꼈다. 선수들 대부분이 동업자 정신 갔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축구에서도 선수협의회가 필요하지 않나. "우리나라 야구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 선수권익을 보장하고 협회와 원만하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말 좋은 대우와 처우를 받으면서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은퇴 후 지도자 연수도 갈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있다면. "지금 오심 감독, 아주 정말 구단, 선수간 중간에서 정말 조율을 잘한다. 선수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다. 1시간 30분 동안 딴 생각 못하게 선수들을 장악하는 카리스마, 상당히 무서우면서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제프 이치하라 시절 감독이었는데 아주 무섭다. 나도 훈련을 게을리 한다고 뺑뺑이도 돌았던 기억도 있다. 당시 일본 신문에 크게 났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그렇게 한다. 훈련 프로그램도 선진적이었다."
오심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일본은 감독 잘 뽑은 것인가. "아주 잘 뽑았다. 장점은 다들 좋은 선수가 아니라는 선수들의 장점을 잘 살려서 키워내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이다. 선수단을 휘어잡는 장악력도 강하다. 일본선수들은 감독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집에 일이 있으면 운동 도중 집으로 가기도 한다."
-오심 감독 같은 지도자 되고 싶나. "그렇다. 선수들에게 다정다감하면서도 중심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지도자다. 구단, 선수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애정 베푸는 지도자 말이다. 말을 이렇게 해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웃음)."
-스타 출신이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데. "선수시절 내가 한 것을 선수들이 못한다고 혼내서는 안된다. 그걸 얼마만큼 죽이느냐가 중요하다. 과거의 선수 최용수지 지금은 초보 지도자일 뿐이다. 칭찬 세마디를 하면 한마디 정도는 사정없는 말도 할 줄 알아야한다."
-지도자 과정은 언제 밟나. "오는 10월에 3급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기초부터 밟는 게 좋지 않겠나."
-지도자로서 계획이 있다면. "일찍 감독이 되고 싶은 생각 없다. 10년, 15년 뒤 모든 경험을 해보고 기회가 되면 하겠다.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감독이 될 만한 자격이 없다면 굳이 감독을 할 필요가 있나. 준비가 됐을 때 해야한다. 외국 연수도 가고 싶다. 특별히 나이 별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생활할 뿐이다. 굳이 억지로 욕심을 낼 생각은 없다."
-그래도 최종목표는 대표팀 감독인가. "그것은 나에게 너무 무리다. 부담되는 자리는 싫다."
-원래 스트레스 싫어하나. "물론 때가 되면 한다. 하지만 가능하면 즐기면서 내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힘든 생활을 많이 겪어본 만큼 힘든 시기를 즐길 줄도 안다."
-인생관은 무엇인가. "성실이다. 오랫 동안 기억에 남는 최용수가 되고 싶을 뿐이다."
-요즘 코치로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선수들의 심리파악을 아주 즐기고 있다. 선수들의 마음을 대부분 읽을 수 있다. 딱 보면 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인다."
-독수리라는 별명은 좋나.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10년 정도전부터 생긴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다른 별명이 있었는데 그것만은 밝힐 수 없다." |
첫댓글 J리그와 K리그를 두루 경험한 선수의 말이라 더 와닿네요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