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의 밤
베트남 여정의 사흘째를 맞은 십일월 끝자락 수요일이다. 우리나라와 2시간 시차라지만 하루가 시작되고 마침에서 크게 달라진 느낌을 받지 않았다. 달랏에서 이틀째 밤을 보낸 새벽에 잠을 깨 옆자리 친구 숙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새벽 3시 반에 노트북을 들고 복도로 나가 소파에서 워드 작업을 하려니 전날과 마찬가지로 점멸 보안등이라 1층 식당 구석의 비상등 전구 아래서 생활 속 일기를 남겼다.
아침 식후는 두 밤을 보낸 달랏에서 여장을 꾸려 체크 아웃하고 호텔 로비에 모였다. 우리와 같은 숙소를 쓰고 식당에 동선이 겹친 면식이 익은 한국 여행객들도 로비로 내려왔다. 여행 사흘째 오전은 달랏에서 머물다 오후는 해안의 나트랑으로 이동한다는 정보만 알고 가이드의 안내를 따랐다. 그는 현지에서 안면을 터고 지내는 커피숍으로 우리 일행을 데려가 남국 커피 산지다운 맛의 진수를 보였다.
우리는 평소도 서로를 잘 알고 지낸 사이라 새삼스레 검증이 필요하지 않지만 이틀을 함께 보냈으니 친밀감은 더해졌다. 커피숍 탁자에 마주 앉아 코로나가 바꾼 장묘와 제례 문화에 대한 얘기에서 공감했다. 느긋하게 차담을 나눈 뒤 가이드가 안내한 코스는 으레 페키지 관광에서 빠트릴 수 없는 쇼핑 코스였다. 우리 여정을 안내 맡은 현지 젊은이는 세상 물정에 밝아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 이윤이 남는 주요 품목은 국가가 관리해 우리의 정관장과 같은 침향 판매는 통제를 받는다고 했다. 한국인으로 베트남으로 와 정착한 중년 사내의 열띤 홍보에도 우리 일행들은 침향이나 노니를 한 명도 사 주지 않고 자리를 일어나 꼭뒤가 간지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영상을 곁들인 건강 보조 식품 판매 홍보에서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한 번 더 되돌아본 계기로 삼았다.
쇼핑은 빈손으로 나와 달랏 현지식으로 차린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쌀국수와 익힌 돼지고기와 여러 가지 쌈을 차려 종업원이 먹는 방법을 시연했다. 다수 친구들은 그럭저럭 먹었으나 나와 같은 방을 쓴 친구와 둘은 식성에 맞지 않아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했다. 나는 간밤 숙소의 호텔 조식에서 그나마 토마토와 야채로 속을 채워두어 점심은 건너뛰어도 오후는 버스로 장시간 이동이라 무방했다.
사계절 봄과 같이 연중 꽃이 피는 베트남 달랏은 부처님 탄신지 인도 룸비니 동산이 연상되었다. 해발 고도 1500미터 내륙 고원에서 장장 3시간 30분을 달려 해안 도시 나트랑으로 이동해 하룻밤 머문다고 했다. 달랏은 우리나라 지리산 성삼재 노고단보다 높은 고원이고 나트랑은 바닷가 부산이나 목포에 해당할 듯했다. 고원 비탈을 내려가면서 차창 밖은 여전히 비닐하우스를 씌운 농촌 풍경이 이어졌다.
산악 고원에서 고도를 점차 낮추어 가니 구릉에 바나나 그루와 야자수도 보였고 벼농사 지대 경작지를 지나 해안 도시 나트랑에 닿았다. 도중 운무를 헤쳐가는 차창에 빗방울이 스치기도 했다. 중국어로는 하얀 집을 뜻하는 냐짱으로 불린 나트랑은 근래 한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어난 도시였다. 가이드가 정해둔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저녁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삼겹살구이 집으로 가니 국내 뒷골목 식당 같았다.
현지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한국인은 가이드와도 교류를 친밀히 해두어야 손님을 꾸준히 맞을 듯했다. 돼지고기 삼겹살은 한국 맛과 별반 차이가 없었고 상추와 고추도 마찬가지였는데 선도가 좋고 무한 리필이었다. 두부를 잘라 넣은 된장국이 나와 나는 건너뛴 점심을 벌충이라도 하듯 밥을 먼저 먹고 삼겹살을 쌈에 싸 먹었다. 입담과 체력이 뒷받침 되는 친구는 맑은 술을 잔에 채워 안주로 삼기도 했다.
저녁 식후 타고 간 버스로 나트랑 풍물 야시장 구경을 나섰다. 잡화와 먹거리를 파는 야시장은 주중임에도 인파가 붐볐고 한국 관광객도 상당한 숫자였다. 야시장 골목에서 바닷가로 나가니 해운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광활한 백사장에 하얀 파도가 밀려와 부서졌다. 이틀을 보낸 고지대 달랏과는 사뭇 다른 해안의 무덥고 습한 밤공기를 쐬면서 몇 가지 쇼핑을 하고 숙소로 복귀해 잔을 기울이다 잠들었다. 23.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