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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도착하면 콜로세움부터 볼려던 나의 계획은 저 멀리 멀리 날아가 버리고 로마 시내를 한참을 돌고돌고 돌아 한낮의 태양이 어느정도 꺽인 무렵에야 나는 그 앞에 설수 있었다
여전히 좌중을 압도하는 웅장한 포스앞에서 나는 또다시 할말을 잃어 버린다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 콜로세움이다
2년전에는 콜로세움의 겉모습만 봤지만 오늘은 너를 마음껏 해부해 보리다
GO!! GO!! Move~~Move~~!!
콜로세움은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건설이 시작되어 8년뒤, 서기 80년에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때 완공되었다
원래모습의 1/3만 남은 지금의 콜로세움도 경이로운데 그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원래 이 콜로세움 자리는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터로 거대한 인공호수자리였다
얼마전 기사를 보니 앞으로 2년동안 포로로마노를 비롯하여 팔라티노언덕 그리고 네로의 황금 궁전이 복원된다고 한다
어떠한 모습으로 복원 될지 우려도 되고 기대도 된다
곧 다시 가야겠지!! 달라진 로마를 만나러~
황금궁전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네로황제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있는 오해가 있다
첫번째로
네로가 만들고자 했던 황금궁전 즉 도무스 아우레아는 네로의 개인궁전이 아니였다는 거다
로마시민들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즐길수 있는 인공호수와 동물들을 놓아 기르는 자연공원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로마도심에도 푸르름을 가져 오자는 것이 네로의 생각 이었다 하지만 로마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도심에는 도시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되고 푸르름은 교외 산장이나 해변 별장에서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시절 생태학자나 환경론자가 있었다면 네로황제의 뜻에 적극 찬성 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황금궁전'이라는 명칭선택이 가져온 오해라고나 할까? 도무스는 개인집을 뜻한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황제의 '사저'로 받아들인 시민을 자극했다 시민들의 반감을 사는건 어쩌면 당연 했는지도 모른다
두번째는
네로 황제가 로마를 불태우고 자신은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다
로마가 대화재로 활활 타오르고 있을때 네로는 무더위를 피해 안치오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로마로 달려와서 이재민 대책을 전두지휘 했다
판테온같은 공공건물들을 이재민 수용소로 개방하고 빵과 밀가루가 제공 되었다
하지만 진화작업이 화근이었다 그당시 소방대는 있었지만 고무가 없던시절이라 테베레 강물을 끌어 올수가 없었다 7개 대대 7천명의 소방대원들은 물동이에 담아서 릴레이식으로 물을 나를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방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아직 불타지 않은 건물을 부수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나중에 네로가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나돌게 된 원인이 되었다
세번째는
너무나도 유명한 기독교 박해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콜로세움에서 무참히 죽어갔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콜로세움은 네로황제 이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때 만들어진 것이다
후세에 알려진 역사를 네로가 알게 된다면 억울해서 땅속에서 뛰쳐 나올수도 있겠지만
그는 정말 시대를 잘못 타고난 신분을 잘못 타고난 한마디로 운 없는 황제 였다
네로는 그전까지 전반적으로 시민들에게 꽤 사랑받는 황제 였다 그런데 황제가 된 뒤 처음으로 시민들의 반감을 샀다
네로는 당황했고 시민들의 적개심을 다른데로 돌리지 않으면 본인이 화를 당할거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네로는 기독교도를 방화범으로 지목했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나 할까..?
로만인은 다신교 민족이었다 종교에 관해서는 어느 민족보다 관대했다고 보면 된다 패자의 종교까지 인정하다보니 당시 로마에는 30만이나 되는 신들이 있었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지 않는 한 허용하는 방침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일신 사상이고 그들에게 선교활동은 필수적이다
당시만 해도 비기독교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열심히 선교를 하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인들 눈에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시민들의 적개심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약자인 기독교도를 휘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정치적으로 희생할 누군가가 필요했던거지 그게 꼭 기독교인이라서 처형 당한건 아니였다는 거다
역사적으로 보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때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때 더 큰 수난을 당했는데 말이다
물론 이때도 탄압의 이유가 종교적인 것보다 사회질서 유지에 있었지만
역사는 승자에 의해 평가받는다고 한다 만약 기독교가 공인되지 못하고 여전히 박해를 받았다면 네로황제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폭군이니..악덕황제라는 수식어는 따라 다니지 않아겠지
지도자에게 다음 세가지 조건이 필수불가결 하다 역량.행운.그리고 시대적 필요성 역량이 있고 행운을 만나도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수 있는 재능이 부족하면 좋은 지도자의 길은 멀리 날아가 버린다
네로황제도 마찬가지 였던게 아닐까..? 카이사르나 아우구수투스처럼 큰 역량또한 없었지만 그에게는 어떠한 행운도 시대적필요성도 없었다
그는 정말 황제가 아니라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그는 정말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그리스 문화를 찬양 했으니 말이다
대화재도 기독교 박해도 어머니, 의붓동생, 아내,스승을 죽인것도 어쩌면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던 일이었는지도
아무튼 네로 황제와 콜로세움의 연관 관계를 굳이 꼽으라면 원형경기장 옆에는 네로황제의 황금동상인 콜로수스가 서 있었는데 동상이 콜로수스 라서 콜로세움이 되었다는 딱 그정도의 연관성만 있다 나머지 유언비어들은 죄다 카더라 통신 이라고 보면 된다
2천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콜로세움은 아직도 굳건히 서있다 화재,약탈,지진,계획적인 파괴등으로 인해 원래모습은 찾아 볼수가 없지만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 뼈대만 남은 상처투성이의 모습이지만 그 앞에 서면 웅장한 규모에 묻혀서 나는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대체 얼마나 큰 규모인걸까?
숫자에 나약한 피오나지만 굳이 읊어 보자면
최대 지름188 m, 최소 지름 156 m, 둘레 527 m, 높이 57 m의 4층으로 된 타원형 건물이었다
역시 감이 안오는 구나~ 정말 콜로세움은 그 앞에 서봐야만 알수가 있다 인터넷과 책에서 보아온 사진으로는 그 크기가 그 감동이 절대 전달 될수가 없다
그렇다면 콜로세움은 덩치만 컸던걸까..?
아니올시다 이녀석이 대단한거는 바로 건축 양식
아치와 볼트를 구사한 로마건축 기술의 결정체라는 거다
거대한 바위 축대위에 축조되었으며 이 축대는 점토질의 인공호수위에 설치되어 지진이나 기타 천재로 인한 흔들림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었다
로마를 강타 했던 대지진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기특한 녀석임이 틀림 없다
그럼 튼튼하게만 지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외관의 아름다움까지 배려한 건축물 이라는 점이다.
콜로세움의 외관을 유심히 보았다면 눈치챘을것이다 기둥양식 이름쯤은 몰라도 각층마다 기둥 생김새가 다르다는것을~
<사진출처-싸이월드 블로그 말랑거북님>
1층 이오니아.2층 도리아.3층코린트 저 기둥들은 하중을 받쳐주는 기둥이 아니라 오로지 장식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구 나역시 이번에 알게된 새로운 사실 (지면으로나마 석희군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이는가요..?눈치 채셨나요..? 지금은 텅텅 비어 있지만 거대한 아치 사이에는 원래 다양한 모습의 화려한 석상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
뜨악~완전 까무라칠것만 같다!!
그럼 외관만 아름다웠을까..? 콜로세움의 실용성은 어느정도 였을까?
<사진출처-싸이월드 블로그 말랑거북님>
1,2,3층에는 80개의 아치가 있는데 맨 아래층의 아치들은 번호를 매겨 출입구로 사용했다 입장권에 그에 해당되는 출입구 번호가 있었다고 한다
총 5만명을 수용할수 있었는데 입석까지 치면 7만명은 들어갈 수 있었다
참고로 상암경기장 수용인원은 약 6만 5천명이고 잠실야구장은 약 3만 5백명이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에 표를 예매하고 가더라도 입구에서 최소 10여분 이상은 줄을 서야만 입장이 가능한데 2천년전 콜로세움에서는 입장하고 빠져나가는데 5분이 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장 아래에는 '이포제움'이라 불리는 미로같은 지하시설을 만들었는데 검투사의 대기실 ,맹수 우리, 무대장치 보관실 사형수들이 갇혀있는 감옥도 있었다
지하시설위에 두꺼운 나무 판자를 깔고 모래를 덮어 경기장으로 이용했다
경기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지하 밑에서 위로 바로 올라가는 승강기를 사용하여 갑자기 동물들이 나타나게 할 수 있게 했었다 한마디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바닥에서 호랑이가 갑자기 뛰쳐나오는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말씀!!
게다가 햇빛으로부터 관중들을 보호하기 위해 '베라리움'이란 천막 지붕을 설치 했었는데 지붕 가운데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어서 채광은 물론 환기구 역할을 했다 고도의 공학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었으며 나폴리 함대의 해군들이 담당하였다
한국 프로야구의 오랜 염원이 돔구장이 지금부터 2천년전에 로마에 존재 했었다는 말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테베레 강물을 끌여다가 '나우마키아' 라고 불리는 모의 해전까지 벌였다고 하니 저 배들은 어떻게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 갔으며 물이 빠지지 않고 어떻게 채워 졌는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다
콜로세움에서 행해진 모든 행사는 무료였다고 한다
이 엄청난 행사를 주최하는 자는 황제 였고 시민들은 당연한 권리로 받아 들였다
로마인들은 이곳에서 검투사의 경기를 보며 행복해 했었고 삶의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화려한 잔치가 끝나고 나면 경기장 바닥에는 피비린내가 가득 했을 것이다
분명 잔인 했을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의 입장에선 서로가 죽고 죽이는 검투사 경기가 이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대인들은 미친듯이 열광하고 즐거워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축구나 야구가 인기 스포츠 인것처럼 2천년전에는 검투사 경기 또한 인기 스포츠 이었을 것이다 박지성이 인기가 있듯이 능력있는 검투사 또한 인기가 장난이 아니였을 것이다
아치문 너머 숨막히는 아찔한 순간들이 연출 되었을 거고 경기장은 관중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화려했던 과거는 사라지고 앙상한 뼈대와 무너진 대리석 조각만이 남아 있다
콜로세움 어딘가에 주저 앉아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일기를 끄적이다가 음악을 들으면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무슨말인지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관람시간이 끝났으니 그만 나가라는 말인듯 싶다
아쉬운듯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사람들이 사라진 콜로세움을 거닐어 본다 이 거대한 공간에 나의 발자욱 소리만 메아리친다
겉모습은 더 없이 화려해도 그 안은 한없이 쓸쓸하고 적막해 보였던 그 마지막 모습이 잊혀 지지가 않는다
한국에서 가져온 나의 작은 소망
로마에서 머무는 내내 콜로세움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의 마무리는 콜로세움과 함께 하리라던 그 약속은 로마에 머문 내내 지켜졌다
하루의 시작은 늘 콜로세움 이었으며
하루의 마무리도 늘 콜로세움 이었다
로마에 머문 내내 단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적이 없는 콜로세움
깜깜한 로마 밤하늘 아래 유독 아름답게 빛나던 모습이 자꾸만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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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로마에 갔을때 콜로세움 겉모습만 휙~~보고 왔는데 피오나님 글보니깐 저두 다시 가서 꼼꼼히 잘 보고 싶네요~~ 콜로세움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 할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렇게 지나고 보니 꽤 근사한 이벤트 였어요..^^ 콜로세움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하기!!
전 콜로세움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어요.너무 긴 줄때문에 엄두가 안나더군요...나무로 된 바닥..가죽으로된 베라리움..즉 로마인들은 콜로세움을 거대한 북(drum)으로 만들었더군요. 관객들의 함성/박수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자신들의 소리에 더 흥분하게 되죠.. 네로황제가 기독교역사에게 타켓이 된건 그가 지목한 희생양인 기독교인중에 베드로같은 1세대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다수포함되있었기 때문이 아닐가합니다. 네로나 히틀러나..차라리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예술가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콜로세움의 자세한 사진 잘 봤습니다.^^
3층 꼭대기에 앉아서 보더라도 관중석의 각도가 바로 경기장으로 집중 된다고 하더라구요..정말 그자리에 있었으면..저 완전 흥분 햇을꺼에요..^^
전 이상하게도 콜로세움보고 멋지다는 생각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요.. 그안에서 있었을 행사(?)를 생각하면 건축양식이나 역사적인 면보다는 잔혹함이 왠지 더 떠올라서..
맞아요..지금 우리시선으로 보면 너무너무 잔혹한 경기임에 틀림 없어요..
정말 잘감상하였으며...추억이 다시 살아나는군요.....
로마를 다녀 오셨군요..^^ 너무 좋았죠?
피오나님 글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당~^^ 싸이에서 보다가 오늘은 일루 들렀어용~ㅎㅎㅎ 역시 멋지셩
어머머~ 싸이에도 오셨군요..^^ 자주 놀러 오세요
하늘이,, 진짜인거죠? ^^ 전 로마패스로 ,, 빠르게 들어갔는데,, ^^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쩝~ 사람구경만 한가득~
하늘 완전 파랐죠..? 로마의 쨍쨍한 하늘이 그리워요
와~~정성가득한 역사강의 감동적이예요 @@ 혹시 영화 <점퍼> 보셨나요? 공간이동을 맘대로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인데 정말 재미있어요...거기서 콜로세움이 나오는데 꼭 한번보세요^^
저는 점퍼 영화 장면중에 스핑커스 위에 앉아 있는 그게 젤 인상 적이었어요..^^ 공간이동 완전 매력적!!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가 콜로세움이었다면....혹시..??설마...?? 거기서 노숙??!!!!ㅋㅋ
ㅋㅋㅋ노숙은 아니구..아침마다 가고 밤에 또가구..ㅋㅋ
정말 몇천년 전에 이런 걸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경이로웠던 콜로세움 입이딱딱 벌어지죠? 첨엔 책자에서 보던 것보다 멋지지 않아서 실망했었는데... 걸음을 떼면 뗄수록 그 옛날에 이런 걸 어찌 만들었누 상상 불허 였지요^^ 허물어진 틈새로 보이는 포로 로마노... 개선문... 다들 인상적이었슴다. 네로 황제에 대한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피오나 님을 로마이야기 스페셜리스트로 임명합니다.ㅋㅋ^^
로마 이야기 스페셜 리스트라..? 너무 과분한 말씀이지만 로마를 사랑하는 1인으로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요..^^ 감사합니다
역시 공부를 하고 갑니다.. 하핫.. 로마인들 정말 잘 먹고 잘 살았나봅니다. 사람은 기본욕구가 채워지면 그 이상의 욕구를 탐닉하는 존재라서 씁쓸하군요. 오늘날도 그렇고.. 살짝쿵 침울.. 콜로세움! 너는 나의 씁쓸함이구나.
콜로세움! 너는 나의 쓸쓸함이구나...와우!!너무 멋진데여
뎃글들도 재미있고 늘~~피오나님의 유럽여행기는 많이 배우게하는 한권의 책 같아요^ ^슬프고 평화롭고 씁쓸하고 유괘하고등등...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