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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갔다가 죽을 똥 싸고 방금 도착했어요. 오사카 재래시장 어느 곳에서 <와규>먹고 왔는데 내 체력 탓인지, 날씨 탓인지 죽다 살아났습니다. 다시는 이놈의 동네를 오나 봐라. 소니, 아이와, 파나소닉부터 포니 엔진 미시시피, 엔카, 우주소년 아톰, 철인 28호, 니폰도, 문세광, 은하 철도 999, 명량 소녀 캔디(케이코/유미코), 김두환과 하야시, 파친코 바다 이야기, 시 노오나 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등 하다못해 건달 패션 펭귄 표 일본 <먼싱>까지 그야말로 일제라면 사족을 못 쓰던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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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살았던 나는 80년대에 멈춰있는 2026 니폰을 보니 격세지감입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캔디와 테리우스를 아시나요? 다 읽고 나면 이게 소녀 성장물인지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캔디라는 밝고 씩씩한 고아 소녀가 성장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는 큰 틀 속에서 캔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잘난 남자를 만나 신분 상승할 생각은 1%도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오만 잘난 남자들이 꼬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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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5시 30분 맥도날드 구리점 앞에서 출발, 김포 공항을 거쳐 인천 공항까지 1시간 30분 걸렸습니다. 인천공항 생기기 전, 김포 공항에서 잠비아 공화국 대통령 행사장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이후 (주) 한국 쉐링에서 외국 귀빈(주로 독일)들 픽업을 종종 나갔었습니다. <<어제 오분 대기조를 받았기 때문에 워커를 신고서 잤는데, 오늘은 전두환 각하께서 한일 정상 외교 차 일본에 간다니 워커 벗을 겨를이 없다. 국내외적으로 관심이 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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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분 기상해서 하루 종일 뻗치기 초병을 섰는데 돌아가실 지경이다. "각하, 제발 빨리 가시라! " 예포 소리가 그나마 피로를 쫓아 주는듯했다. 환송식 참가한 여고생들의 해맑은 얼굴은 흡사 가을 하늘이 아닌가, 내무반에 들어와 보니 오늘 행사가 TV에 나온 모양이다. 나의 임무 "나는 국내선 청사 정면 근무자로서 현 위치에서 유동 인원의 비표 부착 유무를 확인하고 비 인가 인원의 행사장 접근을 금지 시키며, 유사시 육탄으로 유해요소를 제거하는데 그 임무가 있습니다. 충성!" 84.9.6/수도방위 사령부 32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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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터미널에서 일행 2명과 조인해 체크인하고 <인천-간사이> 행 대한항공 새 비행기에 승차했어요. 가이드 재혁이가 오늘 타는 비행기가 최신형이라며 자랑질입니다. 비행기는 탈 때마다 이 큰 동체가 뜬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고, 통로 쪽 좌석이긴 하지만 염병, 아직도 비즈니스석을 못 타는 처지가 엿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내가 살을 뺄까요? 기내식이 계란밥& 베이컨이 나왔는데 입맛만 버렸어요. 대항 항공과 아시아나가 m&a를 마무리했고 승무원 간 텃새가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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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직장이든 텃새는 존재합니다. 구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이여! 캔디처럼 극복하시라! 간사이 공항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서브웨이까지 이동했어요. 공황이든 지하철이든 에어컨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염병하게 덥고 습해서 짜증 이빠이 났습니다.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1시간쯤 달리는데 태평양 쪽인지 제주도 쪽인지 모를 해안선이 휙휙 지나갈 때는 우본라차타니 분위기를 보는 듯했습니다. 1시간짜리 도시철도 가격이 11000인가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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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필름처럼(주마등) 지나가는 주택들이 90년 대 대림동, 영등포 정도의 감성입니다. 왜 일본 놈들은 주택을 작게 지었을까? 인구(1억 2000만)가 많아서? 재난 재해 때문에? 오사카 시장까지 연결된 전통시장을 뚜벅이 투어로 결정하고 가는데 명동-이태원-광장 시장-동대문 정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고 간판부터 초밥집-패션 어느 것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이 없어서 쇼핑은 1도 관심이 없었고, 일행이 프라다가 진품이라고 물어서 이미테이션이라고 답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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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구>라는 말을 에스더에게서 배웠는데 에스더는 왜 일본을 좋아할까요?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패밀리 마트에 들어갔어요. 와우, "반갑다 패밀리 마트!" CU 전신이 패밀리 마트였다는 걸 우리 예주가 알까요? 엔화가 9000원 대 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조국과 물가가 비슷했습니다. 내가 30대 때 일본 라면 값이 6000원이라고 했는데, 지금 한국 김밥 6000라면 5000원, 최저 임금 10,700이니 일본을 근사하게 넘어섰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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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와보니 하루 사이 열대 아가 거짓말처럼 끝나있었고 <돌핀>이 중국을 강타, 천문학적인 사상자를 발생시켰으며, 콜롬비아에서는 역대급 지진(7.4)으로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듣고 있습니다. 후,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니니 조금 더워도, 돈 좀 못 벌어도 원하는 대학에 못 가도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라! 죽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와규 먹으러 가즈아! 팔로 밀! 고고싱!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려 계단을 하나 내려갔으니 1.5층 정도 되는 상가입니다. 80년대 스낵코너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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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딱딱하고 꼬치집 같은 메트로 감성이 나는 별로입디다. 3명이서 고기 14인분, 냉면 2개, 생맥 6잔을 마셨고 토털 2만엔 나왔으니까 유일하게 먹방은 성공했습니다. 돈 많은 내가 결재 했습니다. 와우! 23살 먹었다는 매니저가 사무라이 식 주문을 받아서 일행들이 팁을 주자고 하는데 내가 됐다고 말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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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우면 네돈 주던지. 배 터지게 먹고 '도톤보리 강'을 경유해 '난바'역 지하상가까지 죽음의 트래킹을 했습니다. 도톤보리 강은 청계천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물론 퀄리티는 청계천이 월등합니다. 이곳도 모터로 물을 끓어온 인공 실개천이고 팔을 벌리고 있는 '글리코맨'이 랜드마크라고 해서 사진 한 장 박았어요. 난카이 난바 역 광장에 있는 동상은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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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인데 단순한 관광 후기가 아니라 일본을 동경하며 성장한 한 세대가 실제 일본에 가서 자신의 기억과 현재를 대조해 보는 글’로 읽힙니다. 그 축을 살리면 아주 재미있는 에세이가 되겠습니다. 1984와 2026년의 오사카 사이에서 우리가 그리워했던 것은 정말 일본이었을까, 아니면 일본을 동경하던 젊은 날의 우리 자신이었을까? 이 글의 진짜 주인공은 오사카가 아닙니다.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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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아이와, 파나소닉에서 아톰과 철인 28호, 캔디와 은하철도 999, 일본도와 야쿠자 이미지, 『로마인 이야기』까지 줄줄이 소환되는 첫 대목은 한 개인의 취향 목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인의 집단기억 한 귀퉁이입니다. 특히 1960~80년대를 통과한 세대에게 일본은 미워해야 할 나라인 동시에 앞서가는 나라였고, 일본 제품과 대중문화는 금지와 동경 사이에서 이상한 아우라를 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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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80년대에 멈춰 있는 2026 니본이라는 평가는 객관적인 일본론이라기보다 기억 속 일본과 실제 일본의 충돌로 읽을 때 더 재미있습니다. 일본 전체가 1980년대에 멈춘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머릿속 일본이 너무 오랫동안 ‘첨단 일본’이라는 모습으로 정지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막상 가보니 작고 낡은 주택, 후텁지근한 역, 오래된 상가와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실망의 절반은 일본의 변화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이 그동안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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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1984년 9월 6일의 군대 기록을 끼워 넣은 것이 이 글에서 가장 좋은 장면입니다. 당시에는 일본으로 떠나는 대통령을 경호하며 워커를 신고 초병을 섰던 청년이, 42년 뒤에는 자신이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갑니다. 그때 일본은 ‘정상외교의 상대국’이었고 먼 선진국이었지만, 이제는 와규 먹으러 하루에도 다녀오는 이웃나라가 되었습니다. 국가의 역사가 한 인간의 생애 안에서 압축됩니다. 그리고 그 사이 대한민국도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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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본 라면값을 부러워하던 사람이 이제 오사카에서 한국과 물가를 비교하고, 도시 풍경과 청계천을 비교하며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칩니다. 약간의 국뽕이 섞여 있지만 그것마저 이 여행기의 재미입니다. 객관적인 한일 비교라기보다 한 세대가 경험한 열등감의 역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은 캔디입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어린 시절에는 씩씩한 만화 주인공의 노래였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나면 뜻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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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의 핵심은 결국 왕자님을 만나 신분 상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실하고 헤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성장담입니다. 그래서 “구 아시아나 승무원들이여, 캔디처럼 극복하시라!”는 농담도 글 전체를 관통하는 작은 모티프가 됩니다. 여행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젊었을 때는 일본 제품을 바라보고,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경호하고, 일본의 경제력을 선망했습니다. 이제 직접 일본 땅을 걸어보니 환상은 상당 부분 벗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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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환상이 깨졌다고 청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동경했던 대상은 늙어도, 동경했던 나의 시간은 기억 속에서 늙지 않습니다. 그래서 와규 14인분과 생맥주 6잔보다 더 많이 먹고 온 것은 어쩌면 40여 년의 세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80년대에 멈춰 있다”도 단정하기보다는 내 눈에 비친 오사카의 첫인상은 이상하리만큼 80~90년대를 불러냈다가 더 좋지 않을까? 난카이 난바역 광장의 동상은, 평화의 탑·여신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내가 지나온 대한민국과 내 청춘을 보고 돌아왔다.”
2026.8.11.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