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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신정일
윤석열 정부와 교육부에 건의합니다.
청소년 시절에 읽는 고전은 보약補藥 중에 보약이다.
-교과서에서 세계문학이 사라졌다.-
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얼마 전, 서울에서 여러 명의 손님이 왔다.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 팀장들이었다.
그들과 대체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
어느 시점부터 우리나라 초중등교과서에서 외국 문학이 다 빠지고,
그 자리를 한국문학부터 알아야 한다며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만 수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까?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에 읽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좋은 책들은
인생의 길을 제시하기도 하고, 평생에 걸쳐 동반자가 되기도 하는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꿔서 말한다면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지역적인 것이다.’ 일 수도 있지 않은가?
출판사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엄청난 문화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진시황 시대에 분서갱유焚書坑儒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원군 시대에 쇄국주의도 아니고,
어쩌면 문화 쇄국주의에 다름 아닌 일일 것인데, 이를 어쩐다?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셀리의 <서풍의 노래> 중 한 소절이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에즈라 파운드가 파리의 지하철 정거장 플랫폼에서
밝은 차 칸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그 이미지를 포착해낸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라는 시의 전문이다.
촉망받던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1941년부터 여러 차례 이탈리아 방송을 통해 고국인 미국을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2차 대전이 막을 내린 뒤 파시스트에 동조한 것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된다. 1945년 반역죄로 재판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호송된 그는 재판에 앞서 건강검진 과정 중 정신이상자란 판정을 받고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T.S. 엘리엇, 로버트 프스트 등 에즈라 파운드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문인들은 계속적으로 그의 탄원을 요청했고 그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으면서 저술한 <피사의 켄토스>가 미 의회 도서관이 수상하는 볼링겐 상을 수상한다.
1958년에 12년 만에 석방된 그는 이태리로 망명한 뒤 "미국은 전체가 정신병원"이라며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곳에서 동양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대학>의 첫 부분 40 여 줄만 읽으면 "전쟁의 어리석음을 피 할 수 있다"고 말하였고 엔솔로지 <공자에서 커밍스까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72년 11월 1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의 한 병원에서 파란 많았던 한 생애를 마감했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배움만 못하고 오히려 죄악이 된다"고 제자들에게 의義를 중심으로 한 실천 유학을 가르쳤던 학자가 조선 중기의 실천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선생이었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 옳다고 믿은 것을 전 생애를 바쳐 실천한 행동하는 지식인 에즈라 파운드 같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 그 사회를 우리는 꿈꾸고 있고, 그러한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돈과 권력이 최고의 선으로 인식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말도 행동도 카멜레온처럼 후다닥 바꾸는 것이 당연시하는 오늘의 시대에 그게 가능할까?
이 시대에 정직하다. 진실하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도 되고 정치인도, 문화예술인도 되어서, 모두가 꿈꾸고 그리워하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세상만사가 덧없는 물결이라고,
현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하나,
번지르한 싸구려들은
우리시대보다 더 영원하리.“
”이들은 무조건 싸웠네.
몇몇은 무조건 믿으면서,
“조국을 위해서” 라고,“
<휴, 셀윈, 모벌리> -스스로의 무덤을 선택하는 에즈라 파운드의 송시-
몇 소절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얼마나 가슴을 아리게 했던가?
“바람이 분다,...살려고 애써야 한다.”
발레리 <해변의 묘지>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이하도록 하는
마법의 자양분과 같은 시다.
“.... 우리는 근심과 다른
그런 근심의 와중에 사람의 벗으로서
<아름다움은 진실이요, 진실은 아름다움,>
이것만이 그대가 땅 위에 아는 모든 것이며, 또,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 말하며,”
스물 여섯의 나이에 요절한 시인 J. 키츠의
<그리스의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들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의 마음을 요동시켰던가?
그뿐인가, 에밀리 디킨슨, 하이네, 헤르만 헤세, 릴케, 랭보,
로버트 프로스트,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등의 시들,
도연명이나, 이백, 두보, 소식 등 수많은 동 서양 시인들의 시가
사람들의 영감의 샘물이 되고 그리움의 자양분이 되었었다.
시만이 아니고 우리들 가슴을 뛰어놀게 했던 소설이나 여타의 문학작품들은 또 어떤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카프카의 <성> 도스토옙스키의 전 작품과 톨스토이,
카뮈, 괴테, 사르트르 등 수많은 책들이 사람들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가?
불세출의 문장가인 셰익스피어나 헤밍웨이의 글을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읽지 않고 지낸다면
그 감성들이 얼마나 서운할까?
너무 이른 나이인 스물아홉 살에 요절한 노발리스의 <푸른 꽃>의 일부분을 보자.
“만물은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져야 하네.
하나는 다른 하나에 의해 무성하게 자라는 법.
개체는 전체 속에 제 모습을 보이네.
다른 것들과 제 몸을 섞으면서
다른 것들의 깊은 품속으로 탐욕스레 빠지면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하고
수천의 새로운 생각을 얻으면서
세계는 꿈이 되고, 꿈은 세계가 되네.
그것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보이네.
상상력은 자유롭게 노닐어야 하는 법,
제가 원하는 대로 실들을 엮어서 짜야 하네.
어떤 것은 감추고, 어떤 것은 드러내 보이면서,
결국엔 마법의 증기를 쏘이네.
우리의 쾌락, 죽음과 삶이
여기선 아주 긴밀하게 함께 하네.
지고한 사랑에 빠진 자.
그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네.
우리의 내면을 가리고 있는
붕대를 우린 고통스럽게 찢어내야 하네.
때로는 가장 신실信實한 마음도 외로워야 하네.
이 지겨운 세상에서 도망치기에 앞서
몸은 눈물이 되어 녹아버리고
세상은 널따란 무덤이 되네.
어쩔 줄 모르는 그리움에 사무쳐
우리의 마음은 재가 되어 무덤으로 떨어지네.“
노발리스 <푸른 꽃> 제 2부 실현 앞부분에 실린 글이다.
책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간의 한평생으로는
다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수천 년의 세월 속에 먼저 살았던 위대한 사람들이 겪고 본 것들을 기록한
인류의 금자탑이다.
그래서 허만 멜빌은 <백경>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지 않았던가.
”나에게 있어서 고래잡이 4년은 하버드 대학이자 예일대학이었다.“
문학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고전을 읽어야 한다. 러시아의 작가인 도스토옙스키의 경우를 보자.
‘인간은 경험한 것만큼만 쓸 수 있다.’ 니체의 말이다. 이 말에 가장 합당한 사람이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닐까?
그는 꽃다운 나이 20대에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이른 성취에 세상을 돈짝 만하게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거만했고, 우쭐댔고,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반혁명 사건에 주동자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대에 서 있다가 사형 선고 직전, 황제의 특사로 극적인 순간에 풀려났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족쇄를 차고 시베리아의 감옥으로 보내져 10년이라는 세월을 생과 죽음을 넘나드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때의 기억들을 되살려 쓴 책이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책이다. 아래의 글은 그 당시의 기록이다.
“죄수들은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그들은 모두 교회에 올 때마다 가진 돈을 털어서 초를 사고 헌납하기도 하고, 헌금을 바치기도 했다. ‘나도 인간이야,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 라고 죄수들은 돈을 내면서 위안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 예배에서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했다. 사제가 두 손에 성배를 들고,(....) ‘그러나 우리를 강도처럼 여기소서.’라고 기도서의 한 구절을 읽자 모든 죄수들은 이것을 말 그대로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며, 족쇄를 절그럭 거리면서 바닥에 엎드리는 것이었다.”
시베리아의 그 감옥에는 정치범에서부터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은 육군 대위, 그리고 온갖 중죄인들과 잡범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는 작품 속의 화자를 통해 그 당시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의 가슴 속 깊이 각인된 그 감정들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랜 세월이 지난 것들은 기억에서 흐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완전히 잊어버린 일들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예를 들면, 나는 그날이 그날처럼 흡사했던 모든 날들을 우수에 싸여 서글프게 보냈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렇듯 길고 지루한 날들이, 마치 비가 온 후에 지붕에서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듯 한결같이 단조로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단 하나, 부활과 갱생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강렬한 갈망만이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해준 힘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참아냈다.
나는 기다렸다. 나는 하루하루를 세어 갔다. 1천 일이나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하루씩 세어 나갔다.
하루를 보내고 묻어 버리면서 다음날이 오면, 이제는 1천일이 아니라 9백 99일이 남았다고 기뻐했다. 수많은 동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나는 극도로 고독했고, 정신은 이 고독조차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정신적으로 고독했던 나는 나의 지난 전 생애를 되돌아보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든 것을 다시 취해서 나의 과거를 깊이 음미해 보고, 용서 없이 엄격하게 자신을 평가해 보았으며, 심지어 어떤 때는 이러한 고독을 나에게 보내 준 운명에 감사할 정도였다.
이러한 고독이 없었다면 자신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지난 생애에 대한 엄격한 비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얼마나 많은 희망으로 나의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
이전에 했던 어떤 실수나 방종도 나의 미래 생활에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결심하고 다짐했다. 나는 미래의 모든 계획 정해 놓았고, 그것을 엄격히 따를 것을 맹세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실행하고 실행할 수 있으리라는 맹목적인 믿음도 생겨났다…….
나는 기다렸고, 성급하게 자유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새로이, 새로운 투쟁에서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때때로 발작에 가까운 초조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의 정신 상태를 지금 상기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에게 국한된 것이지만……. 그러나 내가 이를 기록하였던 것은, 만약 장년의 한창 때에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것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자유를 찾게 된다면 이전에 저질렀던 온갖 방종과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해보지만 형기를 마칠 날은 멀기만 하고, 얼마나 절망적인 나날이었을까?
“저녁 무렵, 오후의 노역이 끝나고 피곤하고 지쳐서 감옥으로 돌아왔을 때, 또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나를 온통 휘감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수천의 이러한 날들이 있을 것인지,’ 나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그와 같고, 모든 것이 동일한 그런 나날들 말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을
내 두 눈은 보지 못하리.
무고한 고통을
이제 나는 영원히 받을 운명,“
도스토예프스키가 감옥에서 생활할 당시 불려 졌던 노래다.
“그렇다. 인간은 불멸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 질 수 있는 존재이며, 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내린 인간에 대한 결론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 인간이란 위대한 동시에 미세한 바람만 불어도 스러지고 마는 담배 재와 같이 부스러지기 쉬운 가장 연약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러나, 그러나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의 숙명이다. 그러나 그 숙명의 깊이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짐이 더 무겁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학은 그런 것이다. 이 삶이 감당할 수 없는 걱이라고 여길 때, 또는 값어치가 없다고 느낄 때, 그 절망의 시절에 마음 깊은 곳에서 생에 대한 열망이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듯 샘이 샘솟듯 솟아나게 만드는 것이 좋은 글, 좋은 문장인 고전이다.
아름다운 문장의 역할
좋은 글 한편이 인생을 바꾼다. 어느 시기에 읽은 그 한 줄의 글이 기나 긴 인생에 지침이 되기도 하고, 절망과 고난에 빠져 있을 때 한 오리 희망과 같이 섬광처럼 떠올라 새로운 출구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 편의 좋은 문장은 인생을 살아가는 큰 자산이고, 변하지 않는 지기知己인데, 그 문장을 두고 옛 사람들은 수많은 글을 남겼다.
“문장이 천지 사이에서 없어져서는 안 될 이유는, 그것이 도를 밝히기 때문이며, 정사를 바로잡기 때문이며, 민정을 살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선함을 얘기하기 즐겨하기 때문이다.”
청나라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에 실린 글이다.
좋은 문장은 이 세상의 정신이자 길이기 때문에 정치를 바로 세우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세네카는 ‘문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마시기보다는 맛보기에 좋은 문장이 있고, 맛보기 보다는 마시기에 좋은 문장이 있다.”
하지만 좋은 문장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문장’을 감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가 <서광>에서 말한 말은 큰 울림이 있다.
“때때로 나는 나의 노트에다 ‘쟁기 날’ 같은 문장을 하나씩 써 넣기도 했다.”
날 선 글 한 줄이 세상을 바꾸기도 하고, 문득 만난 한 사람이 인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문장’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하의 일은 귀천과 높낮이로 삼은 것이 아니요, 오직 문장일 뿐이다. 좋은 문장의 글은 해와 달이 하늘에 빛나는 것과 같고, 구름과 연기가 공중에 모이고 흩어지는 것과 같다.”
고려시대의 문장기인 이인로의 <파한집>에 실린 글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다가 보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광대무변한 우주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일순간의 어떤 행동이나 한 편의 글로 그를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알게 된다.
오래 겪어야 하는데, 금세 모든 것을 파악한 것처럼 돌아서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곤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다.
프랑스의 빼어난 시인 보들레르는 말했다.
“나는 문장 짓기를 배우는 데, 일생을 고스란히 보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웃을지도 모르지만 두려움 없이 말합니다. 내가 인쇄에 넘기는 것은 완전히 끝맺어진 것이라고.”
보들레르는 이어서 말했다.
“문장을 빨리 쓰기 위해서는 그 전에 많이 사색해야 합니다. 즉 한 주제를 함께 끌고 다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보에도, 욕탕에도, 음식점에도, 거의 자기 정부情婦 방에까지도.”
이렇듯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심초사하면서 공을 들였는데, 그 문장을 천천히 읽고 음미하다가 보면 가슴 속에 밝은 서광이 비치는 것 같다.
18세가 저명한 박물학자 뷔퐁의 <문체론>에서 좋은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훌륭하게 쓰여 진 작품은 후세에 전달되는 유일한 것이다. 광범위한 지식, 사실의 특이성, 새로운 발견 등,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야 할 저술이 지엽말절枝葉末節에만 치우쳐 있다면 불멸不滅의 보장을 받을 수 없다. 또한 만약 취미며 고귀성 및 재능이 없는 문장으로 쓰여 졌다면, 여하한 저작일지라도 소멸되고 말 것이다.
지식이며, 사실의 발견 등은 쉽사리 남에게 빼앗겨 딴 곳으로 옮겨져 아주 재간 있는 자의 손에 의해 다시 고쳐 쓰여 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인간사人間事 밖의 것이기는 하나 글이란 인간 그 자체이다.
글이란 남에게 빼앗기거나 옮겨지거나 바뀔 수도 없다. 만약 글이 고상하고 고귀하고 숭고하다면 그 저자는 모든 시대를 통해서 똑 같은 존경을 받으리라.”
글 한 편이 ‘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문장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쓰여 지면서 시대를 변모시키는 마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대 문장가인 상촌 신흠의 글이 의미하는 바가 큰 것은 그 때문이다.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애매모호하게 할 목적의식을 갖고 지은 문장은 지극한 문장이 아니고, 한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게끔 다듬어진 인물이라면 바른 인물이 아니다. “
사람도 그렇다. 어디 하나 모자라지 않고 잘 난 사람도 있지만, 어리석은 것 같기도 하고, 바보나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결점 투성이인 사람도 있다.
못나고 잘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은 게 이 세상이다. 그러한 것들이 이리 저리 얽혀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고 그 틈바구니에서 좋은 문장이 만들어지고, 사람도 조금씩, 조금씩 진일보하는 것이다.
문장을 지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보바리 부인>이라는 명저를 남긴 플로베르의 글을 보자.
“나는 나의 문장 하나를 그것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단 일초라도 서두르느니보다 차라리 개처럼 죽는 것이 낫겠다.”
말 그대로 ‘한 개나 두 개의 낱말을 집어 계란 삶듯 삶는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험을 많이 하고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 이 두 가지가 선행된 다음에야 좋은 글을 쓸 수가 있다.
사무실이나 방안에 앉아서 머리로만 썼는지, 북풍설한 몰아오는 산천을 싸돌아다닌 뒤 눈물과 콧물이 뒤엉켰던 추억의 파편들을 모아서 썼는지는 글의 서두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한 권의 참문장이 있지만, 낡은 책 속의 하찮은 말 때문에 모두가 막혀 있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한가락의 참된 음악이 있지만, 사람의 난삽한 가무 때문에 모두가 막혀 있다.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하찮은 외물을 쓸어버리고 본래부터 있는 그 마음을 찾아야만 비로소 참 보람이 있다.“
<채근담>에 실린 말이다.
‘마음속에 있는 참 문장’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좋은 문장을 읽어야하고 여행을 통해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혀야 한다.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바꾸어 말한다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천성이 달리 좋아한 것이 없고, 문장만을 즐길 뿐이었으며, 또한 문장을 잘하지는 못하였지만 오직 즐기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면서도 때로는 문장을 저술하여 스스로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또 드러내어 자랑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남을 향하여 명예를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으므로 더러는 괴이하다고 꾸짖기도 하였다.”
이덕무의 <영처고 자서>의 일부분에 실린 글과 같이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옮겨 쓰다가보면 가슴 속에 한 올 한 올 쌓여서 문장의 보고가 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을 두고 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의 학문의 깊이와 무게 속에 빠져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독자가 ‘헤엄’을 잘 치는 선수라야 한다.”
루카누스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로지 감명을 주는 문장만이 명문장이다.”
글을 쓰거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를 비롯한 세상의 명 문장가들이 인생 전체를 걸고 터득했던 세상의 지혜를 토해놓은 것이 좋은 문장이다.
“사물을 알아보면, 언어는 부르지 않아도 따라 온다.” 호라티우스
“사물이 정신을 잡으면 언어는 저절로 따라 온다.” 세네카
“사물은 언어를 이끌어 온다.” 키케로
사물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되면 언어는 저절로 따라온다. 좋은 문장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문학과 작가들을 도외시하며, 서양 문학만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연암 박지원이나, 다산 정약용, 그리고 백석, 이청준, 최인훈, 김수영, 신동엽,
박경리를 비롯한 우리나라 이름난 작가들의 글과 함께
서양 고전을 골고루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상력은 자유롭게 노닐어야 하는 법,
제가 원하는 대로 실들을 엮어서 짜야 하네.“
노발리스의 충고와 같이 인류의 혼과 우리의 삶에 필요한 자양분이 담겨 있는
고전인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6대 4나 아니며 7대 3 정도로 배분해서 교과서에 수록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부 담당자들이나 도서관의 사서들, 그리고 서점을 운영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에 몸담고 있는 작가들이
이 제안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거듭 말하지만 고전 속에 길이 있다!
2021년 7월 29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