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엇갈리게 말하기
어법의 유형은 앞에서 말했듯이 표층적 진술과 심층적 진술을 <일치시키는 방법>과 <서로 어긋나게 만드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환유와 비유는 전자에 해당하고, 이 장에서 살펴보려는 유형은 후자에 해당하는 어법입니다. 이와 같이 어긋나게 만드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를 가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화자가 청자에 극단적인 반감(反感)을 가지고 있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화제 자체가 일치시키기 어려울 때입니다. 따라서 이 어법은 <화자-화제-청자>의 관계가 분리될 때 채택하는 어법입니다.
이와 같이 엇갈려 말하는 어법으로는 <반어(反語), irony>, <역설(逆說), paradox>, <풍자(諷刺), satire>, <해학(諧謔)> 등이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며, 어떤 경우에 채택하고, 이런 어법을 채택할 때 시적 특질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알아 보기로 합시다.
1. 반어적으로 말하기 시는 사랑이고 꽃이지만 때로는 벤 자국조차 남기지 않는 날카로운 칼...
반어법(反語法)이라고 부르는 아이러니(irony)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온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허풍장이 거인 아라존(Alazon)을 기지(wit)와 교묘한 말로 이기는 꼬마 에이론(Eiron)을 추상명사화(抽象名詞化)한 용어로서, 누가 봐도 잘못하는 것을 '참, 잘한다'고 비꼬는 어법입니다. 이와 같이 비꼬는 것은, 청자의 잘못을 비판하고 교정(矯正)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잘못을 비판하면 반발합니다. 특히 화자가 자기보다 약할 때는 더욱 그럽니다. 그래서 화자는 겉으로 호의를 가지고 '체(simulation)하면서, 속으로는 비판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로 인해 이어법으로 말하면, 화자는 겉으로 말하는 <표층화자>와 속으로 말하는 <심층화자>가 분리됩니다. 이와 같이 남을 비판할 때는 주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러므로 청자가 분명히 잘못하고 있으며, 겉으로만 칭찬한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도록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독자에 속하는 주변 사람들은 화자가 기지와 교묘한 말로 청자를 속이는 것에 대해 재미와 쾌감을 느끼고,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충동과, 내가 너보다 똑똑하다는 우월감, 나도 저처럼 어리석지는 않는가 반성하도록 말해야 합니다. 리차즈(I. A. Richards)는 이와 같은 아이러니를 '대립물(對立物)에 의해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적 차원의 어법으로 봅니다. 그리고 엘리엇(T. S. Eliot)은 현대 사회에서 어느 하나를 절대적으로 내세우는 배타적 사고는 적합하지 않다면서,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어법으로 보고, 신비평 그룹의 브룩스(C. Brooks)와 워렌(R. P. Warren)은 현대시의 원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변장술'이라면서, 허풍쟁이 아라존의 어법과 함께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로마 시대의 수사학자요 웅변가였뎐 키케로(M. T. Cicero)는 드러내놓고 공격하는 것보다 한결 점잖고 '품위 있는 가장(假裝)'으로 평가합니다. 어법의 차원에서 보던 아이러니를 시의 본질로 보기 시작한 것은 쉴레겔(F. Schlegel)을 비롯한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속물주의(俗物主義) 논쟁을 벌인 뒤부터입니다. 그들은 이 세계를 <자연;문명>, <감성;이성>, <주관;객관>, <이상적 자아 : 세속적 자아>로 나누고, 두 세계는 영원히 변증법적으로 합일되지 않는 양극성(polarities)을 지녔다면서,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어법은 내용에 따라 <언어적(verbal)>, <극적(dramatic)>, <소크라테스적(socratic)>, <낭만적 (romantic)>아이러니로 나눌 수 잇습니다. 언어적 아이러니는 겉으로 하는 말과 속으로 하는 말이 완전히 다를 경우를 말합니다. 예컨대, 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님을 보내겠다면서 결코 못보내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죽어도 못 가'라고 악쓰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 쓰는 어법입니다. 따라서 이 유형은 청자가 화자보다 강력한 존재일 때 채택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아이러니를 채택하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지적 경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화자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정밀한 독서(close reading)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화자의 정확한 의도를 전달하려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도록 완하된 표현을 써야 합니다. 극적 아이러니는 <상황적(situational) 아이러니>라고도 부릅니다. 이 유형은 작가와 독자는 작중 인물이 부적절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 작중 인물만 모를 때 발생하는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니까 <A>라는 의도로 행동하지만, <비(非) A>로 돌아오는 경우를 말합니다. <진달래꽃>에서 화자가 님을 보내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엔 못 보낼 것을 예측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를 감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작중 인물과 작자와 독자 사이에 벌이는 기지의 경쟁이 아니라, 독자가 직중 인물로부터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는 어법입니다. 상황적 아이러니는 다시 테마에 따라 <비극적(tragic) 아이러니>와 <희극적(comic) 아이러니>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자의 의도가 잘못임이 드러나려면 어느 정도 사건을 진행한 뒤라야 합니다. 그로 인해 현재 이 순간을 다루는 서정보다 서사나 극에 더 적합한 어법입니다.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는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과 대화를 나눌 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면서, 의문 나는 점을 계속 질문하여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었던 방식의 아이러니를 말합니다. 따라서 일종의 '시치미 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어법에 등장하는 주동과 반동은 결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두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진달래꽃>에서 화자도 님을 못 보내고, 님도 못 떠날 것임을 일깨우기 위해 말한 것이라면 이에 속합니다. 버크(K. Burk)가 이 어법을 '겸손한(humble) 아이러니'라며 진정한 어법으로 평가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낭만적 아이러니는 화자와 청자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 표충화자와 심층화자로 분열하고, 전자는 아라존 역할을, 후자는 에이론 역할을 맡는 어법을 말합니다. 다음 작품이 이런 예에 속합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돈다' -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에서
이 작품에는 세 개의 낭만적 아이러니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그에 접근할수록 파괴한다는 아이러니입니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으로부터 파괴당하면서도 언제나 사랑하고 도우며,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 자 역시 인간이라는 아이러니입니다. 또, 화자 자신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며 그것이 잘못임을 알면서 벗어날 수 없다는 아이러니입니다. 이 작품은 아주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아이러니를 택하면 화자의 어조가 강렬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입니다. 아이러니를 채택할 때 유의할 점은, 우선 상대를 드러내놓고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공격하면, 아이러니에서 벗어나 풍자(諷刺)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어법은 상대를 적극적으로 교정하기 보다는 나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한 어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실재와 현상을 대조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눈앞의 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되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외관에 집착한 나머지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짐작하지 못하도록 말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속이려는 조건이 합리적이고 확실할수록 아이러니의 효과가 커집니다. 셋째로, 더욱 아이러니컬해지기 위해서는 독자들도 함께 웃음과 고통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작중 인물이 놀림 당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면서도, 자신도 그런 모순과 부조리에 빠져 있음을 자각하고 '쓴 웃음'을 짓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넷째로 이탈, 해방, 자유, 평정, 객관성, 냉정, 가벼움, 놀이, 세련됨 등의 복합 감정을 야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잔인하거나 악의에 찬 놀림이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너무 공격적이면 풍자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자아, 그럼 여러분들이 고른 화제 가운데 아이러니 어법으로 써야 할 것을 찾아 이 어법으로 작품을 완성해 보세요. [우리가 할 일] ○ 아이러니의 유형과 특징을 시작 노트에 정리해 두시오. ○ 시를 쓰기 위해 고른 화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아이러니적 어법으로 작품을 완성해 보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