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이보영)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장혜성의 친구이던 서도연(이다희)을 기른 것은 양부, 서대석(정동환)이다. 서대석은 어린 도연에게 가르쳤다. 누군가의 죄를 밝히기 위해서라면, 거짓은 “공포탄”처럼 쓸 수 있다고. 하지만 국선변호사가 된 혜성과 일하는 노년의 변호사, 신상덕(윤주상)은 말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유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무죄라고 믿어야 한다고. “아마 나도 내가 아버지처럼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나봐.” 검사가 된 서도연은 26년 전 판사였던 서대석이 저지른 죄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판결의 피해자였던 친부 황달중(김병옥)을 살렸고, 10대 시절 자신이 장혜성에게 저지른 죄를 사과했다. 26년 전 서대석의 잘못된 판결을 뒤집지 못한 신상덕은 황달중의 억울함을 밝힌 장혜성을 생각하며 말한다. “26년 전, 나는 왜 짱변(장혜성)처럼 못했을까.”
아버지 없는 세상의 성장담
서대석은 “공포탄”을 쏘았을지언정 많은 진범을 잡았을 것이다. 대신 억울한 사람도 죄인으로 만들었다. 신상덕은 많은 억울한 사람들을 무죄로 풀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원칙은 장혜성의 어머니 어춘심(김해숙)을 살해한 민준국(정웅인)을 풀어주게 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친부 없이 자란 두 딸이 양부, 또는 아버지 대 나이의 남자가 저지른 잘못을 극복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어른의 성장담이다. 그리고, 성장의 열쇠는 진실에 다가서는 방법이다. 장혜성은 민준국의 무죄 앞에서 자기 “편”이 돼 주지 않은 동료 차관우(윤상현)를 원망한다. 그녀는 “피해자가 돼 보니까 원칙이나 수단이나 다 필요 없다”며 진짜 진실보다 눈에 보이는 증거와 증거 수집의 과정을 따지는 법의 허점을 비난한다. 그러나, 1년 후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변호에 나서며 “오늘에서야 그 망할 놈의 원칙이 필요한지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한다. 반면 당시 민준국을 변호한 혜성의 동료 차관우는 민준국의 거짓된 선의만을 믿은 것을 반성한다.
인간은 진실을 밝히지 못할 수도 있다. 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대신 잘못을 인정하고 성장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희생과 억울함도 생긴다. 그러나, 민준국은 법이 처벌하지 못한 사람을 직접 처벌하겠다며 연쇄 살인마가 됐다. 인간이 법 대신 자신만의 정의를 선택할 때, 세상은 사적 복수가 반복되는 지옥이 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하고, 결국 세상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뿐이다.
니가 옳아서 편든기다
진실에 대한 믿음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가혹할 만큼 강한 직업정신과 의지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장혜성은 진실을 위해 서도연에게 그녀도 몰랐던 출생의 비밀을 말하고, 서도연은 친부를 살인혐의로 기소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진실을 묻어두면 내 “편”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장혜성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말했다. “니가 옳아서 편든기다.” 그 어머니의 말을 믿은 딸이 한 세대 위의 아버지들을 극복하면서 세상은 좀 더 나아진다. 그리고, 그녀의 재판을 지켜봤던 10대 견학생들은, 또는 막 고교를 졸업한 청춘들은 더 나은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장혜성의 연인 박수하(이종석)가 10대로 설정된 것은 단지 연상 연하 커플의 로맨스를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박수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갖게 됐고, 마음 속 상처는 아버지와 민준국 사이에 얽힌 관계를 밝혀내야 치유할 수 있다. 장혜성이 진실을 알아가며 성장한다면, 진실을 알고 있는 박수하는 장혜성을 이해하고, 보호하기까지 한다. 대신 자신은 진실을 감당하며 상처 입는다. 첫사랑을 10년 동안 기다릴 만큼 순수하지만, 어른의 마음도 이해하는 속 깊은 10대. 그러나, 이 완벽한 10대는 어른들이 준 상처로부터 탄생했다.
10대를 사랑하기 위한 책임
드라마의 반인 9회를 기점으로 장혜성은 박수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누명을 쓴 박수하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진실을 파헤치고, 박수하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과정을 통해 장혜성은 자신이 증오하던 법의 특성을 이용해 박수하의 무죄를 끌어내고, 진실에 대한 태도를 바꾸며 성장한다. 동시에 박수하는 처음으로 막 스무 살이 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다. 그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보호 받아야하는 고교 중퇴자이고, “어른 흉내”만 낼 뿐 진짜 어른은 아니었다. 박수하가 기억 상실증에 걸리는 설정은 그 자체로는 작위적이다. 그러나 기억상실증과 함께 능력이 사라지면서, 박수하는 처음으로 타인의 진실을 듣는 대신 자신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알게 된 진실을 묻어 버리는 것을 강요당하다시피 했던 10대가 처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을 고민한다. 그리고, 한 명의 어른이 되기 위해 경찰이 되는 꿈을 키운다.
초능력을 가진 10대와 삶에 찌든 국선 변호사의 사랑은 판타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첫 회에 면접에서 증언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장혜성의 모습을 통해 이 작품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진실을 판단하는 작품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그 진실을 추적하면서 장혜성은 성장했고, 10대는 미래의 꿈을 갖는다. 그래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판타지가 가득한 드라마 속에서 찾은 작은 가능성처럼 보인다. 작년의 tvN <응답하라 1997>은 과거에 대한 회귀에서 사랑을 구했다. 반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어른들은 판타지 같은 사랑으로부터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어른의 성장과 책임을, 그것도 누구나 쉽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판타지와 로맨스 속에서 절묘하게 무게 중심을 잡는 작품이 나왔다. 물론,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말하는 진실을 위한 의지는, 세대에 대한 극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진실을 알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할지 알 수 없다. 모두가 장혜성처럼 진실 앞에서 무엇이든 감당할 힘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말한다. 우리는 그래도 진실을 찾고, 외쳐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의 세상이 부모 세대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기자메일없음.
첫댓글 이 기사 겁내 좋다
오 완전 정독했어 기자 글 잘쓴다
우와 잘썼다 하면서 봤는대 강명석씨구나....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