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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이번 CF는 내가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을 열라게 뛰어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피똥싸게 파티장을 뛰어간 다음에 향기를 맡으며
어느 방 문을 여는데, 그 곳에 한세가 있다는 사알짝 진부한 내용.
그 뒷 내용은 아직 제대로 듣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뭐 향수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끝날 것 같다. 내 느낌상.
"컷! 컷! 컷! "
에구구. 잠시 딴 생각 좀 했다고 바로 컷해버리시는구만.
나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드레스를 붙잡고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어째 저번 잡지촬영때하고 똑같은 상황이 리플레이 되냐......
"은휴민!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때려쳐! 몇 번을 말해! 우아하게 달리라고, 우아하게!"
감독이 카메라렌즈에서 눈을 떼고 내게 소리소리를 질렀다.
말만 하지 말고 댁이 뛰어봐, 댁이!
가뜩이나 배고파서 뛸 힘도 없어 죽겠는데!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조금 거칠어진 숨을 고르기 위해 크게 심호흡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뛸 준비!"
감독님의 말에 배를 움켜쥐던 왼손으로 드레스 끝자락을 살짝 쥐었다.
50m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벌써 그걸 7번이나 뛰었으니 350m나 뛴 셈이다.
징한 놈. 이러다 오늘 1000m 뛰는 건 아닌가 몰라.
"액션!"
다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최대한 우아하게 뛰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백조다. 나는 백조다. 나는 백조다!
되도 않는 최면까지 걸면서 뛰었건만......
"컷! 컷! 컷! 컷! 커엇~!"
허공에 팔까지 휘저으며 목이 터져라 컷을 외치는 망할 감독.
나는 주르륵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연방 죄송하다는 말을 뱉어 냈다.
"에이씨, 내가 말했지?! 그딴 식으로 할거면 때려치라고! 에라이, 나도 안 찍어, 안찍는다고!"
"감독님!"
마침내 화를 참지 못한 감독이 카메라를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익숙하다는 듯, 조감독이 뒤따랐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허탈해진 나는
그대로 세트장 바닥에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 열 안 받는줄 알아? 신나게 뛰어댄 건 나라고, 나!
"괜찮아, 휴민아?"
"언니......"
"원래 저 감독이 성격파탄자라고 유명해. 너무 맘쓰지 마."
"제가 못 하니깐 저러시는 거겠죠. 대체 뭐가 틀린 걸까요?"
흥. 내가 못 하긴 뭘 못 해? 이정도면 완벽한 거지.
아무튼 뻐큐나 먹어라, 이 망할 감독아!
"내가 볼 땐 이쁘기만 하던데. 이리와. 메이크업 다시 해줄게."
민지언니가 안쓰럽단 표정으로 날 일으켰다.
땀 때문에 기껏 한 메이크업이 번진 듯 했다.
그렇게 힘없이 언니손에 일으켜진 내가 바로 코앞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잠시 메이크업 박스를 가져오겠다는 언니가 가버린 후,
갑자기 세트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반응할 힘도 없을만큼 너~무 힘들어서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있는데, 내 앞에 누군가가 멈춰섰다.
난 당연히 사장님이라고 생각하고는 주절주절 말을 꺼냈다.
"NG 많이 냈다고 놀리려고 온 거죠?"
"......"
"그런데 정말 모르겠어요. 어떻게 뛰는 게 아름답게 뛰는 건지."
"......"
"왜 이렇게 조용해요? 웃을......"
숨막히는 침묵에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내 앞엔 사장님이 아니라 은한세가 서있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대로 입을 꾹 다물어 버렸고,
한세또한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름답다......"
하지만 입을 다문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나는
한세의 반짝거리는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듯이 한세는 중세분위기가 나는 푸른색 수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게 원래부터 한세의 옷이였던 것처럼 참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아까 사람들이 술렁거린 게 한세 때문이었을까?
"너도 아름다워."
내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한세가 기분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가 땀 때문에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주면서 속삭였다.
"저번엔 미안했어. 우리 화해하자. 응?"
"쳇, 그렇게 말하면 난 거절 못 하는 거 알잖아. 옛날부터 계속 그랬던 거 알면서. 치사해."
"치사해도 너랑 화해하고 싶은걸."
한세의 따뜻한 음성에 나도 같이 웃었다.
그의 저런 모습에 약한 건, 아직 변하지 않았지만 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난번만큼 한세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
한세와 화해한 사실로 힘을 내서
겨우 달래서 온 감독앞에서 확실히 성공시켜보였다.
"컷!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진작 이렇게 할 것이지. 멋졌어요, 휴민씨."
화장품과 땀으로 인해 끈적거리는 얼굴을 매만지며
세트장에서 내려왔다.
한세가 문쪽에 기대서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게 보였다.
"이것 봐요, 휴민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땀을 닦으며 감독님이 찍은 것을 모니터링 했다.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들어서
너도나도 함께 훔쳐보았지만 전혀 기분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할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이야~ 등장부터 뭔가 다른데?"
"그러니깐요~ 이거 아까워서 어디 편집할 게 있겠어요?"
나조차도 넋을 잃고 화면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붉은색 드레스를 휘날리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파티장을 가로지르며 뛰어가는 모습.
중간에 클로즈업된 내 얼굴을 보면서 순간 나조차도
'저게 진짜 나 맞아?' 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결해 보였다.
"자자, 그럼 20분 뒤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모니터링을 마치고 감독의 허락에
나는 그대로 촬영장에 비치된 소파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배에서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뒤에 찍을 거 대본이야."
"아아- 그런데 선욱오빠 어디갔는지 알어?"
"몰라. 그런 사람."
"자랑하고 싶었는데......"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리자, 한세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나는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사장님의 행방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그런 것을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다.
"그것보다, 대본 한 번 봐봐."
한세가 조금 강한 말투로 다시 종이뭉치를 내 앞에 내밀며 웃었다.
그제서야 나는 사장님 생각을 떨쳐버리고는 그에게서 대본을 받았다.
어차피 사장님도 나중엔 CF로 볼 텐데, 뭐.
"아, 응. 대사 있어?"
"있긴 있는데...... 딱 한 줄."
"그런데 이걸 왜 미리 안 주고......"
대본을 휘리릭 넘기는 순간, 나는 '헉'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첫 장 부터 감독의 요상스런 지시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랄까.
대본엔 '탐나?' 라는 한세의 한 줄 대사가 있었지만
정작 내 대사는 한 개도 없었다. 단 한개도!
그리고 나는......20분 뒤에 세트장에 놓여진 소파위에서
한세를 유혹해야만 했다.
아니, 한세와 낯뜨거운 행동을 해야만 했다.
"이게......대체"
어처구니없어서 말도 못 잇고는
슬그머니 한세를 올려봤더니 한세또한 난처하단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래. 주제가 '사랑'이니까."
미처 생각을 못 했다는 듯, 한세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랬다.
이 대본대로라면,
한세와 나는 스킨쉽을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해야만 했다.
-
한세와 스킨쉽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일 틈도 없이,
말만 쉬는 시간이지 정말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게다가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만 손 좀 보니깐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게 아닌가!
나는 울상을 지으며 이어서 촬영에 들어갔다.
한세가 이런 쪽으론 처음인지라 감독은 조금 불안하단 표정이었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감독의 힘이 실린 음성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전부터 바래온 사실이지만,
막상 하려니까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감독의 촬영명령에 한 발자국씩 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긴.장.하.지.마."
한세가 카메라엔 보이지 않게 입모양으로 한 글자씩 끊어 말하는게 보였지만
그래도 나는 온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갔다.
이윽고 세트장의 고급스런 소파에
몸을 뉘인 채 날 응시하는 한세의 곁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기서 컷 소리가 우리 사이를 끊어놓았다.
"컷! 은휴민! 제 정신이야? 넌 열정이야, 열정!
그리고, 방금 전 화면에는 뛰어가는 게 있었는데
여기서 그딴 식으로 느긋하게 걸으면 어쩌자는 거야?
좀더 빨리 뛰어서 말그대로 '열정'적으로 하라고, 열정적으로!"
"죄, 죄송합니다."
우물쭈물 대답하고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심장떨리는 걸 어떡하라구요~
"다시!"
감독의 말대로 나는 속력을 내서
소파에 섹시하게 누워있는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누워있는 한세의 몸 위에 쓰러지듯이 올라가서
요염하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그렇게 보이길 희망하는 거지만.
"너......"
안 돼! 말하면 컷이라고, 컷!
여기까지 왔는데 컷 당하고 싶진 않다구!
한세의 입모양을 가리기 위해 좀 더 얼굴가까이로 고갤 숙였다.
그러자 한세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반대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진짜......"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입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붉어진 그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아무튼 제발 내 머리카락이 그를 가렸기를 바라며.
"쉿."
"쉿."
한세가 입을 다무는 걸 보고는
이어서 한세를 쓸어내리며 그의 향기를 담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엔 소파끝에 놓인 그의 손목에 얼굴을 가져다댔다.
은은하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향기에 정말 취할 듯 했다.
"탐나?"
문득 들리는 한세의 음성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얼굴을 붉혔던 게 언제냐는 듯 아주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웃고 있었다.
물론 난 한세의 그 대사 한 줄이 대본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응. 탐나. 갖고 싶어.' 라고 대답할 뻔했다.
-39화
잠시 시간이 멎은 듯 했다.
우리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는 걸 막은 사람은,
당연하게도 감독님이었다.
"컷! 어색해, 어색해! 은한세! 촬영 도중에 딴 생각 하지마! 감정이 안 담겨 있잖아!
그리고 은휴민, 너는 제대로 하는 거 맞아?"
'지금 이것도 충분히 방송심의에 걸릴 것 같거든요?'
그렇게 대꾸해주고 싶은 걸 간신히 눌러삼키고는
감독을 그냥 한 번 쏘아보는 걸로 끝냈다.
이 촬영이 끝나면 다시는 댁같은 감독이랑은 안 찍을거야.
"다시!"
감독의 명령에 나는 아까와 같이 빠른 속도로 뛰어가서는
소파에 누워있는 한세에게 거의 안기듯이 올라탔다.
한세가 입을 꾸욱 다문 채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예뻐."
한세의 뜬금없는 말에 흠칫 놀라고는 한 손으로 한세의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숙여서 그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갔다.
제발! 말 좀 하지 말라구!
너 때문에 내가 더 곤욕스럽잖아!
"우.리.빨.리.끝.내.자."
떨리는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입모양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이 쯤에서 한세가 ' 탐나? ' 라는 대사만 하면 되는데, 되는데!
"이뻐죽겠다, 진짜."
와락-
탐나? 라는 대사 대신에 한세가 날 그대로 껴안아 버린 것.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한 채
그의 품속에 갇혀있었다.
한세의 향기가 더욱 진해졌다.
"뭐, 뭐하는 거야? 이러면......"
"내 동생 내가 좀 안아보겠다는데 뭐 어때?"
"아니, 그래도 지금 이건 촬영중이......"
"어차피 저 감독 컷하려고 그랬어."
한세가 날 꼬옥 껴안은 채로 씨익 웃었다.
차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가 없어서 나도 어색하게 헛웃음을 흘렸다.
한세의 품에서 떨어질 타이밍을 찾지 못해 어정쩡하게 안겨있는데,
급작스럽게 누군가가 우리 둘 사이를 거칠게 떼어놓았다.
아니, 날 그대로 안아올렸다.
"선욱......오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장님.
그대로 날 안아든 사장님은 놀란 듯한 한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 거야. 맘대로 만지지마."
"잠깐......"
한세가 부르는 소리도 싹 무시한 사장님이 그대로 날 안아들어올리고는
세트장을 성큼성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으아~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 것이여~
-
"후. 잠깐 나갔다 온 사이 이게 뭐야?"
"대본대로 한 건데요......"
"대본? 대본에 뭐라고 나왔는데?"
미심쩍은 사장님의 표정에 나풀거리는 치마를 홱 들쳐올려서
치마 안에 받쳐입은 바지주머니에서 대본을 꺼내보였다.
이미 구겨질대로 구겨진 대본을 당당하게 내밀자,
그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머리 아파요?"
"그래, 임마! 제발 아무 남자 앞에서 치마 훌렁훌렁 들추지 말라고!"
"에이~ 사장님이 아무 남자인가요?"
실실 웃으며 넉살좋게 넘어가자 사장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리고선 내게 받은 대본을 훑어내려가면서
점점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다.
"이 쓰레기감독이......"
그의 손에서 대본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구겨졌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가눌 새도 없이
바로 감독에게 달려가려는 사장님을 뜯어말려야만 했다.
"자, 잠깐만요! 우선 진정하시고, 이제 촬영 거의 다 끝나가니까......"
"필요없어. 이딴 CF 안 찍어도 널리고 널린 게 CF야."
"그럼 지금까지 제가 고생한 게!"
"고생이고 나발이고 간에! 당장 이 감독을......"
"선욱오빠, 오빠. 근데 이거 알아요? 나 전보다 한세를 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뭐라고?"
멈춘건가?
사장님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
하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사장님의 행동이 정지하고, 그가 한껏 굳어서는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그거, 진심이야?"
"네. 당연하죠."
"정말?"
고개를 끄덕이자, 사장님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사장님의 해맑은 미소가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이 사람,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에엑?"
산뜻한 분위기는 아주 잠깐.
사장님이 나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다시 세트장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 나또한 다시 셔츠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사장님은 옷에 붙은 먼지마냥 전혀 신경쓰지 않고 세트장에 들어섰다.
"망할 쓰레기감독 어딨어."
"우리 이제 그만 해요, 네?"
"그만이고 자시고 간에. 어디......어? 저깄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고
당당히 세트장에 들어서는 양복쟁이.
그 뒤 상황은 말 안 해도 뻔했다.
흥분한 게 언제냐는 듯 조목조목 감독에게 다 따져내던 사장님은 결국,
매우 합법적으로 CF계약을 취소해버리셨다.
그렇게 내 첫번째 CF는 황당하게 물건너 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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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휴우~"
"휴우우~"
"휴우우~"
"휴우우우~"
"휴우......그만! 그만해! 대체 내가 왜! 이 좋은 날 너따위한테 붙잡혀있어야 하냐고!"
한태풍이 미친듯이 소리쳤다.
나는 그런 그를 한 번 쓰윽 올려다보고는 다시 무릎속에 고개를 파묻었다.
녀석은 지금 내 전화에 잽싸게 달려와서
하는 짓이라고는 한시간이 넘도록 한숨소리만 듣고 있었으니......
어쩜 미치는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너, 무슨 일 있냐?"
"몰라. 아무 일도 없어."
"에이, 그 꼬라지를 보니 촬영장에서 무슨 일 있었고만."
"휴우~"
"뭔데, 뭔데. 이 오빠한테 속시원하게 말해봐라."
무릎사이에서 고개를 들어 한태풍을 바라보았다.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 하나를 걸쳤는데도 불구하고 번쩍거리는 녀석.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좀 새까매졌는데?
"뭐야! 말 안 할거면 난 간다. 잘 있어라."
한태풍이 바이바이 하고 손을 흔들더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아무 말도 안 하면 정말 가버릴 기세에
나는 녀석의 옷자락을 꾸욱 잡아끌었다.
휘청-
녀석의 몸이 뒤로 흔들렸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한태풍의 모습에 웃음조차 흘러나오지 않앗다.
"야! 사람 뇌진탕 만들 일 있냐? 아오,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네."
"......한태풍. 나 있지, 선욱오빠 얼굴을 못 보겠어. 촬영할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엔 이상해.
죄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고, 왠지 그 사람이 관심 안 가져주면 속상하고.
나 정말 왜 이러지? 응? 왜 이럴까?"
"설마 너, 진짜 죄 지은 거 아냐?"
남은 심각해죽겠는데 꼭 그런 식으로밖에 말이 안 나오니?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한태풍이 얄미워서,
녀석의 어깨를 주먹으로 퍽 치고는 뒤돌아앉았다.
내게 맞은 부분을 감싸쥐고 끙끙거리던 녀석이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틔워냈다.
"흐응. 난 왜 그런지 알 것 같은데."
"정말?"
"그러엄. 내가 이래뵈도 연애박사 아니냐. 연애박사."
"맞아맞아. 넌 진정한 연애박사야. 그러니깐 얼른 알려줘."
한태풍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녀석쪽으로 돌아앉았다.
옵션으로 눈까지 반짝반짝 빛내며.
그러자 녀석이 미간을 한껏 좁히고는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꾸욱 밀어냈다.
"에이, 안 가르쳐줄래."
"뭐어? 갑자기 왜!"
"질투나서 가르쳐주기 싫어. 너 혼자 잘해봐라."
"그게 뭐야! 힌트라도 줘."
하지만 녀석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테이블 위에 놓인 선글라스와 모자를 집어든 한태풍은
현관에 이르러셔야 내 쪽으로 고갤 돌렸다.
"너, 사장님 얘기 나올 때 말 무지하게 많아지는 거 알고 있냐?"
"진짜?"
내가 그랬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태풍은 갈색 선글라스를 낀 채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힘들고 외로울 땐 사장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냐?"
"응. 그건 그래."
"게다가 요즘엔 눈을 못 마주치겠고, 관심가져주지 않으면 속상하고. 됐네, 그거면."
"뭐가? 뭐가 돼?"
아직도 모르겠다는 내 말투에 한태풍은 피식 웃기만 할 뿐,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한태풍의 말을 곱씹어보았고.
약간의 침묵 뒤에 신발을 다 신은 녀석이 나지막하게 입술을 열었다.
"잊지마. 사장님은 널 좋아해, 은휴민."
달칵-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에서 데앵-데앵- 하고 종이 울렸다.
알 것 같다. 완벽하게 이해됐어.
"그럼 난......"
'나 전보다 한세를 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아, 난 한세를 덜 좋아하는 게 아니야.
단지 사장님이 더 좋아진 거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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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담편기대영^^되게잼잇어여^^
으히히히~><><><!!태풍이도멋있는데잉~
담편~ 기대할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