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커버 아티스트와 록 밴드 TOP 5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일본의 소니가 합작하여 개발한 컴팩트 디스크(이하 CD)의 등장은 음악사(史)의 일대 혁명을 몰고 왔다. 1982년에 빌리 조엘(Billy Joel)의 [52nd Street]가 최초의 상업적 CD로 발매되면서 상용화된 이후, 기존의 턴테이블 레코드(이하 LP)를 몰아내고 시장을 장악하기까지 불과 5년 정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혁명이 그 미디어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機器) 자체를 새로 구입해야 하는 부수적인 지출을 동반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무척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CD는 기존의 카세트 테이프가 충족시키지 못했던 부분, 즉 음악 애호가들에게 완전한 음반의 휴대와 이동성(移動性)이라는 편의를 실현시켰던 획기적인 매체였다.
그러나 그 물리적인 크기나 실용적인 면을 감안했을 때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았던 LP의 수명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의 종합적인 예술로 취급하고 보다 예민하게 접근하는 극소수의 음악 마니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앨범 커버는 그 종합적인 예술로서의 가치를 부여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즉, 가로×세로 12인치 사이즈의 디테일한 앨범 커버는 하나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음미하는 듯한 음악 외적인 기능성으로 LP 수집의 궁극적인 매력을 대변한다.
음악을 생산하는 보편적인 수단이 LP에서 CD로 전환되면서 발생한 유일하면서도 가장 심각한 역효과는 앨범 커버 아티스트의 치열한 예술혼이 급격하게 실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음반 컬렉션의 명분 상실이라는 명제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예컨대,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와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Sticky Fingers], 밥 말리(Bob Marley)의 [Catch A Fire]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Physical Graffiti]는 CD의 소프트한 사이즈로는 절대 구현할 수도 제대로 음미할 수도 없는, LP 사이즈가 최적화된 앨범 커버의 예술적인 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앨범 커버의 예술적인 미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세력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었다. 그 심오하고 철학적인 음악적 가치관을 표출하는데 있어 앨범 커버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유명한 밴드들은 아예 전속 앨범 커버 디자이너를 고용하여 데모 음원을 먼저 들려주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앨범 커버가 비로소 완성되는 유기적이고 치밀한 작업 방식을 추구했다. 일부 헤비 메탈 밴드들도 상징적인 캐릭터의 특성을 유지하거나 특유의 음악성에 어울리는 전형적인 스타일을 정착시킬 목적으로 특정 앨범 커버 아티스트만을 선호했다. 아래의 리스트는 바로 그 앨범 커버 아티스트와 록 밴드의 강한 유대 관계로 그 음악에 걸맞은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서의 앨범 커버들이 탄생했던 주목할 만한 사례들이다.
1. 힙그노시스(Hipgnosis) &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1968년에 스톰 소거슨과 오브리 파웰, 피터 크리스토퍼슨이 의기투합하여 결성한 힙그노시스는 앨범 커버 전문 디자인 그룹으로 앨범 커버 아트의 화려한 전성기와 그 역사를 함께 했다. 1983년에 해체될 때까지 무려 200개가 넘는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으며 그 중 대다수가 명작으로 회자된다. 그 명성이 알려지면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위시본 애쉬(Wishbne Ash), 유에프오(UFO)와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의 작품들을 전담하기도 했지만, 초창기부터 유지해온 핑크 플로이드와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힙그노시스라는 이름으로 지켜야할 사명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벽에 걸린 거울 속에 끊임없이 같은 구도가 반복되지만 그 속에 자리한 멤버들의 위치가 계속 바뀜으로서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효과를 2차원적으로 구현한 [Ummagumma]와 프리즘을 통과한 한 줄기의 빛이 무지개로 전환되는 명확한 이미지가 그 장대한 스펙트럼의 찬란한 음악적 성과를 상징했던 [The Dark Side Of The Moon], 불타고 있는 사람과 악수하는 무시무시한 설정으로 존재의 부재와 상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Wish You Were Here]와 바터시 화력발전소의 삭막한 전경으로 산업화로 인한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동물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한 인간의 세태를 묘사한 [Animals]는 커버 아트의 콘셉트와 그 음악이 궁극의 조화에 도달한 걸작들이다.
2. 로저 딘(Roger Dean) & 예스(Yes)
사이키델릭 아트의 창시자로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앨범 커버와 공연 포스터를 담당했던 릭 그리핀(Rick Griffin)으로부터 영향 받은 로저 딘은 특유의 초현실주의적인 삽화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로고와 앨범 커버를 전담했으며 그 진보적인 음악으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 또한 그는 게이트 폴드 방식을 가장 잘 활용한 앨범 커버 아티스트로 LP를 완전하게 펼쳤을 때 앞면과 뒷면이 이어지면서 비로소 완성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구도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로저 딘의 유일한 단점은 지독한 완벽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었고 그로부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일례로, [Close To The Edge]의 화려한 폭포수의 위용을 담은 오리지널 일러스트는 그 완성된 이미지에 만족하지 못한 의견이 반영되어 게이프 폴드의 안쪽 면에 자리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1971년의 [Fragile] 앨범부터 인연을 맺은 로저 딘과 예스의 공생 관계는 무려 4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으며, 최신작 [Fly From Here]의 앨범 커버도 그의 작업을 통해 탄생했다.
3. 휴 심(Hugh Syme) & 러쉬(Rush)
휴 심은 최첨단의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1970년대부터 가장 미래지향적인 작업 방식을 추구했으며,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러쉬의 전속 앨범 커버 아티스트로서 35년이 넘게 그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사실상 제4의 멤버와도 같은 존재다. 재미있는 것은 휴 심이 로저 딘과 데릭 릭스라는 전담 아티스트를 보유했던 예스와 아이언 메이든을 클라이언트로 맞은 적이 있는데, 앨범 커버 자체는 훌륭하고 손색이 없었음에도 그 이질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실패한 작품들로 기억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특정 밴드 전담 디자이너로서의 명분을 고수하면서도 다른 밴드의 의뢰와 청탁으로 인한 스케줄을 가히 살인적으로 소화한 부지런한 인물이었다.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와 본 조비(Bon Jovi), 에어로스미스와 데프 레퍼드, 메가데스와 퀸스라이크(Queensrÿche) 등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던 록/메탈 밴드들의 수많은 앨범 커버를 담당했으며, 19967년부터는 자타가 공인하는 러쉬의 후계자인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 씨어터와도 결국 인연을 맺게 된다.
4. 데릭 릭스(Derek Riggs) &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호러적인 캐릭터의 일러스트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데릭 릭스는 초창기에 마음이 맞는 의뢰인을 만나지 못해 무명 생활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맥스 미들턴(Max Middleton)과 로버트 아와이(Robert Ahwai)의 조인트 앨범 [Another Sleeper]의 커버 아트를 마음에 들어 한 아이언 메이든 측에서 먼저 접촉하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제공한 유일한 재즈 앨범 커버가 눈에 띄어 최고 헤비 메탈 밴드의 전속 아티스트로 거듭났으며, 본래 일렉트릭 매튜(Electric Matthew)라는 이름의 캐릭터는 아이언 메이든의 페르소나 에디(Eddie)로 재탄생하면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데릭 릭스는 아이언 메이든의 전성기와 함께 한 약 10년 동안 가급적이면 다른 뮤지션의 앨범 커버를 맡지 않을 정도로 에디의 캐릭터에 집착하고 공을 들였다.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러운 메탈 마스코트에 불과하겠지만, 에디는 투철한 장인정신이 낳은 진지한 캐릭터였던 것이다. 역시나 그가 아이언 메이든과의 전속 계약을 해지한 이후 휴 심을 비롯해 여러 명의 앨범 커버 디자이너가 고용되었지만 오리지널 에디의 위용을 재현하지 못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프로듀서 마틴 버치와 보컬리스트 브루스 디킨슨마저 이탈하면서 밴드의 암울한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음악적인 부진과 맞물려 데릭 릭스가 창조한 에디의 상징성은 더욱 각별한 그리움으로 자리하게 된다.
5. 마이클 웰런(Michael Whelan) & 세풀투라(Sepultura)
마이클 웰런은 판타지 예술의 아카데미 시상식과도 같은 권위 있는 휴고상에서 프로페셔널 아티스트 부문을 다수 수상한 최고 수준의 SF/판타지 아티스트다. 그는 앨범 커버 전문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채 20여 점도 되지 않는 작품 중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명작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 출신의 헤비 메탈 밴드 세풀투라의 최전성기와 함께 한 앨범 커버들은 가장 완성도 높은 결과물들이다. 그 중 [Beneath the Remains]와 [Chaos A.D.]는 본래 'Nightmare In Red'와 'Cacophony'라는 타이틀로 기존에 완성된 작품들이었지만 이후에 원본 그대로 앨범 커버의 용도로 활용된 사례다.
마이클 웰런의 판타지적이고 전형적인 아트 스타일은 미트 로프의 [Bat Out Of Hell II: Back Into Hell]에서 더 잘 드러나고 있지만, 세풀투라의 [Chaos A.D.]와 오비츄어리의 [Cause of Death]와 같은 최고의 헤비 메탈 앨범 커버들에서 그 주제에 걸맞은 표현 기법을 매우 광범위하게 구사한다. 막스 카발레라가 탈퇴한 이후 세풀투라의 작품들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그것은 결국 마이클 웰런의 손을 떠난 질 낮은 수준의 앨범 커버들이 주는 황량함과 일맥상통한다. 여러모로 아이언 메이든에서 데릭 릭스의 앨범 커버가 차지했던 비중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글: 이태훈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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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