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바벨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하박국 선지자는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 하박국의 불평 혹은 철학적인 질문은 찬송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찬송은 '시기오놋'이라는 멜로디에 맞춰 불렀는데, 시기오놋은 ‘슬픔의 노래’ 혹은 ‘매우 빠르고 열광적인 노래’라는 두 학설이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미루어 볼 때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 노래에서 하박국은 주님에 대한 소문(명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움)을 들었습니다. 그 명성을 듣고 하박국은 놀랐습니다. 이전에도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 명성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 던진 질문과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면서 그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그분의 명성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선지자는 자신의 뜻이나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나타내 달라고 합니다(1-2). 이어서 선지자는 거룩한 용사로서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남을 노래합니다(3-15). 여기서 나오는 ‘데만’과 ‘바란 산’, ‘구산’, ‘미디안’은 모두 ‘광야’ 입니다. 출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상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광야에서 돌보시고 적들을 멸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인 선지자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합니다. 이제 자기 불만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선지자는 창자가 흔들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위엄에 압도 당했습니다. 선지자는 이어서 적국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온 나라가 망하게 되어도(무화과, 감람나무, 포도나무 등은 경제적으로 망함을 의미)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에, 환란이 와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가진 의인은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알게 된 하박국에게 남 유다가 망하는 것이 곧 의인이 망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선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할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박국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힘으로 다가 올 환란을 기꺼이 감당할 것입니다(17-19).
하박국이 가지고 있었던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악인을 두고 보실 것인가?’, ‘과연 악인이 의인을 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약속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박국이 가지고 있는 질문에 본질적이고 완전한 답을 주셨고, 하박국의 의문과 불평을 기도와 찬송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박국은 이전에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박국은 확신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고, 그분의 약속이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의문과 불평에 응답하시고, 그것을 찬송으로 바꾸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시고, 또 우리의 삶이 평탄할 때에나 어려울 때에나 언제나 우리를 높은 곳에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며 그분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그래서 우리의 의문과 불신이 말씀을 통해서 기도와 찬송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