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난 김 후보자는 홀어머니와 세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덕수상고를 졸업한 만 17세 때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다. 김 후보자는 “100m 달리기 경쟁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은행 합숙소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시 잡지를 주워 든 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야간대(국제대)를 다니는 주경야독 끝에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엘리트 집합소로 불렸던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할 초기에 “요즘은 저런 학교 출신도 오느냐”는 비아냥거림을 실력으로 극복해내며 승승장구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김 후보자는 2013년 10월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장남을 떠나보냈다. 발인 당일 오후에 출근했고, 다음 날 원전 비리 근절대책을 직접 발표하는 등 업무에 철두철미한 면모를 보였다. 나중에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에 큰 구멍이 난 것 같다”며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2006년 변양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비전 2030’ 작성의 실무를 총괄하는 전략기획관이었다. 이 때문에 경제라인 인선에 ‘변양균의 힘’이 다시 입증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변 전 장관이 대통령정책실장이었을 때 그를 보좌하면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정책에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