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아이
이번 주중 초등 친구들과 베트남으로 나가 달랏과 나트랑에서 머물다 왔다. 월요일 새벽에 나가 금요일 아침에 돌아와 현지에 머문 사흘 중 달랏에서 2박, 나트랑에서 1박이었다. 출국장에서 통신사 로밍은 하지 않아도 현지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잡혀 폰으로 문자 교신이 가능했다. 둘째 날 화요일 밤 숙소에서 휴대폰을 켜니 몇 건 문자 가운데 한 통의 부고가 와 있어 의아했다.
의문의 부고 문자를 같은 방을 쓴 친구에게 보였더니, 다운로드가 열리지 않는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여정 사흘째는 고원 달랏에서 해안 나트랑으로 옮겨 하룻밤 더 묵을 때 전날 문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마지막 날 일정을 보내고 달랏 외곽 공항에서 출국을 앞둔 대기장에서 와이파이가 잡혀 옆 친구가 내 휴대폰에 와 있던 부음 문자를 열어보려고 애써도 열리지 않았다.
나는 알고 지내는 사이라도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해 두지 않은 이가 더러 있다. 어떤 경우는 단체 카톡으로 그런 분이 공유해둔 정보가 나에게는 열리지 않아 그냥 지나친 적 있다. 이번의 문자 부고도 내가 퇴직 이전 같은 학교 근무한 분으로 내 휴대폰에 그의 전화번호를 입력해 두지 않은 이가 보낸 부고로 여겼는데, 여는 순간 이미 해킹되도록 한 고수의 덫에 걸린 듯했다.
달랏공항에서 목요일 늦은 밤 자정을 넘긴 캄캄한 밤하늘을 날아 금요일 새벽 김해공항에 닿았다. 며칠 여행을 다녀온 피로감으로 낮에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엊저녁 우리 집에서는 내 휴대폰으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떨어져 사는 큰 녀석으로부터 아버지 전화가 해킹되어 이상한 문자가 떠돈다며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녀석 도움은 받을 길이 없어 답답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아내는 도심 참선 도량에서 열리는 불경 독송 참여로 집을 비운다. 날이 저물어 절에 나갔던 아내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집으로 되돌아와 은행 업무 마감 이후 전화 상담원과 금융사고 방지 통화는 마쳐 놓았다. 이와 함께 나의 휴대폰 해킹으로 인해 주변 지기들에 달걀귀신처럼 확대 재생산되어 나갈 개인 정보 유출과 금융사고 여파는 어떠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간밤은 여러 차례 울리는 착신 전화와 문자가 귀찮아 전원은 차단해두고 잠들었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새날을 맞았다. 아들 녀석은 아비가 폰맹임을 잘 아는지라 휴대폰 기기 판매점으로 찾아가 기존 자료를 모두 지우고 사용하십사고 했다. 나는 폰 해킹의 심각성을 몰랐고 시류 흐름에 둔감했으나 개인 정보 유출로 인한 본인과 주변의 피해 사례가 방송에도 종종 보도된다고 했다.
십이월 첫째 토요일이다. 하루 내내 내가 쓰는 휴대폰으로 발생한 문제로 지기들에게 혼란을 끼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휴대폰 기기 판매장으로 가면 나는 진상 고객이 되기는 고사하고 매번 을의 위치가 된다. 휴대폰을 새 기기로 바꾸어 사용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도 매장의 젊은 직원에게 나는 을이 되어 허리를 굽혀 낮춰야 했다. 폰이 해킹되어 초기화시켜 주십사고 했다.
폰을 건네받은 직원이 전원을 켜니 그 순간에도 문자 내용 진위를 확인하려는 착신음이 울렸다. 밤새 지기들로부터 나를 염려하는 문자가 여러 건 쌓여 있었으나 펼쳐볼 엄두가 나질 않아 외면했다. 나는 폰에 저장된 자료를 모두 지우자면서 가족과 몇몇 전화번호만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이후 내 폰을 건네받은 직원은 어지러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삭발하듯 말끔하게 정리했다.
매장 직원에게 초기화시킨 휴대폰을 건네받고 문을 나서다 나는 문득 정보사회 문맹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쓰기는 써도 나를 옥죄는 괴물로 여겨졌다. 스마트폰을 문명의 이기랍시고 손가락을 수시로 눌러대며 누린 편리성에 앞서, 예상 못한 해킹으로 지기들에게 놀라움을 안기고 혼란을 끼친 파장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나는 정보의 거리에서 길을 잃은 아이였다. 23.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