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토록 찬양하기를 원하신다. 시편 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라고 했다. 시편 146:2에는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라고 했다. 본문 계시록 4-5장에 보면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와 성도가 찬양한다.
1.찬송의 정의
찬송(讚頌, Hymn, Praise)은 간단히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 라 할 수 있다. 헬라어에서 여러 표현들이 있는데, 흄노스(υμνοs 대상 강조) 율로기아(ευλογια 말 강조) 프살모스(ψαλμοs 노래 강조) 독사조(δοξαζω내용 강조)이다.
2.찬송의 구분
①찬송가 (Hymn)
찬송가 는 삼위의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찬양하는 곡으로서 주로 끝에 아멘 이 붙어 있다. 요즈음 나오는 경배찬양 (Worship Song)은 대부분 찬송가에 해당하나 아멘 을 붙이지 않고 있다. 찬송가는 공 예배 때 많이 사용한다.
②찬송성가 (Gospel Hymn)
찬송성가 는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찬양하는 곡으로서 주로 끝에 아멘 이 붙어 있다. 찬송성가는 일반적으로 찬송가의 범주에 집어 넣는 경우가 많다. 찬송성가도 찬송가와 마찬가지로 공 예배에서 많이 사용한다.
③복음성가 (Gospel Song)
복음성가 는 복음 전도를 목적으로 성도의 신앙적 체험을 간증을 노래한 것으로서 끝에 아멘 이 붙어 있지 않다. 복음성가는 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체험을 간증과 전도에 많이 사용한다. CCM은 대부분 복음성가에 해당한다. CCM 이란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의 이니셜로서 대중적인 기독교 음악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과거에는 찬송가와 찬송성가 외의 기독교 음악을 가스펠송 혹은 복음성가 라고 했으나 현대에 와서는 CCM 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가스펠송 은 흑인 소울과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을 말하고, CCM 은 팝과 록 스타일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과거에 많이 불려지던 트로트 풍 스타일을 복음성가라 하고 현대에 많이 불려지는 록과 렙 스타일을 CCM 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스타일이 일반 대중음악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내용이 시대의 문화와 상황을 반영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구분하는 기준을 찬송가집에 실려 있느냐? 아니면 복음성가집에 실려 있느냐? 아니면 경배찬양집에 실려 있느냐?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위에서 말한 구분법으로 볼 때 찬송가집에든 복음성가집에든 모두에 찬송가와 찬송성가와 복음성가가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찬송가집에도 복음성가 뿐 아니라 자유주의 곡과 민요와 군가와 심지어는 술집에서 불렀던 곡까지 들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복음성가집에도 순수하게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가가 있기도 하다. 특히 경배찬양집에는 찬송가가 많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예배를 드릴 때는 찬송가집에 있든지 복음성가집에 있든지 경배찬양집에 있든지, 가사의 내용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찬양하는 순수한 곡을 골라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찬송의 조건
①곡조가 경건하면서도 현실적이어야 한다.
곡조가 이방종교의 우상숭배나 불신자들의 향락을 목적으로 한 음악과 구분되어야 한다. 세속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꼭 기본박자와 기본 음정에 충실한 곡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찬양이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대한 결과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시대성을 가져야 하고 문화성을 가지는 것이 좋다. 우리가 부르는 통일찬송가의 찬송은 대부분 중세 파이프 오르간 예배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곡이다. 과거의 음률보다는 현대 사람이 익숙한 음률이 좋다. 그리고 우리 나라 찬송(경배찬양)은 대부분 미국 곡을 번역한 것이다. 미국인이 사용하는 영어는 강조되어야 할 핵심 단어보다 전치사나 관사나 대명사가 먼저 나온다. 또한 미국인들은 핵심 박자(쿵) 보다 보조 박자(짝)에 강조점을 둔다. 그런 음악적 문화 속에서 작곡한 곡은 미국인들에게는 영감있는 찬송이었다 하더라도 우리 말로 번역하면 그 분위기가 안 나온다. 우리 나라에서 사용할 곡은 우리 나라에서 작곡될수록 좋다.
②내용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어야 한다.
찬송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그 대상인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사역과 목적을 담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누구이며 어떤 분이며 어떻게 일하시며 어떤 뜻을 가지셨는지 확인하고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그 모범은 천상예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은 천상예배가 소개되고 있다. 그 곳에 보면 4생물과 24장로와 천사와 만물의 찬송이 나온다. 4:8-11에서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사역과 목적을 찬양하고 있고, 5:8-14에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실행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결과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7:9-12에도 구원받은 성도들(셀 수 없는 큰 무리)이 온전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찬양하고 4생물과 24장로와 천사들이 이에 화답하는 찬송을 한다. 5:9에는 그런 찬양을 새노래 라고 하고 있다. 14:3에는 그 새노래를 부를 자는 구원받은 성도들(14만4천) 밖에 없다고 했다.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새노래 는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송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홍해를 건너고 나서 하나님을 찬송했는데 그 찬송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부른 노래였다.(출15:1-18)
③태도에 있어서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
찬송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그 내용도 하나님을 주제로 해야 한다. 그러기에 찬송을 하는 인간은 낮추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거나 자랑하거나 나타내려는 태도는 없애야 한다. 요한계시록4:10에 보면 24장로가 하나님 보좌 앞에서 경배하는데 자기의 면류관을 벗어 던지면서 찬양을 한다. 그 이유는 11절에 보면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는 창조주이고 자신들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4장로가 무엇을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요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라는 태도요 자신들은 아무 영광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감동 받으려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자신이 부르려 하기 보다는 성령님에 의해 불려지기를 추구해야 한다. 미국의 능력 사역을 하는 교회들에서 인도하는 예배 찬양은 모두 본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찬양 가치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찬양 인도자들(찬양단)이 철저히 준비해 오지만 준비된 대로만 하지 않고 여러 곡을 준비했지만 한 곡으로만 인도할 때도 있고 여러 곡으로 인도할 때도 있다. 때론 성령의 감동에 깊이 들어갈 땐 동시찬양(방언이나 예언으로 찬양)까지 한다. 그 은사가 깊어지면 하나님께서 회중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까지 느낀다. 회중도 그런 의도와 분위기에 익숙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외부적인 부분만 까운이나 화음에만 신경을 쓰고 정작 관심 가져야 할 영적인 부분은 잊고 있다.
4. 찬송의 능력
노래가 우리 영혼과 마음과 육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어느 목사님이 개척할 당시 강대상 뒤에서 기도하면 윗 층 라이브에서 매일 울고 싶어라 를 노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이 그렇게도 싫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자기도 모르게 강대상 뒤에서 그 노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목사님이 자주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울지 말아라 이다. 찬송의 영향도 크다. 다른 좋은 노래가 주는 영향과 비교할 수 없는 특수한 은혜가 있다.
①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찬송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찬송할 때에 회중 가운데 임하신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시편 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이라고 했다.
②악한 영들의 역사가 물러간다.
찬송을 할 때에 기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싫어하는 자는 사단이다. 찬송할 때에 사단과 마귀와 귀신의 역사가 물러간다. 사울 왕에게 악신이 주장하고 있을 때 다윗이 수금으로 찬양할 때 악신이 떠나갔다 (삼상16:23).
③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찬송할 때에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죄를 회개하고 상처가 치유되고 평안을 얻게 되고 새로운 비젼이 생긴다. 전인적 치유가 일어난다. 영혼이 치료되고 마음이 치료되고 육체가 치료된다. 사울이 악신으로 고통스러워 할 때 다윗이 찬양하므로 상쾌하여 나았다고 했다. (삼상16:23)
④환경을 변화가 생긴다.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서라도 얽매고 있는 환경의 문제를 풀어 주신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찬미하므로 옥문이 열렸다 (행16:25-26).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찬송의 의미와 능력을 아는 사람은 어떤 장소에서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찬양하기를 좋아한다. 역대상23:30에는 새벽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축사하며 찬송하며 라고 했고, 시편119:164에는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라고 하였고, 146:2에는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라고 했다. 150:6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라고 했다.
<옮긴글>
[출처] 찬양의 능력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