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는 그리스도를 위해 이 땅에서 받을 고난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9-15절에서 욥은 자신이 지금처럼 온갖 독설을 쏟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서, 자신의 은혜를 배신한 젊은이들의 악한 행위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가 말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젊은이들의 행위는 결코 그 자신이 당해야 할 어떤 타당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이들 젊은이들로부터 그들의 원수라도 견디기 어려울 이와 같은 모욕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노래하듯 욥을 조롱하였으며, 그 얼굴에 침을 뱉는 모욕을 가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욥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들의 행위는 간악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욥은 지금 자신을 모욕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랐고, 그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그렇게 위해 주던 자들은 도리어 욥의 가장 큰 원수가 되었고,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욥의 고난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욥의 고난이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가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욥의 고난은 우리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예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자기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죄의 억압에서 허덕이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죄인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의 온 생애를 죄인들을 위해 바치셨으며, 그의 피와 살까지 다 주셔서 죄인의 구속을 성취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예수님에 대하여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시22:7,8)라고 예언하여 말했듯이 예수님께 돌아온 것은 조롱과 모욕과 폭력과 죽음뿐이었습니다. 즉 욥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서 침묵하셨듯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모욕과 핍박,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향해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침묵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역시 당신의 독생자가 고통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인내하시며 침묵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과 하나님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속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과 하나님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일에 아주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기를 자처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바로 이러한 바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 땅에서 받을 고난이 있음을 알고 그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고난을 자처해야 합니다. 조금만 불공평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 몇 배로 호들갑을 떨면서 그들을 고발하고 보복하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터무니없는 공격과 폭력과 조롱 속에서도 묵묵히 그리스도를 위해 참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정녕 여러분의 신앙이 고난을 회피하고, 즐거움과 기쁨과 편안함과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에서 탈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받는 불이익과 억울함조차 참고, 그것을 구원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