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여래바래총무
이 글의 주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여시들 스스로가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또 얼마나 열심히 읽고 있는지 파악해 보도록 하겠음.
아래는 한 미국 작가의 단편소설을
내 맘대로 짧게 각색한 것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평소 습관대로 읽어주심 됩니다.
아주 귀찮다면 넘어가도 됨 (제발 읽어주세요...)
그들은 병원에 있는 아들을 오랜만에 만나러 가기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들을 화나게 하거나 두렵게 만들만한 물건들은 후보에서 제외하고 고심 끝에 고른 것은
동그란 작은 병에 담긴 색색깔의 젤리였다. 천진난만한 아이였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선물을 포장했던 날과 달리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정오의 검은 하늘에선 세찬 비가 내렸다.
주름진 손을 맞잡은 부부의 앞 좌석엔 한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곱게 양갈래로 땋아 삘간 리본으로 묶은 금발 머리는 노부인이 어렸을 적 머리색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차창에 비친 그녀의 굽은 등 위에는 타다 남은 장작 같은 잿빛의 갈색 머리카락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땐 어느새 비가 그쳤고
도보 옆 물웅덩이에는 세찬 빗줄기에 땅으로 떨어진 아기 새가 의미 없는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부부는 아들을 보지 못했다. 그날 오전에, 아들이 또다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참조 강박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자연과 모든 사물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감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번개는 자신에게 경고하는 소리이며 쇼윈도에 걸린 코트는 스파이었다.
그렇게 별 소득 없이 부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아들을 집으로 데려올지 의논하는 사이
밤의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전화가 흔히 오는 시간대가 아니었다.
아내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혹시 여시네 집 아닌가요?"
발신인의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에요, 잘못 걸었어요."
아내는 안심하며 수화기를 내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 전화가 울렸다.
그는 불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까와 같은 목소리가 여시를 찾았다.
"전화를 잘못 걸었다니까요. 번호를 다시 확인해 봐요."
소파로 돌아온 그들이 선물로 산 젤리를 꺼내 살펴보고 있을 때 다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달빛 아래 푸른색을 띤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위의 글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각각의 단어와 표현이 어떤 은유와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이 글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지
혹시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흔히 배운 방식으로
답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글을 읽진 않았나요?
전 처음 읽을 때 그랬읍니다.
물 웅덩이에서 퍼덕거리는 아기 새는
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아들처럼 보이고
마지막 불길한 전화벨 소리로 아들이 현실을 탈출하려는 시도를 성공했다고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임.
Signs and Symbols 상징과 증후라는
제목의 이 단편에는 수많은 은유들이 가득한 만큼 많은 해석이 오고 감
사실 이 작품을 쓴 블라디미르라는 작가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했음
열심히 영문학을 가르치던 어느 날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아니 문학을 배우겠다고 온 녀석들이
의미 해석과 의도 파악하는 것에만 매몰되어서
작품을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임!
아뿔싸
안타까운 모습을 본 블라디미르는
위에서 우리가 대충 본 단편소설을 쓰게 됨.
소설 속 아들의 병명은 Referential Mania
한글판으로는 참조 강박증이라고 나오는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병임.
이 병의 증상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이나 사물 등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임.
하늘이 흐리거나 쇼윈도의 마네킹의 포즈
혹은 커튼의 색깔 등 모든 것이 숨겨진 뜻이 있다고 생각함.
이런 강박증 때문에 아들은 자신의 실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함
이 모습은 블라디미르의 학생들이
문학을 공부하는 태도를 비롯해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다수 우리들이 문학을 읽는 태도와 아주 흡사함.
숨어 있는 뜻을 해석해야 한다는 압박과
주입식 교육으로 만들어진 버릇 때문에
어느새 작품 자체는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음
아들의 병은 무엇보다 작품을 읽는 독자의 모습을 나타냄
각각의 은유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참조 강박증의 증상와 비슷하지는 않았는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주입식 방식에 물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뎀니다)
사실 블라디미르는 자신의 작품에 담긴 의미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신물이 난 상태였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로 풀네임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그가 위의 단편을 쓰기 전에
출간한 장편소설이자
그의 대표작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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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다들 알다시피 롤리타는 소아성애를 다루고 있는데
자극적인 소재 탓에 출판도 힘들었고
소아성애를 미화한다는 오해를 받아 오래 고통을 받았음.
그는 롤리타에 대해서
이 작품에 대한 기가 막힌 해석이 정말 많네여;
누구는 어린 미국을 유혹하는 늙은 유럽을 은유했다고 하고
누구는 늙은 유럽을 유혹하는 어린 미국이라고도 하고..
사실 사회, 계급이나 개인적인 것에 대해 쓴 것은 아니었어요.
이 책에 원형이 된, 영감을 준 사건은 있지만
당시 러시아어로 썼던 글은 없애버렸음다.
그냥 러시아어라는 모국어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비운의 작가가 영어로 쓴 작품이라는 것.
영어로 쓴 소설이라는 의미로만 봐줫으면 좋겠네요.
라고 이야기 한 바 있음.
롤리타의 창작 의도를 알기 위해서만 매달리지 말고
영어로 쓴 문장 자체를 즐겨달라고 함.
실제로 책 롤리타는 노골적으로 선정적인 장면이 없고
직접적인 성행위조차 표현되어 있지 않음.
문장만 본다면 정말 예술 그 자체임.
흔한 문학적 비유의 예로는 여러가지가 있음
예를들면 별은 희망이나 꿈
빨간색을 열정
비소의 색인 초록색은 독이나 죽음
파랑색은 우울이나 슬픔 등을 떠올리게 함
그런데 어느 작가가
그냥 내가 본 커튼이 푸른색이라
푸른색 커튼이라고 표현했다고 밝힌 일화가 있음.
주입 교육 탓에 많은 이들은 작품 속에서 파란색하면
우울을 떠올리지만 종종 파란색은 그냥 파란색 자체일 수 있다~
(이 문단의 요지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수정함)
문학을 읽을 때 해석을 하지 말자!
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자체는 문학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
단편에 담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메시지 역시
역설적이게도 작품에 대한 어느정도의 해석이 가능한 독자에게 의의가 생김.
작품에 해석을 더하는 과정 자체는 또 다른 행복임.
다만 해석만을 위해 문학이 가진 즐거움을 잃지 말 것.
작품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유
심지어 작가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의 해석만이 예술작품의 의미가 된다는
어떤 철학자의 견해도 있으니...
+이 글의 요지
작품 해석 자체가 의미 없다 (X)
모든 사람의 독서 방식이 이러이러하다 (X)
학창시절 주입된 습관으로 독서가 부담된다면
해석의 부담을 조금 내려 놓아도 된다 (O)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 자체에 대한 흥미를 가져보자 (O)
강박에서 조금 벗어난다면
책을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함.
그럼 여시들 즐거운 독서하십쇼.
(이전에 롤리타에 대한 글 썼다가
삘받아서 추가로 쓰게 됨)
문제시 윤석열X파일 필사함
첫댓글 재밌다 나는 푸른색 커튼 했을때 섬뜩한 느낌, 서늘함 이런걸 먼저 떠 올렸는데 신기하네
재밌게잘읽었어!!! 되게문학이 읽고싶어지는 글이다~%~
오..좋은 글이다
사실 나도 은유 막 찾으려 하면서 읽으면 재미가 없더라고ㅠㅠ 난 걍 고대로 받아들이며 읽었는데 누군가가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하면 내가 잘못읽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걍 부담없이 읽어야겠어!!
너무 좋은 글이다...
재밌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보라색 꽃도 비슷한 경우로 알고 있는데... 맞나? 보라색 꽃이 소녀의 죽음을 상징한다 뭐다하고 해석해놨는데 막상 작가는 그냥 보라색 꽃을 좋아해서 쓴거였대.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한세윤해강 2222 푸른색 커튼은 암막일까 벨벳느낌일까 아님 얇은 쉬폰일까 이런 생각만 함 ㅋㅋㅋㅋㅋㅋ
좋은글이다 고마워 난 영화볼때 내포되어잇는 의미가 뭔지 생각하다가 결국 인터넷 한참 뒤져보고 헉~~이런의미가..! 하는데 사실 감독은 별생각없이 한거다~ 라는 인터뷰 보면 너무 과몰입햇나 싶더라구 ㅋㅋㅋㅋ 앞으로는 그냥 영화자체를 즐겨야겟다
국문학도 반성하고 간다,,, 문장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되길
와 흥미로워 정확히 그렇게 생각하면서 읽었엌ㅋㅋㅋㅋ 책 읽어야지
좋은 글 고마워 여시 갑자기 책 읽고 싶어져서 하나 꺼냈다..!
멋잇는 글!
ㅎㅎ 재밌다 배운게 그거라 그렇게 찾아보게되네
보라색 꽃은 죽음을 상징하고.... ㄱㅋㅋㅋ
난 그냥 그림그리듯이 읽는데..그래야 재밌지 않나...?뜻은 생각1도 안해봤어; 푸른색 커튼 말하면 바람에 휘날리는 파랑색 쉬폰커튼 생각해..
22 나두 여시랑 똑같이 읽었어ㅎㅎ
33나도 그냥 서정적이군..하면서 읽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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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나도 그냥 상상하면서 그리듯 읽었어
66 빨간리본 금발 검은하늘 이런게 나와서 색채감이 풍부하네 이러면서 읽었는데.. 난 처음에 파란커튼 얘기 하길래 저게 진짜 파란색인지 달빛에 비춰서 파랗게 보이는지 생각해보라는 의미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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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흥미롭다 영화든 책이든 끝내고 나면 내가 놓친게 있을 까봐 꼭 해석 같은거 찾아보곤 하는데 앞으로는 부담 덜 가져도 되겠어 ㅋㅋㅋ
음....수능공부할때 문학이젤어려웟어....난 도저히 저 숨은뜻을 못찾겟더라......
오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글이다!!!! 괜히 서론을보다가 나도 의미를 찾아내는것에 몰두해버린거같아 아이들은 문제를 풀때마다 계속 해석해야지 생각하고있겠지?? 그자체로 즐겨보라 ...해봐야지!
흥미롭다...!
그냥 암생각없이 읽엇는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