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4년 만에
1993년 10월 7일...
그날 나는 무엇을 했을까?
군대를 얼마 앞둔 대학생이 수업에 열중할 리 만무하고...
수업에 들어가도 한숨한 내쉬었을 그 시절...
그래도 그날 무엇인가 한 한가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1993년 10월 7일 나는 김산, 님웨일즈가 공동 지필한 <아리랑>이란 책을 구입했다.
..
그리고 14년이 지난 어느날 집에서 먼지낀 책들을 정리하다가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에 이 책이 재출간된 소식을 듣고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하기야 내가 노력만 했으면 찾았겠지..
그 좁다란 방에서 이 책이 어디로 도망갈리도 없고...
그래도 책장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그리고 1993년 10월 7일이라는 앞면의 표기도 너무 반갑다.
14년이란 세월답게 책에서는 곰팡이 냄새도 나고..
책 색깔도 누럽게 바래고...
책 가격은 5000원.. 와 싸다....
당시 내가 책을 사는 이유는 대부분 한가지였다.
학교 리포트였다.
아리랑을 사게 했던 과목을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을 사놓고 읽지 않은 기억 밖에 없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군입대 몇달을 남겨놓은 철모르는 대학생이었던 것이다.
자꾸 철모른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때 내나이 20대...
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은 이미 15살에 나라를 걱정하고
집 울타리를 뛰쳐나가 행동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젊음을 헛되이 보낸 것 같은 나는 후회에 땅을 친다.
김산은 자신의 젊음이 없었음을 이야기하지만,
그에게는 뜨거운 젊음이 있었다.
하루하루 뜨거운 피가 흐른 진정한 젊음 말이다.
나야말로, 젊은 시절 무엇을 했는가? 부끄럽다.
특히 이런 김산 같은 이의 삶을 볼때 나 자신을 더욱 성찰하게 만든다.
1. 님웨일즈와 김산
님웨일즈는 헬렌 스노우라는 여기자의 필명이다.
이 여기자는 중국대장정에 동참하여 그 대장정을 서방에 세계에 알린
그런 당찬 여기자였다.
님 웨일즈는 어찌저찌하여 1937년 연안에 머무르게 된다.
그곳 대학 도서관에서 사회서적의 책을 빌린다.
책마다 꼭같은 대출자 이름에 흥미를 갖게 된다.
그가 바로 조선의 공산주의 혁명가 김산. 본명 장지락이다.
이런 우연의 만남이 이 책을 만들게 된 나비였다.
맨 처음에는 김산이 님 웨일즈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지만,
조선을 알리는 데 도움을 될 것 같아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고 단 며칠간의 인터뷰..
김산의 짧은 삶을 통해 김산이라는 준비된 혁명가..
그리고 조선에 대해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그들은 알았을려나.
그렇게 며칠간의 만남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겨지게 될지....
님 웨일즈가 책으로 출간한다는 제의를
김산은 2년 후에 출간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김산은 그 인터뷰가 있고 얼마 안된 1938년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자신이 헌신했던 중국공산당에 손에 의해 처형당하게 된다.
1905년생이었던 김산...
그의 짧은 33년의 삶은 그렇게 억울하게 마감을 하게 된다.
1983년에 되서야 중국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복권하게 된다.
님 웨일즈는 1941년 이 책을 출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산의 사회주의 경력때문에
이 <아리랑>이란 책이 출간되지 못했다.
일본에서 들어온 <아리랑>이 운동권을 중심으로 돌려보게 된다.
그리고 1984년 정식으로 출간되고,
1992년 개간본이 나오고,
당시 님웨일즈가 한국어판 서문을 다시 쓰게된다.
그 이후 님웨일즈 소식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997년 1월 11일 운명을 달리했다고 나왔다.
님웨일즈의 노력때문에 이름없이 묻힐뻔한 독립운동가 김산을 후세에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업적을 높이사서 2005년 김산에게 건국훈장을, 님웨일즈에게 문화훈장이 수여되었다.
김산과 님웨일즈는 책 <아리랑>과 함께 영원히 대한민국의 영혼으로 남을 것이다.
2. 그의 목표도 결국은 조선 독립
일제시대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방법이 틀렸지.
결국은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하나. 조선의 독립이다.
김구도 그렇고, 신채호도 그렇고,
지난번에 읽었던 경성 트로이카 멤버들도 그렇고...
그리고 김산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15살이었던 김산은 1919년 삼일운동을 보고 느낀바가 있어
집을 뛰쳐 나간다.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년만에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초창기에는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기고 하고,
한동안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활동하기도 한다.
그가 영향을 받은 역사적인 인물은 톨스토이와 마르크스이다.
물론 책을 통해 영향을 받았는데,
톨스토이의 박애주의에 감명을 받았고,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김충창(본명 김성숙)으로부터도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배움을 많이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본격적으로 공산주의자가 된다.
그는 생각했다.
중국공산당의 혁명이 성공하면,
조선 독립도 쉽게 이루어질거라고...
그런 판단을 내린 그는 중국공산당원의 일원이 되어 온몸을 투신한다.
그는 혁명을 위해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한다.
김산을 아는 이라면 한 인물한다는 것을 안다.
(님 웨일즈말에 의하면 조선인의 극동 지역에서 가장 인물이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있다.)
거기에 혁명을 대하는 투철한 정신이 같이 공산활동하는
여성동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는 사랑과 혁명을 놓고 갈등하지만 언제나 혁명을 선택하였다.
그 이후 그도 사랑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된다.
본격적으로 그는 중국 대혁명에 참가하여
광동 코뮨과 해륙풍 소비에트 혁명에 참가한다.
많은 희생자를 남긴 위 두 전투에서 몇 안되는 생존자로 기록되어
이 부분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광동코뮨과 해륙풍 소비에트의 역사적 기록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김산은
일본 경찰에 잡히기도 하고,
중국 국민당 경찰에 잡히기도 하여
숱한 고문을 받게 된다.
10대부터 계속된 고문과 혁명참가로 인해
그의 건강을 늘 좋지 못한 상태였다.
폐병과 말라리아는 달고 살았고 후에는 결핵까지 걸리게 된다.
...
1935년 상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고,
조선공산주의자들이 김산을 조선혁명가 대표로 선발한다.
김산은 그 대표자격으로 연안에 중국공산당와 협조를 위해 와 있다가
님 웨일즈를 만나게 된 것이다.
...
그의 마지막 인터뷰는 정말로 걸작이다.
중간중간 김산 자신의 확고한, 뜨거운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는 주제로한 그의 인생철학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청소년에게
꼭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3. 덧붙이는 글..
요즘 <요코이야기>란 책으로 말들이 많다.
아무리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책을 만들었다고 해도...
당시 역사적인 현실을 무시한 작가의 태도는 더이상 작가라 말할 수 없다.
역사적인 배경으로 책을 썼으면 역사적인 검증을 해야지...
그냥 출간하다니...
그런 개념없는 작가를 둔 일본은 불쌍하다...
뿐만이 아니다..
그런 책을 어린 학생들의 교재로 선정을 한 미국도 참 한심하다.
끼리끼리 잘 논다.
...
<아리랑>을 읽으면서 이런 책을 교재로 삼아야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10대에 이미 나라를 위해 투신하여 몸살랐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
자신의 확고한 인생철학과 목표가 있어 그를 향해 정진했던 젊은이의 이야기...
책제목 : 아리랑
지은이 : 김산, 님 웨일즈
출판사 : 동녘
독서기간: 2007.1.16 - 2007.1.22
페이지: 342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