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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6.8.14.) 말씀/ 히브리서 3:1
생각하는 신앙인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니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가 살아야 하는가 생각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 전 한국의 진종호 선수가 역전의 드라마를 펼친 끝에 남자권총 50m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 금메달 최후의 경쟁자가 베트남의 호앙쑤안빈 이었는데 이미 10m 공기권총 첫 올림픽 금을 딴 선수 였습니다. 그는 베트남 역사상 60년만에 최초의 금메달 영웅이 되었습니다. 상금도 10만 달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베트남 선수 감독이 바로 한국사람 박충권이라는 것입니다. 권총뿐 아니라 양궁은 8개국 감독이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는 신문에 축국 기사를 보았는데 이번 올림픽 축구 감독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승후보 멕시코를 격파하고 사상 처음 조 1위 8강 진출을 했는데 대부분 존재감이 미약한 무명 선수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는가 당연 신태옹 감독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절대로 손흥민, 석현준같은 유병선수들에게 선발 자리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팀들을 골짜기 세대라고 부릅니다. 이는 빛도 들지 않는 골짜기에 도사리던 언더독 즉 이길 가능성이 없는 선수 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것입니다. 네덜란드가 낳고 세계가 사랑한 그라운드의 혁명가 요한 크루이프는 이런 명언을 이야기 했습니다. “최고의 선수 11명을 모아도 1등은 할 수 없다. 그러나 평범한 선수 11명이 하나로 뭉치면 무적이 될 수 있다.” 신태용 감독이 팀웤으로 이겼다는 것입니다(아쉽게 준결승 좌절 되었지만...). 감독이 어떤 철학 사상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왕에 감독 이야기를 하나 더 합니다. 오래전에 야신(野神)으로 불리운 김성금 야구 감독 이야기입니다. 그는 야구의 신으로 불리던 사람입니다. 언제나 약체 팀을 맡아 어느 팀보다도 내성 강한, 명실상부한 프로팀으로 조련해 낸 사람입니다. 거기에도 그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성근 감독의 훈련은 소위 ‘지옥훈련’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분의 지론은, 프로 선수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만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훈련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 동계훈련에만 국한되지 않고 장마로 인해 경기가 중단될 때도 시즌 중임에도 타자들에게 매일 하루 천 번씩의 스윙 훈련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정 수준에 올라 있는 프로 선수들에게는 저마다 노하우가 있으므로, 단순히 스윙을 많이 한다는 것만으로 무언가 한 순간에 달리지는 것은 아니라는데 정작 김 감독의 지휘 하에 있는 선수들은 그와 같은 비판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SK 선수 가운데 한때 ‘야구의 천재’로 불리던 박재홍 선수가 있었는데 1996년에 신인 선수로 데뷰한 그는 그 해에 최우수 신인상, 홈런 1위, 타점 1위, 골든글로브상, 매직 글러브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박재홍 선수는 몇 해 지나지 않아 기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한물 간 선수’로 간주되는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재홍 선수는 2006년 SK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을 만나면서 옛 기량이 되살아났고, 그의 야구 천재성도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모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가 박재홍 선수에게 ‘김성근 감독이 하루에 천 번씩 스윙하게 하는 지옥 훈련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술이 뒷받침되면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가짐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느냐에 따라 평소에는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고, 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계속 스윙을 하다 보면 기술적으로 느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계속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쉬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니 화도 나고 짜증도 났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나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왜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가?’ ‘나는 하필이면 왜 이렇게 스윙하고 있는가?’ ‘어떤 스윙이 가장 좋은 스윙인가?’ 이렇게 스스로 질문하다 보니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스스로 얻으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나 자신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죽어라고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어제 첫 타석 카운드 윈 스트라이크 원 볼에서 좀 더 공격적으로 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더 좋은 타구를 만들면서 게임 상황이 훨씬 유리하게 전개되었을 텐데....’ 이처럼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을 얻으면서,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한 만큼 절대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독기를 품게 됩니다. 그냥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마음가짐입니다. 타순이 돌아올 때마다 그 마음가짐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하면서 타석에 들어서면 언제나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옥 훈련을 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혹독한 과정을 통해 선수 개개인으로 하여금 ‘왜 내가 야구를 하는지?’'어떻게 야구를 해야 하는지?’스스로 생각하며 질문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혹독한 지옥 훈련을 통해 박재홍 선수로 하여금 스스로 자문함으로 옛 기량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독이 박재홍 선수의 자문에 해답까지 준 것은 아니고, 그것은 철저히 박재홍 선수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질문을 해서 진정한 답을 찾도록 도와준 점에서 훌륭한 감독이었고, 그 의도를 알고 스스로 질문을 하며 답을 찾은 박재흥 선수도 훌륭한 선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던, 연구를 하던, 신앙생활을 하던 성장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본 마음가짐이 바로 스스로 생각하며 질문하고 답을 얻는 것입니다. 저도 음악을 못하는 사람이 색소폰을 연습을 하다보면 스스로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소리가 안 좋을까? 왜 자연스럽게 리듬이 타지질 않을까? 왜?? 그렇게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노력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깨닫고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필히 따르는 것은 끊임없는 연습 노력입니다. 노력 안 하는 사람이 깊은 생각이나 질문을 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알려고 배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계속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최고의 교육방법도 모르는 것을 자꾸 귀찮을 정도로 질문 하는 것입니다. 질문에서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바로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답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틀에 한 번씩은 글을 쓰는데 생각을 안 하면 글을 쓰지 못합니다. 산에 가면 새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은 왜 새가 운다고 할까? 정말 우는 것일까? 아니야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야. 새는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는 것이야.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운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노래한다고 할까?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 일거야. 마음이 슬픔 사람은 새가 운다고 하고, 즐거운 사람은 노래한다고 하는 것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질문을 하면서 글이 써지는 것입니다.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그냥 ‘새가 운다’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배울 때도 주입식보다 생각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며 배워야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생각하고 질문을 하면서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질문을 할 때 성령께서 답을 주시고 비밀을 열어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알 수 없는 영적인 깊은 것까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며 질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생각은 하나의 힘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생각하며 질문하며 살아갈 때 계속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과 같이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미하며 질문을 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질문에 답을 도와주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교육 방법입니다. 갈릴리 제자들이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주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고 질문으로 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답을 주지 않고 “와 보라”고 이들을 초청하셨습니다. 그 날 주님을 따라갔던 제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보고 느끼고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배우려고 질문하는 자들에게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중간 중간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질문이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베드로만 성령으로 깨달아 대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평상시 생각 없이 교회를 다닌 사람은 예수님을 오래 따라다니고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바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그런 신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질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도 깊이 생각하며 정확하게 바르게 정립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동안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가르쳐주셨겠습니까? 그 중에 비유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씨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왜 이렇게 비유로 말씀 하셨겠습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려는 자들에게 비밀을 알려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달리시기 전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역시 예수님은 중대한 교육을 하시는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사건이 있습니다. 그 때 영문을 모르는 제자들은 어떨 결에 발을 씻김 받고, 베드로는 거절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발을 다 씻겨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13:14-15) 선생으로서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셔야 하는데 도리어 이렇게 우리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그렇게 살아고 하신 것입니다. 생각을 깊이 하며 배운 것은 잘 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날마다 생각하며 질문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주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왜 이 자리에 그리스도인으로 있어야 하는가?’ 왜 내가 남을 섬겨야 하는지, 왜 내가 손해 보면서 이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두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렇게 질문 할 때 우리는 속에 임해 계시는 주님도 우리에게 친히 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답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주님의 뜻을 더 섬세히 알아가고, 결과적으로 주님 앞에 바르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김성근 감독과 박재흥 야구선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보면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감독자 이시고, 우리는 그 분 밑에 제자로 들어와서 배우고 훈련을 받으며 살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불리한 환경에 있을 때 심각한 어떤 문제가 있어서 답을 구할 때 바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미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 하시면서 기본 동작이나 하루 1000번씩 스윙을 하도록 하실 때가 많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럴 때 때 참 답답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문제가 풀리고 내가 원했던 것보다도 진짜 답이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도서 7장 1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왜 우리가 원하는 답은 주지 않고 곤고한 날을 주십니까? 단답형의 인생을 살지 말고 깊이 생각하며 인생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번 어떤 놈팽이 생각지 못한 40억 복권에 당첨되어 가족들 피켓 들고 난리치지 않았습니까? 생각 없이 주어진 답은 오히려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짧은 인생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이 땅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경주와 같습니다. 경주자들은 승리자들이 되기 위해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서 4년이란 세월을 갈고 닦습니다. 그들은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단지 노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진보할 수 있을까. 부단이 생각하고 자문하고 연구하며 애를 씁니다. 한번 좌절했다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목표로 해서 또 노력해서 마침내 이루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위에서 부르심이 상을 바라보며 달려나가는 믿음의 경주자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 수 있는지 더욱더 생각하고 질문하고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세상 경주자는 다른 사람들과 경주하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금메달은 한 사람밖에 받지 못합니다. 이번에 금메달을 딴 베트남의 는 10만달란트 상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는 보통 직장인의 50년치 월급이라고 합니다. 이런 올림픽 금메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0.1점 적어도 그런 상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의의 면류관은 열 사람이 다 승리하면 열 사람이 다 받게 됩니다. 끝까지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면 모두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할 이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위의 부르심의 상을 바라며 일생을 경주하는 자들입니다. 그냥 인생을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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