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루브르의 유명한 예술품들을 보며 감동에 젖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은 복사품만 보았거나, 어쩌다 몇점의 진품을 가져다 전시할 때 서울에서 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니 그냥 가슴이 두근거리게 벅차 올랐다.
서울의 박물관과는 달리 모든 작품을 후레쉬만 사용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찍을 수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 상 : BC 2세기~BC1세기 초에 멘데레스 강 유역 안티오키아의 한 조각가가
만든 밀로의 비너스상은, 1820년 4월 8일 그리스의 밀로스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 근방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 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해군에서 리비에르 후작에게
넘겨져 루이 18세에게 헌납되어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이 비너스 상은 인체의 환상적인 8등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리석 입상으로 기품 있는
여성미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높이 204cm로 헬레니즘의 특색을 나타내면서도 그
자태가 고전적인 걸작으로서, 현존하는 비너스 상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잘려나간 두 팔을 복원하기 위해 루브르의 연구팀이 팔의 모습을 상상하여 조립하려 했다.
그러나 어떤 모양의 팔을 가져다 붙여도 비너스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선이 부자연스러워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들라클르와(1830) : 이 그림은 프랑스에서의 있었던 사건을 그린 것이다.
공화국을 원했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루이 필립 왕은 의회 군주제를 실시하였는데, 이 그림은
1830년 7월 혁명을 화가의 상상력으로 표현하였다. 가슴을 드러낸 채 민중을 이끄는 짧은 머리의
열정적인 여인은 공화국의 상징으로 억압에 반기를 든 민중들의 자유 의지의 표현이다.
<루브르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
가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 내부에 위치해있는데, 루브르 궁전은
12세기 후반 필립 2세의 명으로 착공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궁이 아닌 요새로 건축한
것이어서 아직도 당시 요새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이 요새를 루브르궁으로 만들기까지
수차례 확장 공사를 하였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기로 하고
루브르를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게 하였다.
그 소장 작품 숫자만 치더라도 약 40만점으로 소장품의 수와 질 면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과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루브르의 역사는 16세기
초 프랑스와 1세 때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티치아노의 작품 12점 등의 이태리
거장들의 작품과 고대 조각 작품들을 보관하면서 시작되었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패전국
으로부터 약탈해온 미술품들이 많아 그 당시 루브르는 세계 제1의 미술관이 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루브르궁을 개조한 것으로, 파리의 세느강변에 포함하여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루브르 박물관은 중세의 성에서 프랑스의 역대 왕의 궁전으로,
그리고 미술관으로 건물양식이 발전해 왔다. 루브르는 원래 미술관으로 사용될 계획은
아니었다. 마리 4세가 1671년에 그랜드 갤러리를 1층에 열었다. 미술과 예술품에 박식했던
그녀는 "고대의 방"과 왕의 데상실과 왕의 회화실을 두었고 일반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1747년 왕의 콜렉션을 감상할 수 있는 "뮤즈의 궁전"으로 불리면서
박물관의 역활이 부각되었다고 하니 그 예로부터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