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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프롤로그
주위에서 제 이력(?)을 아시는 분들에게 합격수기를 한 번 써보라는 권유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하지만, 합격수기를 쓸까말까 지금까지도 망설였습니다. 수석도 아닌데 괜한 일을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다 자랑조로 글이 흘러가 버린다면 읽는 분들이 불편해 하시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제 글이 도움이 되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에 한 번 글을 써 볼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려고 지난 날을 돌이켜보니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일부러 이브날 저녁 학교 도서관에 나가서 PSAT 문제를 풀었는데, 내년에는 이곳에 있지 말자 다짐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동일한 다짐을 하던 1년 전이 생각나서 속으로 얼마나 눈물을 삼켰는지 모릅니다. 분명 1년 전에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도서관에 와서 PSAT을 풀면서 굳게 다짐을 했건만 달라진 게 없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절로 흐르는데 공공장소라 소리내어 울 수는 없는 형편이고 울음을 참느라 꽤나 혼이 났었습니다.
1. 제1막: 발을 내밀다
제가 고시를 시작한 건 2002년 가을이었습니다. 군대를 갈 타이밍도 놓치고 학사장교로 갈까 생각 중이었는데 그냥 고시를 한 번 봐볼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한 일이었었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추석 쇠고 나서 김학성 객관식 헌법을 샀고, 그때부터 1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유예제도가 있던 시절이라 뽑는 인원도 5배수에 불과했고 10월에나 공부를 시작해서 1차를 붙을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만큼 학원강의는 듣지도 않았고 기본서는 생략한 채 요약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공부는 생각만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고 1월이 되었지만 행정학은 하나도 보지 못했기에 입시 접수는 아예 포기했습니다. 1월 한 달 겨우 행정학을 요약서 위주로 정리하고 영어는 그냥 기본실력으로 풀자고 제낀 채 1차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올해는 포기해야 하나 보다 하고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쳤는데, 이게 왠걸 컷보다 꽤나 높은 점수로 그해 1차를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점수가 나와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했었는데, 역시 막판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2. 제2막: 소수점 차이 그리고 아쉬움
1차를 붙고 나서 1순환 때 까지 아무 생각 없이 놀았습니다. 노는 동안 기본서라도 읽어두었으면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되었겠지만 1차를 한 번 만에 붙는 바람에 고시를 너무 만만히 보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8월이 되었고 경제학 1순환부터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4-500명이나 듣는 대형강의에 적응하느라 처음에는 애먹기도 했었는데 선택과목을 제외한 1순환 강의는 어떻게 다 들었습니다. 물론 예습, 복습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무엇을 배웠는지 조차도 모른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1순환을 듣고나서 학교를 복학했고 2순환은 건너뛰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최악의 선택이었는데 1순환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고 선택과목(당시는 2과목에 100점 만점이었죠)은 아예 맛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고시공부를 중간에 그만두어버린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해는 바뀌어 3순환을 맞이 했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정말 벅찼습니다. 모의고사를 보면 제대로 쓰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문제가 나오더라도 어떻게든 답안지를 채우려고 애를 썼고 이것이 나중에 실전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3순환 수업을 전과목 들으면서 모의고사를 빼먹지 않고 다 보았고, 4순환 때도 수업은 듣지 않더라도 모의고사는 빠짐없이 보았습니다. 선택과목 같은 경우는 아는 것이 전무한 터라 시험보러 가기 조차 싫었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가서 잡설을 풀고 나왔습니다. 이 당시에도 공부는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모의고사를 보는 것만은 제가 해야하는 최소한의 것으로 설정했고, 제 자신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공부가 되어 있지 않은 걸 아는 터라 2차 시험은 또다시 마음을 비우고 치뤘습니다. 결과는 컷과 0.44점 차이였습니다. 공부한 양에 비하면 점수가 잘 나온 편이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4순환 모의고사도 끝나고 6월 한 달 마지막 정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공부한 양이 적다보니 무리를 했었고 결국 허리가 아파서 드러눕게 되었었기 때문입니다. 허리가 아파서 6시간 이상은 의자에 앉아있을 수 없었는데 선택과목은 거의 보지도 못하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정책학이 50점 밖에 안나왔는데 결국 이것이 발목을 잡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를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 없더라도 시험을 꾸준히 치른 것이 합격선 근처까지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한 것이 없다고 시험을 거르시는 분들이 있는데, 모르더라도 답안지 채우는 연습을 하시면 그것이 실전에서는 크게 도움이 됩니다. 어차피 실전에서는 모르는 문제가 나오니까 그러한 연습을 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래도 점수를 확인하고 나서 이 당시에는 내년이면 끝낼 수 있겠지 하는 희망에 부풀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고시생활이 길어질 거라 결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3. 제3막: 중대한 착오를 범하다
2차 발표가 난 직후부터 1차 공부에 돌입했고 PSAT이 도입된 첫 해, 입시와 행시 모두 1차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3월 말에 있는 입시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고 부담을 느꼈고 답안작성 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입시를 치고 나서 행시 2차 공부에 돌입했지만 이때 크나큰 판단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과목별 기본서 위주로 공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는데, 학원강의를 듣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답안작성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해 점수가 비교적 잘 나왔던 원인이 꾸준한 답안작성에 있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실전에 가면 충분히 답안을 쓸 수 있다고 오판을 내렸고 이는 귀중한 한 해를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올해는 끝나겠지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2차 시험을 쳤지만 컷과 평균 5점 이상의 큰 차이를 내고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이 해에는 유예제도가 없어진 첫 해라 2차 시험 난이도도 예년에 비해 꽤 낮았었고 이는 답안작성 연습을 하지 않은 제가 꽤나 낮은 점수를 받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험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단순히 아는 것을 적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댓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었습니다.
4. 제4막: 만남 그리고 이별
비록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그해에는 여름 말 사귄 여친과 그래도 행복한 가을을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여친은 시험에 붙고 저는 떨어지면서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해가 시작하자마자 헤어지자고 하던 여친을 달래느라 1,2월은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행시 1차는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3월부터 6월까지의 4개월은 연애와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나름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1차 치고 나서 여친과 놀아주느라 경제학 3순환은 건너뛰었고(이것이 나중에 고시기간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할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행정법부터 3순환강의를 들으면서 시험을 빠짐없이 보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이 답안작성 연습 부족에 있음을 깨닫고 세세한 부분 보다는 답안 작성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4순환 때도 강의는 듣지 않더라도 시험은 꼬박꼬박 보았고, 올해는 붙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시험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연애와 공부의 병행은 힘든 일이었고 헤어지자는 여친을 곁에 붙잡아두는 것에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든 연애와 공부를 병행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2차를 치고 나서 한 달 후 헤어졌고 그 충격에 2차 발표 때까지는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2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있었고 면접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스스로도 면접 준비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 해에는 12월 21일에 최종합격자 발표가 났고 그날 하루는 정말 길었습니다. 물론 그날보다 더 긴 하루가 제게 오리라고 그때는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점수를 확인하니 꽤 높은 점수였고 다시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내년에는 꼭 붙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고 23일 PSAT 책을 사서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4일 저녁에는 도서관에 일부러 나가 공부를 하면서 내년에는 여기에 있지 말자 굳게 다짐도 했습니다.
5. 제5막: 운명과 싸우다
이를 악문 효과가 있었는지 다음해에는 입시와 행시 모두 1차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해에는 입시 일정이 빨라서 2월말에 2차 시험이 있었고, 입시 1차를 본 직후부터 스터디를 조직해서 열심히 답안작성 연습을 했습니다. 한 달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나름 열심히 했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입시 2차를 보러가니 문제가 비교적 쉽게 나온 편이었고 열심히 답안작성을 했습니다. 왠지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제를 잘못 읽은 정치학 마지막 문제 그리고 쉽게 나온 경제학이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3월 말에 있었던 2차 합격자 발표에 제 이름이 있었고 이제야 불운도 끝나는가 보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 일도 불운의 시작에 불과했지만 말입니다.
면접을 보고 난 다음날 3차 발표가 났고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두 번이나 제 이름이 지워진 것에 충격을 먹었지만 그래도 2차 점수로 잘린 것이었기에 행시 때과 같은 충격은 아니었습니다. 10명 뽑는데 11등을 전 한 것이었고, 마음에 걸렸던 대로 경제학이 문제였습니다. 2년 연속 경제학 수업을 듣지 않은 터라 기본기에 문제가 있었고 쉬운 문제일수록 기본기가 중요한데 전 그러한 면이 부족했던 것이었습니다. 공부와 연애를 무리하게 병행하고자 했던 것이 1년 후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그래도 절대 지지말자고 다짐하면서 오만하리 만치의 자신감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자신감이 없다면 안에서 허물어져 내릴 것 같기에 2차를 연속 2번 붙었으니 이번에는 꼭 붙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3순환 강의 및 시험 그리고 4순환 시험을 치러나갔습니다. (4순환 시험은 스터디를 조직해서 모여서 쓰는 형식으로 했구요)
그리고 맞이한 5번째 2차 시험. 시험치기 전날 잠도 한 숨 못한 채 시험장으로 향했고 경제학 마지막 문제를 계산실수 했다는 걸 종치고 나서야 깨닫고는 하루 종일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험을 치르고 나서는 작년과 비슷한 성적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2차 시험 합격자 발표날만 기다렸습니다. (실제 점수도 그 전해와 비슷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제 이름이 있었습니다. 정말 이번에는 끝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면접에 임했고 면접도 (당시 제 생각에는) 무난하게 끝났습니다. 설마 2번 연속 떨어뜨리겠냐는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최종합격자 발표일을 기다렸는데, 이번에도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시 명단을 살펴보아도 제 이름은 없는데, 또 떨어졌다고 부모님께 전화드리려 번호를 누르던 제 손이 그렇게나 떨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날만큼 긴 하루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6. 제6막: 마침내 운을 찾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불합격이라 그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면접 스터디원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밝은 척 행동했지만, 밤에 침대에 누워 눈물 흘리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대체 내게 왜 이런 일들만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냥 너무 서러워서 울고 또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울어야 다음날 일어나서 또 밝은 얼굴로 학교를 가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고향에 내려가서는 부모님 앞에서 큰소리만 치고 올라왔습니다. 제가 흔들리는 모습을 안그래도 속상해 하시는 부모님들께 보여드리기는 정말 싫었고 최대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근거없는 자신감 말고는 기댈 구석이 없었고 제 자신에 대한 신뢰감마저 사라진다면 여기서 정말 주저앉고 말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포기하면 면접관들의 결정이 옳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고 누군가가 나를 시험하는 것이라면 그 시험을 당당히 통과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일어서서 이브 저녁에 도서관에서 버티기도 하고 입시 1차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고시생활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행정부 쪽을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부담감을 가졌기 때문이었는지 입시 1차를 잘 보지 못했고, 한 달 동안 방황을 해야 했습니다. 2차를 다시 붙을 자신은 넘치지만 과천에 다시 가야한다는 사실이 정말 싫었고, 또다시 면접을 보고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음을 제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기에 행시 1차를 치고 2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공부가 너무나도 지겨워져서 다시 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고 3순환을 다 듣기는 했지만 시험만 겨우 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2개월은 제대로 공부해 보고자 신림동에 독서실에 등록을 했고 4순환 시험을 보면서, 서브를 다시 정리하는 형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최대한 경계하면서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않고자 노력했습니다.
2차는 당연히 붙는다는 어떻게 보면 건방진 마음가짐으로 시험에 임했고 시험을 다 치뤘을 때 이번에도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3차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고, 2차 합격자 발표날 이름이 있음을 보았음에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올해는 정말 끝나야 할 텐데 머릿속에는 그 생각 밖이었습니다. 면접을 보면서도 그냥 떨어뜨리려면 떨어뜨려라 하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1차, 2차 모두 다시 붙을 자신이 있으니까 또 떨어뜨리면 다시 과천에 온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운이라는 것이 이제는 한 번 쯤은 제게 찾아올 때도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종합격자 발표일. 하루 종일 가슴 졸이며 사이버 고시센터에서 F5를 눌렀습니다. 오후 늦게 마침내 제 이름이 있는 걸 발견했고, 부모님께 즉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 이번에는 명단에 제 이름이 있습니다”
7. 에필로그
작년 2월 초에 ‘왜 공직자가 되려고 하는가’에 대해 싸이에다 끄적여 봤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지금의 마음가짐 공직 생활 내내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
요 며칠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가장 많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질문은 '대체 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하는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왜 공직자가 되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목표의식은 사라지고 그냥 시작한 것이니까 끝을 보아야겠다 또는 지기 싫어하는 승부의식 같은 것이 관성처럼 나를 이끌어 왔었으니까.
글쎄, 생각해보면 고시시작은 뜻하지 않은 충동 때문이었지만, 초기의 꿈은 과학기술부에 가서 과학자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싶다는 것이었다. 중딩 시절 매월 빼놓지 않고 과학동아를 사보았고 고등학교 들어와서도 한동안은 이과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로 과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지만, 언젠가 실린 설문조사 결과-과학자의 80% 이상이 자기 자식은 과학자를 시키지 않겠다-에 충격(?)을 먹고 방향을 전환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소위 '돈 되는' 응용과학 분야에만 지원이 집중되고, 그나마 예산이 지원되는 경우에도 기초과학 분야에서 조차도 단기적 성과를 요구하는 현실에서, 내가 관료가 된다면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던 어릴적 꿈을 또다른 방법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해서 여러 가지를 보고 듣게 되면서 이러한 생각은 또 바뀌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되면서 보다 하위계층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면 바로 '공익의 수탁자'라는 표현이다. 이는 이기적인 정치인들에 대항하여 공익의 수호자로서의 관료의 입장을 강조하는 표현인데, 나도 정치과정에서 반영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고 또 배려해 줄 수 있는 관료가 되고 싶다.
일전에도 글을 썼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하위계층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학교수업을 들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하면서 전체적 이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냐고 이야기하는 교수들을 볼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약간의 섬뜩함을 느끼곤 한다.
물론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책결정에 있어 '냉정함'이 중요시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당하는 소수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온당치 않다면? 아니 전체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생존권마저 위협받아야 한다면? 우리는 Kaldor-Hicks 기준에 의해 전체적으로 또한 계량적으로 판단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희생당하는 개개인이 받는 고통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는 마땅히 가고 싶은 부처도 없지만(땡큐 2**) 이익집단정치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는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이익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배려해주고 싶다. 요즘 위에서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는 이유로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정책집행 과정에서 하위계층에 대한 배려는 충분히 가능하며 또한 그럴 때 '영혼이 있는 관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예전 발전국가 시기 관료가 누렸던 권력과 명예는 점차 사라지고 있고 이러한 점에서 실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난 그래도 충분히 관료가 매력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할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Thanks to..
끝까지 못난 자식 믿어주신 부모님 그리고 누나에게 우선 고맙다는 말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마운 분들 많은데, 재작년 행시 3차를 두번째 떨어졌을 때 격려의 말 해주었던 분들에게 특히 이 글을 빌려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때가 정말 힘들었을 때였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수진 씨, 영춘이 형, 승훈이 형, 지영 누나, 재철이 형, 희윤이 형, 상훈이 형, 태석이 형, 성호, 정환이 그리고 10년 이상 함께 해 온 ‘모이따’ 멤버들.. 이외에도 열거하지 못한 많은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첫댓글 진정 가슴뭉클함을 느끼네요...치열한 자기고민의 결과가 이토록 빛날수 있다니...
소중한 합격 수기 잘 읽었습니다. 이만한 합격수기가 또 있을까요.. 정말 진솔해 보이고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 연애와 공부를 병행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 같은 거 혹시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
제가 읽어본 최고의 합격수기입니다. 꼭 목표한바 이루시는 관료가 되시길 빕니다.
까페에 면접 떨어지시고 글 쓰셨던 분 맞나요? 기억이 어렴풋한데.... 그런 실력이시면 다음에는 꼭 합격 하실꺼라 답글 달았던것 같기도 하고.. 정말정말 축하드려요~ ㅠㅠ 수기도 감사합니다! 특히 7번이요 ㅠㅠ
짝짝짝~~~ 당신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댓글 안 다신 분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가고 싶은 부처와 별개로 축하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댓글 잘 안다는데 달게 만드는 글이네요....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훌륭한 공직자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끈기와 불굴의 정신이 배어 있는 수기네요. 진심으로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합격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눈물겨운 그 노력이 하늘을 감동시켰고 저 역시 당신의 노력에 코끝이 찡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아래를 향하려는 그 따뜻한 마음. 수차례의 낙방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 정신. 진정 훌륭한 공직자가 될거라 믿습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합격 축하드립니다!^^
완전 감동이네요... 정말 훌륭한 공직자가 되실 거라 믿습니다. 다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대한민국을 희망찬 곳으로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어요... 저는 나이가 제법 많아서 방향을 틀어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가 읽어본 수기중에 최고입니다... 그 정도 불굴의 다금질을 하셨으면 인생에서 못할 일 없으실 거에요... 저보다 어린 분이지만 대단하십니다... 뭔가 큰 일에 쓰실려고 대기만성 하셨을 거에요... 참 수고하셨습니다... 고시 공부할 때의 어려움을 잊지 마시고 훌륭한 일 하시길..
정말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네요ㅠ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벅찬 감동과 일종의 경외감이 느껴지네요..정말 멋진 공직자되셔서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큰 일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 정말 대단하시네요. 뭘하든 성공하셨을 것 같아요.
정말 멋지십니다. 저도 내년 이맘때에 이런 수기를 남기고 싶군요.
아 뭉클했습니다. 제가 너무 감정적여진건가요? 아니겠죠? 정말 대단하세요 2차를 몇번씩이나...
ㄱ님 완전 축하해~~~~
대단한 의지력이세요 진정 존경스럽네요 끝내 합격하신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무쪼록 국가와 인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길 당부드리겠습니다.
형, 이제사 읽습니다. 공부하는 게 힘들고 하루 하루 나태해지는 저를 보면서 더욱 답답해지지만, 힘든 길을 잘 이겨내신 형이 계셔서 많이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