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몸 구석에 검은 띠를 두르는가 싶더니 끝내 숨이 멎었다. 요 며칠 조짐이 좋지 않았다. 영 희뜩하니 밝지 않고 가끔은 푸르르 떨 듯 빛의 균열이 심하기도 했다. 전류의 영양을 영 받아들이지 못한 듯 어둑하더니 예고도 없이 화장실을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집에 전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탓에 어둠을 더듬어 밤길에 나섰다. 발길에 채는 돌들이 어둠 속으로 금방 나선 탓인지 낯설다. 어둠을 어둠인 채로 단 일 초도 견뎌 보지 못한 문명화된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슈퍼로 향했다. 골목길을 벗어나 가로등 아래 섰다. 잠시 빛을 잃었을 뿐인데 가로등의 불빛이 반갑다. 무엇이든 눈으로 확인되어야만 편안해지는 심리는 불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디지 않는 세대라 그런 것 같다. 슈퍼에 들러 전구를 고른다. 화장실이라 너무 밝은 것은 좋지 않아 삼십 촉 전구를 썼는데 자꾸 육십 촉에 손이 간다. 촉수가 올라가면 더 오래 버틸 것 같은 안도감과 모든 사물이 더 뚜렷해지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불투명의 육십 촉 전구를 들고 집으로 왔다. 전구에 검은 점이 들 듯 친구 폐에 나쁜 덩어리가 든 것도 순간이었다. 별다른 예고 없이 누웠다는 그녀를 찾아 서울로 올라가니 물 날린 병원 침대 위에 시트보다 더 희뜩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다른 장기라면 수술이라도 해 볼 텐데 폐는 여지가 없었다. 참 기가 막힌 일이었다. 필라멘트가 끊어질 듯 불안한 상황을 그저 눈으로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늘 밝음 속에 기거하다 한 순간 빛을 잃어버려 깜깜한 어둠 속에 내몰렸을 때처럼 그녀의 눈빛은 아득하기만 하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가끔 떨리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눈빛이 전류가 다해 가는 전구처럼 나를 불안하게 했다.가끔 만나 보면 기침이 오래갔고 등이 아프다는 소리를 한 것도 같다. 중년이라 다들 찾아오는 증세려니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폐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 등이 그렇게 아팠던 모양이다. 어떤 일이든 조짐이 있기 마련이다. 그 조짐을 빠르게 읽어내지 못했을 때 불시에 어둠을 만나는 것이다. 갑자기 전구가 나갔을 때 최소한 여분의 전구라도 집에 준비해 두었다면 어두운 밤거리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을 터이다. 불빛이 흔들리고 사물이 흐릿해지는 수많은 사인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전구의 수명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화근이다. 그녀 역시 왜 등이 아픈지 조금만 자신의 몸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막막한 어둠 속에 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을 잡아도 온기가 없다. 이미 몸도 마음도 다 방전된 상태다. 눈이 새까만 자식들 이야기에서는 잠시 화색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자식을 끝까지 돌봐 줄 수 없다는 참담함에 그녀는 또다시 싸늘해진다. 잠시 병실에 고요가 다녀간다.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말문을 닫았을 것이고 나 역시 아무런 도움도 되어 줄 수 없는 현실에 목이 메였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가 뚝 끊어지는 순간은 잠시 천사가 다녀가는 시간이라는데 절박한 마음에 그 천사의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먼 길 온 나를 걱정한다. 병실에서 읽던 손때 묻은 시집 몇 권을 내 손에 들려 주며 남겨질 아이들을 부탁했다. 지금껏 그녀는 단 한 번도 일을 떠나 생활하지 않았다. 늘 일의 꼬리를 잡고 원형의 맴을 돌았다. 그 반복된 노동이 그녀 몸을 얼마나 심하게 가격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말이다. 눈만 뜨면 새벽 과일시장에서 질긴 잡초처럼 발품을 팔아대더니만 끝내 빛나는 생을 한번 영위해 보지도 못한 채 삶의 문을 닫아야 하다니 안타까움이 턱에 찬다. 쉼 없이 불을 켜고 있다 보면 남 먼저 심지를 소지하는 것이거늘, 그녀는 왜 그것을 진작 몰랐을까? 잠시 잠깐이라도 스스로에게 관대한 휴식을 주었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으리라. 늘 남을 먼저 생각하고 염려하는 마음자리다 보니 자신의 일은 뒷전이었던 게 분명하다. 낡은 침대 시트 아래 내 마음을 찔러 두고 돌아서니 눈앞이 깜깜 밤중이다. 필라멘트가 끊긴 전구처럼. 수명이 다한 전구를 어둠 속에서 돌려 뽑고는 육십 촉 전구를 끼운다. 불이 들어오자 전구를 감싸고 있는 다섯 손가락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예전보다 삼십 촉 더한 빛이 또 삼십 촉만큼 어둠을 밀어낸다. 사방에 널린 사물들이 한결 새뜻해지고 선명해진다. 화장실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낯설기 그지없다. 까짓 것 용을 써 봐도 그녀의 목숨 가까이는 닿을 수 없다. 그녀 생명에 내 손길이 닿을 수만 있다면 수명이 다한 어둠을 몰아내고 삼십 촉 더한 빛을 얹어 줄 텐데, 잠시 전구를 빼내기 위해 올라선 의자가 흔들린다. 중심을 잃은 내가 화장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러나 아픔은 잠시 다시 일어나 전구에 덮개를 덮고 돌아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다시 갈아 끼을 수 있는 삶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럴 수 없는 그녀의 현실이 내게는 어둠일 뿐이다. 새로 끼운 전구에 밀려 차츰 소멸해 가는 어둠을 바라보며 죽음을 돌려 삶을 밝힐 수 없음에 불빛 아래서도 내 마음은 암흑천지다. 이미 치료는 늦었다. 다만 하루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진 강력한 진통제만이 오늘 밤 어둠을 뚫고 내 눈앞에 환하게 다가온다.
(김은주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