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좌담회는 지난 15일 오후 미래전략연구원에서 이근 미래연 원장(사회ㆍ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과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등이 참여하여 약 2시간동안 진행됐다. <편집자>
1. 에너지 문제의 현황
이근: 최근 기후변화협약, 중동문제, 환경문제 등으로 인하여 석유의 시대는 곧 끝날 것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이 맞는 것인지, 정말 그러한 것인지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김현진: 탄화수소 3인방(석유, 석탄, 천연가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에너지경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래도 당분간은 탄화수소 중심의 에너지시대가 지속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아직 낮은 수준인데다, 탄화수소에너지경제에 기반한 산업들이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습니다. 포스트오일 논의는 2030년 이후를 내다본 것이라 생각되지만, 급격한 에너지의 전환은 불가능하므로 미리 변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의 에너지경제가 한계에 봉착한 요인은 크게 자원확보 경쟁과 환경 측면의 도전입니다. 첫째, 자원확보 경쟁을 보면, 자원고갈과 관련하여 오일피크론이 있습니다. 허버트 박사가 석유 생산곡선을 종 모양으로 제시한 것으로, 석유생산이 피크에 다다르면 그 후 급격히 감소한다는 이론입니다. 2030년이 피크다, 이미 2005년에 피크가 되었다는 등 논란이 많지만, 사실 자원고갈보다는 자원의 편재와 그것을 둘러싼 확보경쟁이 위기를 부추길 가능성이 큽니다. 또 석유 자체의 고갈은 아닐지라도, 이지오일(easy oil), 즉 소비지에서 가깝고 단가가 낮아 경제성이 있는 석유는 이미 피크에 다다르고 있어 확보경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둘째, 환경 측면의 도전입니다. 화석연료를 때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방출되고,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나타납니다. 지구 기온이 1도만 올라가도 태풍, 혹한, 혹서 등 생태계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합니다. 그 때문에 탄화수소 3인방 기반의 에너지경제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은 곧 경제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고, 기존 에너지경제의 근본적 변화를 요하는 것입니다.
"이지오일(값싸고 효율성 좋은 석유)이 고갈되고 있다"
이재승: 석유공급의 피크가 언제인지는 예측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지오일은 점점 더 고갈되어 간다고 예상됩니다. 미국의 석유생산은 이미 1970년대 초반에 피크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석유 자체는 아직 남아 있어서, 최근 CERA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향후 120년은 더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지오일이 고갈되어 가는 상황에서 석유를 생산, 공급하기 위한 비용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 과연 석유가 값싸고 효율성 좋은 원료로서 지속될지는 의문입니다.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유용한 비용 대비 효율성을 지닐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자원의 편재를 말씀하셨는데요. 산유국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편재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미국도 피크를 지났고, 기존 지역 중 비중동지역의 매장량 중 상당부분도 이미 정점에 다다르거나 감소세에 들어선 곳들이 많습니다. 추가생산 여력을 지닌 지역은 사우디, 카스피해 일부, 러시아 등으로 더 편중될 것입니다. 아프리카도 유망한 지역입니다만, 과연 중동을 대체할 만한 생산여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계속 지켜보아야 합니다. 사우디는 상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추가생산 여력 때문에 시장에서 대단한 위상을 차지해 왔고, 시장이 위기에 빠졌을 때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의 추가생산 여력에 대한 불안감을 근거로 석유에 대한 부정적 예측을 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매튜 시몬스(Matthew Simmons)는 사우디의 거대유전들이 더 이상 고품질 석유를 쉽게 뽑지 못하고 있어 곧 쇠락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치적 불안정성도 변수입니다. 미국과의 관계도 변수가 될 수 있고, 중동의 인구구성도 큰 변수입니다. 출산율이 높아 30세 이하의 청년층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상당수가 종교(이슬람) 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출산율을 높여서 성전(지하드)에 내보낼 전사를 더 키워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중동 지역에 미국의 생각대로 미국식 민주주의를 요구할 경우 정치적 불안정 요소가 커질 수 있고, 이는 석유수급의 불안으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세계 1,2위 석유소비 대국 미ㆍ중, 고유가 불구 석유확보에 전력"
김현진: 일단 공급할 석유는 당분간 남아 있지만, 공급보다는 가격의 불안정성이 큰 문제입니다. 중장기적으로 유가 추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석유시장의 공급과 수요에 관련된 행위자들의 현황과 전략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은 전세계 에너지의 25%를 사용하고 있고 지금까지 혼자 수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등장, 세계 석유의 8.5%를 쓰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소비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서는 유가가 안정되는 것이 유리하지만,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함께 전략을 짜는 것이 아니라 각각 에너지 확보에 주력하고, 가격보다 확보를 우선시하고 있어 국제유가가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9.11 테러 당시 미국 전략석유비축(SPR)이 6억 배럴이었는데 그 이후 3, 4년 동안 7억 배럴로 증가하였습니다. 국제유가가 두세 배 오르던 시절이었고, 우?ざ遮?가격이 내리기만 기다리다가 비축을 못한 반면, 미국은 가격상승에도 불구하고 1억 배럴을 비축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에 의하면, 향후 20년간 SPR을 15억 배럴까지 늘리겠다고 합니다. 중국도 몇 년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전을 섭렵한 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산유전의 경우 2, 3년 동안 가격이 서너 배 뛰었습니다. 중국이 유전매입에 입찰하면서 두세 배의 가격을 써넣어 획득해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이 가격보다 확보를 우선시한다면 유가를 상당히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급 측면의 가장 큰 플레이어들은 OPEC 등 생산국과 석유메이저들입니다. 석유메이저들이 최근 사상최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실상 그것을 재투자할 곳을 찾는 일에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광구의 개발 등을 OPEC 국가들이 다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의 경우 '사우디아람코'라는 국영회사가 석유생산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중동 석유생산의 80%를 국영기업들이 하고, 자원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석유메이저들은 활동이 제한되어 개발비가 비싼 지역으로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중동보다 개발이 어려운 멕시코만의 심해 등으로 옮겨가면 당연히 생산비용은 증가합니다. 반면 OPEC의 경우 지금 생산하는 석유가 전체의 37% 정도인데, 2025년 정도 되면 50% 이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중동에 석유를 그만큼 더 의존하게 됩니다. 이처럼 공급은 석유메이저와 OPEC에 의해 견제되고, 수요는 미국과 중국 등에 견제되어 유가는 더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이근: 최근 유가가 굉장히 많이 올라서 오일쇼크 당시보다도 더 올랐다고 하는데, 오일쇼크와 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배경을 설명해 주십시오.
이재승: 주요 에너지 통계에서 지난 100년간 유가 추이를 그린 자료를 보면, 2차 오일쇼크 때가 가장 피크였습니다. 그 뒤 걸프전 때 좀 올랐고 90년대는 대체로 안정세를 보였습니다. 최근 유가가 오르고 있지만, 3차 또는 4차 오일쇼크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속도가 오일쇼크만큼 가파르게 올라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또 세계경제가 이를 받아들일 만한 여력이 생겼습니다. 공급 측면의 일시적 위축 등에 의한 쇼크가 아니라 중국과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수요증가에 따른 유가상승이고,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하게 되면서 합리적인 대처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김현진: 최근의 유가상승은 오일쇼크보다는 그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습니다. 1차 오일쇼크 시에는 한 달 만에 3배가 올랐었지요. 유가를 계산할 때, 서부텍사스중질유(WTI)나 두바이유 등 명목유가에 물가상승분을 감안하여 조정한 것을 실질유가라고 합니다. 그것에 다시 전체 에너지소비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에너지효율 등을 반영한 실질실효유가를 산출해 보았습니다. 실질실효유가로 보면 2차 오일쇼크 당시 유가는 배럴당 120~130달러 정도였다고 나옵니다. 지금 2차 오일쇼크와 같은 경제적 쇼크를 받으려면 유가가 120달러 정도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포스트오일을 향한 에너지 트랜드
이근: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포스트오일 시대는 아직 20~30년은 지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만,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의 추세를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어떤 표준과 기술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을 알고 한국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지요.
이재승: 포스트오일 시대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도래합니다. 그러나 일단 에너지 상황이 피크에 도달하면 그 후의 하강은 급격해지고 불안정성이 커지므로, 미리 예상하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현재 선진국 중심으로 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 대응을 시작했고, 그 전에도 지식인이나 환경운동가들이 관련 서적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예측의 정도나 입장은 다르지만, <파티는 끝났다 (The Party is Over)>라든지 <석유를 넘어서(Beyond Oil)> 등의 책에서도 석유에너지 위기가 언급되고 재생에너지, 대체에너지 등 논의가 많이 활성화 되고 있습니다.
대체에너지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석유가 아닌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버스에 천연가스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확대한다고 합니다. 원자력에 대한 논의도 새로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환경 또는 안전 문제로 주춤하고 있었지만,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부활한 것입니다. 그 외에 진정한 의미의 비화석 연료들, 즉 풍력, 태양력, 수소전지, 바이오에탄올 등도 논의되고 있고, 석탄도 청정석탄(clean coal)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체 에너지들을 볼 때에는 분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4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가격입니다. 천연가스나 원자력은 상당히 보편화되어서 가격이 안정되어 있는 편이지만, 태양열 등 기타 재생에너지는 생산 단가가 높아서 정부의 보조 없이는 사용하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고유가가 지속된다면(배럴당 60달러 이상) 상대적으로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낮아지고, 기술개발로 가격이 더 낮아질 경우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대체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아무리 저렴해도 충분한 인구에게 공급이 가능한지가 문제이지요. 다음으로 얼마나 효율적인 에너지인가의 문제가 있고, 마지막으로 경제사회적 인프라 및 자연적 인프라가 대체에너지 사용기반이 되어 있는가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전략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21세기 에너지강국은 '자원'이 아니라 '기술'이 결정한다
김현진: 포스트오일 에너지원의 트랜드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점차 저탄소 쪽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석탄의 탄소함유량이 제일 많고, 그 다음 석유, 천연가스, 수소 순입니다. 그러나 수소에너지까지 가기에 시간과 기술이 얼마나 필요할지 알 수 없고, 그 과정의 전환기에너지가 문제입니다. 결국 수소에너지로 가겠지만, 그 전환기에너지의 모습을 보려면 현재의 에너지산업의 트랜드를 읽어야 합니다.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먼저 청정에너지 산업입니다. 수소연료전지를 포함해서 태양, 풍력 등 깨끗한 에너지의 생산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청정 석탄과 같이 기존의 화석연료를 깨끗하게 변신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가 원자력산업의 부활입니다. 최근 원자력의 부활은, 최근 그린피스의 창립자가 원자력지지자로 돌아서는 등, 그간 환경오염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깨고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로 새로이 인식되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전환기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천연가스나 원자력은 사실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카르텔 구축 시도를 통해 이란과 알제리 등이 담합할 경우 천연가스 생산의 70%를 차지하게 되어 시장 왜곡의 가능성이 생깁니다. 원자력의 우라늄도 확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단가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당한 기술적 해결이 있어야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에너지강국은 자국 영토 내에 유형의 자원을 많이 가진 국가였지만, 21세기 에너지 강국은 무형의 자원(에너지기술, 친환경기술)과 시장선점능력을 갖춘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기술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근: 에너지강국의 정의가 그렇게 바뀐다면 에너지안보, 에너지외교의 패러다임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길 듯합니다. 청정에너지, 재생에너지 중에서 20~30년 후에 에너지표준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 맞추어 준비를 하고 투자도 해야 할 텐데요. 가격이나 효용을 생각할 때 어디에 맞추는 것이 좋을지요? 예를 들면 EU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올린다고 하고, 브라질은 바이오에탄올의 비율이 40%라고 하는데, 그런 국가들이 먼저 정해놓은 표준들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이재승: 결국 가격과 공급량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을 상용화하는 기술과 효율성입니다. 현재 대체에너지 개발기술은 각 분야에서, 수소연료전지, 태양광기술(보다 효과적인 전지형태로 개발), 청정석탄 기술, 바이오에탄올 등 여러 가지가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어떤 것이 표준이 되리라고 지금 선뜻 예측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어느 쪽에서든 먼저 획기적 발전을 이룰 경우 그 쪽에 가속이 붙고 다른 기술들은 다소 밀려나게 되겠지요.
글로벌표준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예를 들어 바이오에탄올(옥수수가 주원료)의 경우 지금도 생산되고 있지만 옥수수가 안 나는 나라는 어떻게 할 것이며, 또 이와 관련해서 식량문제나 환경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일부 환경론자들은 바이오에너지 사용이 자연을 더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고, 대체에너지의 가치가 환경 훼손을 상쇄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시하고 있습니다.
자원 사정상 가능한 나라에서는 잘 개발되겠지만 국가별 상황에 따라 대체에너지가 가지는 효용성은 달라집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는 풍력, 햇볕이 풍부한 곳에서는 태양광 등 동시다발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이 지금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에는 위험성이 큰 단계입니다. 다양한 차원에서 R&D를 확충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지금보다도 많은 투자와 관심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특정 에너지를 정해서 산업화시켜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단위 GDP 생산에 드는 에너지, 일본 1이라 할 때 한국 3.3, 중국은 9
김현진: 에너지의 전환기이므로, 에너지표준은 획기적 기술개발 여부에 좌우됩니다. 예측이 쉽지 않고, 국가별 상황에 맞추어 갈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한국의 경우 아쉬운 점은 에너지효율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공급관리에 논의가 치우쳐 있고, 수요관리에는 둔감한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로 자원빈국인데요, 일본이 작년 '신국가에너지전략'을 발표했는데 그 중 에너지효율에 대한 부분이 주목할 만했습니다. 일본은 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며 새로 태어난 나라로서, 예를 들면 1차 오일쇼크 직후인 74년에 산업계가 사용하던 에너지의 양과 지금 사용량이 동일합니다. 물론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에너지를 덜 쓰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2005년의 신국가에너지전략에서 앞으로 20년간 에너지효율을 25% 정도 추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단지 일본 국내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효율 개선 프로세스와 기술을 현재 낮은 에너지 효율로 고민하는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 국가에 전략적으로 수출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했는데요. 이것을 언론들이 'J 브랜드화' 전략이라며 아주 높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단위 GDP 생산에 드는 효율을 1이라 할 때 우리나라는 3.3, 중국은 9배가 드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일본은 앞으로 에너지효율을 수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 에너지효율을 개선하는 것은 유전을 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에너지효율에 관한 표준을 수립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재승: 수요관리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자원경쟁, 에너지안보를 논할 때 정부차원의 유전확보와 같은 에너지자원 확보에 치중했는데, 사실 에너지자원 확보는 국가간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중국 등 거대 플레이어들이 영향력이 대단히 큽니다. 에너지 개발은 도박판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기술 좋은 사람도 돈을 따지만 결국 밑천 두둑한 사람이 돈을 따게 되는 확률이 높습니다. 많은 자본을 가지고 오래 기다려 회수하며 기술까지 갖춘 메이저들과 경쟁할 때 한국이 공급 측면만 강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요 측면이 다소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진정으로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요관리가 절실합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유럽국가들이 재생에너지를 자신 있게 20%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유럽 내 산업구조가 서비스 중심으로 많이 옮겨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규로 EU에 가입하여 아직 제조업의 비중이 큰 국가들은 여기에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에너지효율 증진 및 절감을 위하여 79년의 '합리적 에너지이용에 관한 법률'이 도입되는 등 추진을 했었지만, 산업구조 자체가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중공업 비중이 커서 에너지 원단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오일 시대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3. 포스트오일시대의 정책변화
이근: 에너지표준이나 시스템의 지향점을 논할 때, 에너지자원 확보보다도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준의 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결국 산업정책과 연결할 수 있는데요. 한국이 포스트오일시대를 대비하여, 미래성장동력으로서 에너지효율과 관련된 기술에 투자를 유인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되었다고 보십니까?
김현진: 참여정부 들어 에너지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가 노력했던 기간이었습니다. 86년 유가폭락 후 2000년까지 저유가시대가 도래했었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각국에서 에너지정책은 후퇴했었습니다. 에너지산업도 IT산업 등에 밀려났고 인력도 뿔뿔이 흩어져 실업자가 되었는데, 다시 고유가척釉?맞아 부활했습니다. 우리의 에너지정책이 유가 변화와 맞물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 온 것입니다. 2000년대 고유가시대를 맞아 자원외교에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후퇴했던 기간이 있기 때문에 아직 적절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에너지정책은 후퇴했었습니다. 자주원유개발율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15%까지 올라갔다가 저유가시대가 되면서 11% 정도로 떨어지고, 일본석유공사(JNOC)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이 일어 해체했습니다. 다시 고유가시대가 되고 나서 일본도 메이저급 자원개발전문기업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2005년 6월 신국가에너지전략에서 자주원유개발율을 40%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의 경우 에너지효율을 하나의 산업경쟁력으로 간주하여 꾸준히 개선해 왔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70년대 일본기업들은 미국의 대기정화법에 대응하여 자동차 배기가스를 낮추는 데 노력하였고, 그 결과 80년대부터 자동차수출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일본은 에너지효율, 온실가스 감축 등에 묵묵히 대비하여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에너지정책이 후퇴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달러 확보 차원에서 기존에 확보한 유전까지도 많이 팔았었습니다.
이재승: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이제 분명한 추세이고, 한국도 기본적인 문제의식과 방향성은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에너지기본법도 도입되었고, 수요관리나 효율개선에 관한 인식도 더욱 체계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세련된 효율개선사업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부주도의 10부제나 5부제 같은 정책보다는, 시장에 좀 더 투영시켜서 기업이나 소비자들이 에너지효율을 체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에너지효율에 관한 인식을 보다 강하게 심어준다든지, 기업의 경우 단순히 지도와 규제를 하기보다 에너지효율개선에 대한 금융지원, 세제지원을 하여 시장친화적인 방향으로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미국이 도입하고 있는 에너지 효율성 개선 사업 중에서, 가령 집을 지을 때 유리창의 단열이 잘된 것으로 바꾸면 해당 비용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준다든지, 자동차도 바이오에너지 또는 에너지효율이 높은 종류일 경우 세제 인센티브를 준다는 등의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비자들도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고, 기업들도 거기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현진: 효율과 관련하여 더 말씀을 드리면, 우리나라 에너지효율은 OECD 평균의 1.5배 정도로 개선의 여지가 많은 실정입니다. 산업, 가정, 수송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때, 산업부분은 사실 효율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산업구조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이 많고, 에너지 다소비 기업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정과 수송부분의 에너지소비량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상복합 등의 등장으로 주거면적도 커지고, 2000cc이상 자동차 보급률도 높고 주행거리도 많습니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수입국으로서 에너지관련 문화나 의식이 상당히 낮습니다. 소프트웨어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에너지관련 교육이 중요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사람이 멋지고 아름답다는 의식이 생겨날 필요가 있습니다. 스타들이 하이브리드 카를 타면서 그것이 멋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든지 하는 문화 형성과 가격 인센티브가 맞물리면 효과적일 것입니다.
4. 한국 에너지외교의 문제점
이근: 에너지외교 측면에서, 화석연료의 시대가 바로 끝나지는 않는 만큼 화석연료 확보외교도 있어야 하지만, 거기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한국 에너지외교의 현황과 문제점을 간단하게 짚어주시지요.
이재승: 지금까지 오랫동안 한국의 에너지외교는 특히 석유확보에 치우쳐 있었고, 지난 몇 년은 또한 천연가스 확보에 주력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에너지 외교는 자원확보를 위한 양자협력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공급국 상대의 외교는 다른 국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 하에서 그 성과에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이러한 자원협력외교는 계속 추진해야겠지만, 그와 더불어 수요국 간 외교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요국들은 에너지 확보와 함께 대체에너지, 에너지효율 개선방법 등에 있어 공감대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술개발 등 혼자서는 하기 힘든 부분에 대하여 협력한다면 좋은 정보교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몇몇 부처로 한정되어 있었던 에너지외교의 주체들도 다변화하여 수요국 간 협력및 기술개발, 대체에너지를 위한 외교전략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시킨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 외교 정책을 수립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김현진: 우리나라는 에너지원 수입처의 다변화도 필요합니다. 한국 석유수입의 중동의존도는 82%로 최근 더 높아졌습니다. 중국은 지난 1~2년 간 아프리카 등으로 다변화해서, 중동의존도를 52%에서 49%로 3%정도 낮추었습니다. 미국의 중동의존도는 20%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나마 부시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중동의존량의 75%를 2025년까지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수입처의 다변화가 시급합니다. 물론 에너지원 수입처를 다변화한다고 해도 중앙아시아나 러시아, 카스피해, 아프리카 등 정세가 불안한 곳이 많지만, 그래도 한쪽이 문제가 될 때 다른 쪽에서 보충할 방법이 생깁니다. 에너지원 수입처도 그렇고, 에너지원 자체도 석유보다는 미래에너지원의 트랜드에 따라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재승: 앞으로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얼마나 더 확보하고 있느냐, 비화석연료에너지 관련기술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기준이 될 것입니다. 핀란드, 스웨덴, 일본 등 에너지 선진국들과 기술적으로 협력하는 외교 또한 새로운 외교패러다임으로서 굉장히 중요해질 것입니다.
5. 전망과 과제
이근: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해 주셨습니다. 추가하실 말씀이나 강조하실 부분이 있으시다면 보충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현진: 석유, 가스, 원자력 등에 대해 이해관계를 떠나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너지효율 쪽은 전문가도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관심분야도 자원개발에 치중하고 있고 특히 러시아 진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러시아 진출과 천연가스 확보는 급변하는 지역상황 때문에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도 함께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무자원국에게 자원확보는 중요하지만, '자원'의 의미를 넓게 보고 유형뿐 아니라 무형의 자원 및 사용 시스템에 대해 논의해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든다면 위기대처도 잘 되고 내성도 생길 것입니다.
이재승: 국가의 '에너지리더십'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에너지 문제는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중장기적 경쟁력과 생존이 관계된 부분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중장기적으로 나아갈 목표나 지향점을 뚜렷이 제시해줄 수 있는 국가적 에너지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진: 석유메이저들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BP(British Petroleum)은 'Beyond Petroleum'이라 하여서,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포스트오일 시대에 대비하여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합니다. 천연가스에 투자하기도 하고요.
이재승: 엑손모빌(Exxon Mobil) 같은 곳은 아직 다른 기업에 비해 석유를 고수하고 있습니다만, 쉘(Shell)도 액화석탄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BP는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을 내세워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홍보하는 동시에 재생 및 대체에너지에도 투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현진: 그런 기술들이 경쟁력을 갖출 만큼 개발되면 급격히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토의정서에 미국이 불참하고 있어 실현가능성을 의심합니다만,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현재 경쟁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준비된 후 급격히 진행해서 체제를 그쪽으로 바꾸어버리면, 우리처럼 준비가 안된 국가는 문제가 됩니다.
포스트 교토의정서 협상을 2008년까지 마무리 지을 예정이었으나 부시 이후에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에서 2009년으로 미루고 있는데요, 미국 내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도 자체 무기명투표를 해본 결과 75%가 부시 이후에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정책이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합니다. 미국기업들도 온실가스 감축이 본격화된다고 가정하고 전략을 짜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대기업들은 대응이 될지 모르나 중소기업들은 문제입니다.
이재승: 환경, 친환경, 대체에너지를 논하는 것은, 특히 유럽의 경우 새로운 가치를 지향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가치의 차원을 넘어서 결국 앞선 환경 및 대체에너지 기술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나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고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김현진: 각국의 에너지 현황만 봐도 그 국가의 교토의정서에 대한 입장과 그 입장을 취하는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석유를 지탱해 온 산업들은 새로운 에너지경제체제를 원치 않고 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지 않는 세력과 거기에 연동되어 있는 정치세력이 저항을 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연구가 급격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에너지 위기가 얼마나 빨리 가시화되는가에 따라 다음 과정으로 가는 시기가 결정될 것입니다.
이재승: 새로운 시장의 개척과 새로운 성장동력의 등장에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장과 동력이라는 것은 대규모 투자가 들어가 매몰원가(sunk cost)가 굉장히 큰 반면 언제 상용화되어 이윤을 얻을지, 정말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게 됩니다.
이근: 예전에 국가주도 경제발전 할 때처럼 국가가 시장을 보장해주고, 투자도 유인해 주는 정책을 쓰면 좋지 않을까요?
김현진: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신데요. 사실 에너지산업은 특히 국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왜 중국처럼 못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우리 석유공사가 중국처럼 외국에 나가서 2~3배 비싸게 입찰할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이 할 수 있는 이유는 전폭적인 지지와 실패에 대한 용인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민간기업의 경우 CEO의 임기가 3년 내지 5년이며 매년 평가받는 상황이라 10년이나 2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할 수가 없습니다. 민간에서 기술개발이 이루어지려면 중간단계의 시장 형성이 필요합니다. 시장형성 없이는 장기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신도시를 만드는데, 가정용 연료전지를 몇 퍼센트 이상 공급하겠다든가 하면 민간기업은 시키지 않아도 나서서 하게 됩니다. 시장형성이 기술개발에 결정적인 유인이 됩니다.
이재승: 그래서 국가적인 에너지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큰 정부가 아니라, 효율적인 메커니즘을 만들어서 방향과 인센티브를 주어 시장을 움직이게 하는 높은 차원의 정책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국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근: 많은 공부가 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환경법 전문가인 정서용 교수를 모시고 포스트오일 시대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접하는 기회를 가지려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