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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전통국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가얏고
비틀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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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로고 | |
기본 정보 | |
국가 | 영국 |
활동시기 | 1960년 - 1970년 1994년 - 1996년(레논 없이) |
장르 | 록 |
웹사이트 | http://www.beatles.com/ |
구성원 | |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
더 비틀즈(The Beatles)는 멤버 전원이 영국 리버풀 출신인 록 밴드이다. 비틀즈의 노래는 발라드, 레게, 싸이키델릭, 블루스에서 헤비메탈까지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데 이는 현대 음악 스타일의 장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비틀즈의 영향력은 단순한 음악 뿐만이 아니라 1960년대의 사회 및 문화적 혁명을 야기하였다.
비틀즈는 20여 곡의 미국 차트 1위곡을 포함하여 50여 곡 넘는 톱 40 싱글들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만 1억 6백여 장[1], 전 세계적으로 10억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2]하는 등, 기록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비평가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밴드"로 불리어 지고 있다.[3]
"The Fab Four"라 불리는 비틀즈의 구성원은 존 레논 (John Winston Lennon, 1940-1980), 폴 매카트니 (James Paul McCartney, 1942-),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1943-2001), 링고 스타 (Ringo Starr; 본명 Richard Starkey, 1940-)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논과 매카트니는 밴드의 주요 곡들을 작곡했으며, 해리슨은 후기 비틀즈에 큰 공헌을 했다. 처음 비틀즈가 레코딩을 시작한 이래,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모든 곡 레코딩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맡아왔다. 이러한 이유로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음악적 성장에 있어 중대한 자리를 차지했다.
비틀즈는 1963년 말 영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 비틀즈에 감명 받은 어린 여성들(일종의 오빠부대)을 주목할 만 하다. 이 현상은 영국 언론들에게 "비틀마니아"(Beatlemania)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비틀마니아는 1964년 초에 북미에 상륙했고 이후 비틀즈의 인기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소위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략)이라 하여, 비틀즈는 미국의 초기 로큰롤 및 R&B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칼 퍼킨스와 같은 백인 음악가들과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레이 찰스, 레리 윌리엄스와 같은 흑인 음악가 양 쪽 모두에게 칭송받았다. 비틀즈 스스로의 작곡은 비틀즈 멤버 자신들이 영웅시하는 음악가들의 양식을 모방한 것이었다. 얼마 후 비틀즈는 그들 특유의 타고난 음악적 악상을 바탕으로 비틀즈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5년동안 그들의 음악은 단순했던 초기 히트곡들(예를 들어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에 비해 예술적인 꾸밈같은 것이 상당히 풍부해졌다.(앨범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나 Abbey Road에서 처럼.) 그들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스튜디오 레코딩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들은, 전례 없는 질의 레코딩을 발표하는 모든 곡들에 선보였고, 비틀즈는 동시대 팝 뮤직보다 앞선 효과들을 적용시켰다.
비틀즈는 1970년 공식 해산되었다. 이후 35년 후인 2005년 미국의 연예산업잡지 버라이어티는 비틀즈를 20세기 연예인의 대표 우상(icon)이라 표현하였다.[4]
목차[숨기기] |
1957년 3월, 쿼리 뱅크 그래머 스쿨을 다니던 존 레논은 "쿼리맨"(The Quarrymen)이라는 스키플 그룹을 결성한다.[5] 1957년 7월 6일, 레논과 쿼리맨은 기타리스트 폴 매카트니를 울튼이라는 교회 축제에서 만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폴 매카트니는 쿼리맨에 합류하게 된다.[6]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은 리버풀 인스티튜트의 학교 버스에서 만나 친해졌고, 폴 매카트니는 1958년 2월 6일, 리버풀의 윌슨 홀에서 열린 쿼리맨의 공연에 조지 해리슨을 초대하게 되었다. 이후 계속된 매카트니의 설득 끝에, 해리슨은 1958년 3월, 다른 멤버들 앞에서 리허설을 마친 후 쿼리맨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가입했다. 당시 레논은 해리슨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가입을 거절했다고 한다.[7] 쿼리맨의 구성원은 계속적으로 변했으나, 레논과 그의 친구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베이스), 매카트니, 해리슨을 주축으로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8] 당시 이들이 부른 노래들의 녹음 자료 몇 개는 아직도 남아있다.
쿼리맨이란 밴드의 이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니 엔 더 문독스"(Johnny and The Moondogs), "롱 존 엔 더 비틀즈"(Long John and The Beatles), "더 실버 비틀즈"(The Silver Beetles) 등으로 바뀌어갔다. 이들은 1960년 8월 17일 마침내 "더 비틀즈"(The Beatles)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비틀즈라는 이름과 그 흔치 않은 표기(Be"a"tles)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대체적으로 이 이름은 레논이 지었다고 여겨지는데, 레논은 비틀즈라는 이름이 "딱정벌래들"(beetles; 이는 버디 홀리의 밴드 크리캣츠(The Crickets; 귀뚜라미들)를 따라한 것으로 추정된다)과 "beat"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장난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한 레논은 후에 "Beat-less"를 변형해서 만든 것이라 얘기하기도 했다.
신시아 레논은 존 레논이 "비틀즈"(Beatles)라는 이름을 "랜쇼 홀 바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로서 정했다고 주장했다. [9] 신시아에 따르면 존 레논은 그 장소에서, 'les beat'와 같은 "프랑스어 느낌의" 이름을 정하자고 제한하기도 했다고 한다.[9]
후에 존 레논은 한 잡지와의 1961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농담하기도 했다. "불타는 파이(flaming pie) 위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당신들은 "A"를 쓰는 비틀즈다!'(From this day on you are Beatles with an "A".)"[10] (후에 레논의 이 얘기는 폴 매카트니의 솔로 앨범 《Flaming Pie》의 제목과 동명의 곡에 영향을 주었다.)
비틀즈는 주로 다음 가수(그룹)에게 영향을 받았다.
다음은 영국에서 발매된 정규 스튜디오 앨범과 발매일, 차트에서의 순위 및 앨범의 수록곡이다. 컴필레이션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Please Please Me (1963년 3월 22일) - #1 - I Saw Her Standing There, Misery, Anna (Go to Him), Chains, Boys, Ask Me Why, Please Please Me, Love Me Do, P.S. I Love You, Baby It's You,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A Taste of Honey, There's a Place, Twist and Shout |
With the Beatles (1963년 11월 22일) - #1 - Side one: It Won't Be Long, All I've Got to Do, All My Loving, Don't Bother Me, Little Child, Till There Was You, Please Mr. Postman - Side two: Roll Over Beethoven, Hold Me Tight, You Really Got a Hold on Me, I Wanna Be Your Man, Devil in Her Heart, Not a Second Time, Money (That's What I Want) |
A Hard Day's Night (1964년 6월 10일) - #1 - Side one: A Hard Day's Night, I Should Have Known Better, If I Fell, I'm Happy Just to Dance With You, And I Love Her, Tell Me Why, Can't Buy Me Love - Side two: Any Time At All, I'll Cry Instead, Things We Said Today, When I Get Home, You Can't Do That, I'll Be Back |
Beatles for Sale (1964년 12월 4일) - #1 - No Reply, I'm a Loser, Baby's in Black, Rock and Roll Music, I'll Follow the Sun, Mr. Moonlight, Medley: Kansas City w/ Hey, Hey, Hey, Hey, Eight Days a Week, Words of Love, Honey Don't, Every Little Thing,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 What You're Doing, Everybody's Trying to Be My Baby |
Help! (1965년 8월 6일) - #1 - Help!, The Night Before,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I Need You, Another Girl, You're Going to Lose That Girl, Ticket To Ride, Act Naturally, It's Only Love, You Like Me Too Much, Tell Me What You See, I've Just Seen a Face, Yesterday, Dizzy Miss Lizzie |
Rubber Soul (1965년 12월 3일) - #1 - Drive My Car,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You Won't See Me, Nowhere Man, Think For Yourself, The Word, Michelle, What Goes On, Girl, I'm Looking Through You, In My Life, Wait, If I Needed Someone, Run For Your Life |
Revolver (1966년 8월 5일) - #1 - Side one: Taxman, Eleanor Rigby, I'm Only Sleeping, Love You To, Here, There and Everywhere, Yellow Submarine, She Said She Said - Side two: Good Day Sunshine, And Your Bird Can Sing, For No One, Doctor Robert, I Want to Tell You, Got to Get You Into My Life, Tomorrow Never Knows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년 6월 1일) - #1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Getting Better, Fixing a Hole, She's Leaving Home,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Within You Without You, When I'm Sixty-Four, Lovely Rita, Good Morning Good Morning,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Reprise), A Day in the Life |
The Beatles (혹은 "White Album") Apple Records (1968년 11월 21일) - #1 - Side A: Back in the U.S.S.R., Dear Prudence, Glass Onion, Ob-La-Di, Ob-La-Da, Wild Honey Pie, 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Happiness is a Warm Gun - Side B: Martha My Dear, I'm So Tired, Blackbird, Piggies, Rocky Raccoon, Don't Pass Me By,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I Will, Julia - Side three: Birthday, Yer Blues, Mother Nature's Son, Everybody's Got Something to Hide Except Me and My Monkey, Sexy Sadie, Helter Skelter, Long, Long, Long - Side four: Revolution 1, Honey Pie, Savoy Truffle, Cry Baby Cry, Revolution 9, Good Night |
Yellow Submarine (1969년 1월 17일) - #3 - Yellow Submarine, Only A Northern Song, All Together Now, Hey Bulldog, It's All Too Much, All You Need Is Love - Side two: Pepperland, Sea Of Time, Sea Of Holes, Sea Of Monsters, March Of The Meanies, Pepperland Laid Waste, Yellow Submarine In Pepperland |
Abbey Road (1969년 9월 26일) - #1 - Side A: Come Together, Something, Maxwell's Silver Hammer, Oh! Darling, Octopus's Garden, I Want You (She's So Heavy) - Side B: Here Comes the Sun, Because,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Sun King, Mean Mr. Mustard, Polythene Pam,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Golden Slumbers, Carry That Weight, The End, Her Majesty |
Let It Be (1970년 5월 8일) - #1 - Two of Us, Dig a Pony, Across the Universe, I Me Mine, Dig It, Let It Be, Maggie Mae, I've Got a Feeling, One After 909, The Long and Winding Road, For You Blue, Get Back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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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 폴 매카트니 · 조지 해리슨 · 링고 스타 · 피트 베스트 ·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 |
매니저 | 브라이언 엡스틴 · 앨런 클라인 · 애플 레코드 |
제작 | 조지 마틴 · 제프 에머릭 · 노먼 스미스 · 필 스펙터 · 애비 로드 스튜디오 · 제프 린 |
공식 스튜디오 음반 | Please Please Me (1963) · With the Beatles (1963) · A Hard Day's Night (1964) · Beatles for Sale (1964) · Help! (1965) · Rubber Soul (1966) · Revolver (1966)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 Magical Mystery Tour (1967) · The Beatles (White Album, 화이트 앨범) (1968) · Yellow Submarine (1969) · Abbey Road (1969) · Let It Be (1970) |
영화 | Hard Day's Night (1964) · Help! (1965) · Magical Mystery Tour (1967) · Yellow Submarine (1968) · Let It Be (1970) |
관련 문서 | 레논-매카트니 · 비틀마니아 · 영향 · 다섯 번째 비틀 · 폴 매카트니 사망설 · 브리티시 인베이전 · 애플 레코드 · 오노 요코 · 지미 니콜 |
즐감~~~*^^*
이들은 60년대 초반에 성행하고 있었던 생기없는 팝 발라드나 댄스곡과는 대조적으로 활기차고 깨끗하며, 풍요로운 사운드를 구사한 것이었다. 절충주의를 주도하여 그들의 전매특허처럼 된 '새로운 어떤 것'을 추구했던 이들은 매혹적인 선율을 만들고 흥미로운 보컬화음을 개발하였으며 그들의 음악에 흔히 감화음이나 세븐스, 나인스 화음을 사용하여 일반적인 평범한 삼화음 진행의 테두리를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 특히 [help] 이후에, 작곡가인 존과 폴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평이 자주 포함하여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성격의 곡들을 만들어서 록음악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서정적인 세련미를 첨가 시켰다. 그들의 서정적인 가사에 내재되어 있는 끊임없는 철학적 관심사는 또한 밥 딜런(Bob Dylan, 포크 록의 대가)에 필적할 만큼 록음악의 지적인 영역을 넓히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아마도 록 음악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앨범인 [revolver]에서부터 이들은 진기한 악기편성을 록계에 도입하였는데, 인도의 민속악기인 시타르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부의 사람들에 의해서 철학적인 개념을 충분히 감지한 최초의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는 [sgt.pepper...]는 상당히 통일된 작업의 소산으로 불후의 명작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정교한 레코드 쟈켓은 앨범 도안 분야에 새로운 표본을 탄생시켰다. 음악산업에 있어서도 그룹과 개인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인데 엘비스 프레슬리를 능가하는 스타들이 되었고 레코드 판매에서 있어서도 억대를 능가하는 앨범과 싱글을 판매하여 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그들의 성공은 또한 전문적인 작곡가들의 곡을 노래하던 개개인의 싱어들에게 편중되어 있던 음악산업의 문호를 자신들의 곡을 연주하는 밴드들에게도 크게 개방하게끔 바꾸어 놓았다. 일관성 있는 음악연주는 소비자인 대중의 관심을 싱글에서 앨범으로 바꾸어서 촛점을 맞추었고, 또 그때까지 별개의 개념이었던 연주자와 작곡자를 본질적으로 단일화시켰다. 비틀즈의 출세로 말미암아 영국의 많은 아티스트들도 자신들의 음악을 발표하여 인기를 얻게 되었고(제 1차 인베이션의 시작), 그때부터 미국의 영국음악에 대한 견제의 벽도 무너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비틀즈가 개척하여 이룩한 연주와 작곡상의 발전이 비평가들로 하여금 록음악을 하나의 필수적이고 자연적인 예술의 형태로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유례없이 밝은 전망을 지닌 것으로 평가하도록 유도한 점이며, 또 대중에게는 록이 의식 경험의 총체적이고도 내면적인 응집의 형태로서 이해되도록 유도한 점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약물과 인도음악과 초월적 명상으로 옮겨 놓았다. 더우기 그들은 젊은 층의 문화를 촉진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생활의 일부분으로서 필수적이 되는 것이 되도록 고취하였다. 비틀즈의 역사는 1955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존 레논(John Lennon)이 쿼리맨(the quarrymen)이라는 밴드를 창단하면서부터이다. 56년 7월에 존과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이 만나게 되었고 폴은 후에 밴드에 가담하였다. 58년 8월에는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가담하였고 59년에는 트리오를 형성하게 되었다...이 한 해 동안 이들은 밴드명을 여러 번 바꾸다가 결국은 '실버 비틀즈(silver beatles)'로 낙착이 되었다. 60년 존과 폴, 조지는 드럼의 피터 베스트와 기타의 스투 스투클리프를 맞아들여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감상력이 부족한 청중들 앞에서 혹독한 밤을 세우면서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다(77년 이때의 실황이 발매되었음). 61년에는 스투가 밴드를 떠났고 이듬해인 62년 4월 10일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들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고 그해말 레코드상점 주인인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b epstein)이 이들의 재능을 발견한 후 녹음계약을 맺어주기 위해 힘을 썼다. 62년 초에 EMI(브리티쉬 개피탈)사에서 의해 발탁된 그들은 62년 8월 60년 함부르크에서 만났던 링고 스타(Ringo Starr)가 '로리 스톰'이라는 밴드에서 탈퇴하여서 피터의 후임으로 밴드에 가담하였다. 62년 9월 미래의 이들의 제작자인 조지 마틴(GEORGE MARTIN)과 함께 첫 녹음을 위한 모임을 가졌는데, 10월에는 [love me do]가 발매되었고 두번째 싱글인 [please please me]가 63년 2월에 영국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것이 비틀즈의 등장이었다. 4월에 발매된 이들의 영국 데뷔앨범은 앨범챠트에서 6개월간 정상을 지키고, 64년 1월 미국에서 세 번째 싱글로 발표된 [I Want to Hold You Hand](뒷 면은 80년대 티파니(Tiffany)가 리메이크해서 전세계적인 히트한 'I Saw Her Standing There')를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발매했는데 발매 2주일도 되기 전에 빌보드 정상에 오르고 60년대를 통해서 가장 빠르게 정상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아울러 단시간에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기도 했다. 64년 2월에 역사적인 전미순회공연을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속에 시작하였다. 댐이 터지듯 폭발적인 이들의 인기를 저지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이들의 뒤를 따라 영국의 밴드들이 미국으로 대거 진출하게 되었다. 한편 존과 폴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에게도 'I Wanna Be Your Man'이란 곡을 주었는데 롤링 스톤즈의 첫 히트싱글이 되었다. [I Want to Hold You Hand]를 발표한지 수주일 뒤에 'Can't Buy Me Love', 'She Loves You', 'Please Please Me',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Twist and Shout', 'Love Me Do', 'P.S. I Love You' 등이 차트 정상을 앞다투었다. 64년 3월에는 이들의 첫 영화인 [a hard day's night]을 녹화하기 시작하였고, 존은 그의 첫 자서전을 출판하였으며, 7월엔 영화가 개봉되었고 8월에는 두번째 전미순회 공연길에 올랐다. 65년 2월에는 그들의 두 번째 영화인 [help]를 촬영하여 7월에 개봉하였으며, 6월에는 존이 두번째 자서전을 출판하였다. 'A Hard Day's Night', 'And I Love Her', 'I'll Cry Instead', 'Carl Perkins', 'Matchbox', 'I Fel Fine', '8 Days A Week', 'Ticket to Ride'(후에 혼성 듀오인 카펜터스(Carpenters)가 리메이크해서 크게 히트시킴) 등의 곡들이 60년대 중반에 이들이 히트시킨 싱글들이었다. 존과 폴의 세련미는 65년 중반 이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Help', 'Yesterday', 'Nowhere Man', 'Eleanor Rigby', 'In My Life' 같은 곡들은 초기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심오한 정적감성의 응축된 밀도가 내포되어 있다. 더우기 조지의 작곡실력도 과시되는데 'Taximan', 'Love You Do', 'I Want to Tell You'가 조지의 작품이다. 특히 'Rin', 'Tomorrow Never Knows'에선 스튜디오의 제작 기술을 동원하였다. 제작자겸 편곡자인 조지 마틴의 영향이 66년부터 68년 사이에 특히 강하게 나타났고 가사에 있어서도 존과 폴의 노래들이 흔히 논리적 설명을 거부하며 괴기와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띄기 시작했다. [Rubber Soul]중 'Norwegian Wood'에서 처음으로 분명하게 나타났던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마약의 일종인 LSD의 앞 글자를 인용해서 만든 곡이라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곡), 'A Day in The Life'와 같은 정수적인 곡, 그리고 'Strawberry Fields Forever', 'Penny Lane', 'I Am The Walrus' 등의 곡들에도 나타났다. 66년 8월의 전미순회공연을 끝으로 공연을 중지한 이들은 관심을 녹음과 개인적 활동의 추구에 기울였다. 이들의 첫 스튜디오 제작 앨범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67년 6월에 예약만 100만장(당시에 100만장의 개념은 지금의 개념과는 확연히 다름)에 이른 가운데, 판매업계가 처음으로 '자작곡 앨범'으로 인정하는 작품으로 평론가들로부터 찬사와 극찬을 아낌없이 받았으며 비틀즈의 작품 중에서 최고봉으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60년대 최고의 스튜디오 제작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A Day in The Life' 한 곡으로도 이 앨범의 평가는 극존칭 일색이다. 클래식계의 신화 같은 존재였던 레너드 번스타인도 이 작품을 감상하고는 클래식을 능가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린 앨범이다. 67년 이들은 개별적인 활동에는 존과 링고가 영화에 출연하여 연기자로서 데뷔를 하였고, 같은해에 [magical mystery tour]라는 텔레비젼용 영화에 대본, 배역, 감독, 그리고 편집까지 자신들이 맡아서 만들었으나 편집과 촬영의 미숙함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해 11월에는 사운드트랙 앨범을 만들었으며 수록곡으로는 'The Fool on The Hill', 'I Am The Walrus', 'All You Need Is Love', 'Hello Goodbye', 'Penny Lane' 등이 있다. 68년에는 조지가 영화 [Wonderwall](94년 오아시스(Oasis)의 히트곡인 'Wonderwall'의 제목은 여기서 따왔다 한다)의 작곡과 편곡을 자신이 한 자작 음악을 녹음하였고, 존은 오노 요꼬(후에 존과 결혼한)와 함께 논쟁을 일으켰던 'Two Virgins'를 녹음하였다. 4월에 비틀즈는 자신들의 레코드사인 애플(Apple) 사를 설립하였고 11월에는 해체설이 나도는 가운데 자사의 상표로 [The Beatles](일명 화이트 앨범)라는 더블앨범을 발표되었는데 불화설과 해체설을 뒷받침하듯 'Back in The U.S.S.R', 'Blackbird', 'Revolution #1'. 그리고 조지의 걸작인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릭 클랩튼(Eric Clapton)과 함께 녹음함) 등 이전의 그들의 곡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곡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총 30곡이 수록된 그들의 첫 더블 앨범인 [The Beatles]는 일명 '화이트 앨범'으로 불려졌는데 비평가들 입에서는 '비틀즈적인 재기는 없고 잡동사니만을 모아놓은 것 같은 산만함과 혼돈밖에 없다'라는 혹평을 받았다. 이 앨범부터는 밴드가 아니 개개인적인 면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멤버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앨범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자신들의 레코드사인 '애플'사의 돈벌이를 목적으로 내놓은 졸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고, 중심이 없고 비틀즈가 빠진 소외된 작품이긴 하나, 3주만에(제작 기간은 5개월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작업소요량은 3주다) 만든 그들의 천재성이 드러난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69년을 통해서 비틀즈는 각기 개별적인 활동으로 바쁜 한해를 보냈는데 링고는 [The Magic Christian]이란 영화에 출연하였고, 3월에는 존과 오노 요꼬가 결혼했으며, 폴은 린다 이스트맨과 결혼했다. 이들 두 쌍의 결혼은 비틀즈의 종말을 비공식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았다. 존은 9월에 토론토에서 오노의 밴드인 the plastic ono band와 연주를 하여 비틀즈의 일원으로서 밴드를 떠나 연주를 한 최초의 멤버가 되었다. 69년에 발표한 [Abbey Road]는 11월에 발매되었으며, 조지의 'Something', 'Here Comes The Sun' 링고의 'Octopus's Garden' 그리고 이들의 해체설이 확실하게 다짐된 듯한 곡 'The End'가 수록 됐으며, 사실상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조지 마틴이 처음으로 제작하였고 후에 필 스펙터가 다시 작업하여 결국 70년 5월에 발표하였던 [let it be]는 다시 드러난 내부의 불화와 영화의 편집문제로 발매가 중지되었다. [hey jude]는 미국에서 낸 앨범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싱글들을 모은 것이었는데 'Lady Madonna', 'Rain', 'Paperback Writer', 'Hey Jude' 등을 실었다. 5월에 개봉된 영화 [let it be]의 사운드트랙 앨범에는 주제곡인 'Get back',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등이 수록됐는 데 이것이 비틀즈의 마지막 싱글이었다. 70년 말에는 이들 네 명의 멤버가 모두 솔로앨범을 발표하였고 71년 초에는 폴이 비틀즈의 해체를 청원하기에 이르렀으며, 74년 12월 30일에 법적인 종말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를 통해서 비틀즈가 다시 모여서 야심적인 프로모터에 지휘하에 녹음하거나 아니면 연주를 다시 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그러나 80년 12월 8일 존이 뉴욕에서 살해당하자 마침내 비극적 여운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나머지 세 사람은 린다(폴의 부인)와 함께 81년 추모식에 봉헌된 조지의 곡 'All Those Tears Ago'를 공동으로 녹음하였다. 비틀즈는 위대하였다. 후세에도 이런 큰 영향력을 행세할 그런 밴드의 탄생은 없을 것이다. 필자가 비틀즈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때도 어느새 13년이 된 것 같다. 지금도 이 글을 올리면서 그들에 대한 여운만이 남는다. 가끔 록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 항상 이들의 음악이 나를 다시 록의 자리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어느덧 내 나이도 서른의 문턱이다. 10년 이상을 이들의 음악을 들어왔는데 지겹다거나 질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비틀즈의 존재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Changgo's Focus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세기의 명반 TOP 10 (1999년 1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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