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비에 잡풀이 무성한 고향 아버님 산소도 손보고, 홀로 계신 어머니도 뵐 겸 지난 주 토요일에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은 늘 변함없이 푸근하고, 시시때때로 추억을 되살려 주지만, 안주 할 수 없는 도회지 삶에 얽매여 사노라니, 이제 그 고향도 점차 낯설어 지는 느낌이다.
이웃집 풀 깎는 기계를 빌려 아버님 산소의 무성한 잡풀을 자르는데, 두어달 있으면 추석 전 벌초를 할 텐데 공연히 미리 하나 하면서, 올 가을엔 어쩌면 안 와도 되려나 속으로 생각하는데 뭔가가 기계 칼날에서 튀어 오른쪽 눈을 찌른다. 고속 회전하는 기계로 풀을 깎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기에 눈물을 쏟아내며 몇 번 깜빡이면 대개 흙먼지 등은 닦이기 마련인데 이번엔 오른 눈의 한 부분이 희미하게 보이며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조금 지나니 많이 나아져서 산소 둘레까지 다 깎고, 갈퀴로 긁어 산소를 깨끗이 단장하고, 산소 오르는 길목까지 잡풀들 모두 베어 말끔히 단장하고는 내려와 샤워를 하고, 한잠자고 나니 눈이 아프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고향 들녘을 한바퀴 돌며 산책을 하는데 오른 눈이 점점 희미해지며 현기증이 나길래 부지런히 돌아와 누워 한눈으로 TV를 보다가 자고 나면 낫겠지 하면서 잠을 청했다.
안 하던 중노동을 해서 그런지 아침에도 몸이 천근인데, 눈을 뜨려 하니 오른쪽 눈이 쿡쿡 쑤시며 뜰 수가 없다. 흐미, 이게 웬일이냐…. 어머니 안약을 넣고 나니 잠시 괜찮은 듯 하다가는 이내 통증으로 눈을 뜰 수가 없으니 덩달아 왼쪽 눈도 뜰 수가 없다.
일요일이니 병원도 다 문닫았을 터이고, 그래도 일단 서울엘 가면 어찌 할 것 같은데 눈을 뜰 수가 없으니 운전도 못하고 참으로 난감하였다. 천안 형한테 전화하니, 차라리 119에 연락 하라는데, 무슨 비상사태라고 그 난리까지 피우냐 하면서, 바가지에 물을 받아 눈을 담그고 깜빡이니 한결 좋아진다. 다시 수도 호수로 눈에 물을 부으면서 혹시 눈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물질을 씻어내는데, 역시 많이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상태가 호전되었을 때 빨리 서울로 가는 게 좋겠다 생각하여 시동을 거는데, 천안에서 형이 달려왔다. 걱정하며 응급실에라도 가자는 것을 뿌리치고 일단 차를 몰고 고향 마을을 벗어나는데,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겨우 고개 넘어 병천 시내에 가서는 혹시나 하며 병원엘 가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서 일요일인데도 문을 열었다.
병원이래야 일반 내과이지만, 시골이라 뭐든지 다 본다. 눈을 보더니, 젊은 의사(인지 모르겠으나 진료를 한다) 깜짝 놀라며 원장선생에게 달려가서는 고개를 흔들며 안과로 가야겠다고 한다. 일요일에 안과가 문 연 곳이 어디 있냐고 하니 끄덕이며 세척만 해주겠다고 한다. 세척이라야, 옆으로 뉘이고는 그저 식염수를 흘려 주는 게 고작이다. 그래도 나이 지긋한 원장선생님은 눈을 보더니 이것저것 처방 해주며 주사한대 맞고 가라고 하면서, 그 약 먹고 쉬면 잘하면 나을 것이고, 안되면 내일 안과전문의를 찾아가 보라고 한다.
처방전을 들고 시내 약국을 찾는데 하늘이 노랗다. 약을 사서 한 봉 입에 털어넣고 소독 물약 눈에 넣고 차에 올라타니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의자에 기대어 눈이 진정되기를 기다려도 차도가 없다. 시내 길가에 마냥 주차하고 있을 수도 없어, 서울방향으로 가다가 한적한 도로에서 좀 쉬기로 하고 일단 출발을 하였다.
목천 못 가서 한적한 길가에 차를 대고 눈을 감으니 비로서 편안하다. 눈을 감으면 전혀 고통이 없다. 이렇게 편한 것을, 애써 눈을 뜨면, 오른쪽 눈은 찟어질 듯 아프고, 왼쪽 눈은 오른쪽 눈을 따라 저절로 감긴다. 오른쪽 눈을 감고 왼 눈만 떠보니 마치 눈 속에 모레가 들어 있는 듯 지글거리고, 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원근감이 없어 오히려 어지러웠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두 눈을 감고 시간을 보내는데, 눈을 감으면 편하고, 눈을 뜨면 지옥이다. 그래, 이게 바로 인생이구나… 그래서, 삶이 어려우면 모든걸 포기하고 눈을 감는구나. 두 눈을 감고, 무념무상에 빠지면, 세상이 그렇게 편한 것을 이제야 깨달으며, 그래도 눈을 떠야 하는 현실이 괴로움도 알았다.
한시간이 넘도록 눈을 감고 쉬어도 전혀 차도가 없어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눈을 부릅떴다. 눈이 지끈거리고,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 저절로 감기는데,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한시간만 참자하며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열 두시가 안된 휴일의 고속도로는 다행이 시원스럽게 뚫려있어, 3차선으로만 시속 100킬로미터에 안전거리 100미터를 유지하며 달렸다. 정신은 몽롱하고, 시야는 흐릿한 것이 영락없이 만취상태의 음주에 졸음운전이나 다름없다. 다행이 차가 많지 않아서 차선 변경 없이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상태는 최악이었다. 수시로 머리를 흔들며, 소리도 질러보며, 거의 몸부림 치듯 달려서 죽전 휴게소에 도달 해서는 거의 기절 상태였다.
죽전에서 다시 출발하여 30여분 만에 서울 집에 도착하여서는 그대로 쓰러졌다. 어부인의 황당함이란…. 세시쯤 되니 시골 노모가 전화를 하셨다. 공연히 아버님 산소는 얘기 해 가지고 막내아들 눈병 났으니 어쩌냐 하며 안절부절 하신다. 병천에 병원 문 열어서 치료하고 왔으니 걱정 마시라고 하니 조금 진정하신 모양이다. 내일 큰 병원 가서 치료하고 전화 하라고 신신당부 하신다.
월요일 아침 일찍 동네 안과 전문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각막이 찢어져서 주름이 생긴 상태에서 그사이 새 살이 나와 붙었다며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4일을 장님처럼 살았다. 덕분에 1주일 휴가 내고, 두 눈 감고 아무런 일도 안하며 흔들의자에 앉아, 소파에 누워, 그리고 침대에 누어 4일을 보냈다. 역시나, 두 눈을 감으면 그렇게 편한 세상, 끝없는 잠 속에 빠져들면서, 4일간은 온전히 세상일에서 일탈하여 편안히 보냈다. 덕분에 금요일 오전에 무겁게 누르던 안대를 풀고는, 오후 내내 1주일치 밀린 업무 처리하느라 또다시 뻐근한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
도대체 눈은 왜 그렇게 다쳐 가지고 심란하게 만드냐며 눈 흩기는 어부인에게, 그간, 시골 어머니께 소홀하였고, 아버님 산소를 돌 보지 않아서 아버님이 화가 나신 모양이라며, 고향에 자주 가자고 다짐을 하고는, 덕분에 오랜만에 온전히 한 주일을 같이하며 새삼 부부와 가족의 사랑을 깊이 해 주었음에 감사하였다.
다음주는 또 미국 출장이기에, 내일 아침 일찍 출발을 한다. 장마비도 마무리되고 대단한 더위가 예고되어 있는 다음주에도 모두 건강하며 즐거운 날들이 되시길 미리 기원해본다.
첫댓글 어이구 세상에나~ 얼마나 아팠을꼬~ 나도 평소에 눈이 많이 피로한 사람이라 초우가 당했을 고통이 느껴지누만요. 한동안 좀 업무 접고 쉬면서 무리안해야 더 좋으련만 미국 출장을 바로 갔으니... 짬짬이 눈 감고 쉬고 그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