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서쪽끝자락 김포공항을 지켜보고있는 개화산은 작지마는 아름다웠습니다. 자연보다는 인공의 품이 그렇게 만든것 같습니다. '강서둘레길' '무장애자락길'등 여러이름으로 불리우는 개화산둘레길은 산자체가 해발 128m의 작은산이라 굴곡이 심 하지 않은데다가 흙산이고 또한 한강이 옆을 스치고 흐르고 있어 우리같은 '망팔'들의 트레킹에게는 안성맞춤이었던것 같았습니다. 산의 숲도 설악산, 지리산같은 큰 산의 원시림처럼 울창하지는 않더라고 뭇 산들처럼 알맞게 무성, 땡볕을 가려준것도 좋았습니다.
구산회원 16명이 지난 21일 정기산행에서 답파한 둘레길은 5.2km, 초입 한 10분간 깔딱고개를 오르는 것이 약간 땀이 났지만 다음부터는 큰 기복없이 비교적 평지나 다름없는 산 허리를 한 바퀴도는 원점회귀형. 더구나 둘레길의 거의 3분지2는 나무데크를 깔아놓아 편안하고 위험에서 해방된것 같았습니다. 특히 등반자가 임의 선택할 수 있는 들머리도 될 수 있고 날머리도 될 수 있는 약 1.5km의 '무장애 자락길'은 계단없이 약간의 경사만 있는데다 데크길이라 이름값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둘레길을 따라 '하늘공원 전망대' 에서는 김포공항과 그 일대를 조망했습니다. 공항활주로는 한산 했습니다.
곧 이어 '호국충혼위령탑,을 참배했습니다. 이 위령탑은 바로 65년전 6월25일 한국전쟁이 터지자 국군1사단 12연대3대대(대대장 김무중소령)비롯한 11연대, 15연대 일부등 모두 1100명의 장병이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김포공항방어전끝에 전원사망한것을 기려 사단에서 세운것입니다. 위령탑과 전사자이름이 새겨진 전몰자비가 세워져 있는 추모공원은 약 3천여평규모로 잔디밭, 휴계실등이 조성돼 비교적 관리가 돼 있었습니다.
구산회원들은 숙연해 졌습니다. 김연의,심용섭 , 오창열등은 "요즈음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이 어떻게해서 지켜졌는지 알아야한다"고 세태의 안보불감증을 개탄했습니다. 선우재호 부인 이승현은 참배하는것을 보고 "명문고 답다"고 추켜세워 주었습니다.
추모공원인접 풀밭에서 즐거운 점심을 들었습니다. 빵,떡,라면, 옥수수등으로 떼웠어도 배는 채웠습니다. 물론 막걸리와 소주도 돌았습니다.
식후에 장석진이가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담배로 물의께나 일으켰던 '정해산'이 다시 등장한 것같았습니다. 30분전쯤 첫 휴식때에도 피워, 이재승, 이남규등 좌중으로 부터 싫은 소리를 들었으나 마이동풍 이었습니다. 너나 할것 없이 모두들 "창피하다"고 한 목소리 였습니다.
이어 '바닷길 전망대'에서 크레인인 녹슬어가고 있는 경인운하선착장등 운하일대를 조망했습니다. 구산회의 성향대로 박원순서울시장을 도마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제 정상인 봉화정, 봉화대에 올랐습니다. 그 옆에 이조 중기 겸제 정선이 경기좌도 양천현감이었던 시절 그렸다는 멀리 목멱산(남산)을 담은 한강풍경화 복사사진판을 몇 점 소개한것을 감상했습니다. 복사사진판도 달랑 두,서너 작품이었고 관리도 엉망, 사진판위에 낙서까지 휘갈겨 져있었습니다. 전시행정의 대표적 폐해였습니다.
들머리에서 신설된 대사찰 약사사(구 개화사)는 기름이 흐르는것 같았습니다.
뒤풀이는 방화전철역 인근의 유명한 국수집이 문을 닫아 신승현이 소개한 근처의 유명 '홍짜장'으로 입을 즐겁게하고 배를 채웠습니다.하오 4시30분께 자리를 떴습니다.
이날 등반참석자 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현순, 김성녕, 김연의, 김영주, 신승현, 심용섭, 안재식, 오창열, 유용선, 이남규.이병량, 이수봉,이승연, 이재승, 장석진, 한후진
P.S.
입금: 130.000원
지출: 점심, 주류 등 146.500원
부족: 16.500원
잔액: 전기잔액 1.373.650원- 당기부족액 16.500원=1.357.1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