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의 영문 이름은 ‘K.J. CHOI(케이제이 초이)’다. 재미교포 뿐만 아니라 이제는 미국 갤러리들도 ‘케이제이’를 외치며 응원을 펼친다. 이런 그의 영문 이름 알파벳 여섯 글자에는 최경주가 살아온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KOREA
● 최경주가 다니는 곳에는 언제나 태극기 3개가 있다. 하나는 골프화 뒤꿈치에 있고, 다른 하나는 골프백에 붙어 있다. 그리고 캐디의 겉옷에도 태극기가 있다. 한 때는 태극기가 인쇄된 볼도 사용했으나 지금은 태극기 문양이 새겨진 볼을 사용하지 않는다. 볼이 아웃오브바운즈(OB) 구역으로 날아가거나 워터 해저드에 들어가면 거기에 새겨진 태극기까지 없어지는 게 싫어서다. 사실 태극기는 국가대표 등 한국을 대표할 때 단다. 하지만 최경주는 태극마크를 달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최경주가 태극기를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미국 투어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시도 고국을 잊어본 적이 없다.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고 말한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찡하고 힘이 솟는다고도 한다. 우승 인터뷰에서는 언제나 “새벽잠을 잊고 응원을 해준 여러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의 ‘코리아’ 사랑은 지난해 골프 국가대표팀 선수들에게 보낸 격려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이 편지에서 “흔히 골프를 개인 운동이라고 하지만 태극기를 가슴에 단 여러분이나 미국 PGA 투어에 진출한 나는 조국의 명예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개인 차원에서만 골프를 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또 “나는 국가대표 생활을 하지는 못했지만 미국 PGA 투어에 가장 먼저 진출한 대한민국 선수이기 때문에 늘 태극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최경주의 고국 사랑을 미국인들도 이해하는 듯 올해 8월 AT&T내셔널에서 최경주가 우승했을 때 주최측은 시상식장 주변에 대형 태극기를 마련했다.
JESUS ● 최경주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는 인터뷰 때마다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서” 등 이런 식이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고깝게 표현하면 ‘예수쟁이’라고 할만도 하다. 그의 삶도 금욕주의자에 가깝다. 담배는 물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최경주는 그러나 원래 ‘골초’에 ‘말술’이었다. 그의 지인들에 따르면 최경주는 자기 전에 머리맡에 담배를 놓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찾았다. 하루에 보통 2~3갑 정도를 피웠다. 그러나 교회에서 아내 김현정씨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술과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도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술은 1년에 3번 정도 날을 잡아놓고 마신다. 신앙심이 강한 최경주는 남몰래 사랑도 실천한다. 국내 대회에 올 때마다 상금을 보태 수재민 돕기나 복지시설에 기부한다. 아내를 통해서도 남몰래 국내 결식 어린이들을 위해 그동안 3억원 가까운 성금을 전달한 것으로 최근에서야 알려졌다. 지난달 귀국했을 때도 ‘골프 꿈나무’ 어린이 20명을 모아 놓고 특급레슨을 펼쳤고, 신한카드 인비테이셔널 스킨스게임 상금도 전액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타이거 우즈나 필 미켈슨, 비제이 싱뿐만 아니라 미국 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상당수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경주도 은퇴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재단을 만들어 주니어 골퍼 육성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그동안 여러 차례 밝혔다. 그가 일상에서 바른 생활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꿈나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다. 최경주는 또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자립할 때까지 걱정거리 없이 지낼 수 있는 복지시설도 설립하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최경주는 1,000만달러의 기금을 모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가 억척같이 노력하며 투어에 전념하는 건 개인적인 명예와 성취욕도 있지만 이런 이웃 사랑의 신념도 저변에 깔려 있다. 그에게 골프는 사랑을 실천하는 도구다.
CHAMPION ● 최경주는 이제 한국을 넘어 아시아 골프 영웅이다. 챔피언이라는 단어가 전혀 낯설지 않다. 지난 2002년 미국 뉴올리언스 잉글리시턴 골프장에서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 첫 우승을 거둔 최경주는 지난해 아시아인 최초로 4승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도 2승을 추가하며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특히 올해 메모리얼토너먼트와 AT&T내셔널 우승은 남달랐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 등 내로라하는 강호들이 즐비한 가운데서 ‘메이저급 우승’을 거둔 것. 최경주는 이전까지 4승을 거뒀지만 우즈가 출전한 대회 우승은 올해가 처음이다. 미국 PGA 투어 우승은 우즈가 참가한 대회냐, 아니냐에 따라 격이 다르다. 최경주는 이를 발판으로 지난 8월 아시아 출신 최초로 세계 랭킹 톱10에 진입했고 올해 상금도 미국 진출 이후 최초로 450만달러를 훌쩍 넘기는 실익도 챙겼다. 그러면 최경주는 한 대회를 뛸 때마다 얼마나 벌까. 올해 25개 대회(2007년 10월말 현재)에 참가한 최경주는 상금으로 458만7,859달러를 챙겼다. 대회 당 약 18만3,500달러를 번 것으로 이는 역대 평균인 7만3,400달러의 2.5배에 해당한다. 그만큼 올해 잘했다는 얘기다. 최경주에 대한 주최측의 대우도 달라졌다. 최경주는 “과거 미국 PGA 투어에 도전할 때 투어 선수들의 전용 연습장에 갔으나 투어 카드가 없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몸이 피곤해 프로암 시간을 오후로 바꿔달라고 하면 바꿔준다. 또 차를 집까지 가져다 달라고 하면 그런 것도 해준다”고 달라진 위상에 대해 말했다. 한편, 최경주의 18번은 남진의 ‘빈잔’이다. 그는 “아직 내 잔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고 말하곤 한다. ‘챔피언’의 질주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HISTORY
● 초등학교 시절부터 힘이 좋았던 최경주는 전남 완도 화흥초등학교 시절 축구와 씨름에 자질이 있었다. 당시 생활기록부에는 “축구부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고 쓰여 있다. 중학교 시절에도 역도 선수로 약 1년 반 정도 활동한 최경주는 나이 문제(호적으로 1970년생인 최경주는 도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실제로는 1968년생인 것을 말했다가 실격됐다)로 도대표에 뽑히지 못하자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최경주는 그러나 완도 수산고 1학년 때인 1987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수산고 체육교사였던 박현덕씨가 최경주를 포함해 3명으로 골프부를 창단한 것. 최경주를 처음 지도한 사람은 당시 완도에서 유일하게 연습장을 운영하던 추강래(55)씨였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최)경주가 연습장에 온지 3일 만에 90m 정도 되는 연습장을 훌쩍 넘기데요. 나중에는 ‘저는 이제 골프로 승부를 볼랍니다’라고 하고요. 아, 그래서 ‘이 놈이 장차 뭔가 큰일을 낼 놈이다’고 예감했죠.” 남달리 의지가 강했던 최경주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안가에서 벙커샷을 연습했고, 지금은 우즈가 “한 수 가르쳐달라”고 할 정도로 벙커샷 실력만큼은 세계 최고다. 또 연습장이 넓지 않은 탓에 겨울에는 논의 벼를 베고 나면 그 위에 볼을 올려놓고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강인한 의지를 갖춘 덕에 최경주는 남들이 반대할 때 미국 진출을 시도했고 한국 골프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OPTIMISM ● 긍정적 마인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말을 한다. “세계 랭킹 50위 이내 선수들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다. 다만 멘탈에서 승부가 날 뿐이다.” 물론 여기서 우즈는 논외로 친다. 그는 워낙 차원이 다른 골프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멘탈만큼 최경주가 강한 분야도 없다.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다. 배짱도 좋다. 안 된다는 말보다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 지금은 우즈를 비롯한 필 미켈슨(미국), 비제이 싱(피지), 짐 퓨릭(미국) 등 세계적인 톱 플레이어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지만 초창기에 최경주를 알아주는 동료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왕따’를 놓기 일쑤였다. 인종차별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최경주는 기죽지 않고 최정상급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누는 등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언어 문제에서도 그렇다. 최경주는 “영어 때문에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안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볼을 잘 치면 아쉬운 쪽에서 통역을 데려오지 않겠느냐는 것. 실제로 긍정적인 마인드는 최경주의 목표 달성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미국에 진출하면서 그는 지인들에게 “3년 안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고 장담했고 그 약속을 2년 만인 2002년 실현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남에게 자신의 목표를 공표한 후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피나는 연습을 한 것이다. 최경주는 언제나 더 높은 목표를 정한다. 세계 랭킹 톱10 진입은 올해 달성했고, 이제 그에게 남은 목표는 아시아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특히 ‘꿈의 무대’ 마스터스에서 우승해 이듬해 ‘챔피언스 디너(대회 개막 전 역대 챔피언들의 저녁 만찬. 이 때 음식 메뉴는 전년도 우승자가 정함)’에 된장찌개를 올리고 싶다는 게 최경주의 포부다. 긍정의 힘이 그의 마지막 꿈도 이뤄 주리라.
INNOVATION
● 최경주는 ‘진화하는 탱크’다.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는 거의 매년 “스윙 교정 중”이라고 밝힌다. 그는 올해 6월에도 “스윙 높낮이 균형을 맞추고, 손목을 쓰는 스냅샷이 아닌 큰 근육으로 하는 스윙을 익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현재 60~70% 단계에 와 있다”고 했다. 최경주의 혁신은 미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체격 조건에서 월등히 불리하기 때문에 이전의 스윙으로는 그들과의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비디오를 통해 자신과 체형이 비슷한 톰 왓슨, 이안 우스남 등의 스윙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강한 하체를 토대로 한 보디턴 스윙을 만들었다. 잠시 연도별로 최경주가 스윙 교정과 관련해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자.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필 리츤에게서 교정을 받았다. 주로 쇼트 게임 지도를 받았다.” (2002년) “스윙을 100% 뜯어고치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비록 올 시즌 성적이 요동치고 있지만 지켜봐 달라.”(2003년) “최근 몇 년 간 진행해 온 스윙 교정은 ‘기초적 단계’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 짧고 굵은 선을 긋는 효율적 스윙을 만들어가겠다.”(2004년) “작년 겨울부터 착수한 스윙 교정이 이제 완성 단계다. 아직 100%는 아니지만 그동안 몸에 익지 않아 다소 불편하게 여겨졌던 느낌은 사라졌다.”(2005년) “좀 더 오래 PGA 투어에서 버티려면 지금 스윙으로는 안 된다. 점점 더 파워풀한 스윙을 구사하는 선수가 많아지고 코스도 파워 히터에게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2006년) 이러한 점은 우즈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즈는 한창 잘 나가던 2003년 스윙 변화를 시도해 이듬해 단 1승도 챙기지 못하며 황제 자리를 싱에게 넘겨주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스윙 교정이 마무리된 2005년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이빨과 발톱으로 무장하고 돌아와 ‘서른 살 잔치’를 열었다. 우즈는 올해 9월 “나와 코치 행크 헤니는 항상 이상적인 스윙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스윙 교정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오히려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나는 예전 스승인 부치 하먼, 지금의 헤니와 꾸준히 스윙에 변화를 줬고 조금씩 발전했다”고 말했다. 최경주도 자신의 스윙을 교정하기 위해 후배인 위창수에게 퍼팅 비법을 묻는가 하면 절친한 친구, 심지어 자신의 캐디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첨단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운동선수도 롱런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최경주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최경주의 벙커샷 레슨 최경주는 타이거 우즈도 인정한 벙커샷의 달인이다. 어린 시절 집 앞 바닷가에서 벙커샷을 다듬은 결과다. 여기 있는 사진들은 지난 달 신한동해오픈 연습라운드 당시 최경주가 벙커샷을 하던 장면이다. 당시 최경주는 평소 아끼던 후배 이한주를 부르더니 한 가지 비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턱이 높은 벙커의 바로 아래쪽에 볼을 놓은 최경주는 볼을 지그시 밟아 반쯤 잠기게 했다. 볼이 묻힌 데다 높은 벙커턱이 바로 앞에 있어 일반적인 벙커샷으로는 빠져나오기 힘들어 보였다. 이한주 역시 “그걸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 최경주는 잘 보라는 듯 미소를 짓더니 벙커샷을 날렸고 높이 솟구친 볼은 붕 떠올라 그린에 안착했다. 최경주는 “볼이 반쯤 잠겨 있어 페이스를 과도하게 오픈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때는 페이스를 스퀘어하게 한 후 임팩트 직후 오른손을 놓으면서 왼 손목을 풀어 로프트 각도를 크게 해주는 게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60도 웨지로 벙커샷을 할 때 임팩트 구간을 지나면서 왼 손목을 바깥쪽으로 밀면서 풀어주면 64도 웨지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오른손을 놓는 건 바로 이 효과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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