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의 시스티나 성당

처음 창조된 남자에게 하느님이 팔을 펼쳐 손가락 끝을 대며 생명을 불어넣는 ‘아담의 창조’.
이 그림이 시스티나 천장화를 불후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미켈란젤로는 배가 턱에 닿을 만큼 웅크린 채 일을 하다 온 몸에 종기가 생기기도 했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업을 하다 물감 세례를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343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놀라운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들 가운데 엑스트라는 한 명도 없다.
바티칸은 교황청이 위치한 나라다. 그리고 교황은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리는 추기경 회의에서 선출된다. 교황 선출 비밀회의, 즉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릴 때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교황 선출이 진행 중임을 알리는 신호이고,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프레스코화가 천장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로 더 유명한 듯하다.
여기서 잠깐! 프레스코화란 명칭이 이 책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도대체 어떤 그림을 프레스코화라고 하는 것일까? 프레스코는 벽에 그리는 그림, 즉 벽화 기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프레스코화란 간단히 말하면 회반죽으로 만드는 벽이 프레스코(이탈리어로 축축하고 신선한)한 상태에서 물에 녹인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이러한 기법을 부온 프레스코라고 하는데, 메초 프레스코라고 해서 벽이 마른 후에 그리는 경우, 두 기법을 혼합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 보자. 이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외에 수많은 프레스코화가 있다. 예수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화 여섯 점이 북쪽 벽에 있고, 남쪽 벽에도 프레스코화 여섯 점이 있다. 물론 각 프레스코화의 작가는 다르다. 그뿐인가? 미켈란젤로는 천장 프레스코화를 완성한 지 20년이 지나 서쪽 벽에 다시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ment)〉(1534~41)을 그렸다.

프레스코화가 가득한 시스티나 성당의 벽과 천장
사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라는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일 수도 있는 과정을 거친 끝의 일이었다. 처음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무덤을 설계하고 지으라는 명을 미켈란젤로에게 내린다. 미켈란젤로는 그 무렵 유명한 조각가였으니까 이 명은 그에게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무덤을 장식할 수십 점의 조상(彫像) 작업에 착수했으나 교황의 변덕 때문에 이 일은 중단되고 말았다.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간다. 그러나 몇 달 후 교황은 그를 다시 불렀고, 그는 교황의 좌상을 만든 후 이번에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로부터 4년 동안, 그러니까 1508년부터 1512년까지 약 18미터 높이의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를 스스로 만든 후 그 위에 선 채로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배가 턱에 닿을 만큼 웅크린 채 일을 하다 온 몸에 종기가 생기기도 했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업을 하다 물감 세례를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 안, 즉 12사도를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달리 343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놀라운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말이 343명이지 그들 가운데 엑스트라는 한 명도 없다.
장방형의 세 개씩 짝을 지은 중앙의 아홉 개 패널에는 첫째부터 천지창조(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과 별의 창조, 바다와 육지의 분리로 구성)와 아담과 이브의 창조(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 추방으로 구성), 노아 이야기(노아의 제사, 대홍수, 술에 취한 노아로 구성)가 묘사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아담과 이브의 창조를 그린 둘째 짝의 첫째 패널에는 처음 창조된 남자에게 하느님이 팔을 펼쳐 손가락 끝을 대며 생명을 불어넣는 ‘아담의 창조’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야말로 시스티나 천장화의 이름을 불후의 것으로 만든 작품으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모를지라도 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복원 작업이 1994년에 끝났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인 초와 향의 그을음과 과거에 이루어진 수정과 복구 흔적이 제거되었다. 그러자 거무스름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그림들이 사실은 아홉 가지 색상만을 쓴 선명한 그림임이 드러났다.
미켈란젤로의 천장 프레스코화는 총 800제곱미터의 넓이에 그려져 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무 그림이나 천장을 향해 그려 넣기에도 빡빡한 4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는 불후의 작품을 남겼으니 미켈란젤로의 작업 앞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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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그린 전설적인 프레스코화가 천장에 그려져 있는, 교황의 개인 성당
1473년에서 1484년에 걸쳐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건설된 시스티나 성당은 바티칸 시국 안에 있다. 오늘날 이 성당은 교황의 개인적인 성당이자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추기경단이 비밀 회의를 여는 장소이다. 그러나 떼를 지어 몰려오는 방문객들을 이끄는 것은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품인 프레스코화이다.
<천지 창조>, <신과 인류의 관계>, <신의 은총을 잃은 인류>(1508~1512) 등의 장면으로 이루어졌으며, 넓이가 800㎡에 달하는 아홉 점의 그림이 그려진 반 원통형 모양의 둥근 천장은 미켈란젤로의 이력이 절정에 도달했음을 나타낸다. 그는 교황 율리오 2세의 명을 받아 프레스코화를 그리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를 도와주기 위해 선정된 피렌체의 기술자들이 그가 원하는 정확한 기준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은 거의 그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되었다. 이는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리고 발판에 올라가 작업했던, 예술가의 인내력이 거둬 낸 성과라 할 수 있다.
그 결과로 300명이 넘는 인물로 구성되었으며 역동적인 스타일로 인간의 형태를 묘사하는 방법을 새로이 발명해 낸,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명작이 탄생했다. 이 거대한 규모의 작업이 너무나 고되어 미켈란젤로는 23년 동안 그림 그리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으나, 결국 시스티나 성당으로 돌아와 제단 뒤의 벽에 <최후의 심판>(1535~1541)을 그리게 되었다. 이번에는 교황 클레멘스 8세를 위해서였는데, 완성된 것은 그의 뒤를 이은 교황 바오로 3세의 후원 아래에서였다. 한때 이 그림은 남성의 나체가 성기까지 완전히 묘사된 채 들어 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덕택에 약간 위축되기는 했지만, 성당의 벽에도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리스도의 유혹>(1482), 도메니코 기를란다오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불러 사도로 삼는 그리스도>(1483) 등 뛰어난 예술 작품이 있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라파엘로가 제작한 태피스트리가 성당을 장식한다.
"이 작품은 교황의 성당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공공 목욕탕이나 선술집에나 어울린다."
클레멘스 7세의 행사 책임자, 비아조 다 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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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성당 천장벽화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 중 하나인 바티칸(Vatican City)은 위대한 역사와 위대한 인간 정신의 모험을 증언하고 있다. 이 조그만 국가의 경계 안에는 뛰어난 예술품과 건축물들이 있다. 바티칸의 중앙에 있는 산피에트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은 이중 콜로네이드(회랑)로 만들어졌으며 전면의 원형 광장이 있으며 궁전·정원과 인접에 있다. 성 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진 이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종교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라파엘로(Raphael)·미켈란젤로(Michelangelo)·베르니니(Bernini)·마데르나(Maderna)·브라만테(Bramante)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천재성이 결합된 산물이기도 하다.
1508∼1512년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장식할 그림을 그리라는 명령을 받고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천장에 천지창조를 중심으로 한 그림을 그렸다.
천장의 수평면은 9등분 되었는데 제단 쪽에서부터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전개했다. 미켈란젤로는 입구에 있는 《술취한 노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9개의 장면을 8개월 후에 완성했다. 1510년부터 9개의 그림 주변을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7명, 이방의 예언자인 무녀 5명, 그리고 8개의 삼각 부분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선조들, 그리고 천장 사각의 모서리에는 이스라엘을 구한 성인을 그렸다. 20개의 기둥 위에는 4인 1개조의 젊은 군상을 그렸다.
1512년 10월 조수 1명 두지 않고 혼자서 기적적으로 완성하였고 만성절 11월 1일 제막식을 하였다. 그는 프레임 등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혼자서 작업을 했으며 등이 휘는 육체적 고통도 겪었다. 이 그림은 그후 여러 번 덧칠과 복원을 거듭했으며 1982년 일본의 한 방송사 후원으로 최초의 작품과 유사하게 복원되었다.
천장 중에 길게 9개 부분은 《천지창조》를 테마로 하여 제단에서부터 《빛의 창조》 《해·달·초목의 창조》 《땅과 물을 나누다》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 추방》 《노아의 번제》 《노아의 홍수》 《술취한 노아》를 그렸다.
사각의 모서리에는 이스라엘을 구한 성인인 《모세와 청동 뱀》 《하만의 징벌》 《유디트》 《다윗과 골리앗》을 그렸으며 문 쪽의 모서리에서 제단까지 이르는 모서리에는 그리스도의 선조인 《이새》 《솔로몬》 《르호보암》 《아사》 《웃시야》 《히스가야》 《요시아》 《스룹바벨》을 그렸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요나》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이사야》 《요엘》 《스가랴》를 그리고 이방의 무녀는 《페르시아 무녀》 《에트리아 무녀》 《델포이 무녀》 《쿠마에 무녀》 《리비아 무녀》를 그렸다.
수백 명의 인물들이 제한된 틀 속에서 율동적으로 배치된 거대한 유기체와 같은 이 천장화는 양과 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인물들의 육체 묘사와 그의 종교의식이 돋보인다. 1534년 미켈란젤로는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시스티나 성당 정면의 제단화(祭壇畵)인 《최후의 심판》도 그렸다.
교황은 《아담의 창조》를 보고 하나님을 무서운 존재로만 여겼는데 미켈란젤로의 신은 온화한 모습이라며 감탄하였다 한다. 이 작품은 이후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예배당 벽면에는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 등이 그린 걸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