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사를 집대성했을 뿐 아니라 문장가라면 누구나 본받으려 하는 司馬遷의 ‘사기’, 그 중에서도 열전의 국내 완역본은 3종 뿐이다. 남만성 역, 정범진 외 역, 김원중 역이 전부인데, 이번 취재에서는 이성규 역까지 포함해 총 4종의 번역서를 검토했다.
이성규 역은 사기를 해체·재구성한 것으로 완역은 아니더라도 열전의 내용을 전달해줄 수 있는 번역이라는 전공자들의 의견 때문이다. 사기 연구는 사학계와 문학계 양쪽으로 나뉘므로, 이를 두루 섭렵하고자 양 분야 전문가 총 12명의 의견을 골고루 들었다.
역사적 문맥 위에서 해체·재구성 탁월
이성규 서울대 교수의 번역은 총 6명이 “가장 권하고 싶은 번역본”으로 꼽았다. “한문번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료비판과 해석을 충분히 거치면서 구성을 새롭게 한 게 탁월하다”라는 것이 주된 의견인데, 즉 역사학자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한 것이다.
또한 해체·재구성의 독특함이 높은 점수를 샀다. 최초의 통일제국인 秦 왕조의 흥망성쇠를 재구성해 설명한 것, 특히 진시황의 암살기도를 비롯한 반란과 멸망의 과정이 논리적으로 잘 설명된다는 견해다.
김경호 성균관대 교수는 “사회와 경제, 사상과 철학, 고대사회의 주술적·신화적인 세계관과 그 의식에 대해 관련 열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라며 장점을 평가한다. 해제가 뛰어나다는 점도 이성규 역을 꼽는 이유다. 제1편에서 사마천의 저술 동기와 목적을 상세히 밝힌 건 ‘사기’ 이해를 한껏 돕는다.
몇몇 구절을 통해 다른 번역본과의 차이를 짚어보자. 신성곤 한양대 교수는 ‘장의열전’ 첫 부분 “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 學術, 蘇秦自以不及張儀”를 예로 든다. 남만성 역은 “학술을 배웠다”로, 김원중 역은 “유세술(합종술과 연횡술)을 배웠다”로 번역해 김원중 역이 남만성 역보다는 자세하지만 ‘術’의 개념을 너무 좁게 이해한 것이며, 이성규 역은 “(치국의) 술을 배웠다”로 풀이해 술에 대해 가장 근접한 번역을 했다는 것. 김경호 교수는 ‘화식열전’에 나오는 ‘山西’에 대한 번역들을 비교한다. 그에 따르면, ‘山’은 전국·진한시대에 山西 와 山東 지역을 나누는 산으로서 대개 華山을 지칭하거나 太行山을 가리키는데, 이에 대해 김원중 역과 남만성 역 모두 아무런 주석없이 ‘山西’로 번역해 독자로 하여금 오늘날 중국의 행정구역인 ‘山西’로 오해케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성규 역은 ‘효산’이라고 밝혀 독자의 오해를 미리 예방한다”라고 덧붙인다. 김 교수는 越王 句踐이 회계산에서 곤경에 빠진 내용도 근거로 든다. 월왕 구천이 곤경에 빠진 이유는 吳王 夫差에게 패했기 때문인데, 이 부분은 간단하나마 해설을 해줘야 한다는 것.
그러나 김원중 역은 “옛날 월나라 왕 구천은 회계산에서 고통을 겪으면서”라고, 남만성 역은 “옛날에 월왕 구천이 회계산 위에서 괴로움을 당하고”라고만 해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치 못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성규 역은 “옛날 월왕 구천은 (吳 군대에 포위되어) 회계산 위에서 (커다란) 곤경에 빠졌을 때”라고 밝혀 차별성이 있다고 덧붙인다.
물론 이성규 역도 비판받는 부분이 여럿 있다. 우선 한나라 부분이 제외돼 완역이 아니란 점은 빼놓을 수 없을테지만, 그 외에도 김병준 한림대 교수는 “사료비판과 해석은 뛰어나나, 각주가 충분치 못하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최덕경 부산대 교수는 해석상의 차이가 번역상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즉, “이 교수의 학설이 번역에도 반영되어 있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전공자들이 보기에는 동의 못하는 부분들도 몇몇 있다”라는 것이다.
4명에게 추천받은 김원중 건양대 교수의 번역은 최근의 것인 만큼 ‘가장 현대적인’ 번역이다. 임병덕 충북대 교수는 “이해하기 쉽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하며, ‘사기’의 원래 의도를 존중해 어감을 살려 번역하려 했다”는 점을 들어 추천한다.
신성곤 교수와 심규호 제주산업대 교수는 “가장 현대적인 표현이며, 의역도 많고, 각 열전의 첫부분마다 해설을 싣고 중간제목을 군데군데 붙여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라며 장점을 꼽는다.
오역·잘못된 주석 수두룩한 역본들
그러나 신성곤 교수는 김원중 역의 지나친 의역을 경계한다. 가령, 상앙이 좋아했다는 刑名之學에 대해, 남만성 역과 이성규 역은 “刑名의 學”이라 표현했지만, 김원중 역은 “법가의 학문”이라 의역했다. 신 교수는 “형명과 법술이 법가의 학술인 것은 분명하나 당시 법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으며, 三晋 지역의 유가에서도 이런 경향은 있어 법가의 학문으로만 보는 건 지나치다”라고 지적한다.
임병덕 교수는 “각주가 빈약하고, 특히 해석상의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문학적 수사나 기교로 표현한 곳이 적지 않다”라며 아쉬움을 말한다. 윤재석 경북대 교수의 비판은 좀더 신랄한데, “‘상군열전’에 나타난 번역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열전 중의 백미로 꼽히는 ‘화식열전’에서의 오역과 이해부족이 나타나며, 번역상 누락된 부분이 약 40군데나 있어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라는 의견이다(이 비판은 개정판이 아닌 초판본에 의거한 것이다).
정범진 외 역은 ‘史記’ 완역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여명의 소장 학자들이 동원돼 중국 三秦 출판사의 백화본 주석·번역본을 중역했다. 2명이 추천했는데, 상세한 내용과 각주의 충실성은 사실 대부분의 전공자들이 동의하는 바였다. 그러나 여기저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적지않다.
‘허사’ 등으로 인한 뜻 놓고 미해결 쟁점 많아
이를 추천한 하원수 성균관대 교수는 “일부 오역과 독창성이 없는 점”을 비판한다. 김병준 교수는 “다수의 역자가 번역해 일관성이 없고 번역능력 편차도 심하다. 심한 오역과 생략이 눈에 띄는 장도 있으며, 문체도 번역자마다 달라 정확하고 생동감 있는 문체가 있는가 하면, 어감이 살지 않는 문체도 있다”라며 허술하게 이뤄진 공역에 일침을 가한다. 사실 공역은 잘하면 역작이 되지만 충분한 토론과 교열이 없다면 ‘잡동사니’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또 중국어본을 중역한 점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백이열전’의 한 구절에서 “어디 그뿐이랴!”라는 구절을 넣었는데, 이는 원문엔 없는 것으로 백화문이 삽입한 걸 그대로 따랐다는 지적이다. 각주상의 오류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신성곤 교수는 “‘郡’의 역주(405쪽)가 “고대의 행정구역으로, 주대에는 현 아래 군이 있었고, 하나의 현에는 4개의 군을 두었다. 전국시대의 군은 현의 관할 하에 있었다”로 돼있지만, 고대란 어떤 시대인지 알 수 없으며, 주대에는 군이 없었고, 춘추말기를 제외하고 전국시대 초부터 군은 현의 상급기관이었다”라고 지적한다. 또 91쪽에 ‘송 양왕’이란 것과 101쪽에서 ‘동주’를 ‘제후국’이라고 한 것 등도 오류라고 덧붙인다. 남만성 역은 “뛰어난 한문솜씨”를 제외하곤 모든 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요약하자면, “가독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오역이 적지 않고”, “축약된 것들이 눈에 띈다”라는 것이다. 윤재석 교수 등은 “특히 전문가적 지식이 없고 연구성과가 반영되지 않았으며, 주석이 사전적 용어해석에 머무는 등 추천할 수 없는 번역”이라고 평가한다.
‘사기’ 전공자들 사이에선 백이열전’의 “夫學者載籍極博,猶考信於六藝”를 두고 이견이 많다. 열세 글자 중 허사가 부·극·유·어 등 네 글자나 돼 관점 차가 있는 것. 이인호 한양대 교수가 그 해석을 논문으로 내놓았지만, 김원중 교수 등은 “이 교수의 해석을 수용하기 어렵다”라고 밝히는 등 학술적 쟁점들이 산적해 있다.
추천교수 명단 김경호 성균관대(중국고대사), 김병준 한림대(중국고대사), 김성환 전주대(한문산문), 김원중 건양대(중문학), 김종성 숭실대(중국산문), 신성곤 한양대(중국중세사), 심규호 제주산업정보대(중문학), 윤재석 경북대(중국고대사), 임병덕 충북대(중국고대사), 최덕경 부산대(중국고대사), 하원수 성균관대(중국중세사) 이상 총 11명 가나다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