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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사봉성지]진주 장재성당 허성학신부와 경남지역 순교자(제3회;순교자 정창문)
순교자 정창문(鄭燦文 안토니오, 1822~1867년)
순교자 정창문(안토니오)은 진주시 사봉면(寺奉面) 무촌리(武村里) 중촌(中村)에서 부친 정서곤(鄭瑞坤)과 모친 울산 김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순교자는 고려 말 대사헌을 지낸 정온(鄭溫)의 후손이었다. 정온(鄭溫)은 조선이 건국되자 절개를 지키려 낙향했던 인물이다. 순교자는 대산면 가등공소 신자 칠원 윤씨(尹氏)와 혼인하였는데, 부인의 권면으로 영세 입교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순교자는 신자인 것이 드러나 체포되었다. 놀란 문중(門中)에서는, 천주교인이 아니니 다시 조사해 달라는 재심을 청원(고복·考覆)하는 한편, 순교자를 회유하려 하였다. 양반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던 정씨 집안에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교인이 나타났으니 문중 박해는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갖은 압박과 질책이 가해졌지만 순교자는 배교를 거부했다. 다시 감옥 갇힌(음력 9월 20일)순교자는 혹독한 심문을 거듭 받았다. 그동안 그의 가산은 적몰되고 가족들의 생활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내 윤씨는 매일 주먹밥을 들여보내며 신앙을 지키도록 남편을 격려하였다. 거듭되는 문초에 매을 너무 맞아 1887년 1월 25일(음력 1866. 12. 20)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친척들이 시신을 요청하자, 관에서는 머리를 남겨두고 몸만 내어 주었다. 순교자가 양반가문 사람이고 재심을 청구한 문제의 죄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하체(下體)만 장사 지냈고, 이곳 사람들과 신자들에게 무두묘(無頭墓)로 알려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안토니오 순교자가 참수치명(斬首致命)한 것으로 전해지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순교자의 무덤은 문산본당 7대 주임(1946-1948) 서정도(徐廷道 베르나르도) 신부가 1947년 12월 9일 가을 판공성사 차 ‘굼실공소’에 갔을 때 공소회장 정 바오로에게 순교자 안토니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치명일기』(1895년 刊)의 기록을 토대로 정찬문 안토니오 순교자의 묘를 찾기 시작하였다.
1948년 3월 29일 문산본당 서정도(베르나르도) 신부는 본당 청년회원들을 데리고 엠마오 행사를 겸해 순교자 묘소 발굴에 나섰다. 순교자의 후손(종 증손)인 정경진(鄭景珍)의 증언을 토대로 무덤을 파 보았으나 무두묘(無頭墓)가 아니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본당 신부와 여러 교우들이 문산으로 귀가하고, 차편이 없어 몇몇 청년들은 남게 되었다. 그 때, 무촌리 중촌에서 나고 출가해 같은 마을에서 줄곧 살아온 당시 85세의 광산 김씨 텃골(富洞) 할머니(1864년 8월 15일 생, 무촌리 1024번지 거주)가 청년들에게 다가와 언짢아하며 "왜 엉뚱한 무덤을 팠을꼬! 찾는 무덤은 다른 곳에 있는데…"하며, 어릴 때부터 ‘서학하다 몰 잘려 죽은 무덤’이라고 알고 있는 허유고개의 무덤을 알려주었다. 교우들(주로 청년들)이 무덤을 열었을 때 구덩이를 깊이 파지 않고 매장한 흔적이 완연했다. 이 제보로 1948년 3월 29일 순교자의 무두묘(無頭墓)가 확인되었다. 순교자의 묘소는 허유고개 비탈길 가에 있었는데, 아무도 무덤인줄 모를 정도로 봉분(封墳)이 허물어져 있었다.
보고를 받은 서 신부는 절차와 예(禮)를 갖추지 않고 순교자의 무덤을 파헤친 청년들의 성급한 행동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서정도(베르나르도) 신부는 그해 5월 31일 교우들과 본당 수도자들과 순교자의 외인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덤을 다시 열고 유해를 새로 입관하였다. 그리고 중촌 마을 학생들이 사봉 초등학교 가는 등교길섶에 있던 순교자의 묘소를 약간 위쪽으로 이장하였고 본당에서 준비한 비석을 세웠다. 발굴현장에 입회하고 목격한 증인들의 명단은 정 바오로(굼실공소 회장), 박 아드레아, 제 알폰소, 최 루수, 최 안드레아, 박 마태오, 김 예로니모, 조 베네딕토, 허 루수, 허 요셉, 조 그레고리오, 허 레오, 이 요안나, 순교자의 종 증손 정경진 등이다.(제찬규 신부, 『문산본당 80년사』, 1983년 122-123면 참조)
그 후 진주 옥봉동본당 주임 정삼규(요한) 신부는 옥봉동, 칠암동, 문산, 장재, 사천본당을 중심으로 ‘정 안토니오 순교자 현양위원회’(회장 김영도)를 구성하고, 이 곳 부지 754평을 확보하여 1975년 10월 순교자를 이곳으로 모셨다.
현재의 정 안토니오 순교자 묘소, 사봉성지개발위원회 위원장은 진주 천주교 장재성당 허성학 주임신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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